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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미술과 동심

박영택

얼마 전 모대학박물관에서 기획한 특별전시를 보았습니다. ‘동심’이란 제목의 그 전시는 한국 전통미술에 나타난 어린아이(동자)의 이미지를 모은 전시입니다. 아담하고 예쁘장한 전시공간에 놓인 몇 점의 작품들이 눈에 안기는 전시였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일상생활에서 쓰던 이런저런 물건에 담긴 이미지들입니다. 아득한 시간을 머금은 물건/작품들 앞에서 그것들을 어루만지고 또한 그것들과 함께 온전한 한 생애를 보냈을 이들이 목숨을 기억해보는 일은 새삼 경건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옛사람들이 그리고 만들고 꾸민 작품들이 더없이 감동스럽습니다. 그 안에는 과도한 꾸밈이나 새로운 것에 대한 강박도 없고 아울러 거창한 작가의 논리나 사고가 힘줄처럼 박히지 않아서 좋습니다. 그저 무심하고 소박하고 그러면서도 지극한 정성으로 촘촘히 수놓아진 이미지들입니다. 그것들은 단지 장식이나 상품, 유희라기 보다는 다소 절실하고 인간적인 구원이나 소망 등이 고드름처럼 매달려있습니다. 오래 살고 싶다는 장수의 욕망, 부귀영화를 누리고 부부간에 애정이 깊기를, 또한 못된 귀신이나 나쁜 기운이 내 몸과 집안에 들어오지 말기를 애절하게 기원하는 이미지들과 문자들이 새겨져있습니다. 그것이 다름 아닌 ‘전통미술’입니다.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조상들의 유품에는 그 같은 소망이 절묘하게 내려앉아있습니다. 더위에 지치고 몸도 마음도 자꾸 희미해져가는 여름날 그 전시는 선물처럼 다가왔습니다. 많은 전시가 줄을 잇고 그만큼 많은 작품들이 기다리는 전시장을 다니고 있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감동이랄까 기쁨이랄까 그런 것을 전해주는 작품을 만나기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오늘날 이루어지는 현대미술은 새로운 아이디어의 경연장, 기발한 상품을 만들어내는 전략, 기획과 연출에 입각해 이루어지는 작품, 서구에서 이루어지는 미술의 흐름에 발맞춰 이를 적절히 가공. 포장해내는 것들이 상당수입니다. 최근에는 미술시장이 호황이라 저마다 집안 거실이나 방에 걸기 좋은 그림들, 화장기가 짙고 놀라운 손솜씨와 정교한 기술을 동반한 엇비슷한 작품들이 대량 생산되고 있습니다. 온갖 아트페어와 옥션 등에서 잘나가는 작품들이 대부분 그런 종류입니다. 물론 의미있고 기발하고 흥미로운 것들도 있지만 어쩐지 감동이 부재하고 소박하고 인간적인 정감을 간직한 그림을 찾기는 어려워졌습니다. 그림이란 그림을 만드는 한 개인의 모든 것이 녹아있습니다. 우리가 그림을 사는 이유는 그 그림을 만든 이의 마음과 정신, 그리고 그만의 손의 노동, 감각을 사는 것일 겁니다.

알다시피 미술은 근대에 태동된 개념이고 근대 이후 우리는 ‘미술’이라는 것을 경험하고 체득해오고 있습니다. 근대 이전에 존재한 이미지들은, 우리가 미술이라고 여기고 있던 것들은 사실 미술이 아니라 주술적인 물건이거나 종교적 오브제들이었습니다. 근대에 와서야 비로소 미술이란 한 개인의 주관의 산물, 독창성 혹은 미술이란 개념과 제도를 의식해서 만들어내는 그 어떤 것으로 지칭되었습니다. 미술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그 질문을 내재화해 이를 작업으로 구현하는 일이 그것입니다. 오늘날 작업을 한다는 것은 인류전체의 미술사의 기록에 개입하고 간섭하고 다른 해석의 여지를 덧칠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니까 미술이란 우리에게 한 작가가 자신의 미술에 대한 생각과 그 미술이란 것이 무엇이며 무엇일 수 있는 지를 예리하게, 절박하게 더러는 흥미롭고 진지하게, 소박하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을 만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현대미술입니다.
한 개인이 간직하고 품고 있던 모든 것들이 육체 밖으로 외화되어 나오면서 그것들이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던 미술/이미지에 대해 또 다른 발언과 감각과 감수성의 총화로 서늘하게, 아찔하게 삐져나오는 것을 목도하고 만나는 일이고 알아채는 일이 다름아닌 미술감상입니다. 그러나 최근의 전시들은 대부분 극사실적인 묘사에 목숨을 걸고 있거나 팝아트와 유사한 작업들, 그것도 대부분 중국현대미술의 아류 같은 것이거나 희한한 눈속임과 재료의 연금술 같은 것으로 볼거리, 상품을 만드는 작업들이었습니다. 별다른 고민없이 화면에 들러붙어서 무아지경으로 그려대는 일이거나 자본주의시장의 ‘신상’처럼 시장에서 선호될 만한 것, 선호되고 있는 상품에 기생하는 것이 오늘날의 미술이 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이런 것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미술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런 참에 조그만 박물관에서 새삼 만난 우리 선조들, 이름 없는 장인의 깨끗하고 소박한, 그러나 절실한 마음으로 깍고 그리고 수놓은 어린아이(동자상)의 모습들을 보면서 저는 현대미술이 주지 못하는 큰 감동을 만났습니다. 마치 아이들의 그림에서 보는 동심과 순수한 마음의 자락들을 접했던 것입니다. 그 전시를 보면서 문득 씽크씽크미술관에서 본 어린아이들의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서로 통하는 세계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미술/이미지의 세계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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