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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철의 사진

박영택

이갑철의 사진은 무척 쎄다. 사진의 힘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그런 사진이다. 동시에 그의 사진은 그 에너지와 정신을 감득할 수 있는 나름의 문화적 혹은 영적인 기저를 요구한다. 그런 발판이 없다면 그의 사진의 힘들이 발산되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만만치 않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 그런 것이 없다 하더라도 그의 사진을 대면하고 감상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보편적인 시각이미지로서의 매력도 충분한 편이다. 그렇지만 한국 기층문화의 속살과 정서, 그 문화적 이력을 어느정도 이해하는 이라면 그 감동은 배가 될 것이다. 그가 한국이 아닌 중국에서 찍어온 사진도 좋지만 이 땅에서 건져 올린 사진이 더 좋다. 그가 파리에서 찍은 사진은 이곳에서 찍은 사진의 힘에 못 미친다. 그렇게 나는 그가 찍은 한국의 풍경, 한국인의 얼굴, 한국의 사계를 편애한다. 그만큼 그가 이 땅을 보는 눈은 남다르다.

이갑철의 사진은 보는 순간 그대로 다가와 육박하는 어떤 힘을 간직하고 있다. 우선 정신적인 깊이를 가진 이 사진들은 한국인인 나의 무의식 깊은 곳을 건드리고 있다. 한국 문화를 지탱하는 여러 겹들, 근대화나 세계화로도 도저히 지워지거나 망각되지 못하고 강시처럼 살아나는 유교적, 불교적, 도교적 사고와 역시 동일하게 깊이 자리잡고 있는 샤머니즘, 삶을 지탱시켜온 모든 것의 에너지가 자욱하다. 그러니까 이 사진들은 내 무의식을 형성하고 있는 기억의 덩어리이며 그 기억들의 파편이 충돌하면서 빚어내는 만화경이다. 인간과 풍경, 삶과 정신, 문화와 혼, 슬픔과 넋 같은 것을 찍기 위해 스스로 사진의 어법과 기법을 창안해나간다. 온전하게 자리한 인물은 없고 느닷없이 잘린 체로, 머리만 불쑥 치고 올라오거나 하는 식이다. 불안하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하다. 그것은 모종의 긴장감과 힘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사진 속 풍경은 우리를 압도한다. 그런데 그것을 말로 표현하기는 무척 어렵다. 그냥 느낌으로 파고든다. 그것이 그의 사진의 매력이다. 풍경 속에 담겨진 사람이나 사물들이 사진을 보는 관자들을 갑자기 기이하게 긴장시키는 것이다. 사진을 보는 사람을 사진 속으로 주술처럼 불러들이고, 사진 속으로 불려 들어간 사람들은 그 사진 속 사람이 되기도 하고, 그 사진 속 사물들과 대면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갑철의 사진은 주술에 가깝다. 따라서 이 사진은 단순한 미적 공간이 아니라 내 정신의 원형질에 도달하게 하는 주술행위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진은 설명적이거나 한 장면의 재현이거나 의도된 서술을 넘어선 자리에 조금은 폭력적으로 보는 시선을 불안하게 만든다. 이성의 힘에 의해 조율된 것이 아니라 본능이나 무의식이 낚아챈 순간이다. 그로인해 사진을 대하는 이들 역시 순간적으로 자신의 아득하고 깊은 내부로 떨어진다. 불에 데인 것처럼 그 장면들을 만나고 기억하고 끄집어 올린다. 곧 바로 반응한다는 얘기다. 잘 알려져있듯이 그의 ‘시커먼’ 흑백사진 대부분은 정확한 형태나 사진 구도의 디테일, 균형적 구도 같은 것들, 그러니까 전형적인 사진에서 요구되는 상식들을 모두 파괴되고 거친 입자만을 보여준다. 아울러 노출, 구도, 포커스를 제대로 맞춘 것도 아니다. 모든 사진들은 떨렸거나 대상이 프레임 가장자리로 밀려난 것들이며 앵글 또한 원근감이 왜곡되거나 기형적인 모습의 이미지들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대상에 의존하기보다는 찰나적인 동세, 빛과 어둠 등이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분위기를 전적으로 드러낸다. 그래서 이 사진이 보여주는 것은 결국 사진 속에는 없다는 기이한 역설이 존재한다. 탁 하고 던져지는 일갈, 일종의 선문답 같은 것이 그의 사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았다.

조금은 음산하고 지나치게 어둡고 대상은 마구 흔들리거나 잘려져 있다. 거친 그의 사진은 일반적인 사진들이 지닌 밝은 빛과 또렷한 형상, 낭만적이며 아름답고 화려하거나 섬세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전통적이고 정형화된 사진의 언어와 기법을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그의 눈은 인간의 눈이라기보다는 카메라 렌즈 화 된 눈, 카메라 화 된 눈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카메라와 눈을 분리시키지 않는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의 사진은 결정적인 순간을 ‘확’ 나꿔챈다. 그것은 삶의 한 순간을 예리하게 관통하는 의식과 인식의 교호작용, 사진가와 대상간의 찰나를 소중히 하며, 그때 카메라는 영감과 인식의 결정체인 정신에 따른 눈의 연장이다. 그에게 순간이란 삼라만상의 찰나에 따른 눈과 마음의 인식작용이고 이때 카메라는 자연스레 스며든다. 이갑철은 카메라로 선문답을 한다고 한다. 그런 의지로 카메라를 다루는 것이다. 현상 너머에 자리한 정신, 보이지 않지만 분명 느낌으로 존재하는 것, 바로 그러한 것들을 어떻게 사진으로 촬영할 수 있을까가 그의 화두인 셈이다.

알다시피 사진이란 주어진 대상을 기계적으로, 정확하게 재현해 내는 도구다. 눈에 보이는 것을, 눈이 보는 의식세계를 촬영해 내는 것이다. 반면 이갑철은 그 같은 사진의 속성을 통해 이른바 무의식적인 세계까지도 포착하고자 한다. 서구적 시선의 기계적 실현이 사진이라면 그는 그 같은 시선과 인식의 도구를 통해 다분히 동양적인 어법, 감성과 느낌, 정신을 잡아내는 도구로 번안해내고 있다. 아마도 이런 지점이 한국 사진의 진정한 근대성일 것이다. 이갑철 사진의 의미가 그 지점에 맺혀있다는 생각이다. 그 주옥같은 사진들은 그의 사진집 <충돌과 반동>에 담겨있다. 이 사진집이 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출판계에서 거의 팔리지 않는 것이 사진집일 텐데 그의 이 책이 다시 복간되었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그 사진앞에서 이 땅에서 살았던 모든 이의 삶과 문화와 한과 정서 같은 것들이 형언하기 어렵게 녹아 흐물거리고 있음을 알아챌 것이다. 전시장에서 그의 사진을 찬찬히 보고 난 후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와 사진집을 들여다보면 전시장에서의 체험이 다시 살아나 부산하게 떠돈다. 그렇게 사진집 <충돌과 반동>은 내 서가에 언제나 꽂혀있다. 팔을 내밀어 그것을 잡아 펼쳐보면 불현듯 다시 살아나 내게 달려드는 어떤 혼과 정신들로 내 몸이 마냥 새까맣다. 나는 그 재 같고 먹 같고 그늘 같고 밤 같은 짙고 깊은 어둠이, 시커먼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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