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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섭 / 단 것에 대한 욕망

박영택

우리는 흔히 오감이라고 말하지만 엄밀히 말해 감각은 다섯 가지가 아니라 세 가지 밖에 없다. 눈으로 보는 시각, 귀로 듣는 청각, 코로 냄새 맡는 후각이 그것이다. 다른 두 감각, 즉 미각과 촉각은 감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미각은 혀로 대봐야 알 수 있고 촉각은 건드려 보아야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둘은 순수한 감각이 아니라 행동의 결과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각은 문화적이고 사회적이다. 학습되고 경험되어야 하는 것이다.
미각은 만져보거나 검사한다는 뜻을 가진 중세 영어 ‘tasten’을 어원으로 한다. ‘날카롭게 접촉한다’는 뜻의 라틴어 ‘taxare에서 파생한 이 단어에 의하면 맛보는 것은 항상 시험 혹은 평가를 의미한다. 따라서 그것은 경험적으로 획득되고 이해된다. 또한 미각은 무엇보다도 친밀함의 감각이다. 우리가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먹는 다는 것은 그만큼 친하다는 뜻이다. 낯선 사람과의 식사는 부담스럽고 불편하며 맛을 잘 못 느끼게 하지만 좋은 사람과는 늘 식사를 함께 나누고 싶고 맛있게 먹는다. 그래서 벗compain은 ‘함께 빵을 먹는 사람’이란 뜻이다. 식구 食口란 말도 동일한 의미일 것이다.
음식은 일반적으로 만족과 기쁨, 영양분을 의미한다. 음식은 쾌락의 근원, 생리적. 감각적 만족을 주는 복잡한 영역이다. 또한 음식을 먹는 다는 것은 절대적이고 계속해서 반복되는 활동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아기가 어렸을 때 겪은 것 중 먹는 것과 관련된 경험은 발달과정과 평생 지니게 될 인격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은 음식으로 만들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문화에서 음식은 인간의 위치를 중재하고 표현하는데 있어 중심적 역할을 한다. 먹는 다는 것은 사랑과 자율성의 첫 경험, 즐거움의 첫 깨달음, 공격성의 첫 표현, 좌절과 분노의 첫 영역이며 아동의 다양한 자아표현의 영역이기도 하다. 또한 먹는 다는 것은 특히 어린이에게 최초의 즐거움, 최고의 욕망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단연 단 것에 대한 욕망과 미각이 자리하고 있다. 달콤한 맛에 대한 욕망은 거의 원초적으로 다가온다. 아이들은 단 것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욕망을 분출한다. 성인 역시 대부분 그 단 것에 대한 유혹을 쉽게 떨치지 못한다. 생각해보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것은 쓴 것과 단 것의 구분이다. 그것은 우리의 언어를 통해 표현되곤 한다. 달콤한 것은 좋은 것, 긍정적인 것이고 반면에 쓴 것은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다.

김형섭은 그 달콤한 음식을 찍었다. 사탕과 초콜릿, 아이스크림, 마시멜로 등이다. 대상에 근접해서 커다랗게 찍은 이 사진은 화려하고 감각적인 색채로 물들어있다. 시각적으로 유혹적이자 감각적이다. 단 것은 항상 아름답고 자극적인 색채로 칠해져있다. 단 것의 유혹은 일차적으로 색채를 통해 가능하다. 음식을 먹을 때 우리는 거의 시각에 의존해서 살아간다. 모든 단 것은 유혹적인 색깔을 지니고 있고 먹음직스러운 형태를 지니고 있다. 보는 것과 미각은 함께 한다. 사실 음식을 먹거나 여타 다양한 음식물을 섭취할 때 그것들은 대부분 단 맛과 관련된다. 당을 섭취하는 것이 음식물을 취하는 일이다. 특히 어린아이들은 단맛을 좋아한다. 그 이유는 단맛을 느끼는 혀끝의 미각이 아직 손상되지 않았고 다른 감각에 의해 닳아버리기 이전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민하게 단 것을 감지한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훨씬 더 많은 미뢰가 있다고 한다. 성인에게는 입의 다양한 부위에 주제별로 분류된 쓴맛, 신맛, 단맛, 짠맛의 1만개 가량의 미뢰가 있다. 미각 세포들이 꽃잎처럼 겹쳐져 있는 봉우리 모양의 미뢰 안에는 약 50개의 미각세포가 있어 뉴런으로 바쁘게 정보를 전달한다. 그로인해 혀가 그 맛을 느낀다. 점액을 분비하는 미세한 돌기가 나있는 두꺼운 근육판이 바로 혀다. 물질이 녹아야 맛을 볼 수 있고, 그래서 침이 없으면 맛을 느끼기가 힘들다. 침에 의해 녹으면서 그 단맛이 느껴지는 것이다.
김형섭은 사탕과 초콜릿, 아이스크림, 껌 등이 입안에서 녹거나 물에 번지는 장면을 회화적으로 보여준다. 순수한 색채의 환각으로 가득하다. 엠 앤 엠 초콜릿, 폴로사탕, 막대사탕 또는 아이스크림, 껌의 피부로 육박해 들어가 일으켜 세운, 확대된 사진이다. 침이 엉켜있는 씹던 껌, 화려한 색채를 지닌 초콜릿이나 사탕이 녹아 흐르는 장면, 아이스크림 토핑들이 화면 가득 펼쳐져 색채 추상같은 효과를 내거나 폴로사탕이나 마시멜로가 마치 오브제 미술처럼 구축적으로 쌓여있는 것 등이다. 그것은 특정 음식물 사진이기에 앞서 매혹적인 시각이미지 자체로 충만하다. 부드러운 파스텔 톤의 배경 화면에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를 지닌 물질이 녹아드는 장면은 매우 감각적이면서 관능적이기도 하다. 음식들은 지금 막 단 맛을 내면서 녹고 흐르고 보는 이를 유혹한다. 아름다운 색상과 전면적으로 확대된 모양에 의해 그 단 것의 욕망은 극대화되는 편이다. 침이나 물에 의해서 서서히 형태변화를 일으키는 단 것들은 현재진행형으로 이제 막 사라지기 직전의 모습을 얼핏 보여준다. 혀끝에서 녹거나 물에 의해 서서히 침식되는 장면이 정지되어 응고되어 있는 형국이다. 그것은 시간의 기록이자 단 물질이 용해되는 화학적 작용의 기록이기도 하다. 김형섭은 단 것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을 사진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단지 특정 음식물을 대상으로 촬영한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이 지닌 달콤한 맛, 미각을 시각과 촉각 등으로 전이시킨다. 시각과 미각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며 얽혀있다. 사실 이 사진은 부드럽고 유혹적이며 환상적인 색채 그 자체로 다가온다. 그만큼 색을 매력적인 장으로 연출하고 있다. 광고사진의 어법으로 순수한 시각상의 아름다움을 증거하는 경계에서 선 이 사진은 이미 그런 구분조차 무화시켜나가면서 정물사진 혹은 사물의 피부에 육박해 들어가 펼쳐 보이는 또 다른 세계상을 흥미롭게 제시해주고 있다.



※ 이 글을 쓰는 데 아래와 같은 책을 참조하였다.
감각의 박물학(다이앤 에커먼, 작가정신),
기호품의 역사(볼프강 쉬멜 부쉬, 한마당),
음식과 몸의 인류학(캐롤 M.코니한, 갈무리),
그림으로 본 음식의 문화사(케네스 벤디너, 예담)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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