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나경 / 투명한 순간의 기록

박영택

나경의 사진은 현실 장면의 어느 한 순간을 응고시켰다. 그런데 그 세계 안에 조심스럽게 혹은 기이하게 오버랩 되는 자기 얼굴을 보았다. 그것은 자신의 본 얼굴이자 가면/ 페르소나이다. 나이자 너무 낯설고 복수화 된 나, 몸으로부터 이탈되어 떠도는 기이한 나 들이다. 순간 우연히 마주친 일상의 모든 공간, 사물의 피부는 자기 자신을 받아주고 비춰준다. 거기에 내가 있다. 나는 거울 속에, 건물의 유리창에, 방 안에 그리고 거리의 이곳저곳에 있다. 그것은 반영의 이미지이자 문득 풍경 안에서 발견해낸, 은닉된 이미지들이기도 하다. 내 눈이, 호흡이 서린 곳에 나는 그렇게 불현듯 나타나고 사라진다. 나와 세계는 분리되고 절연되어 있지 않다. 내가 보고 느끼고 그 안에 있다는 것은 결국 그 세계와 함께 호흡하고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하는 일이다. 나는 바로 그 순간순간 명멸되듯이 존재했다 사라지고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생은 그렇게 한 호흡과 한 숨 사이에, 한 의식과 기억 사이에서만 가까스로 현존한다. 세계는 대상화되지 못하고, 사물화 되지 못하고 내 자신과 심리적으로, 영성적으로 그렇게 얽혀있다. 지독하고 슬픈 나르시시즘의 시선이다. 사진 곳곳에 등장하는 얼굴/인형 또한 작가의 페르소나이다. 그렇게 보여지는, 느껴지는 일상의 한 순간이 비닐처럼 반짝인다.

그녀는 자신의 일상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누군가의 벌거벗은 몸을 보고 또 사물들의 얼굴과 풍경을 보고 바닥을 보았다. 자신의 실존적 공간에서 삶을 영위하는 자기 모습을 응시하고, 그 몸이 바닥에 드리운 그림자를 보았으며 나를 비춰주는 사물의 피부와 만났다. 망막에 들어와 흔들리는 모든 사물과 풍경이 발화하는 음성과 그 음성 속에서 멈춰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바로 그 때 세계는 점화되듯 반짝이고 개인의 감성이 만난 세계이자 언제나 지켜보는 자신이지만 그렇게도 낯선 ‘나’에 대한 기록이자 성찰인 셈이다. 여기서 사진은 무척이나 반성적인 거울로 등장한다. 그녀에게 사진은, 사진의 기록은 본인이 자신의 몸을, 세계를 어떻게 보고 느끼고 있는 가에 대한 거의 순간적인, 직관적인 반응 같다. 찰나적인 시간의 엄청난 느낌을 잡아채기 위해 사진이란 매체는 절박하게 요구되었나 보다. 흑백 톤으로 포박한 세계는 제한된 사각의 평면 안에서 그 너머로 부단히, 맹렬히 빠져나가고자 한다. 이런 속도감은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눈/마음이 그 대상 앞에서 받은 인상과 감정, 의식과 사고의 신속한 파동을 암시한다. 사실 그런 움직임을 사진이 드러낼 수는 없다. 그러나 사진에서 그런 분위기가 느껴지게는 할 수 있다. 느낌의 얼룩들!

작가는 렌즈를 통해 시간을 보고 흔들림을 보고 사라짐을 지켜보았다. 자신의 눈으로, 마음으로 본 모든 것들은 자꾸만 생각거리를 남기고 까닭모를 슬픔을 안기고 흩어진다. 그러나 소멸에 완강히 저항하는 그 어떤 힘들이 인화지의 피부에 스며든다. 사진은 이미 어느 시간을 회고해버린다. 모든 순간은 이미 존재했었고 지금은 부재하다는 전언을 상처처럼 남긴다. 결국 사진이 할 수 있는 것은 회고와 추억의 중얼거림이다. 물론 사진은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진이 남긴 이미지는 그 순간을 보아 버린 자의 외마디 절규 같은 것이다. 있으라, 있으라, 사라지지 말고 그대로 있으라!
그러나 존재하는 것은 사라진다. 그 순간이란 결국 대상을 보는 자의 마음에 견인 되어 굳어진 자취다. 사실 풍경은 사라지기 직전의 순간만을 영원처럼 안기는데 그렇게 남겨진 한 장의 사진은 결국 작가가 보낸 하루, 일생의 모든 느낌을 현재형으로 호명한다. 나경이 보여주는 익숙한 풍경, 장면 속에서 느닷없이 접하는 어떤 환각의 분위기는 다분히 초현실적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무척이나 감성적이고 예민한 신경다발들로 접속된 장면의 기록이다. 그것은 분명 사진적 리얼리즘이지만 동시에 그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다. 나로서는 이런 작가의 사진은 결국 본인이 타고난, 태생적인 성향과 인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어떤 인간들은 태어나는 순간 그런 몸과 의식을 부여받고 빠져나와버렸다. 결국 모든 예술은 그 인간을 벗어날 수도 없고 벗어나서도 안되는 모양이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