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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승 / 의미 없는 그림, 의미를 여는 그림

박영택


근자에 극사실적인 그림들이 유행하고 있다. 저마다 놀라운 솜씨로 사물들을 정교하게 그려내고 있는데 그것은 기계적인 이미지와 손으로 그려진 이미지 간의 구분을 모호하게 함과 동시에 사진이미지보다 더 사실적이고 실제적으로 그려내려는 욕망을 매달고 있다. 아울러 전적으로 사물에 육박한 시선을 보여준다. 오로지 사물만을 독대하게 하고 그 사물의 피부에 들러붙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관자의 망막과 몸이, 감각이 사물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그것은 관념이 아니라 너무도 생생하게 실존하는 물질의 세계이자 몸으로 만나는 구체적 존재들이다. 그러한 인식은 다분히 유물론적 세계관을 암시하는 한편 동시대 자본주의의 세계상, 물질로 구현된 세계에 대한 순응적 태도이기도 하다. 물질적 풍요와 자본주의의 소비사회를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며 이에 익숙한 모든 이들이 갖는 보편적 세계 인식이자 사물관이다. 여기서 사실주의는 몸을 내민다. 사물의 고유한 물리적 성질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사실주의적 기법, 전략이 동반 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동시에 팝아트적 속성도 함께 한다. 워홀은 '팝아트란 사물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쏟아져 나오는 상품을 욕망하는 일이다. 동시대 젊은이들, 작가들은 귀엽고 예쁘고 감각적인 것들을 전적으로 갈망한다. 미술은 통해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 이제 미술은 그들의 욕망을 보상하는 선에서만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키치적이고 팬시한 감성, 장식적이고 달콤하며 관능적인 미감이 물씬 거리는 다분히 통속적인 미적 감수성이 동시대미술에서 압도적이다.

그래서일까, 이른바 미술과 대중문화의 접점에서 시대적 아이콘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작업, 그로니까 가볍고 피상적인, 달콤하고 우호적인 미적 감수성과 함께, 인스턴트문화, 일회용 문화에 대한 선호가 적극 반영된 미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무엇보다도 두드러지는 것은 매혹적인 상품, 사물을 공들여 그리거나 그것들을 채집해 그리는 일, 소소하고 비근한 사물로 채워진 자신의 일상(공간)을 그리는 일이다. 그것은 이전의 관습적인 정물화와 포개져 있지만 또한 그것과는 조금은 다르게 소비사회의 사물들로 둘러싸인 현실을 반영하는 제스처로도 다가온다. 그것은 사물로 이루어진, 너무나 많은 인공의 사물과 상품으로 둘러싸인 소비사회의 환경에 대한 시각적 반응 같기도 하다. 사물을 빌어 말을 하고 사물들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일이다. 화려하고 달콤하고 미끌거리며 반짝이는 것들이 발화한다.

황현승은 사탕을 그렸다. 그에게 사탕은 작지만 ‘세계적인 존재’다. 또한 사탕은 ‘현대 산업사회의 특징을 너무나 쉽게 집약해서 보여주는 인공적 기호식품이며 대중적’이다. 작가는 사람들이 자신이 그린 사탕을 보면서 달콤함, 천진함, 사랑과 같은 어렵지 않은 언어들을 떠올리기를 원한다. 이는 어렵거나 심각하거나 까다로운, 무거운 주제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려는 전략이다. 아울러 강렬한 색감에 들뜨고 사실적 형태에 희열하며 정신적 해방감을 느끼기를 원한다고도 말한다.
황현승이 그린 사탕은 투명한 그릇에 담긴 알사탕, 츄파츕스를 그리는 안성하나 사탕과 초콜릿을 극대화해서 촬영하는 김형섭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밖에도 동시대 젊은 작가들의 극사실적인 그림들은 투명하게 반짝이며 미끌거리는 동시에 달콤하게 녹아내리는 사물에 대한 기호를 과감히 드러낸다. 화려한 껍질과 녹아서 사라지는 단 것들이 모여 이룬 풍경이다. 어쩌면 그런 풍경은 소비사회를 단적으로 표상하는 세계일 것이다. 황현승이 그린 사탕과 초콜릿은 상점에 진열된 그 상태 그대로를 위에서 포착한 구도 아래에서 묘사된다. 전일적인 시선 아래 대상만이 가득하다. 오로지 대상의 피부에 접촉시키는 의도는 거리감을 무화시키고 또 다른 상념이나 상상의 작동을 은밀히 차단한다. 주어진 대상의 모양과 색채, 질감과 빛에 의해 반짝이는 순간, 그리고 그것들을 감싸고 있는 종이나 비닐의 상태, 로고와 여러 문구들이 눈을 사로잡는다. 이미지와 문자. 만화(캐릭터)와 디자인, 타이포그래피 등이 혼재된 그런 정물이다. 공간을 꽉 채운 사물들은 화려한 인공의 색상 아래 마구 반짝인다. 알록달록한 색채와 포장지의 문자, 로고, 그리고 질감 등도 역시 다채롭게 연출되어 있다. 따라서 이 그림의 일차적 목표는 “구성, 색채, 형태라는 세 가지 기본적인 요소를 사용해 실재하는 물질이 갖고 있는 투박한 힘을 드러내고 시각적 즐거움을 창조하는 것”(작가노트)이 된다.

소비사회가 만든 인공의 사물은 너무도 매혹적이다. 사탕과 초콜릿도 너무나 아름답고 예쁘며 귀엽다. 보는 이의 눈을 마냥 즐겁게 한다. 특히나 어린아이들에게 그 것들은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것들이다. 아이들에게 단 것이란 치명적인 유혹이자 거부할 수 없는 욕망이다. 모든 아이들에게 사탕은 언제나 최상의 음식이다. 전 세계 모든 어린이들이 다 그럴 것이다. 아니 어른들 역시 달콤한 사탕과 초콜릿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먹는 다는 것은 특히 어린이에게 최초의 즐거움, 최고의 욕망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단연 단 것에 대한 욕망과 미각이 자리하고 있다. 달콤한 맛에 대한 욕망은 거의 원초적으로 다가온다. 단 것은 항상 아름답고 자극적인 색채로 칠해져있다. 단 것의 유혹은 일차적으로 색채를 통해 가능하다. 음식을 먹을 때 우리는 거의 시각에 의존해서 살아간다. 모든 단 것은 유혹적인 색깔을 지니고 있고 먹음직스러운 형태를 지니고 있다. 보는 것과 미각은 함께 한다. 아이들은 단 것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욕망을 분출한다. 성인 역시 대부분 그 단 것에 대한 유혹을 쉽게 떨치지 못한다. 생각해보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것은 쓴 것과 단 것의 구분이다. 그것은 우리의 언어를 통해 표현되곤 한다. 달콤한 것은 좋은 것, 긍정적인 것이고 반면에 쓴 것은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다.



황현승은 그렇게 누구나 좋아하는, 전 세계적 기호식품인 사탕과 초콜릿을 그렸다. 그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게 존재하며 재미있고, 아름답고, 친근한 것을 그리고자 하는 의도에 따라 그것들을 그렸다. 대상에 근접해서 커다랗게 그린 이 그림은 화려하고 감각적인 색채로 물들어있다. 시각적으로 유혹적이자 감각적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하고 즐겼다고 한다. 모든 화가들이 다 그랬을 것이다. 그는 가능한 그림을 즐겁게 그리고자 한다고 말한다. 그를 위해 그는 자기가 좋아하고 즐기는 것을 즐겁게 그렸다. 그 대상이 사탕이고 초콜릿이 되었으며 기법은 즐기면서 오래 그리는, 그리는 순간 거의 무아지경이 되는 극사실적 묘사기법이다. 오랜 시간을 공들여 그리는 과정은 힘들지만 시간가는 줄 모르는 재미를 안긴다. 그는 재미를 위해, 재미있게 그리기 위해 가능한 그리는 순간, 그 시간을 연장하고 지속한다. 그래서 극사실적인 그림이 자연스레 풀려나온 것 같다. 그림에 부여되는 과도한 의미나 현학적인 이론, 혹은 담론과 주제를 지워버리고 그린다는 사실, 행위 자체에 몰입하는 그리기다. 그것이 동시대 젊은 작가들의 작업에서 유난히 극사실적인 그림이 많은 이유다. 난해한 미술이론이나 중압감을 심어주는 메시지 같은 것을 덜어내고 철저히 그림 그 자체에 집중한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사물의 표면을 열심히 따라가 보는 단순한 그리기이기도 하다. 미술에 대해 머리 아프게 고민하거나 애쓰지 않고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알리바이를 다소 편하게 제공해주는 것이 지금의 극사실주의 그림에 깔려있다. 감각적인 사물과 기호들을 가지고 유희하는 일이고 그것들과 한 몸으로 접속되는 일이다. 매우 자폐적인 그리기, 삶의 회로이기도 함을 부정하기 어렵다.

“내가 제시한 이미지 뒤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사람들은 이미지를 보면서 경험에서 비롯된 무언가를 떠올리고 의미를 부여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아무 의미도 찾지 못한다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이미지는 처음부터 비어있었고 이미지의 장식성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작가노트)
그러니까 의미를 지우는 한편 작가는 관자들 역시 그림을 보면서 숨은 주제나 의미를 찾으려고 곤혹스러워하지 말고 눈에 보이는 그림 그 자체를 즐기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러다 보면 또 다른 생각과 의미가 보는 이들 마다, 제각기 번져 나올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인 듯하다. 이처럼 그는 어린아이들도 이해하고 즐길 수 있고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그렇게 해서 사탕과 초콜릿이 선택되었다. 그는 그렇게 사탕, 단 것을 매개로 관자들과 관계 맺기를 시도한다. 매우 흥미로운 생각이다. 그런데 나로서는 이러한 작가의 ‘관계맺기’ 란 것이 외형적으로 극사실주의와 팝아트에 유사한 작업들과 어떤 차이점을 만들어 나가면서 가능할까 하는 점이 조금은 궁금해졌다. 그러나 그보다는 작가가 진정으로 좋아하고 즐기면서 그림을 그려나가는 태도, 자기 내부의 욕망과 유희만이 목적이 되는 그런 그림 그리는 삶을 만들어나간다는 바로 그 점이 핵심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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