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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화에 반영된 자연관과 집의 의미

박영택

1. 머리말

공간이란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핵심적인 장소이다. 공간은 인간 사유가 서식하는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여백에 해당한다. 인간의 감각활동의 하나인 예술 역시 주어진 공간에 제약을 받고 그 공간에서 파생된 삶의 체험과 감각, 느낌의 결정체를 재현해왔다. 미술은 인간 자신과 그가 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려는 적극적인 요구이다. 나를 둘러싼 이 세계, 공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들여다 볼 것인가라는 문제의식과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내느냐의 과제는 산수화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이었다.
시각을 통해 세계를 형상적으로 인식하는 동시에 인식하는 시각 방식을 드러내며 이미지를 창출하는 것이 미술/그림이라면 공간을 그린 그림이란 결국 공간에 대한 각 문화권의 사유체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물을 보는 눈, 미적인 것을 감지하고 이해하는 것, 그에 따른 예술적 재현은 특정 시대. 특정 사회내의 관습이나 협약의 문제이자 일체의 가치, 신념 등의 체계와 연동되어 있다. 시각은 본질적으로 그것이 작동하는 것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신념, 이데올로기 영역 내에서 성립한다. 그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따라서 그림의 문제가 되는 시각의 체제는 문명을 이루는 사고 체제의 한 부분에 해당한다.
인간의 주체적 경험에 있어서 과연 공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푸코는 공간을 문화의 밑에 자리하고 있는 ‘질서의 생존재’라고 말한다. 이는 모든 문화란, 문화가 성립되고 그 문화권속에 민족구성원들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공유하는 ‘땅에 대한, 공간에 대한, 자연과 관련된 인식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공통된 공간 즉 ‘유토피아’에 대한 생각의 공유성이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보다 나은 세계에 대한 비전을 뜻한다. 지상에 유토피아를 설계하는 일, 또는 관념 속에 그 세계를 꿈꾸는 일이 인간의 삶이자 또한‘그림의 일’이기도 했는데 이는 고스란히 산수화에 반영되어 있다.
이 글은 전통산수화가 어떠한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를 살펴보는 한편 산수화와 자연의 관계, 그리고 특히 그림 안에 자리한 집이라는 도상을 통해 한국인의 자연관과 미의식을 헤아려보고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그려졌는지 그리고 이러한 전통이 한국현대미술에 어떻게 계승되어 오고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2. 산수화의 의미

동양에서 자신들의 공간인식, 자연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그림이 바로 산수화다. 동양 특유의 산수화는 산수애(山水愛)와 조화의 자연관을 모태로 하여 발전되었으며 이는 동양의 근원적인 정신적 특질로서 형상화된 상상력의 결과였다.
산수란 풍경의 차원을 벗어난 자연 그 자체를 지칭하는 포괄적인 의미로 쓰인다. 여기서 자연이란‘우주 또는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사물이나 현상, 또는 인간의 세계와 독립하여 존재하는 우주의 질서와 현상’이란 사전적 의미를 넘어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동양인들에게 산수는 물리적인 개념이 아닌 인간 심성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상징으로 생각되어왔다. 산수화가 표현하는 것은 단순한 자연의 시각적 대상이 아니라 그 자연의 아름다움 앞에서 한 순간에 고양된 미적 경험의 집적인 셈이다. 주어진 순간에 주어진 시점에서 본 자연의 상대적이고 특정한 양상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있는 보편적인 진리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 산수화였기에 화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화면 위에 상상력을 자유롭게 해방시켜 무한한 우주의 무한한 공간을 거닐도록 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산수화는 사람이‘공간 속에서 존재하는 방식을 창조하는 것’과 관련된다. 공간속에서 존재하는 방식을 창조한다는 것은 유교적 이념 아래 선비들이 꿈꾸었던 군자의 덕목, 바로 인(仁)과 지(智)인데 그들은 이를 산과 물에서 찾았다. 자연 속에서 군자의 모습을 발견하는데 예를 들어 산수와 사군자 등이 그것이다. 이처럼 자연계에 실제 존재하는 물상을 통해 인간의 도덕적 정감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동양의 예술수법(以物比德)이다.
따라서 산수를 소요하고 바라보며 산수를 그리고 완상하는 이유는 군자가 되고자 하는 일종의 수양과 수신의 과정이었다. 따라서 가장 이상적인 산수의 경관을 보여주는 것이 산수화다. 동시에 선비들은 자신의 원림에서 이상적인 경관을 조망하고 싶은 욕구에 따라 건축적 차경(借景)에 의해 정자를 짓고 그 안에서 자연경관을 관조하였다. 차경이란 자연경관을 사람이 직접 찾아가지 않고도 집 안에서 조망하며 즐기도록 하는 경관도입방식을 지칭한다. 이 차경은 마치 산수화와 같다. 산수가 한 폭의 그림과 같기를 바란다는 인식을 드러내는 산수화는 아름다운 경관을 적극 끌어들이고 속된 경관을 지우려는 차경의 기교와 연결된다.

2.1. 산수화의 기능

산수화는 기가 감도는 분위기 속에 여러 자연의 사물들을 종속시킴으로서, 자연의 숭고미를 강조하여 모종의 종교적인 황홀경(초월성)을 만들어 내려는 의도를 내비친다. 그것은 세속을 초월하려는 욕망이다. 군자나 신선의 길에 가까운 삶이란 좋은 산수에 은둔하여 사는 것인데 이를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경우 산수화로 대처하는 것이다. 사회와 가족에 대한 의무를 제껴 두고, 산에 가서 은둔만 할 수 없는 이유로 숲과 시내를 그려 방에다 그려 두는 것이라고 산수화의 기원에 대해 구오시(郭熙)는 말한다. 여기서 산수화는 실제 산수를 대신한다. 풍치 좋은 자연 환경 속에서 검소한 생계 수단에 의지하여 사는 은자/군자의 삶을 꿈꾸는 것이 산수화의 목적이라면 그것은 유교적 이념들 및 도교와 불교의 신비주의를 어느 정도 혼합한 이념적 체계의 결과물이다. 일종의 종교화란 얘기다. 동시에 그것은 이른바 주술적인 이미지다. 자고로 군자를 꿈꾸는 선비라면, 나아가 신선이 되고자 한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느냐를 보여주는 이미지이자 삶의 공간에 어떻게 거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경구처럼, 벼락처럼 안기는 그림이다. 주어진 자연 공간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바람직한 삶의 이상을 꿈꿔왔던 것이고 그것을 도상화 시킨 그림이 바로 산수화이다. 유교적 인생관은 사람의 사회적 의무 및 공인으로서의 봉사에 가장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은자적 삶의 근원성 또한 인정하였고 그를 통해 균형 잡힌 삶, 현실과 이상의 조화로운 공존을 지탱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러한 은자적 삶의 근원성을 현실계에서 가능하게 충족시켜 준 것이 또한 산수화다.
그림 정선, 인곡유거, 지본담채, 27.4×27.4cm, 17세기
이처럼 산수화의 사회적 기능의 하나가 바로 ‘은자적 삶의 이상화’이다. 사회적, 대 인간적 의무로부터 놓여나 자연 속에서 자기 수양에만 몰두하는 단순한 삶을 의무와 봉사의 인생에 대조시킴으로써 그 둘 사이에 있어야 하는 ‘균형의 필요를 상기시키는 것’이다. 나로서는 바로 이 지점이 산수화의 핵심적 기능이라는 생각이다. 그것은 결국 현실적, 세속적 삶의 의무와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끊임없이 긴장을 부여하면서 스스로의 삶의 자정역할을 가능하게 해주는, 추스려 주는 힘이다. 그림 속 선비들은 대부분 자신의 육체를 ‘엣지edge’에 위치시킨다. 가파른 모서리에 갖다놓는다. 세속의 집착과 욕망에서 벗어난 은사는 만물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경지(物我一體)를 꿈꾸며 천지자연의 정신과 합일하는 궁극적 즐거움(道)을 강렬히 희구한다. 자연과 일체가 되어 인간 세상의 영욕에 의해 때묻은 마음을 깨끗이 씻어 버림으로써 심미적 자유와 해방을 얻고자 한 것이다. 자연을 즐기고 풍류와 은둔적 삶을 지향하는 선비들의 거주지는 그래서 항상 자연과 함께 하고 있으며 동시에 열려 있다.
인왕산 밑에 위치한 동네에 살았던 겸재 정선이 그 자신의 후반 생애의 생활모습을 그린 이른바 자화경(自畵景)인 ‘인곡 유거도’(仁谷幽居圖)를 보자. 오른쪽 하단의 귀통이에 자그마하게 위치한 꼽패집의 모서리방에서 겸재 자신인 듯한 도포 차림의 선비가 서재에서, 자신의 서책이 쌓인 곁에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다. 아마도 이런 삶이 가장 이상적인 삶으로 여겼기에 가능한 그림이다. 수목이 골마다 우거진 뒷산이 펼쳐져 있고 앞 마당에 큰 버드나무와 오동나무등 기타 잡수들이 서 있으며, 한 여름의 무성한 기운을 듬뿍 드러내주고 있는 것 같다. 이엉을 얹은 토담이 둘러쳐져 자연스레 만든 후원, 초가 지붕의 일각문(一各門), 덩쿨이 우거지고 잎새들이 묽고 엷은 먹의 자잘한 점으로 성글게 찍혀져 있다. 자연 속에 은거하며 수양 하는 개결한 선비의 조촐한 생활 분위기가 물씬거리는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열린 방문 속의 선비가 되어 책을 읽고 있는 듯한 체험에 황홀하게 빠진다.

2.2. 산수화의 자연관

동양에서 자연은 예술에 있어 최고의 경지라는 관념적 차원에서 논의되었으며, 동시에 예술가나 지식인이 선택해야 할 제일 이상적인 거처(居處)로서 인식되었다. 자연에 기거한다는 것은 인간사회에서의 역할, 즉 실용적 용도에서 해방되어 쓸모없는 무용(無用)의 삶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으로 사회의 속박을 받지 않고 정신적 자유를 얻는다는 상징적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이러한 일종의 도피사상을 고아한 차원에서 이름 지은 것이 은일(隱逸)사상이다.
선비들은 아름다운 산수풍경의 자연미를 즐기기 위해서는 조용하고 한가로운 분위기가 보존돼야 한다고 여겼다. 고명한 군자가 산수를 잘 관찰하면 인지(仁智)를 즐기고 기상(氣象)을 기를 수 있다며 그래서 산수는 인간의 신명과 성정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보았다. 사람의 정신을 즐겁게 하고 성정을 활달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거처하는 것에 산수가 없으면 사람이 조야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산수풍경을 통해 천기(자연운행 속의 숨어있는 기밀 그 자체)를 감지하고자 하였다. 산수는 단순한 산과 물이 아니라 자연의 도의 본질이 내재된 총체적 자연의 상징이자 지형적, 물질적인 세계가 아니라 정신적 세계였다. 만물이 생성. 분화되기 이전의 근원적 실재를 도가에서는 道라는 말로 표현한다. 도 자체는 어떤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다. 이를 굳이 청각적으로 표현한다면 고요하다 정도가 될 것이다. 사심 없는 무심한 마음으로 눈앞의 산수를 고요하게 대할 때 작위적인 의도함이 없이 산수와 나 사이에 천기가 흐르게 되는 양태를 경험하는 것이다. 일체의 사욕에서 벗어난 마음, 학식이나 사상의 지배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마음으로 조용히 자연을 접할 때 비로소 천기가 감지된다고 믿었다.
선비들은 아름다운 산수풍경의 자연미를 즐기기 위해서는 조용하고 한가로운 분위기가 보존돼야 한다고 여겼다. 산수는 사람의 정신을 즐겁게 하고 성정을 활달하게 만든다고 여겼기에 거처하는 곳에 산수가 없으면 사람이 조야해진다고도 생각한 것이다. 여기서 산수란 현실과 세속의 상반된 공간으로서 그 의미를 확보하면서 나아가 현실을 정화하고 결핍을 보완해주는 공간으로 자리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유교가 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은 ‘군자’이다. 군자는 덕(인)과 지를 겸비해야 한다고 여겼다. 당연히 덕과 지의 덕목을 자연계에서 찾았는데 그게 바로 산과 물(산수)이다. 산은 모든 생명체를 포용하고 길러내기에 어질다고 여겼다. 반면 물은 지혜를 상징한다. 이는 공자의 다음과 같은 말에 근거를 둔다.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이는 산을 좋아하며, 지혜로운 자는 동적이고 어진 이는 정적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즐겁고 인자한 사람은 오래 산다.”

그림 정선, 운산청은, 지본담채, 33×29.5cm, 17세기
지자가 물을 좋아하는 것은, 물이 좀 더 낮은 데로 쉼없이 영민하게 흐르는 동의 특징을 지녔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사들이 흐르는 물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이유는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한 내면과 당장의 앞일도 예상하기 힘든 변화막측의 세상 속에서 이를 풀어나갈 지혜를 찾는 것이다. 또한 정직하게 흐르는 물처럼 자신의 처신에는 분명 순리적인 선택이 있으리라 믿는 것이다. 군자를 꿈꾸는 선비들이 폭포의 수직선에 눈을 대고 있는 이유는, 그 ‘관폭’이 일종의 문사의 수신방법이기에 그렇다. 폭포를 그린다는 것은 수직운동으로 표현되는 우주의 기를 한층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려는 것이자 그 절대적인 힘 앞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 그 감흥을 음미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관폭자의 정신세계 내의 의미 있는 부분과 의미 없는 부분을 정돈함으로써, 무의미하고 불필요하며 부당한 정신의 찌꺼기를 사상捨象시킨 채 진정한 의미처로 그의 정신을 곧추세우고자 열망하는 것이다. 또한 굉음은 관폭자, 청폭자의 내면세계를 영원 속으로 이끈다. 동일한 맥락에서 산을 둘러싸고 있는 계곡의 물소리는 세속의 시비소리를 지운다. '계곡의 물...그 맑음은 자약 自若하며, 밤낮없이 만고를 지나도록 쉬지 아니하니 도를 닦는 선비가 마땅히 이를 보고 자강하여 그 마음을 맑게 하고, 그 천성을 회복해서 선에 머무르게 하고 떠나지 않게 하여야 할 것이다.'(권근)
당시 식자들은 무한정 넓은 자연을 보고 감탄하면서 위대한 자연 앞에 왜소한 자신을 돌이켜보았고, 좁은 식견과 천근(淺近)한 학문을 하염없이 탄식했다.
자연이란 거대한 생태계는 엄정한 질서와 순환의 구조 속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서로는 서로에게 의존되어 있고 각 생명체는 다른 생명체 없이는 존재하지 못한다. 그것들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제 스스로 삶을 온전히, 충실히 영위한다. 특히 식물성의 존재들은 제 몸에 햇살과 공기와 물을 받아들여 스스로 먹을 것을 생산, 자족한다. 그것들이 무수한 또 다른 생명체의 목숨을 연명시킨다. 또한 인간에게 아름다움도 선사한다. 자연은 경계를 나누어 서로 다투거나 분리되지 않고 공생한다. 자연은 모든 생명체를 모두 힘껏 껴안는다. 자연은 그 다양한 종류의 생명체를 무한히 회임하고 길러내고 받아들인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자연을 어질다(仁)고 여겼다. 덕을 지닌 자연/산은 분란과 다툼, 마찰음이나 상대를 희롱하는 현란한 수사 없이 내내 평화롭다. 말을 지운 자리에 자기 생의 본능에 충실한, 순리와 이치에 합당한 작은 몸짓만이 그림자처럼 고요하다. 바글거리는 무수한 생명체들의 이 평화로운 공존은 무척이나 경이롭다. 인간으로는 꿈도 꾸기 어려운 경지다. 자연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이 만들고 저지르는 온갖 세속의 것이 이내 남루하고 구차함을 느낄 것이다.

2.3. 산수화- 움직이는 시점

동. 서양의 공간구도의 근본적 차이는 사물을 보는 눈의 위치를 어디에 있는 것으로 설정하느냐 하는 점이다. 서양의 원근법은 고정된 한 눈의 관점에서 사물을 본다. 여기서 회화적 구도는 자아와 세계를 서로 분명한 구획을 가진 고정된 실체들의 관계로서 파악한다. 반면 동양화에서 고정된 하나의 관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에 대한 다양한 시점과 시각이 한 화면에 공존한다. 일시점이 아니라 다양한 시점을 한 화면에 공존시켰다. 어느 특정한 면에서만 관찰될 수 없다는 인식이다. 따라서 한 화면에는 자연을 소요하고 그렇게 이동하면서 접한 여러 방향이 공존한다. 세계는 고정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수평선과 소실점은 불필요하다. 그것은
그림 정선, 통천문암, 종이에 수묵, 53.4×131.6cm, 18세기
세계를 고정시키려는 인간의 맹목을 반영할 뿐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정지태가 아니라 운동태며 존재가 아니라 생성이며 고정이 아니라 떨림과 흔들림이란 것이 동양인들이 깨달은 공간인식이었다. 그 응시법은 다원적 시점이고, 움직이는 시점이 된다. 아울러 복판에 내재한 시점이다. 다양한 시점이 그림의 전개를 따라서 이동하는 이른바 산점투시는 적막하게만 보이는 산수화 안에 시간과 사건을 끌어들인다. 그것은 그림 안으로 들어가는 시선이다. 시점을 풍경의 복판으로 옮겨가는 것, 그림 안에서 움직이는 관점인데 이는 다름아닌 ‘실존의 시선’인 것이다.
동양화에서 공간이란 어떤 경우에도 측정할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산수화는 측량할 수 없는 자연의 장대함을 암시하는 매개체다. 그 결과 산수화의 공간은 대단히 포괄적인 우주의 가시적 상징이 되었다. 따라서 화면의 구성은 필연적으로 길어지기 마련이다. 시점이 한 방향에서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동할만한 넓이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화면을 하나로 통일하지 않고 한쪽 끝에서 다른 한 쪽 끝으로 향하여 점차로 전개하는 두루마리 형식이 필요했다. 그 두루마리는 사적인 매체의 극단적인 형식인데 단 한 사람의 관람자만이 그림이 움직임을 조작하고, 읽는 장면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두루마리는 오른쪽에서 왼쪽방향으로, 한 번에 팔 길이만큼 펴놓고 읽는/본다. 그것은 끝없는 다양함을 연상시켜준다.
자연계의 모든 것은 실재이면서 동시에 끝없는 변화의 과정 속에서 일시적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산수화에는 그림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특정 시간 속에서 본 지금, 순간의 대상이란 허상이기에 그렇다.
또한 산수화는 해가 떠서(동) 지는 방향(서)으로 본다. 또한 위에서 내려다본다. 당연히 그림을 그리는 시선 역시 동일하다. 그것은 하늘의 시선에서 조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림은 문자와 함께 읽고 본다. 세계는 망막으로만 판독되고 재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연공간은 몸으로 만난다. 몸이 지닌 여러 감각기관을 그림 안에서 부풀려내려는 것이다. 문자(시)와 이미지를 동시에 보면서 시각이외의 다양한 감각기관을 통해 실세계를 추체험하고자 한다. 그러니 문자와 이미지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산수화는 읽는 그림이자 더듬고 그 사이로 헤매는, 가상의 소요 체험을 상상하게 한다. 그림은 책이었다.

2.4. 산수화의 여백-상상의 공간


그림 정선, 〈단발령망금강〉, 『신묘년풍악도첩』,견본담채, 1711년, 39×34.3cm, 국립중앙박물관소장
완결이라는 개념은 동양인의 사고방식과는 무관하다. 사람은 결코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묘사하거나 완성하는 것은 참모습일 수 없으며 지극히 한정된 의미밖에는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의로 완전한 서술, 완벽한 재현을 피한다. 따라서 산수화 역시 완료의 상태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것은 다만 형성 중에 있는 객체에 불과하다. 따라서 산수화는 사물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함축이다. 최소의 형식에 최대의 내용을 담으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존재의 형은 최소이고 의미의 형은 최대이다. 그에 따라 화면은 무한한 생장과 진행을 가장 간소한 꼴로 보존하며 일종의 역동적 이미지로서 무한한 풍부 그 자체를 보여준다. 산수화에서 여백은, 운무나 안개 자욱한 풍경은 일부분만 보여주기 위한 전략이다. 나머지는 관람자로 하여금 상상하게 한다. 그림 속 자연은 온전히 보여지기 보다는 일부는 가려지고 나머지는 여백, 텅 빈 화면 안에 잠겨있다. 보는 이들은 온전하게, 전일적인 시선으로 그림을 바라볼 수 없다. 많은 것을 보여주기 보다는 적게 보여주고 다 보여주기 보다는 일부분만 보여주는 편이다. 보여주는 것보다 상상하게 하는 것이 그 대상을 좀 더 잘 보게 하는 일이다. 그림을 바라보는 이들로 하여금 기억을 반추시키고 꿈꾸게 하고 회상과 여운 속에서 사물과 대상을 추려내게 하는 것이다. 망막으로 모든 것을 보고자 하는 시욕망을 짐짓 누그려 트리고 망막 이외에 몸이 지닌 다양한 감각기관과 정신적 활력을 통해 상상하고 지각하게 한다.
그래서 그림은 결국 선으로만 표현된다. 서양의 그림이 면 또는 양감을 사용하여 사물의 형태를 구성하는 반면, 동양의 회화는 철저히 선이 만들어내는 조형이다. 면이 정지하려고 한다면 선은 운동하려고 한다. 이는 세계를 불변하는 요소들의 구성으로 보는 유럽인들이 시각과 세계를 변화 생성하는 기氣의 흐름으로 보는 동아시아인의 시각을 각각 반영한다.
선은 대상을 오로지 운동 속에서, 고정되고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운동 상태로 파악하는 것이고 그것이 생성중임을 보여준다. 모든 것은 실재이면서 동시에 끝없는 변화의 과정 속에서 존재한다고 보았기에 선으로만 그려나간다. 그에 따라 선으로 그린다는 것은 대상을 재현하려는 욕망보다는 다만 그 대상의 생명작용을 추체험하는 것이자 그것을 자신의 정신으로 따라가 보는 일이다. 그러니까 선은 대상에 연결되어 있다기 보다는 작가의 감득에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동양화에서의 선은 형태의 최전방이며 감수성 속에서 융해된 형을 표출하는 선이다. 운필은 화가가 간파한 내용과 형식을 인상지으려는 일종의 철저한 손의 놀림, 마음의 율동, 정신의 소요, 상상력의 활달한 보폭이 남겨놓은 자취다.
정선이 그린<단발령망금강>을 보면 아득한 운무가 깔린 저 편으로 금강산 풍경이 조망된다. 이 그림은 주체 앞에 자리한 자연대상의 묘사라기 보다는 측량할 수 없는, 무한한 자연의 형과 기운을 조망하는 조망자의 시선을 중시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서구미술은 그림이 실재가 되고자 욕망해 온 역사였다. 보이는 외부세계를 표면에 완벽하게 올려놓고자 열망했던 것이 원근법과 유화기법으로 나왔고 그것이 결국 기계적으로 실현된 것이 사진, 영상이 다. 서구미술이 사실적인 재현술에서 그림의 존재론적 조건만으로 즉물화되다가 오브제, 설치로 귀결되는 것 역시 실재가 되고자 한 욕망의 불가피한 결과다. 르네상스 이후 서구미술의 시각양식은 자연세계와 그 회화적 표면 사이의 대칭적인 관계를 강조하는데 반해, 동양화의 지배적인 양식은 비대칭적이며 그려진 이미지와 관찰된 세계 사이, 그리고 그려진 이미지들 자체 사이의 은유적 연계를 강조한다. 동양인들은 그림이 실재가 결코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오래 전부터 알았다. 사실 그림은 그림일 뿐이다. 따라서 동양의 그림은 실재를 추구하기 보다는 정신적인 활력을 통해 외부세계를 체득하는 그 어떤 통로로 그림을 대했다. 그림은 그저 종이라는 단면에 올려진 먹과 붓질이 만들어놓은 흔적일 뿐이다. 그것은 실재가 아니라 일종의 허구이다. 그러나 그림이 없다면 세계를 내 의식 안으로 끌어들이고 감상하고 오랫동안 응시하기 어렵다. 산수화는 실세계를, 자연의 진면목을 가상으로 경험하게 해주는 그림, 일종의 시뮬레이션에 해당하는 그림이다. 그래서 그림은 다른 세계로 이행하게 해주는 매개의 역할을 한다. 징검다리로서의 그림말이다. 그것은 ‘그리기’라기보다는 ‘상상하기’라고 해야 더 어울린다.
사물자체에 내재한 정신성과 기운이 발현되어야 보고 이를 표현하는 것이 산수화의 문제였다. 따라서 대상을 보는 이의 사상과 감정, 의도, 철학 등이 화면 안에 반영되어야 했다. 결국 동양화에서 중요한 것은 물리적 현상의 재현이 아니라,‘현상의 경험’이었다. 단순한 물리적 재현이 아닌 정신적 재현이라는 얘기다. 그것은 눈으로써 사물을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심안으로서 관조하는 것이다. 정신적인 활력을 자극해 실세계를 지각하고 그림 너머의 세계로 몸과 정신을 유인해주는 것이 바로 산수화다. 산수화를 보면서 실재하는 자연을 소요하는 체험(정신적 활력)을 맛보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관자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동참시키며 그의 상상력과 지각작용을 독려하는 것이 산수화였다.

3. 산수화 속의 집-정자와 누 그리고 빈 집

3.1. 집-정자와 누


그림 허련, 산수대련, 종이에 수묵담채, 34×60.5cm, 19세기
전통산수화에는 항상 집이 등장한다. 그 집은 주변과 조화롭게 어울려 자연과 서로 이어지면서 우주론적 테두리에 열려있다. 그 집에 선비가 좌정하고 밖/자연을 바라보고 있거나 혹은 정자에 앉아 역시 자연을 완상하고 있다. 한결같이 집이 등장하고 그 집 안에서 집을 둘러싸고 있는 우주자연을 보고 있는 장면이다. 모든 경치가 창이나 정자에서 조망하는 속으로 들어온다. 따라서 자연을 가장 바라보기 좋은 곳, 장소에 집을 지어 창을 내거나 정자나 누를 세웠다. 그 안에서 자연의 어떤 모습을 보기를 간절히 열망했을 것이다. 그것은 앞서 지적했듯이 군자의 덕목을 지닌 자연을 완상하는 일이자 우주 자연의 이치를 헤아리는 일이었다. 아울러 대자연과 자신이 유기적 연관관계를 갖고 있음을 새삼 깨닫고자 했을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자연의 이 무한영역에 자신을, 주체의 감각과 사고를 열어두는 것이었다. 아울러 그것은 인간이 절대적 주체의 자리임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성의 타자성’에 참여하는 것이다. 동시에 ‘지금 여기 살아있음’을 깨닫는 일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집을 짓는다는 것은 자기 집과 그 주변세계의 배치관계가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좋은 집이 되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쾌적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그 집이 주변의 환경과 교감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사람의 심성은 그가 어떤 공간에 사느냐에 따라 규정된다. 집은 물리적으로 조직된 것이자 동시에 심성적으로 조직된 것이기도 하다. 그곳은 자아가 쉬는 곳이면서 자라나는 곳이며, 홀로 있으면서도 더 큰 전체를 예비하고 준비하는 곳이다. 이처럼 집은 개체가 세계의 유기적 전체성과 시적으로 삼투하는 곳이며 이러한 삼투 아래 자기 자신을 형성해가는 공간인 것이다. 여기서 공간의 인간적 가능성은, 개체와 세계, 인간과 자연, 집안 세계와 집밖 세계가 잠시 만날 때, 잠시 완성된다. 그것은 ‘실존이 관계로 확장되는 ’과정이다. 인간 실존은 개체와 개체, 인간과 자연의 관계로 확장되고, 이렇게 확장된 관계는 다시 개별적 실존으로 회귀한다. 결국 집이란 무한한 자연 공간에 대한 지금 여기에서의 유한한 구성적 개입이다. 이런 구성적 개입을 통해 무한한 공간을 적극 인간화한다. 자연과 적극 교감하고 자연을 바라보며 자연과 자신이 유기적 연관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엄정하게 깨닫고 느끼고자 하는 장소가 선비들의 집이며 산수화 속의 집이다.
하나의 집은 보이고 보이지 않는, 가시적이고 비가시적인, 경험적이고 초월적인 테두리에 둘러싸여 있다. 이 겹겹의 테두리를 고려하고, 이 테두리에 열려 있을 때, 그것은 ‘교감하는 공간’이 된다. 그래서 옛 건축물은 건축의 공간 내부에 빈자리를 허용한다. 전통건축의 미는 건물의 개별적 대상의 외양적 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건물과 건물, 건물과 그 주변 사이의 관계와, 이 관계의 전체적 조화에서 생겨난다.
옛 건축에서는 자연 경관을 사람이 직접 찾아가지 않고도 집안에서 조망하며 즐기도록 하는 경관도입방식이 있다. 차경(借景)이 그것이다. 집안으로 담 밖의 멀리 보이는 풍경이나 이웃한 경물을 그리지 않고 주변이 빼어난 경관은 적극 끌어들이고 속된 경관은 지우려는 차경은 산수화와 동일하다. 창문을 통해 경관을 자신의 집으로 끌어들인다.
명 말의 대표적인 조원 이론서로 꼽히는 李漁(1611-1685)의 『一家言』에 “산수는 그림이 될 수 있고 그림은 창이 될 수 있다(是山也而可以作畵 是畵也而可以爲牕)'라고 하였다.
선비들은 사시사철 변화하는 모습과 사방의 기이한 경관 그리고 밤낮과 아침저녁 각기 달라지는 풍광 등을 바로 곁에 두고 그 임원(林園)에서 교양을 갖추며 달리 세상에 구하는 것 없이 한 평생을 마치고자 희구하였다. 인생의 진정한 즐거움은 출세에 있지 않고 취미와 여유를 구가하는 데 있다는 소망을 품었는데 그 소망을 구현하는 데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바로 집과 장연경관의 축소판인 정원이었다. 거처는 소박하고 정결하게 가꾸어 실내의 사면에 아무 물건도 놓지 않고 빈 채로 두었으며 산 일을 할 동자 하나를 데리고 살면서 동산에 물을 주거나 풀을 뜯는 일을 시켰다. 운치를 지닌 선비가 거처하는 곳은 일종의 고아함과 속됨을 벗어난 아취를 느끼게 되는 곳이어야 했다. 그래서 선인은 뒤로는 산언덕을 등지고 앞으로는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정자 한 채를 얽어 짓거나 누(樓)에 거처하기를 좋아했다. 사랑채 한쪽에 개방된 누마루를 마련하여 열린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을 즐겼고 형편만 된다면 계류 가까이에 정자나 별당을 짓고 거기서 자연을 즐기며 살아가기를 원했다. 자연 경관을 아침저녁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비로소 흉금을 맑게 씻고, 정신을 유쾌하게 하고자 열망한 것이다. 이러한 욕망의 배후에는 자연에 가까이 가려는 자연주의적 심성이 자리 잡고 있다. 자연과 하나 되려는 마음을 가진 은일자들은 대자연을 거처 가까이 끌어들이려 했는데 그 노력의 중심에 정자가 있었다. 자연경관을 산수정원으로 탈바꿈시키는 전환의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정자다. 그것은 계류 일대의 자연환경을 도가와 유교정신이 충만한 인문환경으로 탈바꿈시켜 놓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정자란 자연경관의 감상과 휴식, 풍류를 위해 지어진 자연친화적 건물로 간소한 구조의 목조건물이며 산수를 울타리 삼고, 운무를 병풍 삼고 수행과 강학, 휴식의 공간으로 활용되는 곳이다. 흉금을 씻고 성정을 닦기 위해, 고상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짓는 것이다. 정자는 결국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사방이 트인 정자에서는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소리, 계류에 비치는 달, 맑고 상쾌한 지초의 향기 등 시청각적, 후각적 대상이 되는 자연계의 모든 요소들이 감상의 대상이 되고 사색의 빌미가 된다. 자연의 이치를 배우며 자연과 일체되고자 하는 삶의 방식을 추구한 선비들에게 정자는 대자연과 교섭하면서 우주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본성을 찾으려는 정적 풍류의 공간이자 육체적 휴식과 집단 풍류의 현장이었다. 작은 전망대와 비슷한 정자는 사면이 모두 자연을 향해 열려있다. 정자는 일상의 세계와 미학의 영역 중간에 애매하게 존재한다. 정자에 앉아 주변 산수를 감상하고 즐길 때, 모든 것이 감상자의 심정적 소유물이 되면서 홀연히 정원으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정자는 풍경에 ‘악센트’를 부여하여 그 부근 전지역을 질서 있는 미적 공간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정자는 하나의 초점을 제공함으로써 미적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다.
이이는 “산수가 능히 사람으로 하여금 정감을 옮기게 하므로 이 정자에 오르는 이가 산이 높은 것과 물의 맑은 것을 보고서 부식하고 물욕을 씻어 버린다면 인이 더욱 두터워지고 지가 더욱 해박하여질 것이다”라고 했다.

3.2. 빈집

산수의 좋은 경치는 오직 여유로운 은둔을 사모하고 일신의 수양을 즐거워하며 세속과 떨어져 원유(遠遊)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노장의 세속을 피하여 자연을 가까이 한다(避世親自然)는 은둔사상이 그것이다. 이후 주희에 와서 산수의 낙을 즐기는 취미가 형성되었다. 그는 산림 속에서 사색과 저술활동은 물론 찾아오는 문도들을
그림 사사표, 수죽묘재도,
126.3×49cm, 청
교육하기 위해 정사라는 심신수양과 교육에도 알맞은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선택하였다. 아름다운 산수자연 속이 서원경관은 매우 중요시되었다. 속세를 멀리한 산수 속에서의 정사라는 교육적 환경은 공부하고 심신을 수양한 선비들에게는 하나의 모범이었다. 따라서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평소 관직생활을 하면서도 항상 세속과 일정한 거리를 둔 은거할 복지를 꿈꾸거나 실제로 도성안의 경저京邸를 떠나 좋은 환경에 위치한 외포(外圃)를 경영하였다.
조선시대선비들은 대부분 세상과 결별하는 도가적 절대은둔보다는 도의를 즐기어 심성을 기르기를 즐기는 유가적인 은둔을 택했다.
은둔이란 세상을 외면하고 세속적 욕망을 줄여 최소한의 생존만 가능하도록 하면서 마음 편히 살아가는 이름없는 인간들의 삶을 말한다.
선비가 무슨 이유이든 관직에서 물러나 침거하면 ‘은둔’이고, 적극적으로 세속을 멀리해 명당을 잡아 별서(別墅)나 외포(外圃)를 짓고 살면 복거(卜居)라고 한다.
천지자연에 몸을 맡기고 만물의 생성과 변화에 순응해서 대붕처럼 광활하고 무궁한 세계에 거리낌 없이 소요하는 자만이 진실한 자유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소요란 속세를 초월하여 어떤 구속도 받지 않는 절대적 자유를 누리는 경지를 말한다. 그 소요의 경지에서 얻을 수 있는 참된 즐거움을 장자는 ‘지락至樂’이라고 표현한다. 고요와 정적 속에 자신을 맡기고 소요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도가에서 추구하는 진정한 삶이다.
반복하지만 산수화는 눈앞에 실제로 존재하는 산수가 아니라 마음속의 이상향이다. 산수화를 보면 대부분 산수 속에 인물이 있다. 그 인물은 작은 집에 은거하고 있다. 그는 독서중이거나 물을 바라보거나 물소리를 듣는다. 가만히 앉아서 식물처럼 존재한다. 혹은 다리를 건너오는 그 누군가를 기다린다. 또는 빈 집만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기도 하다. 집안에서 독서하는 인물, 선비는 유가적 인간을 은유한다. 독서라는 아이콘은 그 무엇보다도 강렬하게 나와 세상을 이어주는 끈을 의미한다. 독서의 대상은 바로 성인의 말씀이 담긴 경서이다. 따라서 독서는 유가적 행위인 셈이다.반면 빈 집을 보여주는 건 완전히 세속과 인연을 끊어버렸다는 도가적 발언이다. 그림 속에는 흔히 물을 사이에 두고 위, 아래로 풍경이 나뉘어져있다. 여기서 격수(隔水)란 물을 두고 세상과 단절함으로써 ‘도가적 황홀’에 들어섬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상단 원경은 차안의 세계이고 내가 벗어난 혹은 벗어나고자 꿈꾸는 현실이다. 반면 하단 근경은 피안의 땅이다. 인간사와 세상사를 버리고 끊고 잊었다는 것이다. 그 아래에 등장하는 빈집은 세속적 욕망을 비운 마음(虛心)을 강렬하게 대변한다. 그러니까 소소한 빈집은 그 같은 탈속과 초월을 한층 더 강조하는 지독한 마침표인 셈이다.


4. 한국현대미술 속의 산수화전통-집 도상의 변천

조선조는 유교라는 이념을 끝까지 물고 늘어진 거대한 사유의 바다였다. 그 속에서 보수적이고 전형적인 엄숙주의와 안빈낙도 사상이 조화롭게 공존하면서 형식과 틀, 탈주와 은둔이 교묘히 혼재된 삶이 바로 문인들의 삶이었지 않았을까 궁리해본다. 아마도 철저한 선비들은 아웃사이더였을 것이다. 세속을 떠나 사는 고상한 삶, 은둔과 풍류, 자연친화적 사상이 어느 의미에서는 우리의 전통이다. 그리고 그 전통은 오늘날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 무엇보다도 필요한 그러나 쉽지 않은 덕목과 성찰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이는 예술/미술의 중요한 덕목에 다름 아닐 것이다. 한국현대미술에서 그 같은 산수화의 전통을 계승하거나 그림 속에 체현하는 작업들을 접할 수 있다. 이는 단지 지난 산수화를 형식적으로 모사하거나 유사한 풍경화를 그리는 작업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전통사회 속에서 산수화가 기능했던 의미를 오늘날 다시 생각해보고 당대의 삶 속에서 자연과 독대하며 자신과 자연의 관계를 정립시켰던 의미를 되살려내는 작업들을 말한다. 특히 공통적으로 집, 정자를 통해 산수화에 깃든 자연관과 선인들의 심미관을 헤아리는 작업으로 국한해서 살펴보았다.

4.1 장욱진(1918-1990)


장욱진, 강변풍경, 캔버스에 유채, 23.1× 45.7cm, 1987
장욱진은 1969년 이후 일체의 직업, 사회생활 없이 서울 주변의 지방을 떠돌아다니며 그곳에 집을 짓고 세상과의 일정한 간극을 마련하면서 자연을 벗삼아 고독하고 외로운 시간을 오직 그림으로 메워나간, 그림과 술로만 인생을 보낸 기인(奇人)이었다. 원근이 존재하지 않는 평면적 화면 위에 어린아이의 그림에서 엿볼 수 있는 천진난만한 동심의 얼룩짐, 정신성을 중시한 동양적 회화관이 자리하고 있다. 낙서 같은 자연스런 필치로 평안함과 해학을 담아오다가 후기로 오면서 더욱 단순화 되고 기호화된 작품을 보여준 그는 자연과 인간 삶의 단편을 극히 간결한 선과 형으로 조형화함으로써 탈속의 세계를 추구한 그래서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프리미티브 화가로 손꼽힌다. 자연 속에 자그마한 집이 있고 그 안에 남자 혼자 독거하거나(자화상) 가족들과 함께 하는 모습이 그가 줄곧 그리던 그림의 모티프였다. 이는 전통 동양화에서 늘상 그려왔던 소재들이다. 자연과 함께 하는 인간(생명체)의 모습은 그 속에서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지향하는 동시에 순환하는 자연의 섭리를 순응해내는 자들의 초상일 것이다. 세속세상에서 벗어나 초탈한 삶을 꾸려가는 은자의 삶에서 나온 풍경 말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에서 조선시대 선비문화의 삶과 정취가 화면 가득 묻어 나온다. 아울러 이는 동양인의 심성과 삶과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서 연유하는, 전통과 얽힌 뿌리 깊은 의식과의 관련성이 짙어 보인다. 장욱진의 작업에 엿보이는 정신은 어느 면에서는 조선조 사대부 문화의 뿌리에 가깝다는 생각도 든다. 장욱진은 현대화, 도시화, 산업화된 세계에서 도피하려 했고 이것은 ‘현대화에 대한 그의 반응’이었을 것이다. 그는 현실보다는 전통사회에서 추구하던 이상적인 자연세계를 동경하였던 것이다.


4.2. 김상유(1926-2002)


김상유, 대산루, 캔버스에 유채,
53x45.5cm,1990
김상유는 한국의 전통적인 정자나 누를 그림 속에 담아왔다. 그리고는 본인 자신이 그 안에 좌정하고 있는 모습, 일종의 자화상을 그렸다. 그는 여행을 통해 한국미의 원류라고 말해볼 수 있는 곳들을 찾아나간다고 한다. 대개 그곳은 정자나 사원이나 사찰들이 있는 곳들인데 이곳은 다름 아니라 우리네 선조들의 삶의 공간이자 조형의식, 심미관 같은 것들이 농축되어 있는 곳들이다. 그런 건축물들은 우리네 선조들의 정신이 깃들고 삶이 녹아있는 환경이고 공간이자 지향했던 삶이 자연 공간에 구체적으로 현존하는 것들이다. 우리의 자연 환경, 땅에서 자연스레 파생된 정서이자 미학인 셈이다. 한결같이 주변 환경, 자연과의 조화를 거스리지 않고 배치된 건축 공간은 자연과 함께 하는 자들의 뛰어난 안목과 삶의 자세에서 기인한 것들이다.
김상유의 그림에 등장하는 정자나 누(樓)는 적조하고 단촐한 공간이다. 특히나 우리네 선조들의 정자 및 정원은 당시 선비들의 안빈낙도 사상 및 생활철학이 반영되어 있는 곳이자 동시에 탁월한 조형감각, 공간 구성 및 격조 있고 운치 있는 멋을 간직하고 있는 곳들이다. 대나무 숲의 바람소리와 절묘한 조화와 구성의 미를 지닌 정자나 집에서 자연을 벗하며 살다가 간 진정한 멋장이들이다. 어눌한 필치로 겨우 그려진 집과 소나무만이 단촐하다 못해 초라하게 그려진 이 그림은 그러나 문인그림에서 사의(寫意)를 그린다고 하는 정신에서 볼때 상당한 격조와 그림과 글씨, 문장의 절묘한 조화를 보여주는 그림으로 유명하다. 동시에 여기에는 고결한 격과 높은 정신으로 삶을 지탱해간 조선시대 문인, 선비들의 지극한 삶이 스며 있다. 그것은 또한 우리 민족의 생활감정 중에서도 매우 회고적이며 은둔적인 생활감정에 근거한 미학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생활감정이 예술적 형상화를 추구하면서 얻게 된 아름다움이란 결국 관념적일 수밖에 없다.
김상유의 그림 속에는 오로지 한명의 남자(그의 그림에는 장욱진처럼 가족이 등장하거나 친화적인 세계의 상을 보여주지 않는다)만이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 있다. 그저 단정히 앉아 있을 뿐이다. 그는 세속 세상과 절연된 체 혼자만의 세계로 침잠하면서 스스로의 위안과 고독과 우수, 적조하고 빈한한 삶을 순응하고 있는 것 같다. 숲 아래에서 속세와 인연을 끊고 세상을 버린 그로 인해 무한한 자유를 얻은 한 선비를 만나고 있는 체험도 준다. 강산(江山)과 풍월(風月)은 본래 일정한 주인이 없고, 오직 한가로운 사람이 바로 주인이지 않은가? 우리네 조상들이 은거를 꿈꾸고 실행했던 것은 결코 이름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의 몸을 오래도록 속세를 떠나서 한거하게 하여 그 은거의 즐거움에 이르려고 한 것이었다. 가난은 선비의 상사고 죽음이란 사람의 종말인 법인데, 상사 속에서 살며 종말을 기다리는 것이 어찌 즐겁지 않느냐고 한 것이 바로 그네들이다.
“그것은 조상들이 실제 생활 했던 공간이다. 거기에는 조상들의 멋이 담겨 있다. 뒷문을 열면 대나무 밭이 보이고 앞문을 열면 소나무가 있는 그 멋스런 정취와 가람 배치에서 내 작품의 소재와 화면 구성의 영감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 건물들에 붙어 있는 현판에 새겨진 문구의 의미를 새겨보면 그곳에 살던 옛 사람들의 정신생활을 알게 된다.”(김상유, 작가노트)

4.3. 김기창(1913-2001)


김기창, 정자2, 비단에 채색, 55× 51.5cm, 1976
김기창이 오랜 운필로 도달한 정신적 자유로움, 옛스러움을 이해하는 데서 체득한 멋과 해학 그리고 여유 등이 용해돼 있는 민화적인 그림이다. 그는 정자나 누가 어떤 맥락에서 자리했는지를 이해하며 이를 그림으로 옮겼다. 흐르는 물을 관조하고 먼 산을 바라보며 자연을 일상의 공간으로 적극 끌어들이고 있는 이들의 모습, 일과가 손에 잡힌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오랫동안 근원을 찾아 헤매다가 한국적이면서도 순수한 인간의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해 놓은 것이 바로 우리 민화임을 알게 되었다. 바보산수는 그러한 민화의 정신을 내 나름의 작품세계에 담아보려고 한 것”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유머러스하고 천연덕스럽고 정감있게 휘어지고 또한 간결하게 요약된 자연과, 그 산수와 동화를 이루게 집과 정자를 짓고 일하며, 또한 이웃과 왕래도 하고 들놀이, 물놀이를 하며 살아가는 친숙한 이 땅의 사람들이 또한 그의 그림 속에 있다.


4.4. 이왈종(1945-)


이왈종, 제주생활의 중도, 한지위에 혼합재료, 256× 195cm, 2004
그의 그림을 보노라면 우선적으로 조선선비의 은거정황(隱居情況)의 이미지가 연상된다. 심산유곡에 자리 잡은 누각 안에서 서안에 기대앉아 세차게 흐르는 계류를 망연히 바라보는 은사그림 또는 눈 덮인 겨울날 만개한 매화의 화려하면서도 강인한 자태를 곁에 두고 작은 집 안에서 선비가 홀로 책을 읽고 있는 <매화서옥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왈종의 그림을 보노라면 분명 그 같은 그림에서 엿보는 세계가 내려앉아있다. 그가 지향하는 삶의 편린이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만난다. 그가 얼마나 조선 선비들의 그림세계에 깊이 경도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이왈종은 그 나름으로 현재의 삶에서 옛 선비들의 그 같은 삶의 방식과 여운을 따른다.
그림 안에 자연계의 모든 생명체가 평온하고 평등하게 조화를 이루는 장면으로 나앉았다. 삶은 인간의 삶이 아니라 만물의 그것으로 치환되며, 인간은 우주만물의 극히 작은 한 부분으로 등장한다. 인간의 눈으로 대상을, 자연을 바라보고 질서지우는 것이 아니라 동물과 식물의 눈으로 자연을 바라보고, 자연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전도된 시각을 영위한다. 이른바 대칭적 사유가 그것이다. 또한 만물이 평등한 모습으로 등장한다기보다 오히려 범신론적인 체계를 보여준다. 인간과 생물에게만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만상이 모두 동등한 정령을 지니는 생명체로 등장하며 그것들은 서로 융화하고 침투하고 또 변형되기도 한다. 그는 이를 중도의 세계’라 칭한다. 그것은 너와 나의 상대적 개념이 없고 주체와 객체가 분리되지 않으며 사물마다의 존재방식이 별개로 존재할 수 없는 곳이다. 이는 다름아닌 우리 전통미술이 보여주고 들려준 내용이다.

5. 맺음말

전통산수화가 보여주는 자연 속 작은 집, 정자 등에 안거하고 있는 작은 인물들은 독서중이거나 자연을 관조하고 있다. 그곳은 일종의 현실계에 마련한 유토피아이자 군자의 생을 부려놓을 만한 공간일 수도 있고 현실적 삶과 쓰라리게 맞닿아있는, 경계에 위치한 또 다른 삶의 영역이기도 하다. 주어진 현실적 삶의 무게나 중력을 조금은 덜어내고 소풍을 가듯,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며 또 다른 삶의 자취나 편린을 환각처럼 만나고 싶은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가하면 그림속의 선비, 고사(高士)는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면서 자연의 순환과 이치를 새삼 깨닫고 있는 것 같다. 거기에는 오로지 ‘영원한 지금’만이 흐르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동양인의 순환적 시간관이다. 그것은 서양인이 지니고 있는 직선적 시간관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산수화를 벽에 걸어놓고 완상하면서 자신의 몸은 비록 세속 세상에 있지만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가 소요하면서 마음과 정신을 비우고 자연의 덕목을 닮고자 한 것이 우리네 선조들의 욕망이라면 욕망이었다. 그래서 자연경관을 차경하기 다양한 건축물과 이를 보여주는 산수화 제작과 완상행위가 이루어졌다. 정자와 누가 그렇고 산수화 속의 집이란 도상들이 그런 맥락에서 탄생했다. 산수화가 보여주는 자연 속 작은 집, 정자나 누 등에 은거하고 있는 작은 인물들은 독서중이거나 자연을 완상하고 있다. 그곳은 선비가 공부하는 곳, 자연을 관조하고 심신을 수양하는 장소이다. 아울러 그곳은 적극적인 심미적 공간이기도 했다.
대다수의 산수화를 보면 한결같이 산 속 깊은 곳으로 사람 하나가 혹은 몇이서 하염없이 기어들어가는 그림이 태반인 이유를 이제 알 것도 같다. 도인(道人)을 꿈꾸며 살았다고나 할까? 군자/도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동양인의 욕망이었으리라. 그것은 한편으로는 주어진 환경, 자연의 엄정한 구조망 속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삶 안에, 자신의 몫으로 은일하는 이의 삶이 무엇일까라는 문제의식 같은 것이었으리라고 본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결과적으로 투명한 외로움과 목숨 가진 유한한 존재들이 피할 수 없는 본질적인 서글픔 같은 것을 만난다. 거대한 영원 앞에서 찰나적인 생을 살다 소멸될 운명에 처한 이들의 꿈같은 삶이 그런 것이리라.
자연과 교감하고 자연을 바라보며 자연과 자신이 유기적 연관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 자연의 무한 영역에 자신을, 주체의 감각과 사고를 열어두는 일이었다. 그것은 인간이 절대적 주체의 자리임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성의 타자성에 참여하는 것이며 동시에 지금 여기 살아있음을 깨닫는 일이었다. 그것은 자연경관을 조망하는 자리에서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바로 집에서 이루어졌다.
이처럼 전통 산수화는 당대인의 구체적인 삶의 공간을 이해하려는 적극적인 인식행위였다. 그림 안에 그들이 꿈꾸었던, 바람직한 삶의 유토피아를 가설해 보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새삼 그 산수화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떻게 새롭게 독해될 수 있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무엇이나 초고속으로 치닫는 이 소비와 욕망이 비등한 시대에 산수화는 현실세계를 사는 우리들에게 전해주는 나름의 메시지가 분명 있을 것이다. 자연과 유기적 연관을 맺으려 그 거대한 생명활동에 참여하면서 나란 존재를 자연계와 연결하려는 이 타자성에의 지향은 무척이나 소중한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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