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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규 / 마음이 욕망하는 풍경

박영택

마음이 욕망하는 풍경


일상의 사물들이 다소 색다르게 연출되어 있다. 형태를 크게 부풀려 내거나 작게 축소함에 따른 익숙한 사물의 크기 변화는 낯설고 기이한 느낌을 준다. 마치 사물에 공기를 불어넣어 팽창시킨 듯, 혹은 대형 광고용 오브제 마냥 자리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깜찍한 디자인으로 마감된 팬시용품을 보는 듯도 하다. 그것은 실재 사물의 재현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보다 크게 혹은 작게, 그리고 단순화시켜 놓은 사물의 닮은 꼴이다. 기존에 존재하는 사물의 형태를 닮은 또 다른 사물인 셈이다. 그것들은 흡사 캐릭터나 팝적 아이콘 혹은 만화이미지 를 닮은 체 공간에 자존하고 있다. 익숙한 사물의 낯섬과 동시에 달콤하고 친숙함, 크기의 변화를 통한 일상적인 사물의 기이한 대면, 디자인적 요소를 적극 끌어드린 조각구조, 색다른 좌대나 바닥과 공간 곳곳에 자연스럽게 일상의 사물처럼 놓이는 설치적 연출 등이 눈에 띈다. 더욱이 화려하고 도회적인 자동차 도료로, 그 인공의 파스텔톤으로 착색되어 색다른 피부로 환생한 사물들은 비현실감과 함께 소비사회의 상품미학에 기반한 매혹적인 대상으로 돌변한다. 자동차란 가장 고급스런 소비품이고 한 개인의 사회적 신분과 부, 기호와 취향 등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상품이자 사물이다. 자동차 브랜드와 색상은 그런 면에서 소비사회에서 가장 예민한 선택의 기준이 된다. 아울러 그 색상은 보편적인 욕망과 선호를 드러낸다. 그 같은 자동차 도료로 칠해진 의사사물들은 본래의 색을 지우고 인공의 색으로 환생했다. 선명하고 강한 색상을 뿜어내는 그 사물들은 달콤하거나 매혹적인 대상으로 다가온다. 현실에서 저마다 갈망하는 대상들은 그렇게 독버섯처럼 화려하고 달콤한 당의정을 두르고 있는 법이다. 작가는 그 대상들이 자아내는 유혹성을 더욱 극화하고 있다. 황남규는 하이힐, 의자, 자동차와 함께 나무, 네 잎 크로바, 사과, 구름, 에너지를 암시하는 형상을 만들었다. 단순하고 함축적으로 마감한 형태의 표면에 선으로 그려진 다양한 인간의 모습이 상감되어 있다. 인공의 피부로 밀착된 바글거리는 인간 존재의 모습이 기묘하다. 크게 인공의 사물과 자연으로 구분되는 한편 인간의 욕망, 현실세계를 둘러싼 갈등과 경쟁, 탐욕과 이기심, 권력을 드러내는 상징들이자 동시에 그로부터 벗어나 치유와 희망, 유토피아적인 세계상을 보여주는 상황설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이란 현실계의 인간을 구원하는 장소, 공간으로 설정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두 개의 다른 영역들을 한 몸으로 불거져 나온다. 수많은 사람들이 집적되고 연결되어 이룬 사과의 형태, 자동차에서 자라나는 야자수, 양복 입은 사람의 목에서 자라는 네 잎 크로바와 한 축으로 자동차, 의자, 구두 등이 등장한다. 이 모든 사물의 표면에 상감된 인간의 형상, 선으로 간략하게 기호화 된 인간이미지가 그려져있다. 사람들은 한결같이 춤을 추는 듯한 포즈다. 기분이 좋거나 환희에 차거나 감격에 겨운 상황을 연출해 보이는 기호화된 인간이미지다. 그 대상으로 육박해 들어가 결국 표면과 하나가 되어 버린 형국을 연출한다. 사과의 표면, 하이힐, 의자, 자동차의 표면에도 악착스레 달라붙고 나무와 구름, 구름 등에도 상감되어 있다. 인간의 욕망은 세속적이면서도 초월적이며 이 상반된 욕망구조가 한 몸으로 엉켜있기도 하다. 사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지속적으로 욕망하지 않고는 설정되기 어렵다. 더욱이 현대사회는 그 욕망의 비등점을 더욱 고조시키는 시스템으로 마냥 빽빽하다. 한편으로 인간은 모든 욕망의 덫에서 벗어난 상태 역시 그리워한다. 이 양가적이고 모순적인 꿈은 한 몸에서 동시에 자라난다.황남규가 보여주는 풍경은 욕망을 쫓는 현대인의 모습이자 동시에 그 물질과 세속적 욕망,권력과 자본의 경쟁구조에서 홀연 벗어나 자연으로 귀의하거나 그와는 상반된 따른 세계에 대한 이상적 희구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것은 결국 작가 자신이 꿈꾸고 갈망하는 순연한 욕망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유토피아이자 이상향에 대한 동경과도 맞닿아있다. 작가에게는 꽃, 나무, 구름 등으로 표상된 세계가 그것이다. 보편적인 자연의 모습이 이상적 세계로 제시된 것은 동양문화권에서는 매우 익숙한 것이다. 산수화가 그런 맥락이고 민화 역시 그렇다. 사실 모든 이미지는 당대의 유토피아를 제시하고 구현해왔다. 이미지의 주술적 힘을 빌어 그 세계를 가상적으로, 환영적으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황남규의 작업실이 위치한 마석 수동면 입석리 작업실 앞 풍경은 더없이 한적하고 수려했다. 특히 아름다운 산이 작업실 앞에 병풍처럼 가득 펼쳐져있다. 이 자연 속에서 살며, 작업하며 일정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작가는 새삼 자연의 치유적 힘에 주목했던 것 같다. 도시에서 힘들게 살았던 지난 시간이, 각박했던 그간의 현실적 삶의 무게가 조금씩 가라앉아주었던 것 같다. 사실 작가들의 작업실 공간과 그 주변 풍경, 환경은 당연히 한 작가의 작업세계를 변화시킨다. 도시에서는 가능치 않은 작업이 자연 속에서 나온다. 그는 조각을 통해 소박하지만 절박한 인간의 이상과 꿈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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