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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이 강을 만날 때

김영호

강은 의미로 존재한다. 흐르는 물이 그렇듯 그것의 고정된 실체는 없다. 어쩌면 강의 이미지는 생각 속에 만들어지는 것이며 다양한 언어를 빌어 표현되면서 역사적 실재가 된다. 한반도 중부를 동서로 넓고 길게 흐르는 물줄기. 이를 대수(帶水)라 부르면 삼국(三國)의 강이 되고, 아리수(阿利水)라 부르면 광개토대왕의 강이 되고, 한수(漢水)라 부르면 백제의 강이 되며 한강(漢江)이라 이름 붙이면 한국 근현대사를 품어 간직한 애환과 산업화 그리고 기적의 강이 되는 것이다. 의미화를 거쳐 존재의 가치가 주어진다는 점에서 그것은 시인 김춘수의 꽃과 다르지 않다. 강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나에게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의 그릇으로서 끝없이 변화하는 대자연의 이치와 그 안에 깃든 생성과 순환의 법칙을 알려 깨우쳐주는 스승이 되기도 한다. 생태론자들에게 강은 국토를 실핏줄처럼 연결하며 그 사이에 서식하는 수많은 생명들을 잉태하고 생산하고 키우는 모태성징(母胎性徵)이다. 환경론자들에게 한강은 물의 흐름을 거슬러 서에서 동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이동하는 바람길로 인식된다. 이렇듯 강은 자신을 바라보는 주체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의미를 제공한다. 강은 묵묵하게 영겁의 세월을 흐르고 인간은 끝없이 의미를 부여해 온 것이다. 세월 속에서 강은 기호가 되었다.

예술가들게도 한강은 창조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의미생산의 형식’인 예술작품을 통해 표현된 강은 미술뿐만이 아니라 문학과 영화 그리고 만화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다. 한강을 묘사한 수묵화로는 겸재 정선의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과 혜촌 김학수의 <한강전도(漢江全圖)>가 최근 언론에 많이 오르고 있다. 현대의 작품으로는 강의 이미지를 수평과 수직의 기본적 구조로 환원시켜 파악하고 이를 추상적 언어로 번안한 최미연, 동판화의 독특한 기법으로 한강의 새벽을 심미적 풍경으로 연출하는 강승희가 떠오른다. 한강을 모티브로 삼은 문학작품으로는 조정래의 대하소설 <한강>,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 허영만의 만화 <오, 한강> 등을 빼 놓을 수 없다. 이들의 작품 속에서 한강은 저마다 다른 형식으로 고착되며 보는 이들에게 천의 얼굴을 가진 의미의 기호가 되었다.

조선 후기의 사대부 화가였던 겸재 정선이 65세에 제작한 <경교명승첩>은 한강과 그 주변풍경을 비단바탕에 수묵담채로 담은 산수화 33점을 두 권으로 분리해 묶어놓은 화첩이다. 겸재는 중국 남화(南畵)에서 출발하였으나 30세를 전후해 조선 산수의 특징을 살린 실경의 세계를 일구어 내는데 성과를 거두었으며 한강 외에도 인왕산과 금강산을 비롯해 우리나라의 해악(海嶽)과 강산 그리고 달과 곤충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여행을 즐겨 전국의 명승을 찾아다니면서 실재하는 풍경을 보고 그림을 그린 사생화가였다.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를 대표작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겸재의 작품 세계는 우리의 산천을 진경산수(眞景山水) 즉 ‘내면의 아름다움까지를 표현해 내는 참된 경치’로 요약된다. 그가 그린 <경교명승첩>의 화폭에는 늠름하게 묘사된 소나무나 여유 있게 늘어진 버드나무 그리고 여유로운 자태를 보이는 조선 선비의 차림새로 그려진 인물들이 자리 잡으면서 진경산수의 정수를 잘 나타내고 있다. 겸재 외에도 조선시대 양반 사대부들이 유람선을 띄워 풍류를 즐기는 명소로서의 한강, 소와 말 같은 짐승을 포함한 사람들을 나르는 나룻배와 고기잡이 어선들이 생업을 하는 일터로서의 한강에 이르기까지 높은 회화수준을 보여주는 그림을 그린 화가들은 많다. 신윤복, 김홍도, 정수영, 김석신 등의 그림은 조선의 당대의 풍속이나 풍경뿐만 아니라 문화를 알 수 있는 귀한 자료들이다.

혜촌 김학수 화백의 <한강전도>는 40년 넘는 작업기간을 통해 2006년 완성한 역작으로서 겸재의 한강그림과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평양출신 월남화가이자 역사풍속화가인 혜촌의 <한강전도>는 오대산에서 강화도 앞바다까지 장장 500Km에 달하는 한강을 두루마리 화폭에 담은 것으로서 한강을 그린 최장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폭 48cm, 길이 20m 가량의 화선지로 말린 두루마리 26개 분량의 그림은 전체 길이가 장장 350m에 이른다. 한강을 펼친그림으로 연속해 그린 사례는 이전에도 없지 않았다. 조선시대의 화가 정수영이 그린 <한강임진강유람사경도권>도 16m에 이르는 조선시대 최대 규모의 두루마리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길이 면에서 비교하면 혜촌의 것과 상대가 안된다. 혜촌은 역사풍속화 외에도 산수를 잘 그렸으며 이를 기리기 위해 인제대학에서는 김학수기념박물관을 설립해 그림과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대상의 외관을 묘사하는 예술형식으로서 풍경화는 직접적으로 주제에 반응하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게 마련이다. 겸재와 혜촌이 그린 이 두 작품의 의미는 한강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 외에도 진경산수의 전통을 잇고 있다는 점에서 발견된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독자적인 조선성리학의 정신을 기반으로 태어난 겸재의 진경산수는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표현해 내면서 고유이념을 생산해 내고 나아가 그에 동반하는 자기애와 민족애로 확대된다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예술가가 실현하는 의미 생산의 형식은 비단 구체적 대상의 재현을 통해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강을 모티브로 삼는 경우 물의 수평적 흐름과 수면에 반사되는 빛의 십자형 구조 속에서 세계를 인식하고 독자적인 예술의 조형적 형식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가령 수면보다 낮은 땅에 자리한 네덜란드 출신 화가 피에트 몽드리앙의 추상화는 수면에 비친 빛이 연출해 내는 공간을 기하학적 기호인 +-로 환원시켜 조형어법으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탄생되었으며, 추상 속에 자연의 본성을 표현하는데 성공한 경우다. 물의 땅을 떠나 마천루의 뉴욕으로 정착한 그는 이러한 수직과 수평의 구조를 도시 풍경으로 환치시키며 자신이 일군 고유한 형식을 물에서 도시라는 색다른 소재에 변용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자연풍경을 화면의 순수형식으로 환원시켜 추상의 세계를 일군 우리나라의 작가로서는 최미연이 있는데 ‘그는 형상을 묘사하는 기술적 노력이나 서술성보다 순수 미의 절대적 힘과 표현에 몰두한다’. 최미연의 작품은 몽드리앙의 그것처럼 수직과 수평의 선들로 조형되어 있다. 필자가 최근 접한 그의 작품은 도시의 이미지를 그린 추상인데 나로서는 거기에서 강의 이미지를 발견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의 흐름처럼 화면을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선들과 그 위에 비친 나무와 풍경의 수직적 선들이 교차하며 공간을 채우고 있다. 몽드리앙과 다른 점은 차겁고 기하학적 구조를 가진 선들이 아니라 질서 속에서도 자유분방한 리듬을 보여주는 선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며 이는 서정적 추상과 기하학적 추상을 융합한 구조를 취하며 해석의 다의성을 제공해 준다.

사실 특정한 언어나 어법으로 표현된 작품은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세계의 배면에 숨겨진 의미를 드러내기에 한계가 있다. 이 때 예술가들은 미학이나 예술철학과 같은 이론에 의지하게 된다. 인간의 예술표현 욕망을 추상충동으로 설파한 독일의 미술사가 빌헬름 보링거의 이론은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에 따르면 자연친화적 세계관이 우세할 때 대상재현적 형태의 미술이 만들어 지고 이를 통해 리얼리즘 양식이 고착되었다면, 현실을 초월하려 이상적 영역으로 여행을 시도하려는 욕망은 추상적 형태의 미술을 만들면서 형식주의 미술을 완성시켰다. 모더니즘 미술은 바로 구상에서 추상으로 이어지는 형식주의 미술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몽드리앙이나 최미연의 차갑고 뜨거운 추상은 이러한 모더니즘 미술의 문맥에서 역사적 가치를 지니게 된다.

판화의 기법으로 새벽 풍경을 연출해 내는 강승희는 1997년부터 5년 남짓 한강을 탐사하며 일련의 연작을 남겼다. 부식 동판의 기법으로 새겨진 강의 이미지들은 자연 풍경으로서 숲과 산 그리고 그 사이를 가르는 샛길과 나무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그가 그려내는 한강풍경은 특정한 지역의 외경을 묘사한 실경이 아닌 자신의 내면이 그려내는 심상풍경으로 전환되어 있다. 작가가 표현해 내려는 것은 새벽의 빛이다. 한강을 현지 답사하면서 잉태된 새벽빛의 영감은 동판화의 작업 과정을 거치며 ‘심의’의 새벽으로 화면위에 재창조된다. 작가는 심상적 풍경을 위해 동판기법의 다양한 효과를 최대한 사용한다. 판위에 초산원액으로 직접 그리는 노출부식(Spit bite) 기법은 수묵화에서 얻을 수 있는 발묵 효과를 위한 것이며 동시에 섬세한 토운이 교차되는 그라데이션 효과를 만들어 낸다. 깊고도 풍부한 질감은 강승희의 동판화에 심연의 어두움을 그려내는데 일조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동양적 명상의 세계로 이끄는 요인이 되었다.

각각의 그림은 다양한 의미를 생산하고 그 의미는 사상적 체계를 갖추면서 과거에 형성된 이념을 풍부하게 하거나, 당대의 시대정신과 조우하며 새로운 이념으로 전환시키는데 기여한다. 의미생산의 주체로서 예술작품은 과거를 돌아보고 현주소를 파악하게 하며 나아가 미래를 연계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과 영화 그리고 만화에 모티브를 제공한 한강의 경우는 또 다른 차원의 의미들을 제공한다. 조정래의 소설에는 한강의 외관을 묘사하는 서술적 마디들이 거의 없다. 그가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표상하려는 것은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에서 엿볼 수 있는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그에 있어 한강은 질곡의 한국 현대사를 품고 묵묵히 흐르는 역사적 주체이거나, 이념에 의해 고통을 당하는 현대인들의 총체적 존재를 상징하고 있다. 봉준호의 영화에 나타나는 한강은 괴물이 사는 매트릭스로 쓰인다. 감독에 있어 한강은 돌연변이를 생산한 하나의 특수공간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그의 한강은 불가사이로 가득 채워진 현대적 신화의 현장이며 그 속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속성으로서 추와 악과 위선을 품은 공간일 뿐이다. 허영만의 만화도 조정래의 소설과 동일한 목표를 위해 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1987년 <만화광장>이라는 월간 성인만화잡지에 연재로 시작된 그의 작품은 김세영의 글을 시나리오로 삼아 펼쳐 놓은 것이다. 1945년 해방을 서두로 한국전쟁, 휴전, 포로협상, 자유당정권, 5.16 군사쿠데타 그리고 광주민주화운동에 이르는 한국현대사의 현장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순, 갈등, 희망, 좌절, 변신과 투쟁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때 오 한강에 나타나는 한강의 의미는 조정래의 소설에 상징화된 그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작품 속에 흐르는 사상이 리얼리즘이라면 한강이라는 제목은 그 리얼리즘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이상에서 보듯 예술가들에게 한강은 의미를 생산하기 위한 모태였다. 조선에서 현대로 시대가 바뀌고 예술가들의 표현양식이 변화함에 따라 한강을 모티브로 삼은 작품들의 의미들도 바뀌게 된다. 대상의 외관을 그려내는 그림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소설이나 영화 그리고 만화 등의 장르로 한강이 표상될 때 그것은 자연 풍경으로서 한강의 차원을 넘어 한 시대의 사상과 이념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었다. 나아가 한강은 자연을 살아가는 개인의 미의식을 자극하고 발아시키는 창조의 샘이 되었다.

문화생산의 축으로서 한강은 특정한 인물이나 집단의 소유물이 아니다. 한강은 그것에 이름을 붙여 의미를 생산해내는 자들의 것이며 역사와 더불어 제작된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한강은 천의 얼굴을 지닌 기호가 되었다. 한강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모든 것을 제공하는 창조의 원인(原因)이다. 한강의 고정된 실체는 없으며 강은 의미로 존재한다는 말의 진의는 여기에 있다. (20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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