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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태의 박수근

박영택

나정태의 근작은 박수근의 드로잉을 자신의 독자한 기법으로 확대해놓은 것이다. 이른바 박수근 그림을 숙주삼아 그것을 회화로 완성(?)하는 한편 자기식으로 번안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단순함 모방이나 ‘짝퉁’도 아니고 그렇다고 거창한 ‘패러디’나 차용과도 거리가 좀 멀어보인다. 나정태는 자신이 존경하고 좋아하는 박수근의 그림, 그중에서 아직 ‘오일’로 그려지지 못하고 캔버스천위로 올라가지 못한 체 다만 작은 종이위에 연필로 소박하고 강직하게 그려진, 소소한 사물과 일상의 정경을 그린 밑그림, 에스키스에 생명을 불어넣어주고 그것이 커다란 화면에 ‘회화’로 당당하게 자리잡는 다면 어떤 모습일까, 더 나아가 박수근이라면 어떻게 완성했을까하는 상상의 지점위에 ‘나’라면 이렇게 그려봤을 것이라는 욕망을 숨기지 않고 그려낸 것이다. 따라서 나정태가 그린 그림은 박수근이 제공한 기본 형상에 그의 기법을 올려놓고 겹성의 소리를 내게 만든 독특한 그림을 만들었다. 그것은 박수근과 나정태의 합창이고 합작이자 박수근그림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고 박수근과 본인 자신의 공유성을 좁혀나가는 모색으로도 보인다.

그는 남겨진 박수근의 드로잉, 연필그림을 모았다. 박수근 특유의 반듯하고 짧고 고집스럽게 그어나간 조심스러운 선의 묘미를 살폈다. 그러니까 박수근 그림/ 드로잉을 공부한 것이다. 박수근의 연필그림에는 자기 주변의 소소한 모든 것들을 조심스럽게 수용하는, 위무하는 시선과 마음이 묻어있다. 그 선은 그럴듯한 미술적 선이나 멋과 세련된, 득의에 찬 재현술의 목적성에 의해 이루어진 선들이 아니다. 그런 욕망과 관습적 시선을 죄다 내려놓고 무방비로 그저 내 눈앞에 있는 저 사물/세계의 외형을, 그것이 지닌 불가해한 신비를, 저 존재가 지닌 측은함과 슬픔을 껴안는 선이다. 그의 선은 마치 연필을 처음 잡아보는 아이들처럼 꼬옥 쥔 상태에서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대상의 윤곽을 각(刻)을 하듯이 그려나간다. 그것은 소박하고 딱딱해보이지만 기존의 상투적인 그림의 관습화된 손 놀림을 최대한 누그려뜨리고 나아간다. 정직하고 단호하다. 박수근은 그림이란 “사물을 세밀히 관찰한 뒤에 보고 느낀 것을 과장하지 말고 순수하게 나타내는 것”이라고 믿었다.

나정태는 박수근이 남긴 선/선만으로 남겨진 인물을 본인 특유의 질감효과와 함께 환생시켰다. 나정태만의 이른바 찰과묘법이 박수근 기법과 교묘하게 스며든다. 둘은 하나가 된다. 그래서인지 나정태가 환생시킨 그림들은 한결같이 돌의 피부를 표면으로 두르고 있다. 우둘투둘한, 거친 돌의 질감이 두터운 종이위에서 살아난다. 작품 하나하나가 저마다 다른 질감, 다른 색상을 지닌 돌을 닮았다. 나정태는 말하기를 박수근의 고향 땅 주변에서 찾아낸 다양한 돌들을 갖고 작업을 했다고 한다. 돌들의 어머니인 산, 그 산에서 나온 여러 돌들을 찾고 그 돌을 관조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나정태는 돌에서 온갖 형상도 찾고 다양한 문양과 오묘한 색채들을 발견한다. 그는 그 돌들에 있는 질감과 색채를 하나씩 추출해 박수근의 드로잉위에 하나씩 엊혀놓았다. 짝을 맞추었다. 사실 박수근 그림 역시 돌의 피부를 그려놓은 것에 다름아니다. 알다시피 박수근은 스스로의 표현방식을 찾기 위하여 한국의 돌, 석조물, 고분 벽화 등을 관찰한 결과 그만의 독자한 방법론을 탄생시켰다. 그는 자신의 고향 강원도 산하에 있는 돌들을 무척 사랑했다. 오죽하면 그의 호가 미석美石이겠는가?박수근은 이미 1940년대 초에 그만의 독자한 기법을 만든다. 이른바 마티에르기법과 무채색성 혹은 단색 화법이 그것이다. 독특한 그의 마티에르는 ‘보여지는 촉감’, ‘손으로 만져서 인지되는 감각의 영역’이다. 그것은 시각을 통한 다양한 이미지의 세계와는 조금은 무관한데 대상을 바라보는 데에 만족하지 않고 촉감의 수단으로 변모시킴으로써 대상에 대한 물리적인 현실감을 가져보고자 했던 내면의 욕구에서 발현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박수근에게 마티에르는 돌처럼 차분한 고독과 회상의 산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미석’이란 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돌을 사랑했고 돌의 미감을 그림으로 그려나가고자 한 것이다. 유화로 그리는 방법만을 따랐을 뿐 자신이 추종할 수밖에 없었던 서구미술의 양식이 가진 의미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던 그는 대신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고향 땅의 돌에서 그 자신이 납득할 미감과 방법론을 발견했다. 박수근의 그림은 두툼한 마티에르(돌) 위에 소박하고 단촐한, 경제적이고 단호한 선들이 지나간다. 그 선은 정확한 경계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선이자 또렷한 형상을 지시하지 않는 선이다. 그로인해 어떤 모호함이 자욱하다. 완벽한 이해상태가 아니라 그 완전함에서 약간 비켜난 모호한 지점에서 그만의 미감이 극대치에 이르는데 이는 치밀하게 계산되었으면서도 꾸민 데가 보이지 않는 그런 경지에 다름아니다. 그래서 단순화의 조형성과 선적이며 동시에 회화적 특성 어느 것에도 매여 있지 않은 풍성한 해독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나정태는 박수근의 드로잉을 약간씩 윤색했다. 다소 딱딱하다고 여긴 선들을 부드럽게 굴리고 정적으로 고착된 인물들을 동적으로 풀어주었다. 이른바 박수근 드로잉을 생기있게, 활력있는 존재로 만든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림 속 인물들도 저마다 표정을 하나씩 달고 있다. 그래서 그림이 밝고 따스해졌다. 그리고 자글자글 주름이 잡히고 흙벽처럼 갈라지고 튼 화면은 나정태 특유의 찰과묘법으로 인해 생겨난 상처(?)이다. 이 상처와 박수근이 두툼한 마티에르가 하나가 된다. 사실 나정태와 박수근은 공통점이 꽤나 있다. 둘 다 초등학교만 나온 독학의 작가다. 이른바 제도권교육과 기성 미술판에서 벗어나있었기에 소박하나마 자신들만의 기법과 감수성을 견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주류미술계의 공통된 언어와 코드에서 벗어나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그만큼 외로운 이들이다. 또 하나 이들은 모두 돌에 대한 과도한 애착을 보여준다. 박수근은 말할나위도 없고 나정태 역시 오래전부터 한지에 요철효과를 주고 채색을 해서 흡사 실제 돌과 같은 것을 만드는 작업을 선보였고 아예 돌 그 자체를 사실적으로 재현(입체)하기도 했으며 다양한 형상의 돌을 수집해 그것으로부터 자연스레 연상되는 이미지를 사진과 함께 선보였던 적도 있다. 찰과묘법도 그런 과정에서 나온 기법이다. 아울러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창조주가 만든 모든 피조물에서 소우주를 깨닫고 신의 섭리를 헤아리려는 시도가 그 안에 깃들어 있었다. 이는 박수근 역시 마찬가지다. 하나 덧붙이자면 둘 다 당대 미술계로부터 벗어나있다. 소외됐다고나 할까.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고나 할까. 아울러 가난하다. 나는 오랫동안 나정태의 작업과 생활을 보아왔고 해서 그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작가의 삶을 살아왔는지 조금은 헤아릴만하다. 그런 세월속에서도 그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상당히 경이적인 일이다. 박수근의 죽음은 기존 미술계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상처로 인한 것이다. 그의 조형언어의 진실과 의미, 그 진가를 읽어준 이들이, 당시에는 거의 없었다. 그는 외로움과 가난, 몰이해와 냉대 속에서 소멸했다. 나정태는 현재 활발한 작업활동을 하면서 버텨나가는 이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새로움과 낯설음으로 급변하는 미술계, 특정한 이즘과 패션에 과도하게 부침하면서 자본과 상업주의에 의해 견인되고 있는 부박스러운 이곳에서 나정태 같은 이의 작업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헤아리는 이들은 무척 드물다. 그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그래서일까, 새삼 나정태가 박수근의 ‘죽은 그림’(이미 있었던 그림들, 죽은 이가 남긴 그림들)들을 환생시킨 이유가 문득 궁금하다. 박수근의 존재와 그의 그림의 가치를 다시 호출하고 있는 나정태의 작업은 박수근에 대한 오마주이자 박수근/나정태 사이의 공유성과 애착에 대한 토로일 것이다. 몰론 최근에 박수근 그림에 대한 과열된 관심, 상업주의로 인해 퇴색되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도 한 몫 했을 것 같다.

박수근은 그림 이외의 어떤 생존 수단이나 수완을 부릴 줄도 몰랐다. 그는 오로지 자신이 보고 납득하고 이해하는 대상,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비롯된 상황들을 정확하게 그리고자 했다. 박수근에게 그림이란 천직이자 일이고 순연한 노동이며 먹고 사는 행위였다. 그는 동시대의 삶의 환경과 자기 주변의 서민들의 생애를 담담하게, 착실하게 그렸을 뿐이다. 자기가 알고 있고 이해하고 절실히 그리고 싶었던 것만을 그렸으며 그것이 화가의 일이라고 여긴 이다. 현대미술이 어떻게 진행되는 그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체질과 소신, 오로지 자기에게 감동을 주는,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에만 몰두했다. 박수근이란 인간이 곧 그의 예술이었음은 자명하다. 그래서인지 그림에는 그의 인간적 감화력이 물씬 스며들어있다. 오늘날 우리 화가들이 그런 인식과 정신, 인간적 감화력을 얼마만큼 지니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나정태의 이 박수근 그림에 대한 오마주는 그런 질문을 포함하고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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