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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식-한국 자연의 재현

박영택

익숙한 한국 자연의 풍경이다. 전형적인 자연풍경이라고나 할까 혹은 한국적인 자연관을 증거하거나 기록하고자 하는 의도 아래 질펀하게 드러누운 사진이란 생각돈 든다. 선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한국적 자연관 내지는 아름다운 풍경의 고착된 개념의 영향에서 그닥 자유로워 보이지는 않지만 한편으로 자신의 신체로 소요하고 더듬어 길어 올린 풍경의 편린으로서의 체취가 강하게 환기된다. 실제로 체득된 자연, 경험화 된 자연이 응고되어 있다는 인상이다. 그래서 한국 산하의 특질에 대한 작가 자신의 경험적 감수성의 시선이 감촉된다. 사실 모든 풍경사진은 일정한 표상시스템에 따라 자연을 이미지로 재현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어떠한 대상을 자연이냐고 규정하고 인식하는 일이자 자연이라는 개념으로 표상되어 있는 것에 의존한다는 얘기다. 그렇게 자연이라고 표상된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 풍경사진인 셈이다. 풍경화 역시 동일하다. 이 땅의 작가들은 결국 이곳에서 강제되는 일정한 풍경의 표상시스템이나 한국적 자연관 등에 영향을 받으면서 풍경을 본다. 이미 수많은 작가들이 그러한 과정 속에서 한국의 풍경, 한국적 자연관을 재현해놓았다. 그 이미지는 학습되고 각인되어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그렇게 선험적으로, 내려오는, 일정한 틀이 되고 규범이 되는 자연관을 의심하고 지우고 다시 생각해보는 일이다. 풍경은 결코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것이자 그/그녀의 풍경관, 자연관에 의해 다양하게 해석된다. 그러니까 풍경은 중립적 대상이나 고정된 개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는 사람의 인식을 통해 비로소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다.

작가는 한국 자연의 이곳저곳을 소요하면서 이를 사진에 담아왔다. 동일한 장소를 여러 번 다니면서 눈과 마음에 담아두고 그것이 모종의 깨달음으로 번져나오는 시간을 기다려 촬영했다. 여러 번 가야 비로소 열리는 풍경의 내부를 기록한 것이다. 그러한 과정은 그 풍경이 무엇이며 어떤 의미가 있느냐를 질문하는 일이다. 동시에 자기 눈/몸으로 본 풍경의 진실된 측면에 가닿고자 하는 제스처이다. 사실 이곳 풍경을 찍는 다는 것은 한국 산천의 특질을 헤아리는 일이자 그것의 사진적 재현이 어떻게 가능할까를 질문하는 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카메라와 함께 들고 다니면서 그는 부지런히 한국 자연의 사계를 촬영했으며 변화무쌍한 자연의 형상, 색채를 기록했다. 대부분 자연 풍경을 원경으로 잡아 눕혀놓거나 그 내부로 육박해 들어가 대상과 보는 이의 시선/몸을 밀착시켰다. 일정한 거리에 의해 밀려나 자리한 자연의 내음과 거리가 지워진 자리에 질료성으로 충만한 자연의 살이 공존한다. 그 둘은 모두 빛에 의해 만들어진 독특한 분위기로 절여져있다. 역광에 의해 빛나거나 비늘처럼 파득인다. 길게 누운 땅, 갯벌이 펼쳐진 장면, 넓고 아득한 자연과 확 트인 풍경 등이다. 인적은 부재하다. 오로지 하늘과 구름, 산과 나무, 땅과 풀만이 대부분인 풍경이다. 인간의 손길과 삶의 흔적, 인공의 문명이 근접하지 않은 이 풍경은 자연 자체의 치장하지 않은 모습들이다. 그는 자연을 무엇보다도 생명력에서 찾는 것 같다. 그가 찍은 쭉쭉 솟은 소나무 숲과 뒤척이는 풀, 꿈틀거리는 갯벌, 변화무쌍하게 흐르는 구름 등이 이를 증거한다는 생각이다. 자연은 그렇게 생성중이며 늘상 생의 약동으로 거듭 뛴다. 그 같은 생명현상을 담아내기 위해 작가는 파노라마 사진을 구사한다.
역광을 받아 선명해진 명암의 대비 속에 자연은 서정적인 드라마를 만들며 마냥 이어진다. 대상은 프레임 밖으로 연장되고 순환한다. 자연을 한정된 사각형으로 절취할 수는 없기에 다만 그 흐름의 지속성과 연결감을 암시하는 구도를 보여준다. 아울러 그는 자연에서 받은 감동을 우선적으로 기록, 다시 재현하고자 한다. 자기 눈과 마음이 자연과 만나 파생된 전율 같은 것 말이다. 그것은 우선적으로 아름답고 고요하며 생명력에 충만하고 의연하다. 파노라마 사진은 자연의 그 덕목을 유장하게 펼쳐 증거한다. 아득한 수평의 구도에 절묘한 빛과 그로인한 형언하기 어려운 색상이 가득하다. 그것들은 특정 자연대상을 지시하지만 그것보다는 그 자연에서 받은 작가의 말할 수 없는 감흥, 자연만의 미세한 기운과 영성, 충만한 생명력 같은 것들이다.
그는 이 나라 곳곳을 순례하듯 다녀와 그 어느 곳을 횡폭의 산수화 마냥 담아냈다. 산척 준경묘의 소나무 숲, 운길산 수정사, 서해안 안면도, 청양의 상갑리와 그 외에 이곳저곳을 찾아가 새벽에서 아침 시간까지의 빛 아래 촬영했다. 따라서 그의 사진은 그 시간대의 빛과 대기, 모종의 분위기로 충만하다. 우리가 풍경을 본다는 것은 결국 특정한 시간 속에서 본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 자연은 단지 망막에 다가오는 편린만이 아니다. 보는 이의 지각 세계를 죄다 건드리며 돌진한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자연에서 느낀 생명력, 이상한 기운, 미세한 소리를 사진 안으로 수렴하려 한다. 그는 풍경을 인화지의 얇은 표면에 올려놓았다. 소리도 내음도 촉각도 다 지워지고 오로지 시각적 흔적으로 절여진 한 장의 사진 속에 풍경은 고즈넉이 들어와 있다. 그러나 이내 그 사진은 자연의 영성, 기운, 호흡과 기미 같은 것들을 안개처럼 피워 올린다. 그래서 자연의 생생불식하는 기운을 감득하고 시정을 새삼 품어보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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