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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선 - 밥상은 힘이 쌔다

박영택


‘밥씸’(밥힘)으로 산다는 말처럼 한 끼 식사는 다음 한 끼까지의 내 목숨을 지탱해준다. 매 한 끼 한 끼가 생의 고비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동물성의 육체가 지닌 고단함은 광합성을 하는 식물성처럼 제 스스로 먹을거리를 해결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목숨을 내 목구멍으로 밀어 넣어야 비로소 산다는 사실이다. 그게 때론 슬프고 눈물겨울 때가 있다. 그리고 부른 배는 왜 일정한 시간이 되면 영락없이 고파질까? 그 시간의 주기가 어쩜 그렇게도 짧고 완강할까? 하루의 삶은 먹을거리를 찾아 헤매고 (평생 매 끼니마다 우리는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하고 고민한다)배가 고파 죽을 것 같다가 이내 배불러 죽을 것 같은 체험을 반복한다. 그런가하면 이 밥 먹고 살겠다는 근원적이고 인간적인 욕망학이 결국 현실적 삶을 지탱하는 고리 같아서 누구도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일을 하겠다고 모여 머리를 맞대지만 결국은 먹고 살겠다는 의지와 단호함이 그 일을 앞서고 있음을 본다. 우리가 어느 정도 살게 되면서 부터 더 잘 먹고 살겠다는 욕망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웰빙과 건강식에 대한 과도한 관심, 전국의 맛 집 순례로 분주한 매체들, 한 집 건너 음식점인 주변 풍경 등이 음식에 대한 강렬한 관심을 잘 보여준다. 그런가하면 최근 우리사회가 보여주는 먹거리를 둘러싼 그 뜨거운 관심을 상기해보라.

그러나 음식이란 식탁이나 밥상에 둘러앉아 서로 숟가락을 섞어가며 가족들과 함께 먹어야 제 맛이다. ‘식구’란 그런 뜻이다. 가장 좋은 모임은 결국 온 가족이 밥상에 둘러앉아 있는 모습이다. 어머니가 준비한 밥상을 끼고 앉아 한 끼 식사를 마쳤을 때 비로소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진하게 떠올린다. 어린 시절 다소 누추한 밥상이었지만 뜨거운 된장찌개와 김치, 콩나물 그리고 몇 가지 반찬들이 더 오르고 한 켠에 김이 모락거리던 공기밥을 집어들며 밥 내음을 맡던 일은 따스한 추억이자 사뭇 감상적이기 까지 하다. 황인선은 그런 밥상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한지를 이용해 캐스팅한 후 목판, 석판, 디지털 프린트 기법을 첨가해 김치를 재현하는 한편 실제 밥풀을 이용하여 붙여가고 말려서 떼내는 일종의 캐스팅 작업을 통해 식탁위에 놓인 밥과 반찬, 수저와 젓가락 등을 모방했다. 이른바 밥알을 이용한 오브제 작업이자 설치인 셈이다.
근작은 음식물 자체가 음식을 모방하는, 식탁이라는 장을 상황적으로 연출하는 점이 눈에 띤다. 부엌에서 마련한 음식물이 밥상에 오르는 순간 그곳은 단지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하는 곳이 아니라 집안의 대소사가 논의되는 곳이기도 하고 가족 구성원 각자의 삶이 토로되고 갈등과 봉합이 동시에 진행되는 곳이기도 하다. 아침과 저녁에 얼굴을 맞대고 앉아 하루의 시작과 끝을 평화롭게 마무리하는 밥상, 식탁 풍경은 돌이켜보면 그곳은 다분히 여성적 공간이다. 모성의 힘이 식구들 모두를 거둬들이고 먹여 살려 삶을 지속하게 해주는 동시에 소통으로 하루의 고단함과 상처를 다독여주기도 한다. 황인선이 만든 가상적 밥상풍경이나 김치 등을 한지로 캐스팅하고 수공으로 공들여 만들어내는 오브제들 역시 다분히 여성의 수공예적 성격과 가사노동 등이 강하게 감돈다. 오래전이지만 임옥상의 작업 중에 밥상 풍경을 한지로 떠내고 채색을 가미한 작업이 생각나고 근래 정경심이 한지에 채색으로 밥상위의 장면을 정갈하게 그려놓은 그림 등이 떠오른다. 근자에 이렇게 음식물을 그리거나 음식재료를 가지고 작업하는 경우를 자주 접한다. 이동재의 경우는 쌀알을 일일이 캔버스 표면에 붙여 사람의 장기와 얼굴을 재현하면서 결국 목숨이란 쌀, 밥의 힘(氣)으로 지탱된다는 사실을 퍽 흥미롭게 보여준다.

황인선은 ‘밥상위의 연금술: 밥 한 톨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마련한 이번 전시에서 밥상위의 풍경을 가상적으로 연출한다. 밥풀을 만지작거리면서 굳혀나가 그릇과 음식물을 고스란히 모방했다. 밥풀의 찰기를 이용하여 만들었고 빈틈을 수정한 후 방부제와 크리스탈레진으로 광택을 냈다. 작업실에서 작가의 설명을 듣다 문득 고암 이응로가 형무소 안에서 밥풀을 이겨서 만든 조각들이 떠올랐다. 한국인에게 밥풀은 아주 오래전부터 요긴한 생활용품이기도 했다는 사실도 동시에 부풀어 올랐다.
근작은 실제 밥상이 차려져있는 상황극이 강조되었다. 이른바 밥풀로 이루어진 설치다. 밥과 국, 찌개그릇과 수저와 젓가락이 다소곳이 놓여있는 듯한 이 장면은 흡사 누룽지로 기존 사물들을 흉내낸 듯도 하다. 누룽지 조각이라고나 할까? 쌀의 종류에 따라 색상의 차이가 드러나고 그것이 은연중 회화적 효과 또한 자아낸다. 생명을 이어주는 이 필수적인 에너지원인 밥/밥풀이 음식 및 음식과 관련된 오브제를 모방하고 흉내내면서 가상의 공간을 연출한다. 그것은 각자에게 밥상에 관한 자신들의 추억과 감성을 자극하고 매개하는 것이다. 한국인에게 된장찌개와 밥, 김치 등은 평생을 먹고 죽을, 질리지도 않을 불가피한 음식들이다. 결국 이 음식물은 한국인이라는 민족적 정체성과 식문화를 알려주는 상징들이다. 음식만큼 동일민족구성원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매개는 없을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김치와 된장, 고추장을 먹지 않고는 살 도리가 없다. 그것이 밥풀 하나하나로 표현되고 시뻘건 색채를 덮어쓴 커다란 김치로 환생하면서 한국인에게 그 음식물이란 존재가 무엇인지를 새삼 상기하게 해준다. 또한 이 작업들은 단지 시각에 머물지 않고 미각을 자극하고 추억과 경험을 건드려주며 특히나 촉각적이고 부정할 수 없는 실체로 자리하면서 보는 이의 육체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도록 고려되었다. 그런가하면 그 음식을 준비하는데 여념이 없었을 어머니의 고단한 육신과 헌신적인 사랑, 마음을 우선적으로 상기하게 한다. 왜 밥상을 보면 코끝이 찡할까? 거기에는 어머니의 가족에 대한 사랑과 희생이 피처럼, 땀처럼 스며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황인선이 밥풀로 재현한 이 밥상풍경은 결국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추억과 감사, 사랑에 대한 헌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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