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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선 / 왜 말했어?

박영택

구명선<왜 말했어?>


여자는 단단히 삐쳤다. 남자친구가 자신을 속였거나 거짓말을 했나보다. 아니면 자신에게 솔직히 말하지 않은 게 있었나보다. 서로 사랑한다는 것, 애인이 되었다는 것은 둘 사이에 남김 없는 고백과 투명함을 요구한다. 속속들이 상대방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야 하고 한 점 거짓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암묵적 동의다. 그것이 진정으로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자 온전히 소유한다는 것이다. 그럴까? 우리가 타인의 어디까지를, 얼마만큼이나 알 수 있을까? 또 그것은 과연 가능한가? 사랑하기에 상대방의 모든 것을 완전히 알아야 하고 알고야 말겠다는 것은 좀 무서운 욕망이다. 이 욕망이 너무 크고 깊기에 싸움이 일어나고 서로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준다. 모조리 알겠다고 덤비는 순간 모든 게 깨진다. 순정만화의 여자주인공 같은 여자가 어둠 속에서 눈을 조명처럼 빛내며 다소 무섭게 자리하고 있다. 새까만 흑연을 문질러 그린 이 그림은 흡사 아바타 같은 가상의 얼굴을 보여준다.

이 캐릭터는 작가의 분신이고 내면의 거울이다. “왜 말 안 했어?”라는 말 한마디를 하고 깊고 깊은 침묵으로 상대방을 노려보고 있는 중이다. 섬찟하고 무섭다. 거짓말이 들통났거나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난 뒤 그 사실을 안 여자에게 추궁을 당하는 남자를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무엇보다도 연필 하나만으로 언어화 할 수 없는 묘한 분위기와 야릇한 관능성, 섬세한 감정을 힘 있게 전하는 그림이다. 만화와 미술의 경계로 슬쩍 무화시킨 체 자신의 일상에서 겪는 생의 체험과 그로인한 감정을 집요하게 깊은 검정과 연필선의 무게로 떠내는 흥미로운 회화를 보았다. 아울러 저런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여주었던 어떤 그녀가 순간 떠올라 놀랐다. 티핑포인트2010
관훈갤러리
9.15-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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