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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민숙 / 집이 품고 있는 삶

박영택

집에는 사람이 산다. 물론 사람만이 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집은 무엇보다도 사람이 살기 위해 마련한 인위적 공간이다. 집은 자신과 타자를 구분 짓는 완강한 경계를 이룬다. 동시에 그 모든 집들은 현실로부터 의도된 격리 속에 견고하다. 누군가의 집을 방문하는 일은 다른 이의 몸으로, 내부로 들어가는 일과도 같다. 그것은 모종의 금기를 연상시킨다. 그곳은 무척 은밀하고 비밀스럽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낯선 이의 집은 나의 집과는 완벽히 다른 세계다. 그곳은 분명 존재하지만 사실은 부재한 곳에 다름 아니다. 집 밖을 나오면 여러 타인들과 혼재되어 지내지만, 집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나는 밖의 세계를 완벽히 끊어내고 나만의, 환한 개인성의 공간으로 귀환한다. 집 밖은 지옥이다. 물론 집 안이 지옥일 수도 있다. 오히려 바깥에서 구원을 찾는 이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집 안에서 지극히 행복하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 앉거나 눕는 순간 비로소 주어진 모든 생이 종지부를 찍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가끔 남의 집을 바라보면 그 안이 궁금하다. 누가 살고 있으며 어떤 삶들이 그 안에서 이루어질까? 그/그녀 역시 나와 같은 인간이자 동일한 삶의 고단함 속에서 오늘 하루는 어땠을까? 하고 묻고 싶어진다.

장민숙의 그림을 보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화면에는 집들이 가득 차있다. 대부분 수직으로 서 있는 집들이다. 하나씩의 창을 촛불처럼 지니고 수평으로, 수직으로 도열해있다. 여러 집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사이좋게 늘어서 있거나 화면 전체를 온통 빼곡히 채워나갔다. 오로지 집으로만 이루어진 세계의 풍경이다. 여기서 집은 결국 그 누군가의 얼굴, 몸, 삶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집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것은 아니다. 다만 밝고 화사한 색채의 집적 속에, 선과 면의 겹침과 분절 속에 집을 연상시키는 어떤 형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단속적인, 경쾌한 붓질인 동시에 집의 이미지를 자연스레 안긴다. 색채를 머금은 붓질이면서도 집 이미지인 것이다. 그 둘은 서로 뒤섞여 있다. 그림을 보는 이들은 다채로운 얼룩으로 충만한 색채의 더미를 즐기다가 문득 나타난 집의 형태를 감상할 수 있다. 빠른 속도로 납작한 표면을 스쳐지나간, 흔들리고 겹쳐지는 붓질의 속도감과 감각적인 호흡을 만나다가 이내 알록달록한 색채의 향연에 빠진다. 그러는 순간 다시 집의 이미지가 어른거리고 떠오른다. 그것은 구상이면서 추상이고 재현이면서도 비재현적이다.

장민숙은 집만을 그렸다. 여백 없이 집의 외형만을 그렸다. 시각형의 캔버스에 색상을 지닌 사각과 큐브 형태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화면의 평면성을 유지시키면서도 이미지를 안긴다. 자족적인 붓질과 색채를 채워나가면서 그 흔적이 골목길이나 산동네에 빽빽하게 들어찬 집을 연상시킨다. 정감이 가는 풍경이다. 단순하고 개념적으로 그렸기에 구체적인 정보를 주지는 않지만 약간은 빛바랜 듯한 색상과 대담하게 쓸고 지나가는 붓질, 그리고 약간의 ‘스크래치’ 등으로 미뤄봐서는 오래되고 퇴색한 집을 연상시켜주는 편이다. 번듯하고 화려한 집이 아닌 지극히 소박하고 서민적인 단독의 집들 같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듯 바짝 붙어서 살아가는 이 집들은 마치 그 집 주인들의 생애를 상상케 한다. 아마도 작가는 그런 동네를 산책하고 돌아와 그 당시 떠오른 느낌을 그린 듯하다. 삶의 내음이 질펀한 다소 허름한 동네를 소요하다가 작은 집들, 빽빽하게 들어찬 저마다의 집들을 보면서 이런저런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그 누군가의 목숨을 생각해보았나보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연민의 정이 움트고 조금은 쓸쓸하고 허망한 상념에 잠기기도 하였나보다. 작가는 그런 마음을 화면 위에 올려놓고자 했다. 집을 그린 그림이지만 사실은 그 집을 통해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굴곡 심한 생애와 알 수 없는 사연을 가시화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새삼 삶과 일상의 소중함 또한 잔잔하게 일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림 그리는 행위의 투명한 반복 속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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