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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철 / 'Code Landscape'

박영택

기호는 힘이 쌔다. 도시에서 산다는 것, 도시에서의 일상은 그 막강한 기호들의 통제와 관리 속에서 이루어진다. 기호를 위반한다는 것은 도시에서의 삶에서 배제되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도시 공간에는 너무 많은 기호들이 범람한다. 도시가 결국 길이라면 무엇보다도 많은 기호들이 그 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이동과 정지를 지시한다. 도시는 내 의지대로 마음껏 활개 치며 다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을 다니는 것과는 무척 다르다. 자연에는 기호가 없다. 인간의 말들이 여전히 자연을 통제하려 들긴 하지만 그 말들이, 기호들이 일일이 자연을 억압하긴 어렵다. 그래서 자연 속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움을 느낀다. 내 몸이 내 의지에 따른 길을 가고 이동하고 멈추고 쉰다. 육체의 말들을 따르고 내면의 욕망에 의존한다. 반면 도시에서는 내 몸과 의지 위에서 군림하는 어떤 시선들이 항상 감시한다. 보이지 않는 시선들은 무수히 편재된 기호 속에서 산다. 따라서 그 기호가 무엇인지 독해하고 이를 따라야 한다. 그러니까 도시에서는 금기의 사이에서 허용된 길만을 간다. 가야한다. 도시공간은 그러한 권력적인 기호들이 강제한다. 그것을 위반하면 과태료 고지서가 날아든다. 순간 범법자가 된다. 해서 도시를 장악한 기호들은 보는 이들을 순종시킨다.
기호는 항상, 어디서나 24시간 살아있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도 기호만은 유령처럼 살아서 무언의 요구를 끊임없이 해댄다. 서영철은 바로 그러한 기호, 기호판들을 찍었다. 대부분 교통법규와 관련된 기호들이다. 자동차와 보행인의 동선을 통제하고 조율하는 명령어들이다. 작가는 인적이 없는 자연 공간에, 하늘과 구름 아래, 능을 배경으로 더러는 크레인과 숲을 뒤로 하고 직립해 있는 그 기호들을 적조하게 찍었다. 자연은 그러한 기호를 무심히 품에 안고 있다. 비둘기들은 그 주변에서 마냥 고요하다. 햇살과 바람은 그 사이 어디선가 머문다. 자연 앞에 기호들은 슬그머니 무장 해제되는 듯도 하고 순간 무력해진다. 그러나 여전히 기호는 그 추상적 공간 속에서도 속절없이 발기한다. 작가는 이 풍경을 ‘code landscape라 칭한다.

그는 오랫동안 도시를 사진에 담아왔다. 그가 도시라는 일상의 공간에 주목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실 그의 사진은 도시공간이라기 보다는 도시인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다분히 실존적 냄새가 자욱한 그 사진들은 어디론가 걸어가는 이들의 발과 그림자를 조용히 비춰주고 있었다. 근작은 인적이 부재하고 자취를 감춘 자리에 오로지 기호만이 깃발처럼, 혹은 영원처럼 자리한 풍경을 보여준다. 적막하고 나른하면서도 어딘지 괴이한 분위기가 감도는 풍경이다. 그는 도시 안을 떠돌아다니며 도시경관을 만들어 내고 변화시키는 무수한 기호들에 주목했다. 흑백사진 속에 담긴 기호는 기념비적으로 단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딘지 낯설고 의아하다. 왜 저 기호들은 이곳에 저렇게 설치되어 있는가? 그 기호를 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 기호가 보는 이에게 미치는 심리적, 정신적, 육체적 영향과 파장은 무엇일까?

도시의 기호들은 마치 화폐가 그렇듯 표면적인 추상성과는 대조되는 구체적인 의미들로 압박한다. 그것들은 도시를 관리하는 기호들이다. 그러니까 물자와 사람들의 흐름을 효율적으로 유인하고 체계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 고안된 기호들인 셈이다. 또한 그 기호는 전세계 어디서나 유사하게 통용된다. 마치 화장실이나 식당, 주차장 등을 알리는 픽토그램과 동일하다. 알다시피 산업적 근대화 과정 속에서 탄생한 대도시는 전통적인 공동체의 약호를 일시에 파기하고 모던한 감수성으로 무장한 낯선 기호들을 습득할 것을 일방적으로 강요해왔다. 공동체구성원들이 공유하던 세계관과 의미망을 지닌 이미지, 기호들은 깨지고 추상화된 기호들만이 신속하고 합리적으로 집단적인 통제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오로지 효율성의 체계 아래 관리되는 차갑고 인정머리 없는, 단호한 표정을 지닌 기호들이다. 화살표와 숫자, 영문자 그리고 픽토그램 등으로 이루어진 기호들이 철판 위에 인쇄되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하나씩 둘씩 서 있거나 매달려있다. 문득 그 기호판을 올려다보면 거기 파란 하늘이 무심히 펼쳐져있고 하얀 구름이 다소 낭만적으로 지나간다. 작가는 그 두 개의 세계를 의도적으로 대비시켰다. 그런 연출이 너무 쉽게 읽히는 아쉬움은 있지만 새삼 우리들의 삶속에 완강히 자리 잡은 그 기호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시선은 도시공간을 들여다보는 흥미로운 지점을 순간 개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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