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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기 / 자연에서 찾는 즐거움

박영택

김선기의 그림은 배경과 표면이 분리되어 다가온다. 스치듯 지나간 붓의 흔적, 손의 놀림을 생생하게 머금고 있는 단색조의 색면추상이 바탕을 이룬다면 그 위에 올라와 견고하게 매달린 선명한 선들은 날카롭고 단호하다. 이 극단적인 상태가 한 화면에 공존한다. 부드럽고 감성적인 바탕의 회화적인 처리와 그 위로 마감된 다분히 기계적이고 공예적 처리는 이원적인 세계를 한 화면에 융합시키고 있다. 이성과 감성, 화화와 공예, 그려진 것과 만들어진 것, 추상적인 것과 구상적 형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배경과 주제 등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그 서로에 의해 유지되고 가능한 세계를 보여준다. 나로서는 이 작가의 일관된, 그 독자한 방법론이 흥미롭다.

작가는 바탕 면이 칠해진 판위에 투각된 얇은 판을 올려놓고 그 안으로 물감을 밀어 넣는다. 그것은 흡사 판화 기법에 해당한다. 손으로, 붓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원하는 형상대로 오려낸 구멍, 틀에 물감을 부어서 떠내는 작업이다. 이때 아크릴 물감에 돌가루나 테라코트, 모래나 펄프 등이 섞여져서 무척 점성이 강한 상태가 되면 그것이 특정한 형태를 지닌 구멍을 채워나가면서 이내 굳어버린다. 순간적으로 딱딱해진, 일정한 높이를 지닌 덩어리가 이미지를 만들고 그것은 바탕 면 위에 부조처럼 올라온다. 물감은 색다른 방식으로 화면위에서 현존하다. 다분히 촉각성을 자극하는 높이/선이 조각적으로 위치하는 것이다. 그래서 눈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손길로 쓰다듬고 싶어진다. 아마도 작가는 자연현상을 마음으로, 손으로 애무하고 받아들인 내밀한 경험, 감동을 시각화, 물질화시키고 싶었던 듯 하다.

김선기의 회화적 조각, 조각적 회화는 그림/조각 나무판에 캔버스 천(면천)을 씌운 후 그 위에 투각된 틀을 올려놓고 그 틈 사이로 물감을 밀어 넣어 구축시키는 화면이다. 단단하고 견고한 지지대가 요구되는 이유는 그 위로 물감을 밀어 넣기 위해서다. 일정한 압력과 힘을 받아줄 수 있는 화면이 필요한 것이다. 순간 그것은 회화와 부조, 조각 사이에서 진동한다. 일정한 평면에 일루젼을 준다는 점에서 회화이지만 표면위에서 일정한 높이를 갖고 융기된 부분은 그것이 조각의 영역임을 보여준다. 회화이면서 조각이고 부조이자 사물인 동시에 부단히 회화로 수렴되는 그런 공간구성이다. 바탕을 이루는 판은 어느 정도의 높이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완성된 후 벽에 걸리면 벽면에서 박스형으로 돌출되어 단호한 사물감을 또한 드러낸다. 나무판에 천을 덮은 후 그 위로 사선방향 혹은 수평의 붓질이 지나간다. 무채색 톤의 색상은 흡사 바람결이나 하늘 또는 대지를 연상시켜 주는 색채들이다. 대부분 파스텔 톤의 감미롭고 부드러운 색채가 펼쳐져있다. 근작에 와서 색채가 이전에 비해 무척 밝아졌고 경쾌해졌다는 인상이다. 아울러 자연현상을 좀더 직접적으로 형상화시키는 편이다. 나무와 나뭇잎, 꽃과 풀, 그리고 눈부신 햇살의 방사와 선회가 명료하게 다가온다. 자연에서 받은 감흥과 생명체에 대한 경이로움이 즐거이 시각화되고 있다. 아마도 작가는 그렇게 자연에서 위안을 받거나 일종의 치유적인 경험을 겪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제목은 ‘Joy List다.

자신의 일상풍경에서, 자연에서 작가는 즐거움과 위안을 받는다. 그 경험을 시각화하고 있다. 여기서 자연은 구체적으로 외계에 존재하는 풍경일 수도 있고 식물계의 여러 생명체이기도 하다. 숲속에 서서 문득 위를 올려다보았을 때 잔 가지 사이로 비치는 푸른 하늘이라든가 자잘한 싹들을 틔우고 있는 나무의 모습, 혹은 몸체에서 떨어져 나온 잎사귀들이 화환처럼, 왕관처럼 원형으로 자리한 풍경이 연상된다. 이처럼 구체적인 장면이 연상되는가 하면 자연계와 자연현상을 기호화하거나 도상화 하는 작업(나선형이나 원형으로 회전하는 형태는 생명현상, 자연계의 속성을 시각화한 것이다. 동시에 수직으로 융기하는 선들은 자라나는 식물의 줄기가 연상되고 방사형으로 퍼지는 선들은 빛을 떠올려준다.)도 공존한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모두 작가가 보고 느끼고 경험한 자연생명체에 대한 주관적 인상의 재현이다. 작가의 이 작업은 철저한 밑작업, 드로잉을 바탕으로 해서 계획적으로 구축된다. 치밀한 도면설계를 보는 듯 하다. 나로서는 작가의 밑그림, 드로잉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섬세하고 꼼꼼한 성격을 반영하는 동시에 작업의 전체적인 과정을 정확히 예측하고 계산해서 만들어나가는 이지적 태도가 돋보인다. 이처럼 감성적인 부분과 이성적인 면, 회화와 부조, 평면과 입체, 그리기와 판화, 추상과 구상이 공존하며 선회하는 작가의 화면은 우리로 하여금 여전히 항구적인 자연과 미술의 관계를 색다른 방법론으로 재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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