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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두 / 곡선으로 그려진 풍경

박영택

도시를 만들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길을 닦는 일이다. 그 길은 사람과 운송수단이 드나들기 위해서만 필요한 게 아니라 도시를 구획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도시는 선으로, 직선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도시 밖 자연은 온통 곡선이고 유기적인 선으로 굽이친다. 한자 마을 ‘리里’는 인위적으로 정연하게 구획된 가로와 필지로 구성된 도시 내 거주 공간을 지칭하는 표현이라고 한다. '큰 길에서 ‘ㄱ자로 갈라지는 작은 골목길, 골목길 조우에 늘어선 필지들, 그리고 갈라지는 골목길 입구에 가로 선 문을 상형한 문자가 바로 ‘리’라는 것”1) 이다. 알다시피 옛 서울은 인위적으로 조성된 계획 도시였다. 따라서 이전에 한양의 도심 지역의 가로망은 정연했다. 동서양의 전통 도시들이 지닌 비교적 한정된 도로망이 그 주변까지 전면적으로 펼쳐진 것은 근대에 와서다. 알다시피 서구의 경우 근대화란 곡선의 자연에 직선을 가설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근대에 와서 도시와 그 밖을 연결하는 도로망을 직선으로 죽죽 펼쳐나가면서 자연을 점유하기 시작했는데데 기찻길과 차도가 그것을 촉진했다. 이제 사람들은 느릿한 보행 대신에 직선의 길을 기계로 질주하면서 땅과의 친연성을 순간 잃어버리고 공중부양한다. 나아가 오로지 속도와 목표만이 강제되는 삶을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그러한 공간의 직선화와 그로인해 야기된 공간감각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의 근대화도 가속되었다. 산수화의 전통이 상실되고 왜곡되는 것도 그 즈음이었다.

김선두의 그림은 직선의 도로와 길에서 벗어나 자연의 길, 곡선의 굴곡과 구비를 그린다. 산과 들, 논과 밭, 그리고 나무와 풀과 아주 작게 위치한 사람들이 포도씨처럼 박힌 그림은 어딘지 정겹고 더러 애잔하다. 보는 이의 감정을 들었다 놨다 하는 그런 음조가 환청처럼 들릴 듯한 그림이다. 그런데 근작은 그 선, 유장한 곡선이 매우 두드러지게 화면 곳곳을 치고 들어가 마치 줄넘기처럼 자리하고 있거나 길고 긴 여운이나 창의 가락처럼 줄줄 흐른다. 부드러운 곡선이 더욱 기승이다. 그가 자연에서 추출한 이 곡선은 그림을 이루는 선이자 자연에 대해 투항하는 작가의 몸짓이고 자연/길에서 들은 음성의 고조이자 그에게 익숙한 음악적 흐름이다. 그런가하면 그것은 시간, 삶의 사연, 한 사람의 이동경로, 떠돎, 인생길을 은유한다. 그 모든 것이 길고 구성지고 부드럽게, 흐느적거리드시 더러 어눌하고 치졸한, 고졸한 선의 맛으로 마냥 두툼하다. 한국 산야의 느낌을 구성지게 도상화시킨 이 그림은 다양한 시점에 따라 역동성을 지니며 융기하는 땅/풍경의 기이한 흐름, 내음이 떠돈다. 풍경에서 소리를 들리고 ‘징한’ 사연이 베어나오고 여러 시간이 깊이가 감촉되는 듯 하다. 특히나 기복하는 대지는 규칙없이 구불대는 유동체라 그 땅의 요동과 호흡을 선으로 살려내고 색으로 우려낸다. 특히 무수한 시간의 층을 간직하며 내부로 스며들어 종이와 일체를 이룬 색채의 깊은 맛이 그의 그림을 오래 묵은 장처럼 깊이 발효시킨다.
나는 지난 도록에서 그가 쓴 아래 글을 통해 그의 선이 어떤 선인지 선명하게 다가왔는데 무엇보다도 그의 글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근대 산업화의 부산물 중 하나인 직선길은 시간적 효율을 극대화한 기능적인 길이다. 직선길은 사람과 물건의 이동을 위해 곡선을 직선으로 펴면서 생겨났다. 그 길은 산이 가로막으면 터널을 뚫고 강이 방해하면 큰 다리를 놓는 거침없고 인위적인 길이다. 직선길에 여백과 여운이 없다. 사람이 없고 물질만 있으며 속도와 목적만 존재한다. 위협적인 시간이 무시무시한 굉음으로 질주하기에 여유로운 만보 산책은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 기능적인 직선길에 비해 곡선길은 사람의 왕래와 소통의 필요성에 의해 자연스럽게 난 길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의 굴곡을 따라 같이 흐르며 생성된 길이다. 대부분의 자연적 형태는 곡선이기에 길도 곡선으로 흐른다. 과속을 허용하지 않는 곡선길에는 만보 산책의 여유가 흐른다. 그 길에서 우리는 향긋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만나고 꽃향기에 한눈을 팔고 새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가 있다. 하여 사람다룬 길은 곡선이라야 한다. 길에는 또한 공간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길도 있다. ”(작가노트)

풍경이란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그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 나카무라 요시오)이다. 풍경의 구도란 ‘인연의 재미요, 결합의 묘’(나카무라 요시오)다. 곧 자연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인간의 창조적 행위인 셈이다. ‘멀리 내쳤다가 끌어당기는 시선의 신축 운동이 그려내는 현란한 경치를 풍경’이라 한다. 자유자재로 원근을 변경하는 시선이 전혀 다른 세계를 끌어낸다는 사실은 풍경의 혼돈이 아니라 오히려 그 풍요로움을 말한다. 그러니까 풍경은 생명체처럼 시점의 위치에 따라 다채롭게 변화한다. 시점의 위치에 따라 사물의 배열이 변화하고, 이로써 그 형태의 도형성(게슈탈트)이 근본적으로 파괴되고 새로운 도형을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의식의 흔들림이야 다름아닌 ‘풍경의 실존’이고 이때 자연/풍경은 비로소 자신의 진실을 밝힌다. 풍경은 이와 같이 빛과 시점의 변화에 의해 무한히 생성하는 만화경의 세계다. 따라서 고정된 시각이 아니라 불안정한 시각이야말로 새로운 이미지 탄생의 계기가 숨어있는 곳이다. 그러니까 ‘풍경을 본다’라는 것은 시점과 시선을 이용한 매우 창조적인 행위이다.2)
김선두는 자신이 본 한국의 풍경, 특히 자신의 고향, 가장 자신있게 보고 느끼고 아는 그 남도풍경을 그렸다. 물론 작가의 그림은 보편적인 한국의 자연에 겨냥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고향땅을 그릴 때 좀더 매력적인 화면을 구성한다. 전개도처럼 대지는 펼쳐져있고 풍경을 보는 여러 겹의 시선이 포개져있다. 정중앙을 중심으로 위에서 아래로 풀어나가기도 그 역으로 이루어진 구도감각이 흥미롭다. 이른바 역원근법을 이용해 풍경을 해체하고 재구성해 마음으로 느낀 자연풍경을 표현하였다. 그것은 인간 주체의 절대화된 시선이 아니라 다분히 동양의 전통적인 시방식에 가깝고 자연의 눈에 따른 인간의 기술방식이다. 그리고 이 시선은 작가가 몸소 겪은 현실공간에서의 생생한 체험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차를 타고 지나면서 몸으로 달려드는 풍경의 모습을 잡아챈다. 아울러 느릿한 보행체험에 기인한다. 사람의 몸은 피부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피부라고 하는 몸의 경계를 뛰어넘어 바깥 공간으로 확장되어 있다. 내 몸이 어딘가를 보고 거닌다는 것은 곧 내가 피부의 밖으로 확장되어 사물과 뒤섞여 지는 어떤 상황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는 차창 밖으로 흐르는, 스치는 풍경, 특정 지역의 이미지를 콜라주하고 재구성한다. 순간적으로 보였던 풍경 하나가 또 다른 공간을 연상시키는가 하면 그 풍경은 너무 가까이도 아니고 너무 멀리 떨어지지도 않는 상태에서 가능하다.

자연은 온통 곡선으로 가득하다. 산수화 역시 곡선으로 그려져 있다. 직선이 도시라면 곡선은 자연이다. 인물과 자연의 흐름을 따르는 김선두의 선은 그대로 곡선이고 음율이자 타령이고 곡진 것이다. 사실 생명있는 모든 것들은 곡선, 유기적 선으로 가득하다. 그의 곡선은 사물을 모방한다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표현한다. 그것은 시선과 이동과 마음과 사연을 질질 끌고 다니다. 보는 이의 감정도 유인한다. 곡선 못지않게 매우 유니크하게 그려진 인물과 나무등, 풍경체험을 유발하게 하는 그 점경물은 풍경을 사용하듯이 보게 하는 중요한 매개이자 핵심적 요소들이다. 너무 크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왜소하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의 점경 인물, 나무 등이 해학적으로 그려져 있다. 인물에 의해 그 풍경은 그 공간 속을 다니듯, 더 정확하게는 사용하듯이 보는 것이다. 그의 근작 제목은 ‘느린 풍경’이다. 그래서인지 그림 속 풍경과 인물, 나무와 길들은 천천히 선회한다. 그리고 졸하다. 어눌하고 완성되지 않은 것 같은 맛이 감칠나게 흐른다. 갈필이 마구잡이로 지나간 자취가 자연스레 깔리고 휘적거리며, 흡사 새가 날아가듯, 바람이 일듯, 물살이 지나가듯 그렇게 모필과 색채가 고이고 흐른다. 여러 시점과 시간의 흐름이 동시에 겹성으로 발화하는 선은 유장하고 깊이있는 색채의 지층 위에서 흐느적거린다. 그 선은 애잔한 남도창을 연상시킨다.





1) 서울은 깊다, 전우용, 돌베개, 2008, p.51
2) 풍경의 쾌락, 나카무라 요시오, 효형출판, 200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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