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1988년 이후, 한국의 공공미술

김영호

1988년 이후, 한국의 공공미술
Public Art in Korea Since 1988




1. 서언
한국에서 공공미술에 대한 제도적 관심은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1988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의 유치는 도시환경의 개선을 위한 공공미술을 강화하는 원인이 되었다. 물론 1980년대 이전에도 공공장소에 조각품들은 꾸준히 설치되어 왔다. 근대조각이 시작된 193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공원이나 대로와 같은 공공장소에 수많은 ‘기념조각상’이 세워졌다. 그러나 해방, 전쟁, 분단, 혁명 그리고 국토재건으로 이어지는 격변의 세월 속에 제작된 동상과 기념비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민족주체성 강화를 통한 권력의 유지를 위한 도구적 측면이 강하게 부각되었다. 광화문에 설치된 이순신장군상(1968)은 ‘기념조각상’의 전형을 보여준다. 공공미술의 개념이 대중에게 공개된 공공장소(public space)에 미술작품이 설치될 뿐만 아니라 문화사회학적 관점에서 작품과 대중이 상호 유기적 소통을 중요시하며, 대중의 문화적 취향을 높이는데 기여하는 미술이라면 공공미술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정치사회적 환경이 변화된 1980년대 이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1980년대 이후 한국의 정부가 주도하는 공공미술 정책은 재원에 따라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분류될 수 있다. 일명 1%법으로 불리는 <건축물 미술장식 제도>와 다양한 유형의 기금으로 추진되는 <공공미술 지원사업>이 그것이다. 이 두 범주의 사업들은 크게 ‘문화예술진흥법’과 ‘국민체육진흥법’ 등의 법률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본 발표에서는 건축물 미술장식 제도를 중심으로 공공미술의 역사와 전개양상 그리고 문제와 대안에 대해 살펴보겠다. 아울러 공공미술 지원사업으로 탄생한 수도권의 몇몇 조각공원에 대해서도 간략히 소개하려 한다.

2. 1%법
1%법은 도시에 대규모 건축이 들어설 때 건축비의 일정부분을 미술장식으로 사용토록 규정한 것으로 1982년 문화예술진흥법에 ‘건축물에 대한 미술장식’ 조항이 추가되면서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권장사항으로 되었던 것을 1984년 서울시가 문화예술진흥법을 원용해 건축조례에 미술장식을 의무화함으로서 강제성을 띠게 되었다. 86년과 88년의 국제행사를 앞두고 의욕적으로 추진된 미술장식 제도는 도시의 미관을 바꾸는 한편 공공미술에 대한 미술계의 관심을 기념조각에서 환경조형으로 변화시키는데 기여했다. 11층 이상 연면적 1만 평방미터 이상의 건축물을 대상으로 총공사비의 1% 이상을 비용으로 쓰도록 규정한 이 법은 서울올림픽이 끝나는 1988년부터 서울시를 넘어 전국적으로 확대 적용되기 시작했다. 1992년에 이르러서 상위법인 건축법시행령에 공사비 1% 투자부분이 권장사항으로 명시해 한동안 벽에 부딪치게 되었으나, 1995년 문화예술진흥법 시행령을 마련해 건축물 미술장식품 설치를 다시 의무화하게 되었다.

통계에 따르면 1995년부터 2008년까지 14년 동안 미술장식 제도에 의해 설치된 작품 건수는 총 10,684점이며, 미술장식품에 사용된 금액은 총 5,461억원에 이르고 연평균 390억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그 중 서울시에 설치된 대표적인 작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최재은 <시간의 방향> 강남 삼성병원
- 백남준 , 강남 포스코
- 강은엽 <네모와 원에 대한 단상>, 여의도 동양증권
- 스타치올리 <피라밋 A> 여의도 일신방직
- 조나단 보로프스키 <망치질하는 사람> 광화문 흥국생명
- 프랭크 스텔라 <아마벨> 강남 포스코

이상의 작품들은 도시의 미관을 향상시키고 일상에서 대중의 미감을 자극함으로서 문화적 소양을 높이는데 기여했다. 무엇보다 1%법은 경제적 어려움에도 창작에 전념하는 작가들에게 일거리를 제공하고 미술의 공공적 기능을 통해 대중들의 문화인식을 향상시키는 국가적 정책으로서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1%법은 시행 초기에서부터 ‘공공미술’의 개념을 건축물 ‘미술장식’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부작용의 씨를 안고 있었으며, 시행되는 과정에서 건축물 사용허가를 위한 형식상의 과정이라는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이른바 미술장식 제도는 건물의 물리적 치장을 위한 장식개념에 종속시킴으로서 건축주와 작가 그리고 심사위원의 의식을 왜곡시키고 운영상에 문제들이 발생되었다. 결국 문제들은 법제도의 모순으로 지적되고 건축계와 미술계의 개선요구가 커지게 되어 급기야 1%법에 대한 개정을 추진하게 되었다.

지난 2009년 정부는 문화예술진흥법 시행령 보칙에 건축물 미술장식제도에 대한 규제 재검토 조항을 신설했다. 이 조항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오는 2014년까지 이 제도의 적절성을 검토하여 폐지, 완화 또는 유지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개정 방향의 요지는 공공미술 개념을 도입하고, 미술장식이라는 용어대신 미술작품 설치로 대체하며, 공공건축물에 대한 비용을 1%이상으로 상향조정하고, 공공시설과 문화지구 등에도 공공미술을 도입하며, 민간건축주가 기금으로 납부할 수 있는 선택기금제(pooling system) 도입, 공공미술 프로젝트 를 위한 전담조직 설치, 기획대행자 등록제도 도입 등을 주요 골자로 삼고 있다.


3. 공공미술 지원사업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추진하는 또 다른 유형의 정책으로서 <공공미술 지원사업>은 주로 문화예술위원회가 운용하는 <문화예술진흥기금>과 국민체육진흥법이 2001년 도입한 <토토기금> 등에 의존하고 있다. 문화예술진흥기금의 재원은 정부의 출연금, 개인 또는 법인으로부터의 기부금품, 기금운용으로 생기는 수익금, 영화관 공연장 박물관 사적지 등의 관람료 일부를 공익자금으로 배정해 마련된다. 한편 토토기금이란 운동경기를 대상으로 투표권을 판매하여 경기의 결과 등을 맞춘 구입자에게 배당금을 주는 스포츠 배팅 게임을 일컫는 토토로 조성된 국민체육기금인데, 그 일부가 문화예술지원사업에 쓰이도록 되어 있다. 실행 초기에는 축구와 농구에 국한했으나 점차 야구, 골프, 씨름, 배구를 포함해 모두 6개 종목으로 확대되었다. 공공미술 지원사업의 유형은 매우 다양하지만 조각공원과 마을미술프로젝트 등이 지방자치단체의 관심을 끌고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조각공원이 조성된 이후 국내에는 조각공원이 전국에 걸쳐 경쟁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원인은 여럿이 있겠지만 크게 두개의 배경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제도적인 차원에서 1990년대 전반에 도입된 지방자치제가 낳은 산물이라 볼 수 있다. 문화예술의 경쟁시대로 접어들어 단체장들의 지역사회를 위한 노력은 조각공원 이외에도 문화기반시설로서 뮤지엄, 아트센터 등의 건립으로 이어지며 비엔날레, 프로젝트, 조각심포지엄, 미술제 등의 이름을 내건 문화사업을 전례 없이 추진하게 되었다.

조각공원이 확산되는 두 번째의 원인은 미술개념의 내적 변화에 따른 것이다. 이른바 엘리트미술 또는 형식주의 미술로 불리던 모더니즘의 시대가 지나고, 대항 문화적이고 행동주의적 미술이 실험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미술이 사회적 기능이 중요시되고 미술현상이 공동체 구성원들과 관계 속에서 확장되면서 공공장소에 조형물들이 요구되기 시작한 것이다. 1988년 이후에 조성된 수도권 지역의 대표적 조각공원으로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서울올림픽조각공원 (1988)
- 노을조각공원 (2009)
- 김포국제조각공원 (1998)
- 안양예술공원 (2005)

서울올림픽조각공원은 43만평이라는 규모와 더불어 문화예술, 생활체육, 환경생태, 역사체험 등의 종합적 테마를 가진 공간으로서 다양한 시설들이 갖추어져 있고 공원내에 산재한 미술품을 관리하기 위한 소마(SOMA)미술관을 두고 있어 모범적 사례로 꼽힌다. 한편 상암동의 쓰레기 매립지인 난지도 위에 세운 노을조각공원은 생태의 보고이자 생명이 숨쉬는 장소의 상징성과 더불어 명소로 자리잡은 경우다. 서울시에서 생산되는 산업폐기물과 생활쓰레기 산인 ‘죽음의 땅’에서 식물이 자라고 생태가 복원된 ‘생명의 땅’으로 변모하고, 여기에 예술작품이 결합되어 ‘창조의 땅’이 된 사례는 유례가 없을뿐더러 동시대의 문화이데올로기 비전을 제시하는 교육의 현장이 되었다.

한편 경기도 김포시 문수산 자락에 위치한 <김포국제조각공원>은 DMZ 접경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통일’이라는 테마를 단일성과 통합이라는 개념으로 표상한 두 차례의 조각심포지엄을 통해 30점의 작품이 설치되었다. <안양예술공원>은 삼성천 계곡의 물과 울창한 숲 그리고 전통사찰 및 문화재가 조화를 이루는 장소에 조성되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알바로 시자 전시관을 설치했고 2005년 국내외 작가 52명의 작품을 설치해 안양예술공원 부지 내에 조각공원을 조성했으며 일반에게 공개하면서 공원문화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상과 같은 모범사례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단체 별로 조각공원의 수가 경쟁적으로 늘어나면서 그에 따른 문제도 동시에 생겨나고 있다. 조성된 지역의 역사와 장소의 문화적 맥락을 소홀히 한 채 유명작가 중심의 작품을 설치함으로서 특정 작가가 전국의 조각공원을 장식하고 있는 편식현상이 그것이다. 또한 건립의 붐과 더불어 야외에 설치된 소장품의 관리 보존을 위한 종합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큰 과제가 되었다. 조각공원의 소장품에 대한 관리 보존 시스템의 취약성은 대부분의 조각공원이 일반공원으로 분류되어 관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원수나 시설 관리에 밀려 고가의 예술작품들에 대한 관리보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흉물로 방치된 작품들이 적지 않다. 이외에도 공원조성에서 제작설치 그리고 사후관리에 이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의 중심에는 공공미술에 대한 인식의 결여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그에 대한 대안과 해결 방안도 같은 맥락에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4. 결언
공공미술의 개념은 끝없이 변화하고 있다. 기념조각에서 건축장식물로 그리고 환경조형을 넘어 공동체미술로 이어지는 흐름이 이를 반영한다. 이른바 ‘전통적인 공공미술’이 공공의 개념을 물리적 장소와 연관 지어 작품을 제작하고 소통하는데 관심을 지녀 왔다면, ‘새로운 장르로서 공공미술(new genre public art)’은 장소를 물리적 공간의 차원을 넘어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소통의 공간으로 간주하며, 지역의 의미에 맞는 작품을 제작하고 지역공동체와 관람객의 참여하는 일시적 작업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공공미술의 변화는 작품 형식의 확산이라는 측면에서도 발견된다. 일반적으로 공공미술품이 설치되는 장소는 도시의 건축물과 광장이나 녹지가 대부분이고 조각, 벽화, 사진, 회화, 스트리트 퍼니쳐 따위의 전통적 장르를 포괄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기념비적 볼륨의 작품과는 다른 전자게시판과 광고판의 형식에 문자작업이나 영상 이미지를 매체로 이용한 일시적 작품으로 공공미술의 범주가 넓어지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공공미술을 새로운 시각환경 각성의 매체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기념비적 조형물과는 차이를 보인다. 쉬잔 레이시가 주장한 것처럼 이제 공공미술은 “전통적 또는 비전통적 매체를 사용하여 보다 광범위하고 다양한 관객과 함께 그들의 삶과 직접 관련된 이슈들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상호작용하는 시각예술”로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술가 후원이라는 측면에서도 공공미술은 시대적 소명을 다하고 있다. 경제 공황기에 미술 실직자를 위한 직업창출을 목적으로 태동된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이후 도시건축과 미관에 기여하는 정책으로 제도화되면서 예술가들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해 왔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퍼센트 법’ 역시 예술가 후원정책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나아가 작가와 대중 그리고 기관이 상호 밀접하게 연계된 공공미술은 이제 자연, 생태, 환경, 생명으로 그 외연을 확장하면서 대재앙의 시대에 대한 성찰의 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공공미술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새로운 시각예술을 위한 동시대 담론의 실험실이기 때문이다.
(2011.5/ 싱가포르미술관 강연회 발제문)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