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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희 / 자연과의 교감과 조화를 꿈꾸는 옻칠과 자개

박영택

단호하게 어두운, 깊은 심연 같은 검은 옻칠이 표면을 덮고 있다. 까만 하늘같고 어두운 밤 같고 아찔한 바다 속이나 캄캄한 지하의 갱도 같은 것이다. 어둠과 검정은 불임과 절멸의 세계, 비가시적 세계다. 외부를 판독하던 시선들이 이내 사라진 자리에 심상의 이미지가 뇌와 가슴 속에서 피어나는 순간이다. 역설적이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이 단호한 어둠과 검정이 오히려 자유로운 연상과 상상력을 가능케 한다. 작가 역시 그러했으리라. 돌이켜보면 선사시대인들은 어두운 동굴 벽을 맞닥뜨리면서 비로소 기억의 이미지, 보고 싶은 이미지를 연상할 수 있었다. 재현할 수 있었다. 그들은 대상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기억의 이미지를 뽑아낸다. 신기한 이미지 생성작용이 일어난 것이다. 마음에서, 정신에서 보았던 것들, 보고 싶었던 것들이 자라나는 놀라운 체험! 그것이 미술의 시작이다.

나로서는 이 검정 옻칠로 덮인 신비스런 화면 안에서 오히려 더 많은 상상의 여지를 펼친다. 작가 또한 그렇게 연상되고 부풀어 오르는 여러 이미지들을 올려놓았다. 붙여놓았다. 물감이나 붓질을 대신해 자개와 계란 껍질이 옻칠과 함께 숨을 쉰다. 옻칠이나 자개, 계란껍질 또한 자연이자 생명체며 인공의 것과는 다른 매력적인 질감과 물성을 선사해주는 재료들이다. 그러니까 자개니 옻칠은 천연의 자연에서 추출한 것들이자 자연 그대로의 생명체들이다. 그것들은 생명을 지닌 존재들이다. 아득한 시간과 세월, 역사의 일상을 기억하고 간직한 나무와 조개, 알들이 이룬 물성과 무늬, 색상과 빛들이 그려놓은, 만들어놓은 그림이다. 그것은 유한한 인간의 존재가 가늠하기 어려운 자연의 힘이자 본성이다. 인간이 자연에서 얻고자 하고 배우고자 하는, 그러나 가닿을 수 없는 신비로움의 정체다.

촉각적 화면을 돌올하게 일으켜 세워주는 이 저 부조회화는 오브제 회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만이 만들어내는 아름답고 신비스런 색상과 질감이 자아내는 판타지. 작가의 자개나 옻칠은 단순한 전통기법의 응용이나 번안에 머물기 보다는 그러한 재료 자체에서 연유하는 자연과 생명의 연관성 내지는 그 교감을 자신의 내적인 정서와 연결시켜 절실한 이미지로 만들어내고 있다는, 써내려가고 있다는 지점에서 반짝인다. 재료와 자신의 존재를 부단히 동화시키고 녹여나가는 연금술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볼 점은 그 재료들이 한결같이 완벽한 생명체들인데 그것들을 해체하고 파편화시켜 다시 무엇인가 새로운 존재로 환생시킨다는 점에서 사뭇 윤회적이랄까, 순환론적인 구도가 읽혀진다는 것이다. 다분히 연기적 세계관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러니까 자개나 계란, 옻칠은 해와 달, 산과 나무, 인간과 새, 사과와 호박 등으로 거듭 나고 반복해서 출몰한다. 생명의 영원한 순환을 연상시킨다. 하나이면서 다른 것이고 무수한 것이자 결국 하나인 것이다. 생명은 그렇게 연루되고 얽혀있다. 더불어 오랜 시간의 노동에 의해서, 재료들을 붙이고 아울러 안료가 칠해지고 그것을 갈아내고 다시 가다듬어지는 여러 과정이 쌓고 쌓여서 깊어지는 변화의 여정 속에서 이미지는 문득 살아난다. 그것은 작가의 의도와는 조금 다른 지점에서 피어나는 것이다. 우연이자 시간과 인간의 힘과 의지를 넘어서는 자연의 부름에 응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 같은 맥락에서 재료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작가의 작업은 새로운 껍질, 기이한 피부로 드러난다. 압도한다. 물감이나 붓질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효과이자 느낌이다. 자연이면서 극도의 인공성에 의해 마감된 매끈한 표면이면서 동시에 가늠할 수 없는 심리적 구멍을 내고 있는 옻칠의 검정 바탕 위로 자개와 계란 껍질들이 잘게 부서져 이미지를 재현한다. 본래의 형체와 꼴에서 벗어나 해체되고 파편화되거나 조각조각으로 찢겨진 것들이 작가의 손길에 의해 불려나와 자연과 생명체를 떠올려준다. 작가는 그 생명체들과 함께 영성의 대화를 통해 신비스런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자전적인 서사를 풍경화로 재현한다. 그것은 상상된 자연풍경이면서 동시에 인간과 자연, 뭇 생명들이 몸을 섞는 대칭적 사유가 펼쳐지는 장이다. 그런 면에서 그것은 산수화를 닮았다. 산수화란 실제 하는 자연풍경을 모티브로 하지만 동시에 그로부터 벗어나 상상되어진 자연을 구현한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추구한 어떤 경지를 간추려 놓은 것이다. 이상적인 자연이자 그 자연과 교감하고 그 내부를 엿본 정신의 자락을 펼쳐 놓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의 풍경 역시 그러한 상상되어진 자연이자 자연과 교감되어 남겨진, 응고된 결정적인 이미지들이다. 부드러운 능선과 저 멀리 산봉우리가 얼핏 드러나고 짙은 청색과 보랏빛으로 물든 하늘, 짙은 산과 대지 사이로 풀과 나무, 잎사귀와 사람의 형상이 몸을 내미는 장면이다. 혹은 넓게 펼쳐진 대지에 봉분 같은 산봉우리, 다양한 사람들의 몸을 떠올리는 유선형의 형태가 융기한 장면도 있다. 대지에서 부풀어 오른 이 형태들은 다분히 여성적 신체와 연관된 감수성 및 에코 페미니즘적 시선도 엿보게 하는 면이다.더러 호박이나 사과의 피부 위를 자개와 계란껍질로 덮어나간 입체물도 있다. 자연, 식물 생명체에 기생해 새로운 껍질로 환생하고 있는 또 다른 낯선 생명체, 생명의 모방이다. 생각해보면 생명현상을 모방하는 것이 모든 예술활동의 근원이다. 석고로 떠낸 사과들의 피부에 색이 올라가고 자잘하게 균열이 간 계란껍질이 부착되어 성형되어 있다. 차가운 물질에 생명이 불어 넣어졌다. 한 알의 단호한 생명, 자연위에 무수한 시간의 흔적과 기억의 흔적이 엉겨있다. 자연과 함께 나누는 내밀한 독백이나 정서의 편린이 서정적으로 수놓아져 있다는 인상이다. 이전에도 여전한 주제였지만 근작에는 이러한 관심의 농도가 무척 진해졌다. 그것은 작가의 삶의 환경에 의한 것으로서 이른바 자연과의 친연성에서 나오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자연과의 교감인 동시에 자연적 재료와의 교감이 그녀의 작업을 지탱시키는 척추다.

사실 작업이란 주제나 의도와 함께 특정 재료에 대한 이해와 체득, 교감의 결과물이다. 그것은 전후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문제다. 아울러 그 같은 교감 내지 정서적 교호를 관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것도 작가의 의도일 것이다.
우리는 이 작업 앞에서 작가가 신비스런 자연과 나누었고 꿈꾸고 대화하며 또한 상상했던 그 모든 것들을 조용히 관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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