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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욱 / 세상을 보여주는 얼굴

박영택

무척 ‘쎄고’ 좀 으스스한 여자상이 다양하게 도열해있다. 단독으로 혹은 둘, 셋이 모여서 정적과 고독 속에 침잠한다. 정면을 응시하는 것도 있고 측면을 보여주는 얼굴도 있다. 조금은 무섭기도 하고 괴기하기도 하지만 또한 귀엽기도 하다. 기존에 익숙하게 보았던 인물과는 무척 다르다. 그 얼굴은 분명 누군가의 얼굴로부터 파생되어 나와 작가의 기억에 의해 재구성되고 변형, 해체 혹은 작의적인 훼손으로 변질(?)된 얼굴이다. 작가는 누군가의 얼굴을 보고 자신의 직관에 의해 파악된 그 어떤 느낌을 회임하고 일정한 시간을 기다려 출산하듯 하나의 얼굴을 그렸다. 눈과 입, 눈물과 피, 머리카락 만이 부동의 몸에 균열을 일으키며 상처처럼, 아픔처럼 응고되어 있다. 대부분 먹만으로 그려지고 칠해진 화면은 묘한 어둠 속에 가라앉아 있다. 그 어두운 배경, 바탕을 등지고 크고 둥근 얼굴이 달처럼 부풀어오른다.

동공이 사라지고 온통 검게 칠해진 인형을 닮은 커다란 눈, 사라진 눈썹과 귀, 반듯한 가름마, 잘 빗은 머리, 안면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조리 삼켜버릴듯 증식을 거듭하며 자라는, 숲처럼 무성한 머리카락, 작은 코와 콧구멍, 그만큼 작은 입술과 더러 벌어진 입술 사이로 보이는 치아, 퉁퉁한 살을 거느린 몸, 모나리자가 입은 주름이 잡힌 드레스를 연상시키는 흰 옷이 그 얼굴과 함께 다가온다. 이콘이나 성화의 익숙한 도상이나 불상의 의습이 떠오른다.

관습적인 종교화의 도상을 빌어 기이한 얼굴을 오버랩시키고 있다. 그런가하면 아프리카나 네팔의 가면 같기도 하다. 단순화시킨 얼굴에 눈만 구멍처럼 뚫려 까만 응시를 전한다. 인물들은 한결같이 먹으로 채워지고 적셔진 눈을 지녔다. 김정욱은 눈을 통해 자신이 보고 읽은, 감지한 인간을 형상화한다. 기술한다. 더러 마스카라 번진 까만 물이 눈물과 함께 흐르고 ‘피눈물’같은 것들도 얼룩처럼 스며들어있다. 인간의 얼굴에서 눈은 감정을 드러내는, 감출 수 없는 치명적 부위다. 세상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내보이는 눈, 그래서 너무 많은 시간과 그 시간의 양만큼 눌린 기억과 상처를 간직한 눈을 본다는 것은 좀 슬픈 일이다. 얼굴이 아니라 눈이 결국 이 인물들의 내면이랄까, 마음과 정신, 굴곡심한 사연과 주름잡힌 상처의 결들을 찰나적으로 보여주다 멈춰있다. 커다란 눈이 먹을 머금고 침침하다. 보는 이들은 그 눈에서 눈을 뗄수 없다. 강렬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보는 이를 마냥 빨아들일 것도 같다. 보는 이들은 그 눈에 함몰된다. 빨려 들어간다. 그것은 깊고 가늠하기 어렵고 신비하고 공포스러운 구멍이다. 자궁같은 눈, 텅빈 구멍 같은 눈이다. 그림 속 얼굴의 시선을 통해 나는 대상이 되었다. 타자와의 만남은 내가 대상이 되거나 아니면 그가 대상이 되는, ‘시선의 싸움’이다. 바라보는 자는 시선이고, 바라보여지는 자는 눈이다.
이 그림 앞에서 나는 부득불 눈이 된다. 하나의 대상으로 자꾸 얼어붙는다. 얼굴이미지가 주는 강도 못지않게 나는 수묵과 모필의 매력을 극대화시키면서도 그것을 자신만의 독자한 그림 안에 조율하는 작가의 힘을 느낀다다. 그 힘에서 새롭고 신선한 수묵화의 매력을 환기받는다. 먹색의 스펙트럼이 대단히 넓고 모필을 유희하는 감촉이 견고하다. 기존의 다소 상투화되거나 습관적인 먹의 쓰임이나 모필의 활용에서 벗어나 수묵이란 재료를 자기가 그리고 표현하고자 하는 ‘느낌’을 펼쳐내는 쪽으로 몰고간다. 여기서 수묵이란 재료는 당대의 삶의 감수성이나 그녀가 보고 읽어낸 얼굴, 그 얼굴로 부터 번져나가는 또 다른 세계의 비전을 보여주는 쪽으로 환생한다. 그리고 이런 측면이 우리 조상들이 초상을 통해서 표현하고자 했던 정신/전신傳神과 만난다. 김정욱은 사람의 얼굴에서 모든 것을 읽어나간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전생에 무당이나 심령술사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녀의 작업실을 나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이는 도대체 내 얼굴에서 무엇을 감지하고 읽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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