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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미-옻칠과 나전을 통해 환생한 민화이미지

박영택

임선미는 옻칠기법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것은 종이 위에 모필로 그리고 칠하는 회화가 아니라 까다로운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수공예적인 작업방식을 보여준다. 따라서 평면의 회화인 동시에 저부조의 회화, 다분히 조각적 작업에 해당한다. 아울러 시각과 함께 촉각적 화면을 돌올하게 만들어낸다. 작가는 전통적인 옻칠화의 요소를 가지고 우리의 민화를 차용, 재배열하고 있다. 그림의 소재는 민화에서 따온 이미지, 도상들이고 기법은 옻칠을 주재료로 하여 표현한 회화다. 민화란 알다시피 기복적 신앙에 따른 이미지의 구현이다. 예를 들어 그림에 등장하는 꽃은 부귀영화를 상징하고 수박이나 연꽃은 다산을 상징한다. 더러 직접적인 표명으로 복 복 福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무병장수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부부금실이 좋고 다산하고 복 받기를 받고자 그것을 의미하는 이미지, 문자들을 촘촘히 수놓은 것이 바로 민화다. 이른바 주술적인 이미지들이다. 가장 인간적인 소망과 희구를 간절히 바라는 제스처로서의 이 이미지, 문자는 그렇게 공들여 삶의 곳곳에 꽃처럼 피어나고 별처럼 빛난다. 베겟모나 의복, 그릇과 가구 등 일상적 사물위에서 반짝였다. 그것이 전통사회에서의 이미지의 삶이고 의미이자 기능이었다.

임선미는 새삼 우리네 전통사회에서의 이미지의 주술성과 참된 기능을 떠올려준다. 작가는 그 민화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을 가지고 매력적인 정물화를 만들었다. 재료의 색다른 조율과 가공에 의해 그려진, 만들어진 이 정물화는 여전히 민화적인 문맥 속에 있는 이미지가 환생하고 흡사 나전칠기공예품이나 자개장의 한 부위가 고스란히 회화로 빠져나온 듯한 느낌을 준다. 작가는 일상적 사물의 피부 위가 아니라 사각형의 화면 안에 민화적 이미지들을 안치시켰다. 화면의 정중앙에 위치한 화병, 과일과 꽃은 중심을 기점으로 양쪽으로 벌어져 대칭적인 구도를 구성한다. 작은 그릇, 화병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척 커다란 꽃, 과일이 놓여져 있다. 풍성하게 부풀어 오른 연꽃과 호박, 수박 주위로 유선형의 가지들이 춤추듯 드리워져있거나 흘러 다니며 그 주변으로 나비가 날아다닌다. 흡사 자연계의 한 부분을 클로즈업 시켜 보여주거나 대상 자체로 육박시키는 시선이 느껴진다. 더구나 꽃줄기가 급격히 휘어지면서 복福 자를 쓰거나 공간을 자유롭게 유영하면서 기운생동 하는 느낌, 활력적이고 감각적인 동세를 가시화시키고 있다. 그것은 동양화에서 선이 지닌 중요한 덕목을 유지하는 동시에 여전히 그 선을 강조하고 살려내는 배려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임선미는 칠하고 붙이고 뿌리며 연마하고 심고 두드리고 광을 내며 투명과 불투명을 이용한 옻칠화의 표현방법을 가지고 그림을 그린다. 동양에서 이미지를 보여주는 매우 오래된 이 전통기법이 동시대의 새로운 회화적 가능성을 지닌 체 환생하고 있다. 작가는 일반적인 회화적 매체를 대신해서 나전칠기기법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사실 자수나 나전칠기, 금속의 표면에 이미지를 새기고 가공하는 방식 등은 모두 일종의 회화라고 할 수 있다. 동양화를 단지 수묵화나 채색화란 제한된 경향 속에서만 이해하지 않고 전통사회에서 기능했던 다양한 이미지 재현술과 방법론을 오늘의 작업에 원용하는 작가의 태도는 그런 의미에서 주목된다. 우선 작가는 그림을 그릴 목판위에 변형과 뒤틀림을 방지하기 위하여 2,3번 정도 옻을 먹이고 난 후 다시 기왓장 가루에 생칠을 섞어 바른다. 건조한 뒤에 다시 여러 번의 사포질과정을 거치고 다시 옻을 칠한 (중칠) 후에 비로소 그림이 그려질 바탕을 마련한다. 까다롭고 손이 많이 가는 수고스러운 공정이 요구되는 화면이다. 그 위에 자개무늬를 상감하여 아름답게 치장한 것이다. 천연재료인 자개는 변치않는 영롱한 빛깔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칠기에다 자개무늬를 베풀어놓은 것이다. 자개나 옻칠 모두 천연자연에서 추출한 것이고 자연 그대로의 생명들이다. 따라서 그것은 생명을 지닌 것들이라고 볼 수 있다. 아득한 세월, 시간과 바람, 자연이 만들어낸 조개껍질의 무늬와 광택이고 재질이자 역시 그렇게 만들어진 나무의 몸에서 나온 진액으로 그려진, 만들어진 평면회화다.

어둡고 견고하고 깊은 바탕 색을 배경으로 오색 영롱한 빛/색을 발산하는 자개무늬가 형상을 만들어 보여준다. 작가는 옻칠의 어둠을 배경으로 그 위에 자개로 빛을 걸어두었다. 그것은 기존 물감으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색채와 빛이자 견고한 물성을 간직한 안료가 되고 그림이자 저부조를 동시에 지닌 오브제가 된다. 마감 후 옻칠 스스로 생화학 반응에 의하여 완성되는데 작가에 의하면 옻칠은 흡사 꽃이 피고 열매 맺는 자연의 생명현상처럼 그렇게 진행형으로, 생성적인 화면이 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완성되어 나간다고 한다. 은은히 발색되어 그 정점에 이르면 기존 화학도료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없는, 그것으로는 만날 수 없고 기대할 수 없는 모종의 깊이를 보여준다고 한다. 자연만이 만들어내는 깊이 있고 견고한 색과 빛을 보여준다. 그것이 이 작업이 매력이자 특질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 옻칠은 작가와의 교감에 의해 함께 살아 숨 쉬고 살아가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림이 완성되어도 시간이 지나면서, 수년에 걸쳐서 색은 숨을 쉬고 생성하고 변화를 거듭하면서 익어간다. 그렇게 공들여 만들어진 화면은 더없이 밝고 아름답게 빛난다. 엄청난 일루젼을 주며 반짝인다. 조명의 각도와 보는 이의 시선의 운동, 신체의 이동에 따라 그 화면은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재료 자체가 지닌 속성상 시간의 진행과 함께 존재하는 동시에 조명과 관자의 신체에 반응해 지속적으로 새로운 존재로 나아가는 것이다. 작가는 우리의 전통미술인 민화의 소재를 오늘날의 감각에 맞게 재구성한 후에 이를 역시 전통적 기법인 옻칠과 나전기법을 응용해 더없이 장식적이면서도 깊은 색채와 광휘로운 빛을 머금은, 온전히 자연으로 이루어진 생성적인 회화/저부조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들의 삶속에서 영원한 인간적 소망과 희구를, 여전히 간절하고 따뜻하게 품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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