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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설 / 흙과 함께 한 소요

박영택

흔히 한국미의 특징으로 거론되는 것의 하나가 이른바 무작위적인 미, 혹은 무기교적인 미다. 한국미술에서 엿보이는 일면적인 것의 과장된 지시일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의미 있는 부분이다. 동양예술에서 최고의 경지로 손꼽았던 것이 바로 ‘대교약졸大巧若拙’이다. 지극한 아름다움이란, 그러니까 졸박한 것이다. 그것은 과장된 수사나 분칠, 장식을 저어한다. 자연과 인공이 절묘하게 만난 어떤 경지를 꿈꾼다. 주어진 자연적 재료를 매만지되 최소한의 인위적인 개입을 통해 재료의 본성을 해치지 않고 가능한 한 그것이 지닌 본래의 성질을 극대화하는 쪽이다. 우리 선인들이 남긴 유물들이 한결같이 그런 절묘한 경지를 품고 있다. 그것은 사물을 대하는 남다른 안목과 마음으로 인해 가능한 어떤 경지이다. 재료를 단지 도구로만 다루거나 물질적 측면에서만 파악하지 않고 하나의 생명체이자 타자와의 만남과 접합을 통해 또 다른 존재로 환생한다는 지극히 대칭적 사유 속에서 물질, 대상을 이해한 결과다. 자연과 분리되지 않고 그것과 하나가 되는 합일의 정신을 꿈꾸는 문화 속에서 가능한 미적 오브제들이다. 아니 특별히 ‘미적’이란 목적성조차 염두에 두지 않은, 있다면 조화랄까, 자연스러움이랄까 차마 언어화하거나 정확하게 문자로 지시할 수 없는 어떤 느낌의 상태로 응고시킨 자취일 것이다.

이사설의 최근 도조작업은 흙의 물성 내지 흙이라는 재료의 본성을 가능한 유지하면서 최소한의 인위적 간섭을 통해 흙 자체의 자연스러운 표정과 몸들을 가시화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실용적 차원에서 쓰이는 그릇이나 찻잔 등도 있지만 그것 이외에 작가가 야심차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이른바 도조작업들이다. 그러나 그 도조작업이란 것 역시 특정 조각적 형태나 미적 오브제로 지향되지는 않아 보인다. 그저 흙과 함께 보낸 자연스러운 시간을 응축시킨 듯 하다. 그러니까 흙에 시간의 흔적을 밀어 넣는다. 시간의 자취들이 흙의 표면에서 무늬진다. 흙의 표면에 그 시간 동안 자신의 몸, 손이 흙과 만났던 순간의 기억 내지는 무작위적인 어떤 몸짓을 굳혀놓았다. 따라서 흙은 어떤 순간으로 멈춰서있다. 특정한 형태나 구체적인 형상으로 가기 전에, 모든 것이 다 가능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흙의 실존 같은 것이 물화되었다. 작가는 흙을 밀고 주무르고 쳐대고 그러다가 문득 어떤 것이 자연스레 만들어지면 불에 넣어 구워낸다. 불을 맞은 흙들이 짓는 표정과 색채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는 우연의 소산이다. 작가 역시 목적론적으로 흙을 매만진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마음이 가는 대로 아니 흙의 관성이 요구하는 대로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그것들을 포개놓았고, 연결시켜 놓았다. 툭툭 흙을 쳐대다가 서로 접합시키고 그렇게 해서 우연히 만들어진 이른바 변형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정형화된 몸을 갖지 못한 흙들은 대신 보는 이로 하여금 흙의 상황성, 그 자체의 존재를 주목케 한다. 생생하게 드러난 흙의 살, 피부를 보게 한다. 흙이란 이처럼 가변적인 존재다. 고정되고 일률적인 몸을 갖고 있지 못하다. 흙은 화분이나 그릇이 될 수 도 있고 집이나 벽이 될 수 도 있다. 이사설은 지극히 가변적인 상황성 속에서 유동하는 흙의 초상을 보여준다.

그것은 그릇, 용기도 아니고 무엇이라고 지시하기 어려운 형태를 지녔다. 흙들이 서로의 무게와 중력에 의해 눌리고 흘러내리고 겹쳐진 자국이 고스란히 성형되었다. 그 위로 유약이 비처럼 줄줄 흘러내리기도 한다. 흙이란 물질이 자신의 몸을 지우고 다른 몸으로 대체된 것이 아니라 그 흙의 몸을 고스란히 육체화 하려는 일이자 아울러 그 표면에 자연스러운 회화적 제스처를 올려놓는 일이다. 그것은 마치 흙을 처음 만지는 사람들이 유희적으로 만지작거린 듯한 손길을 허용한다. 흙의 표면은 손의 압력과 터치 등으로 분주하다. 따라서 흙은 스스로 회화적 표정을 짓고 있다. 흙이 특정 형태의 외형으로 굳어 버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발적인 회화적 표면으로 자족하는 것이다.

“내 존재의 본질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 애써 꾸미지 않는 것, 사물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 이것이 내가 이야기하려는 흙의 사실성에 대한 탐구이고 관조의 결과물이다.”(작가노트)
이어서 그는 “미추의 얽매임 없이 소요의 경지에서 노니는 것,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즐거움으로 이르는 길”이라고도 말한다. 얼핏 노장사상이 연상되는 문구다. 그래서일까, 근작은 의도적인 조형, 목적론적인 미적 오브제, 일반적인 도예나 도조의 관념으로부터 최대한 자유로워지려는 작가의 마음을 흙으로 대변하고 있어 보인다. 그저 흙과 함께 이렇게 저렇게 놀고 소요하고 마음 가는대로, 손 가는대로 주물러서 불에 맞혀 놓은 흔적이 작품이 되었다. 그것이 현재 작가의 마음이고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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