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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재앙 시대의 문화담론

김영호

한국박물관협회 뮤지엄뉴스 칼럼(2011.3)

‘광주파산’, ‘대한민국 무너지다’, ‘일본침몰’... 최근 국내 한 일간신문이 톱으로 내보낸 기사 제명들이 과격을 넘어 극단적이다. 사건의 보도 내용은 세상의 종말을 담은 요한계시록을 떠오르게 한다. 신문사의 선동적 언어 행태가 못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신문이 다루고 있는 사건들은 동시대 현실에 대해서 곰씹게 한다.
과연 우리는 재앙의 시대를 살고 있다. 지진과 쓰나미가 대륙의 곳곳을 강타하고 홍수와 가뭄 그리고 허리케인이 환경을 교란시키며 에이즈, 구제역, 조류독감 따위의 바이러스가 지구촌의 생명들을 대량으로 위협한다. 이 거대한 자연현상의 위력 앞에서 인간이 일구어낸 과학과 기술은 무력하고 초라하기 짝이 없다. 어느 문명비평가의 지적처럼 21세기는 대재앙의 시대요, 재앙담론이 시대적 화두가 되었다. 그리고 재앙담론은 이제 전쟁, 약탈, 테러, 마약, 섹스 따위의 인간사 차원을 넘어 환경, 생명, 생태 따위의 자연사로 지구공동체의 관심을 확대시키고 있다.
대재앙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문화생산의 원리도 변하고 있다. 예술의 원천으로서 예술의지란 예술가의 세계관에서 나오고 그 세계관은 예술가가 속한 환경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면 작금의 예술의지 일부가 재앙담론에 관계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근대시기의 예술이 순수 자아에 기초한 이성과 과학 그리고 물질에 기초를 두고 전개되었다면 현대시기의 예술은 해체 (혹은 이중적)자아에 기초한 감성과 종교 그리고 불가사이한 자연의 성찰로 그 축이 이동되고 있다.
문화예술 기반시설로서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기능도 변화의 물결 앞에서 자유롭지 않다. 박물관이 지식의 저장고 기능을 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른바 근대의 여명기에 박물관은 국가의 보호막 아래 지식과 계몽의 산물인 유물을 수집 보존하고 전시하면서 존재의 당위성을 과시했고, 이후 근대가 진행되는 동안 대중들의 엘리트 교육을 담당하면서 위세를 펼쳤다. 그러나 이제 환경이 바뀌었다. 박물관은 감성과 창의의 에너지를 생산하는 발전소로서 인식되고 있으며, 동시대의 삶을 위한 문화 이데올로기를 연구하는 살아있는 실험실로 변화하고 있다.
박물관과 미술관은 기업과 도시 그리고 국가의 격을 높이는 공간이다. 이 시설은 직접적으로 수익을 만들어내지 않지만 지역의 경제활동과 생산물에 거대한 부가가치를 높이는데 기여한다. 국내외의 대기업 중에 문화예술 활동에 적극 기여하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 사이의 생산력 차이는 이를 증명하고 있다. 박물관은 학교나 종교시설과 더불어 국가를 지배하는 도구로서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라는 루이 알튀세르의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대재앙시대에 자연과 생태 그리고 생명을 둘러싼 치열한 문화담론이 요구되는 것은 그것이 우리 스스로를 반성하고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하는 근본이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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