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것은 영상으로 전해진다. 나는 오늘도 아침뉴스시간에 전세계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들을 영상을 통해 접하고 있다. 영상이미지가 결정적인 정보가 되었고 내가 세상을 알고 이해하고 그것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 지를 가늠하는 거의 유일한 것이 되었다.

영상을 통해 세계로 들어가고 그 영상들이 모여 세계상을 만든다. 반면 영상은 철저히 가상적이고 비물질적이며 환각적이기까지 하다. 그것은 분명 실제이면서도 어딘지 모호한 추상의 베일로 덮여있다. 전자적 이미지이자 빛의 흐름을 찰나적으로 인지해서 받아들인 그 이미지로 인해 재현된 세계란 어떤 세계일까?

영상작업을 통해 “나를 둘러싼 이 세계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질문해왔던 이태희의 최근작은 이전 작업과 동일한 맥락에서 박동치는데 다만 연상작용과 상상력, 두 이미지의 병치와 혼재가 돋보이는 속에서 좀 더 드라마틱해졌다.

두 개의 이미지가 공존 하고 하나의 이미지에서 결국 다른 이미지로 서서히 전환해나가는 시간, 속도의 추이가 감상의 관건이 된다. 그것은 결정적인 단 하나의 이미지, 장면이 조금씩 다른 장면으로 이동, 포개져 사라지는 과정을 목도하다가 다시 이전의 장면으로 귀환하는 일련의 순환과정을 지켜보는 일이다. 주어진 장면, 장소에 대해 지니고 있던 기존의 관념이나 신념, 익숙하고 상투화된 정보와 지식이 돌연 그와는 정반대의 것으로 돌변하는 체험을 만나게 하는 일이자 서로 이질적이고 심지어는 상반된 것들이 위치이동을 하고 전환되는 순간을 접촉시킨다. 그것은 영상이미지만의 능력이고 매력일 것이다. 고정되어 있는 평면회화와 달리 영상이미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유동하는 이미지를 통해 변신과 의태를 자유롭게 일으키고 공간과 사물의 본래 위치를 탈각시켜 겹쳐놓는가 하면 작가의 상상력을 실현시키는 매체로서의 기능이 우선된다. 관자의 시각적 체험 역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주어지고 인지된다.

독일에 위치한 퀼른 대성당(종교의 권위), 두바이의 초고층 빌딩(자본의 위력과 발전과 진보의 믿음), 영국에 있는 스톤 헨지(신비와 불가사의한 힘), 미국 뉴욕에 위치한 자유의 여신상(자유와 평화, 세계 평화군으로 자청하는 미국), 만년설을 이고 있는 에베레스트 산(거대한 높이, 욕망), 녹아내리는 북극의 빙산(자연생태의 파괴와 오염), 로댕의 작품 지옥문(생각의 상징), 나치에 의해 학살당한 유태인의 초상사진(20세기의 비극, 인간의 야만성) 등이 등장한다. 그 장소와 건물, 오브제들은 각기 상징성이 강한 존재들이다.

작가는 그런 상징성 강한 대상을 정면으로 포착해 담담하게 비춰준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미세한 변화 속에서 서서히 다른 장면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음을 목도하게 된다. 퀼른 대성당의 건물외면이 순간 거대한 미사일들로 가득 채워진다. 단호하고 육중했던 돌을 대신해 미사일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종교와 전쟁은 일견 상반된 영역 같지만 그래야 하지만 지난 역사를 통해 우리는 권력과 종교의 야합이나 밀착을 자주 목도해왔다. 지금도 그렇다. 성가음악이 장엄하게 들려오는 가운데 미사일과 녹슨 총알, 각 나라를 상징하는 로켓트들이 성당 건물의 외부를 포장하다가 서서히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변해가기를 반복한다.

나치에 의해 학살당한 유태인의 초상사진이 즐비하다. 그 참혹한 죽음과 대면하는 순간 하나하나의 인물이 콧수염을 단 히틀러 얼굴로 바뀌어간다. 각 희생자의 얼굴꼴로 변하는 히틀러다. 그와 함께 붉은 장미는 검은 장미로 변한다. 이 순환은 반복된다. 그것은 다만 끝난 역사나 종료된 상황이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그 끔찍한 비극을 거듭 자행한다. 반복한다.
그런가하면 잠시나마 주파수가 맞아 라이도 소리가 제대로 들리면 자유의 여신상이 비로소 나타난다. 그만큼 현대인의 자유라는 것이 무척이나 불안정하다는 메시지다.

또한 거대한 스톤헨지의 돌기둥들이 수직으로 웅장하게 서있다. 역광을 받아 장엄해 보이는 순간 낡이 밝으면 기둥 하나하나가 웅크린 사람의 몸으로 변한다. 밝음과 어두움 사이를 반복하는 가운데 돌기둥이었다가 사람의 몸이었다가를 반복하는 이 작품은 삶의 무게를 지탱하는 인간 존재의 모습, 그 반복을 보여준다. 그와 유사한 작업으로는 빙산을 보여주는 풍경작업인데 고요하고 아름다운 빙산이 바다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데 그 그림자가 서서히 해골로 변하는 장면이다. 흡사 공익광고적 발상이지만 지구온난화와 생태계 파괴와 같은 오늘날 이슈를 드러내는 설득력 있는 작업이다. 이처럼 이태희의 영상작업은 동시대 인간이 처한 삶의 문제와 시사적 이슈를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단순하고 명확한 편이다. 아무래도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를 선명하게 제시하고 이를 관자와 소통하고자 하는 배려에서 그 같은 방법론이 나오고 있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