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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밥 먹여 주나요?

박영택

미술평론이 직업인 사람이라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전시장을 다닌다. 그만큼 작가의 작업실도 다닌다. 내게 전시장과 작가의 작업실은 미술을 공부하는 것이다. 미술은 책 속에 박혀있지 않고 전시장에 숨 쉬고 있거나 우리들의 삶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다. 그 동안 무수한 작가를 만났고 만나고 있다. 얼굴은 흐릿해져도, 이름은 가물 해도 한 번 본 그 작품들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그 작품들을 보러 다니면서 그들의 미술에의 욕망을 만나고 미술에 대한 여러 생각의 편린을 접했다. 이를 통해 세상과 사물을 보는 안목을 길렀으며 예술이 우리들의 삶에서 무엇이며, 무엇일 수 있는가를 깨닫고 있는 중이다. 작가 역시 평범한 사람들이다. 다만 그들은 타고난 미술에의 재능이나 열정을 가능한 한 지속해서 자기 생애의 명분으로 삼고자 하는 이들이다. 어느 날 문득 그는 미술에의 재능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재능으로 이루려 하는 일이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 가치 있는 것이라 생각되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의무를 부여해 그 길을 가고자 했을 것이다. 모든 미술인들은 그렇게 되었다. 그는 남루하고 가난하며 지상의 어떠한 지위와도 무관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삶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견딜 것이다. 그 길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 그것 이외에 다른 일이란 그에게 너무 멀고 아득하다.

우리들 대부분이 외부의 목소리에 끌려 산다면 예술가들은 자기 내부의 목소리와 요청에 의존하는 이들이다. 작가들은 ‘좋은 작품’ 혹은 ‘예술’이란 화두 하나를 붙들고 가는 이들이다. 대부분 그 길에 가닿지 못하고 죽거나 재능이 미치지 못함에 절망하거나 혹은 위선적인 작업으로 덮어버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예술이란 사실 모호하고 난감한 대상이다.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작업 또한 그렇다. 어쩌면 예술가란 허명에 자족하고자 하는 이들인지도 모르겠다. “작업이 참 좋다”라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생을 건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가난을 감내하고 세속의 욕망으로부터 비껴나 있다. 운이 좋게도 나는 어렵게 살면서도 좋은 작업에 힘겨워하는 작가들을 비교적 많이 만난 편이다. 그들은 나이를 떠나 내게 스승이 된 존재들이다. 사물과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눈을 일러주었는가 하면 미술에 대한 확장된 사고를 가능하게 해주었고 자기 삶의 시간들을 온전히 투여해서 일에 몰두하는 집요함과 가난과 고독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들을 심어주었다. 미술에의 길도 수행의 길과 닮아있기에 세속적인 인연으로부터 가능한 한 자신을 떨구어 내는 고독과 침묵, 소외와 남루한 삶을 기꺼이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 내게 묻는다. 좋은 작업이 무엇이냐고, 좋은 작가는 또 누구냐고? 작가란 존재는 시각이미지가 무엇이며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는 이들이다. 나를 둘러싼 세계의 이미지란 것을 정확하게 통찰하도록 도와주는 이들이다. 그런 작업을 보여주는 이들이 좋은 작가들이다. 어떤 이들은 그림 그려서 먹고 살 수 는 있느냐고, 예술이 밥 먹여 주냐고? 고도 묻는다. 단언컨대 예술은 결코 밥이 되지 못한다. 밥이 되려고 그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것이 차마 현실적인 밥으로 내 목구멍에 들어가진 못할지언정 이른바 정신적인 밥, 내면적인 밥은 되지 않겠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욕망이 창궐하는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는 이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형으로 길들여져야 살 수 있다. 동일한 삶의 시스템과 욕망의 코드에서 벗어난 삶은 자멸이거나 죽음이다. 그러나 예술은, 미술은 우리의 일상적 비전과 투쟁한다. 이런 식의 삶이 아니라 다른 식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이 주어지 삶이 전부가 아니라고 자꾸 도리질 치게 한다. 그것이 예술이다. 거창한 예술론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미술작품을 보고 전시장을 다니며 작가들의 삶을 떠올린다는 것은 그런 정신의 공간과 자유가 허용하는 여백 같은 곳을 보기 위해서다. 내 삶에 구멍을 내기 위해서이며 익숙하게 길들여지는 그 모든 것들을 의심하기 위해서다. 진정한 주체가 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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