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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젊은 작가들 그리고 ‘젊은 모색전 2008’

박영택

오늘날 젊은 작가들에게 이곳 미술계는 가히 천국이다. 온통 젊은 작가들을 지원하고 배려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널려있다는 인상이다. 모든 화랑, 미술관들이 젊은 작가들을 어떻게든 도와야 한다는 일념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듯 하다. 신진작가, 젊은 작가, 만 45세 이하의 작가들은 그 루트와 정보만 잘 활용한다면 개인전도 하고 경제적 지원도 받고 작업실 걱정도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 사실이다. 물론 쉽지 않은 경쟁은 불가피하지만 말이다. 더구나 미술시장 역시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무한한 관심을 기울이면서 상품이 될 만한 것을 찾는데 부산하다. 화랑주인들을 만나면 진심인지 습관적인지 모르겠지만 좋은 젊은 작가 좀 추천해달라고들 한다. 내가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을 가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 말은 마치 전망 좋은 주식이나 이윤이 날만한 펀드상품을 추천해달라는 소리로 들린다. 그런 측면에서 미술시장 역시 오늘날 자본시장과 동일한 맥락에서 굴러간다. 스타작가를 만들고 왕창 팔아서 한 몫 잡는 것이다. 쓸만한 물건을 경쟁적으로 찾아서 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화랑이 손해 볼 것은 없다. 안팔리면 내치면 그만이고 팔리면 계속 붙잡아두면 되니까. 평론가나 큐레이터들 역시 여기저기서 평이 좋다고 여기는 작가들을 반복해서 저마다 추천하고 기획에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비평관, 안목이 틀리지 않거나 현재의 보편적인(?) 기준에 부합되어 있음을 증명하고 싶어한다. 작가들을 자신의 입지를 확보해주는 알리바이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미술판이 좀 살벌하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앞서의 그런 부탁, 요청을 들을 때 마다 나는 좀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은 좋지만 어려운 작가를 돕겠다는 것인지 팔릴만한, 상품이 될 만한 작가를 쪽집게처럼 집어달라는 것인지 헷갈린다. 어떻게 보면 괜찮은 작품, 잘 팔릴 작업을 먼저 선점하고자 하는 욕망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그것도 좋은 일이다. 좋은 작품을 하는 젊은 작가들이 인정받고 시장에서도 잘 팔리면 미술계를 위해서 바람직한 일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도대체 어떤 기준을 갖고 그런 일들을 추진하고 있을까하는 우려가 생겼다. 여기서 좋은 작가를 둘러싼 의견이 충돌하고 애매해진다.

한때는 미술평론가나 전시기획자들이 동시대 미술의 권력에 대항해서 새로운 미술의 이념이나 생각, 작품과 작가들을 선보이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기존의 완강하고 고루한 미술계의 지형에 균열을 일으키거나 틈새를 만들려는 의무감 같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특정한 미술에 대한 논리나 사유만이 강제되거나 획일화 된 측면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기성작가들만이 모든 권력과 이윤을 독점했었던 것도 그 이유의 하나였다.
오늘날 평론가나 큐레이터 혹은 화랑에서 일하는 갤러리스트들은 젊은 작가들을 찾는데 부심하고 있다. 뜰만한 작가를 누가 먼저 찾느냐 하는 게임을 벌이고 있는 듯 하다. 이 경쟁적인 게임이 긍정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잣대가 노골적인 상업성이나 아니면 매우 스티일리쉬한 경향들을 복제하는 쪽으로 풀린다는 아쉬움이 있다. 요새 시장이 무척 어려워진 것 같지만 얼마 전만해도 많은 젊은 작가들이 화랑에 전속 비슷하게 묶여서 아트페어나 다양한 기획전에 나가느라고 상품 납품하듯이 기일에 맞춰 그려내는 모습을 보곤 했다. 그래서인지 다들 비숫비슷한 그림들을 양산하고 시장이 선호할 만한 그림들을 연출해내는 상황이 펼쳐졌다. 나로서는 각 화랑이나 미술관마다, 또는 화상이나 큐레이터, 평론가들 마나 나름의 명확하고 선명한 기준과 잣대, 안목에 따라 다양하고 다채로운 작가들을 선별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없을 때 매번 동일한 작가들의 작품이 선정되고 그것이 나름의 기준이나 정답이 되어 유사한 작품을 양산하고 저마다 모방하고 흉내내는데 여념이 없게 된다. 작가들은 자신이 좋아서 작업을 하고 자기의 맘에 들어야 하는데 남을 위한, 남의 눈에 들기 위한, 시장이 받아들일 만한, 혹은 평론가나 큐레이터가 좋아할 만한 작품을 하는데 신경을 쓰게 된다 . 미술은 단일한, 유일한 모든 기준이나 정답에 저항하는 것이어야 한다. 미술에 정답이 있을 수 없고 차마 정답을 쓸 수도 없다. 그저 각 개인이 자신의 미술에 대한 나름의 생각과 방법론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를 판독하는 것이다. 물론 그 판독 역시 매우 주관적이고 애매한 것이기는 하지만 평론가나 큐레이터들은 자신이 보고 읽은 것들을 통해 그것이 다른 작품에 비해 왜, 어떤 점이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인지를 진솔하게 개진하면 된다. 그 같은 안목과 눈이 부딪치고 걸러지고 인정받고 길항하는 것이 미술계, 미술판이다. 물론 저마다 그런 생각과 의지를 갖고 젊은 작가를 발굴하고 전시를 기획하고 있겠지만 나로서는 그 차이를 발견하기가 무척 어렵다. 그래서인지 상당수 기획전시나 다양한 젊은 작가지원프로그램, 레지던스공모 등에 선정된 작가들이 어딘지 획일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너무 유사한 기준, 생각, 취향과 기호들로 집단화, 획일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따라서 이것은 현재 젊은 작가들이 지나치게 “자본주의 미술시장에 길들여지거나 표피적인 대중주의에 영합”된 문제만은 아니라고 본다.사실 그것은 미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곳에서의 삶의 문제, 정체성 그로니까 매우 얇고 표피적인 정체성 그리고 보이지 않는 시선에 의해 스스로 겸열하고 그것을 배워온 결과라는 생각이다.

왜 이 이야기를 꺼내냐하면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젊은 모색2008>전의 기획취지가 바로 그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예술의 야성을 깨우며 다양성을 회복시키는 젊은 작가들의 신념과 자유로운 상상력을 보여주고자 한다.”는 것이어서 그렇다. 그래서 기획자는 “물질화된 세상의 가치와 유혹에 타협하지 않고 작가로서의 존재감과 날것의 신선함을 보여”주는 작가를 선정했고 이들이 “예술이 소통 기능을 회복하고 부조리하고 나른한 세상과 일상을 깨우기 위해 달려들 것”이라고 말한다. 당연한 말이고 바람직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 너무나 원론적인 언급은 너무 무겁고 도덕적이며 상대적인 우월감을 턱없이 심어줄 수 있다. 다시 생각해보자. 현재 우리 미술계의 문제가 상업주의와 표피적인 대중주의의 영합에 있다는 진단은 맞는 말이면서도 다소 거칠고 평면적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선정된 작가들의 기준이 예술의 야성을 일깨우거나 자유로운 상상력, 세상의 금기와 경직된 상상력을 부정하고 사고의 자유를 갈망한다고 여겨지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택했다면 과연 그것이 전시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기획자가 작금의 우리 미술계가 노정하고 있는 아쉬움에 대한 심정적인 격정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지만 그 같은 기준은 이번 전시에 참여한 17인의 작업세계를 하나로 묶기에는 좀 관념적이고 허술하다. 전시는 흥미롭고 작업의 완성도나 작가들의 역량이 만만치않음을 보여주는 편이었지만 기존 미술판에 저항하는 함의를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작가들은 저마다 자신의 작업에 대한 편차를 과도하게 노출한다. 젊은 작가, 신선한 작가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이미 미술계에서 일정한 활동을 하고 나름의 인정을 받은 이들이 대부분이며 세련되게 동시대 미술의 어법이나 연출력을 능란하게 구사하는 편이다. 익숙한 개념과 유사한 패턴, 미술관에 수용될 만한 개념과 동시대미술의 여러 경향들에 대한 비교적 노련한, 너무 가다듬어진 조합들이 반짝인다. 아마 기획자는 비판적이라고 부를 만한 시선을 보여주는 작업들을 기대했고 작가들 역시 그것을 부단히 의식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 비판은 너무 학습된 비판들이고 익숙한 반성들이다. 상당수는 성의 노골적인 드러냄이 마치 금기에 대항하는 도발적인 것인냥 장치하고 있지만 그것은 관음적이고 흥미를 주는 연출에서 그다지 자유롭지 못해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것도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임을 부인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예를 들면 성을 유희하는 시선이 금기의 위반처럼 연기되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가란 그 시대와 불화하고 주어진 사회의 모든 금기를 위반하면서, 하는 척 하면서 도발적 상상력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너무 당연시하거나 도식화하고 있는 것은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진정성’ 보다는 익숙한 코스츔이 자꾸 맴돌았다. 시늉과 제스처가 모종의 ‘가오’를 잡게 하는 것은 아닐까? 식상한 충격요법이나 조금은 삐딱한 시선을 니지고 이 사회와 체제를 시니컬하게 바라보는 태도를 지녀야 진정성을 지닌 작가이며 대중영합주의와 상업주의로부터 자유로운 작가/작업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에는 좀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물론 그런 아쉬움이 맴돌지만 전체적으로 이 작가들에게 거는 기대는 타당해보인다. 역량과 힘이 있고 재능들도 반짝인다. 이들도 미술계에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망을 지닌 작가들이며 이상적인 예술가상을 염두에 두고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 길이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만 수렴된다면 그것은 분명 바람직해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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