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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련 / 작위와 무작위의 경계

박영택

동양화에 있어 한지란 놀라운 개방성, 투명성을 지닌다. 그것이 종이의 속성이다. 물(水)의 중개, 매개에 의해 종이, 바탕은 그 위에 얹혀 지는 모든 것들을 속 깊은 곳까지 받아들인다. 그것들과 하나가 되어 새롭게 태어난다고 표현해야할 것이다. 따라서 먹의 스침이나 안료의 스며듬은 바탕위에 구축되는 선이 아니라 속내가 되어 환생한다. 그런 면에서 그림의 바탕이 되는 한 단면은 자신의 존재를 강변하거나 드러내거나 혹은 소멸되어버리지 않으면서 다시 살아난다. 그런 한지의 속성은 결국 무한한 포용과 변이의 가능성 아래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숭숭 공기와 숨이 통하는, 무수한 구멍이 연쇄가 그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또한 무한한 깊이를 보여준다. 노자가 그랬던가, “마음은 깊은 곳을 좋아한다(居善淵)”고. 그 담백의 깊음은 다름아니라 물의 깊음이다. 물은 한지의 깊은 곳까지 먹이나 물감과 함께 삼투해 들어가 모종의 깊음을 보여준다. 무릇 동양의 그림은 어떤 깊음을 지향한다. 한지는 그 깊음을 기꺼이 받아준다. 또한 그 깊음을 투과한다. 한국인들은 창호지문을 통해 세계를 보고 받아들이고 유추했다. 은은하고 담백하고 부드러운 햇살, 빛에 의해 세계는 방안으로 가득 들어온다. 그 세계의 이미지는 깊음과 담백함으로 물들여진다. 그 문은 안과 밖을 분리시키거나 구별짓지 아니한다. 안과 밖은 종이 한 장의 단면을 통해 늘상 교호된다. 송수련의 작업은 한지를 통해 그 같은 담백과 절제, 깊음의 미학을 은근하게 길어 올려준다는 생각이다. 한지의 속성을 이해하고 이의 특질들을 살려나가면서 모종의 깊이를 추구하고자 하는 선에서 이루어진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물론 한지의 물성적 성격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하는 실험적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볼 수 도 있지만 사실 송수련의 작업은 점진적으로 자신의 감성과 체질에 의해 길어 올려진 어떤 느낌에 기대어 재료를 순화시키고 자신과 일치시키는 쪽으로 몰고 왔다는 느낌이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철저하게 재료에 대한 모종의 수행의 차원과 관련된다는 생각이다. 이미지나 주제의식은 그에겐 부차적인 문제이다. 그러니까 이 작가에게 있어 그림이란 이미지로, 굳이 어떤 형상으로 나올 필요성을 지니지 않는다. 그리면서 지우고 남겨진 흔적이 모든 것을 대신하고 반복해서 재료를 어루만지고 칠하고 긋고 지우고, 종이의 뒷면을 갖고 놀이하듯 만지다 보면 그것들이 남겨져 전시장으로 불려나온 것들이다. 무심히 칠하고 색을 삼투시키고 점을 찍고 선을 휘휘 돌리듯이 끄적이고 몰고 다니다보니 문득 그림 같은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놀이와 유희, 재료와 함께 한 과정과 시간이 고스란히 누적되어 밀고 올라온 것이 화면이 되었다. 따라서 이 그림은 애초에 목적론적으로 추구되고 구성되었다기 보다는 그것을 지우고 가능한 한 ‘작품’을 의식하지 않으려는 제스처에서 출현한다. 아마도 우리는 동양예술의 극치를 이른바 ‘대교약졸’에서 찾는다. 그려진 듯 그려지지 않은, 작위와 무작위의 경계가 마냥 흐려지는 그 지점으로 몰고 가고자 한다. 송수련 역시 그런 경지를 꿈꾸는 작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것이 작품의 근간을 이룬다. 무작위적인 그림, 무기교적인, 지극히 자연스러운 경지를 작위한다. 모순이지만 그 모순이 또한 그림의 운명 같은 것이다. 나로서는 그 지점을 작가들이 굳이 명시하거나 드러낼 필요는 없어보인다. 말로 표명되고 목적으로 제시되는 순간 그것은 무화된다.

작가는 한지의 뒷면에 부단한 붓질을 통해 색채를 물들인다. 화면 위로 스미거나 얹히지 않고 뒷면을 서서히 물들여가서 앞쪽으로 베어 나오게 하는 방법인데 이런 과정은 더디고 지난한 시간과 노동을 요구한다. 무수한 붓질의 수행, 원하는 만큼의 색조, 분위기를 우려내는데 필요한 오랜 시간의 경과를 요구하며 그 시간과 경과를 작업의 중심으로 세우고 있다. 한지를 여러 번 배접해나가면서 화면 안으로 깊숙이 스며들어 결국 한지와 하나가 된 담백한 색조들은 은은하고 안온해 보인다. 그 사이로 점들이 등불처럼 켜지고 채워지지 않은 순간의 중심들을 빛처럼 보여준다. 그 사이로 선들이 바퀴자국처럼 지나간다. 어지러운 여러 시간의 결들이, 층들이 반복된다. 근작은 부드럽고도 날카로운, 무작위적인, 무심한 선들의 궤적을 좀 더 적극적으로 구사되고 있다. 낙서 같은 선들, 그 어떤 것을 지향하지 않고 그 자체로 자족되는 선의 운명이랄까, 선의 유희 같은 것이 감촉된다. 그것은 때로 빠르고 때로는 느리게 전진한다. 순환한다. 그 선들이 보는 이의 시선과 감정을 유인한다. 단색의 화면에 점과 선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이 풍경은 전형적인 한국적 추상화의 한 양상으로 불리워왔던 경향들을 떠올려준다. 그것이 한국적 모더니즘이라고 이야기되어왔다. 수화의 추상도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송수련의 근작을 보면서 더욱 강하게 수화의 그림들이 오버랩되는 동시에 이곳에서 전통이 되고 정형화된 한국적 추상, 동양화의 추상화작업의 전형성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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