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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정현 / 일상의 관찰

박영택

도시는 볼거리로 가득하다. 도시는 수많은 이미지, 기호들로 뒤덮여 있다. 그 시각적 볼거리들은 연속적인 전체가 아닌 다양한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까 도시는 무수히 쪼깨지고 분열되고 파편화 된 콜라주로 가득하다. 이곳저곳에서 보고 접한 것들이, 여러 시간의 층차를 동반하고 밀려들기도 하고 겹쳐지기도 하고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도시는 그 도시를 소요하고 바라보고 살아가는 이들의 내면 의식이 투영되는 공간이다. 그러니까 단순한 시각적 대상, 심미적 대상이 아니라 이른바 심리적 장소인 셈이다. 공간 안에서 실재하는 우리들 몸은 그 도시 공간과의 연관성 속에서 인지되고 규정된다. 감수성과 미의식, 신경증과 기호나 취향 등도 동일하다. 그러니까 이 거대 도시는 그곳에서 사는 각자의 내면성에 깊은 영향을 끼친다. 우리들 자신의 내면세계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사실 특정한 공간에 따라 구성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시의 모든 것은 그것을 보는 이에게 강력한 파장을 남긴다. 당연히 정신적 외상도 드리운다고 하겠다.변정현은 자신의 일상적 삶의 공간을 주목했다. 도시는 그림처럼 다가오고 투명한 창처럼 자리한다. 여러 건물과 지나는 행인의 옷차림, 포즈, 표정을 마치 미술관에 들어온 것 마냥 바라본다. 관조한다. 자신의 일상 공간을 그윽히 그윽히 바라보는 일은 자기 자신을 들다 보는 일이다. 매일 접하는 풍경이지만 그것은 동일하면서도 매번 다르다. 변함이 없으면서도 수시로 변화한다. 작가는 도시를 본 느낌, 단상을 그림으로 형상화했다. 자신의 일상을 건져올린 것이다. 작가가 도시와 도시인들을 주목하는 것은 그것이 결국 본인에 대한 이야기이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기에 그렇다. 자기 삶에 대한 반추와 회고, 또는 추억과 회상이 착잡하게 얽혀있기도 하다. 보는 일은 생각하는 일이다.

도시는 그 자체로 매우 스펙타클한 무대에 다름아니다.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이처럼 정신없이 다가오고 이내 사라져 버리는, 망막과 신경을 건드리고 빠져나가는 무수한 볼거리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움직이는 생명체다. 작가 역시도 한 생명체로서 그 도시에서 살아가며 동시에 고층 건물이 숲처럼 둘러싼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 각종 색채와 문양의 옷들과 가방을 걸치고 걷거나 혹은 차에 앉아서 신문을 보거나 다리를 꼬고 앉아있다든가 하는 이들의 지극히 일상적인 동작과 몸놀림 또한 들여다본다. 특히나 작가의 그림에는 사람의 몸이 만들어내는 여러 가지 우아한 몸짓이나 생명력 넘치는 포즈가 도시를 배경으로 흘러다니다. 작가에 의하면 그 형상은 살아있다는 기쁨이나 자유롭고자 하는 마음, 삶에 대한 사랑을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데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의 활기찬 움직임과 생활하는 모습에서 ‘인간의 생명력과 생의 기쁨’을 발견하고자 하는 작가에 의해 이 인간의 형상은 약동적인 몸짓을 표출하고 있다. 동시에 정적인 실내 풍경을 정물처럼 그렸다. 이처럼 자기 생의 반경이 골고루 그림 안으로 호명되고 있다.

인체 각 부분의 비례를 자의적으로 변형하여 흥미롭게 재구성했다. 예를들어 몸통과 팔을 가늘고 길게 변화시킨다거나 유기적인 곡선을 부여해 움직임력을 묘사하고 있다. 인체의 윤곽을 한 눈에 포착해 이를 하나의 선 안으로 수렴한다. 그로인해 파생된 유동적인 선은 보는 이의 시선이 인체를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이도록 유인한다. 이른바 존재의 생명력을 느끼게 해주려는 의도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도시인의 다양한 삶의 장면이 활기차게 부감되는 그림이다. 보는 이들은 이 그림에 등장하는 형태를 통해 일상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인생의 여러 상황들을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작가는 도시와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인간, 일상에서 받은 인상과 기운을 명료한 선과 순수한 형태, 면과 색채로 추출하고 있다. 여기서 선을 중시하는, 그리고 선으로서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려는 동양화의 전통과 만난다. 동시에 그 선은 모필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색채를 지닌 면들의 조합과 경계가 만들어내는 지점에서도 흥미롭게 살아나다. 작가의 그림이 재현적인 것은 아니다. 분명 건물과 사람의 윤곽이 연상되기는 하지만 이 그림은 대상을 그림의 기본적인 요소로 환원하는 편이다. 물론 재현적인 수단과 병행하면서 말이다. 도시 건물과 행인들은 단순하게 도상화되어 있고 조각난 면들이 콜라주처럼 연결되어 있다. 평면 안에 그려놓은 콜라주처럼 보이는 면의 분할과 구성들은 흡사 조각보를 연상시킨다. 작가는 구체적인 풍경을 단순하게 윤곽지은 후 그 안을 크고 작은 몇 개의 면들로 분할한다. 그런 다음에 그 각각의 면에 색채나 문양, 또는 회화적 흔적을 올려놓는다. 그러니까 반복해서 올려진 중후하고 부드러운 착색감은 화면이 붓질로 칠해지거나 그려졌다기 보다는 오브제를 부착하거나 종이콜라주를 시도한 것으로 다가온다. 평면안으로 스며든 색채와 문양들이 마치 저부조를 이룬 촉각적인 화면인 것처럼 느껴진다. 따라서 색채들은 칠해졌다기 보다는 본래의 색채를 지닌 종이인냥 놓여있다. 이처럼 건물과 사람의 몸 안에 또 다른 풍경과 세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특정 공간에 또 다른 공간이 마구 비치고 다가선다. 이는 단일한 대상이나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여러 상황이 공존하고 동시다발적으로 진동하는 다소 기이한 시각적 체험 내지는 심리적 흐름을 묘사하고자 한 시도로 보인다. 나로서는 바로 그 지점이 도시가 우리에게 안긴 시각 체험이고 시간개념이자 기억과 회상의 코드라고 본다. 이처럼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축적되어 형성된 작가의 그림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일상, 도시에서의 삶에 대한 관조와 그로인해 부풀어오르는 다양한 생각들의 지도화이다. 자신의 내면을 물끄러미 들여다본 자의 여러 소회들로 얼룩진 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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