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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신 / 이식의 풍경

박영택

전시장 내부 공간의 피부에 기생하는 이미지들은 신체 속에 잠긴 장기나 기관 혹은 세포 등을 연상시킨다. 얼핏 봐서는 인체 내부기관의 재현인 것 같으나 그로부터 슬그머니 빠져나와 의사 擬似기관인냥 부유하고 있다. 닮았으면서도 실제의 그것은 아닌 그런 이미지들이다. 그렇다고 특정 대상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있는 것도 아니다. 재현과 추상의 사이, 사실과 허구의 사이에 자리하는 것, 그리고 가시성과 비가시성의 틈에서 흐르는 그런 이미지다. 추상과 재현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표현방법의 한 단면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그것을 무엇이라고 정확히 지칭하기는 곤란하다. 다만 무엇같은 것, 장기의 형태를 연상시키는 것, 인체 내부기관에 흡사한 생물학적인 형상, 유기적인 형태, 또는 생명력있는 추상적 형태라고 막연히 호명할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이 지닌 눈의 판독성으로는 불가능한 그러나 확장된 기계의 눈으로 인해 비로소 드러나는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인간 해부의 세계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한 풍경을 인식하게 한다. 두들겨 펴보았자 가로, 세로 90cm에 지나지 않는 껍질/피부에 싸인 인체는, 그러나 경이와 신비로 가득찬 우주를 품고 있다. 그 몸은 생각하고 움직이기 위해, 그러니까 생명을 유지, 보전하기 위해 존재한다. 작가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탐구하기 위해 인체를 조사하고 그 이미지를 응용한다.
언어의 지시체계나 명확한 개념의 덫에서 유유히 빠져나가 ‘꼬물락’거리고 지속해서 번식하고 확산되는 어떤 상황성을 체감시키는 공간에 서있노라면 인간의 몸이란 대상을 무척 색다르게 경험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동시에 내 자신이 신체 안에 들어와 있는 것도 같고 혈관을 타고 서핑하는 듯도 하다. 전시장 벽면에 가득 펼쳐져있거나 작은 계단을 타고 올라 가 만나는 낮고 좁은 공간에 매달리고 걸려진 이미지들로 인해 전시장 자체는 마치 몸의 내부공간으로 돌변하고 그 안으로 관자를 유인하는 장치가 되었다. 종이나 캔버스 표면에 그려지거나 스티커로 부착되는 한편 비닐풍선으로 매달려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 이 반복되는 형상들은 서로 연결되어 파생되고 무수한 산종의 풍경을 만들어보인다. 신체없이 기관들만, 신체에서 떨어져나와 산개하는 이 기관, 장기와 몸의 내부는 위태롭게 연결되어 이어져있다. 실타래처럼 가볍고 가늘게 흐느적거리다 또 다른 형상/선과 만나서 새롭게 부풀어오르고 다시 다른 것에 기대고 접속되어 돌아다닌다. 섬세하게 그려진 형태는 하나의 선으로부터 출발해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며 노마드적 생애를 보여주고 그 사이로 투명한 원형의 비닐스티커가 별처럼 달처럼 부착되어 빛난다. 그것은 몸을 우주풍경처럼 펼쳐보여준다. 동시에 유동적이고 에너지를 지니며 흐르는 흐름에 균형을 잡아 주고 시선을 고정시키는가 하면 복잡하고 유기적인 것에 대비해서 단순하고 명료한 것을 상대적으로 보여준다. 이원적인 속성은 분리되고 차별화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조적인 관계망 속에서 그렇게 공존한다.
현실계를 지배하는 중력의 법칙으로부터 이탈해 벽과 천장, 공간 전체를 떠돌며 기생하는 이 이미지들은 본능적인 그리기의 욕망 또한 발설한다. 특정한 대상의 재현이나 목적론적인 그리기가 아닌 순간에 탐닉하고 예기치못한 다른 것과의 뜻밖의 결합과 만남을 스스럼없이 용인하는 그런 그리기다. 특정한 신체의 기관이나 장기를 연상시키기는 하지만 작가의 몸에서, 신경에서 빠져나온 선들은 그대로 자기 신체의 총체적인 상황, 반응, 감각과 지각의 정도를 예민하게 반영하면서 흔들린다. 어쩌면 이 그림은 작가를 고스란히 재현하는 일종의 자화상이자 몸/정신의 균형을 잡아나가는 치유적인 측면 역시 자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몸을 해체하고 풍경으로 만들어 그 사이로 자기 몸을 밀어넣는다. 내 몸안으로 내가 들어간다. 나는 결국 몸이다. 그 몸과 나는 분리되지 못하고 하나이며 내 몸과 외부 역시 하나다. 이미지들은 주어진 공간 전체에 피처럼 흐르고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듯하다. 외부환경과 균형을 이루고 새로운 에너지를 생성하는가 하면 불필요한 에너지는 소멸한다. 동양의학에 의하면 몸은 자연과 구분되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적 실체가 아니라 자연과 하나된 존재라고 한다. 주객의 통일을 전제로 기를 매개로 하여 자연과 일체화된 인간은 자연의 법칙에 맞추어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는 존재이며 자신의 몸을 온전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주영신의 이미지는 그 같은 몸의 균형을 도모한다. 그녀에게 작업은 신체균형잡기이자 자기 몸의 상태를 살피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이는 동양의 전통회화와 접목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외부환경과 유기적인 친연적 관계를 만들고 그것과 내 몸이 교호하고 균형을 잡는 일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심장한 것임을 은연중 암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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