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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돈 / 메신저가 된 테니스공

박영택

하기돈은 일상의 한 풍경, 순간의 장면을 인화지에 응고시켰다. 시간과 빛의 어느 한 지점, 정점이 정지되어 표면으로 밀착되어 들어왔다. 얇은 화면에 스며든 이미지는 풍경 혹은 일상의 한 순간이 포착된 장면을 보여준다. 별다른 인과관계나 특별한 이야기를 찾기 어려운 , 그저 무심하게 포착하고 건져올린, 흔하게 접하는 일상의 표정이고 장면이다. 도시와 사람들의 모습, 다소 모호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삶의 한 표정, 사람들과 사람들이 겹쳐서 굴절된 어떤 풍경이 얼핏 자리한다. 삶의 공간에서 느닷없이 조우하거나 흔하게 마주치는 장면이다. 그것이 한 장의 사진으로 정지되는 순간 약간의 비현실감이 밀려온다. 그리고 그 사진 속 장면을 오랫동안 쳐다보게 된다.
사진은 익숙한 세계를 다시 보여주지만 우리 눈과 달리 그 대상을 오랫동안 응시할 수 있게 해준다. 침묵과 정적 속에서 세계/ 대상은 응결되어 있다. 멈춰져있고 영원처럼 죽어있다. 그것은 사진의 미덕이자 사진만의 힘으로 구현된 이미지다. 하기돈의 사진 속에 들어온 대상은 세계, 삶, 공간과 장소를 표명하기 위한 차원에서 차용된다.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그의 사진은 다분히 개념적 차원에서 사진이미지가 차용되었고 나아가 자신의 의도에 따른 장면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들어온다. 사진 자체의 완성도나 사진이미지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 여기서 사진이란 레디메이드는 이미지를 간편하고 효과적으로 끌어들이고 자신의 의도에 따라 재편, 배열하는데 용이하다는 점에서 활용되는 편이다. 그는 그렇게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설정해서 펼쳐놓았다. 여기서 대상의 선택, 프레밍은 다분히 작가의 의도에 따라 신중하게 고려되는 편이다. 그는 현대인의 삶과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을 연출한다. 현재의 삶의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 이미지를 슬그머니 암시하는 장면을 제공한다. 그리고는 그 사진 안에 개입한다.

작가는 풍경과 인물, 혹은 다른 일상의 한 장면에 테니스공을 삽입시켰다. 일상의 어느 순간이 비춰지는 사진 안에 갑자기 테니스공이 튕겨 오르거나 부유하거나 순간적으로 정지되어 진동하는 듯하다. 작은 공 하나가 개입되면서 정적이고 침묵에 절여진 일상의 공간에 사건이 발생한다. 중력의 법칙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튕겨져 오르는 공의 비약과 탄력, 탄성은 일종의 해방감, 비상에의 욕망, 혹은 모든 제도나 규범, 일상의 틀로부터 벗어나 날아오르는 환희 같은 것을 순간 안긴다. 그런가하면 이 작은 테니스공은 정처없이 공간과 사람들 사이를 날아다니며 모종의 사건을 만들어나가는 것 같기도 하다. 어디로 튈지 모르고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을 남기면서 이동하는 그 공을 작가는 흥미롭게 본다. 작은 공 하나가 의미심장해진 것이다. 이 테니스공은 이곳저곳을 넘나들고 지상에서 하늘로 마구 오르내리고 생기있고 탄력적으로 세계와 부딪치며 사람들 사이로 파고든다. 찰나적으로 튀어오르고 부유하고 진동하는 테니스공은 침묵으로 절여진 사진 속에서 예측할 수 없는 생의 맥박을 뛰게 하고 자유와 해방을 암시해주며 서로 고립되고 개체화된 대상과 사람들을 접속하고 매개시켜주는 메신저 혹은 관심과 대화와 초점을 남기는 하나의 결정적인 점이 된다.
작가는 외국유학생활에서 겪는, 이방인으로써 언어에 대한 장벽과 그로인해 타인과의 소통부재 혹은 원활한 소통이 해소되지 않는 것에 대한 고민에서 현재의 작업이 기원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모든 유학생들이 공통적으로 겪게 되는 부분이다. 어느 날 우연히 테니스를 치다가 자유분방하게 날아다니며 상대방과 나를 연결시켜 주고 서로를 매개해주는 그 공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에 테니스공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테니스 공을 주어진 장소, 공간에서 던지는 행위를 하면서 자유에 대한 해방감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그것은 모종의 순간, 무작위의 그 누군가와 원활한 소통을 갈망하는 본인의 의지나 욕망과 관계된 것이기도 하다. 나아가 테니스공은 대상자와 소통에 대한 메신저로, 또 다른 자신의 메신저가 되어 개입하고 간섭하고 설정된다. 그러니까 그는 자신이 테니스공이 되어 여러 공간과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가가 간섭하고 개입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는 테니스공을 따라 이동하고 여행하며 불특정한 타인들과 교류를 꿈꾼다. 그것은 누군가와 접속하고 연결고리를 찾아나가면서 진정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간절한 희구 같다. 오늘도 그는 세계, 현실을 사진에 담고 그 안에 테니스공을 개입시켜 독특한 장면을 만든다. 그가 설정한 상황성은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무수한 사람들의 삶이 모습을 반영한다. 그는 그 안에 테니스공 하나를 던져 넣었다. 통통탄력적으로 튕기는 공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청각적으로 들려준다. 어디론가 날아가고 부딪치며 다시 튕겨져 나오기를 반복하는 테니스공에서 작가는 새삼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본다. 그리고는 타인과의 소통 속에서 살아가야 되는, 소통이란 것이 삶의 핵심이란 사실을 새삼 상기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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