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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대입시 실기시험 폐지, 양시양비론

김영호

홍익대학교가 2009년 미대입시에서 자율전공 71명을 실기전형 없이 뽑은데 이어, 단계적으로 이를 확대해 2013년에는 대입 실기시험 전체를 폐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국내 최대의 미술대학이 내놓은 이러한 계획은 단순히 대학 입학시험의 차원을 넘어 교육계와 미술계의 지형도를 바꿀 수 있는 개혁안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대입 평가기준의 변화는 중등학교와 입시전문 미술학원의 미술교육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화단의 변화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실기고사의 폐지는 그동안 미술과 미술가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 자체를 크게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간 우리나라 미대입시를 둘러싸고 지적되어 온 문제점은 암기식 손기술의 습득과 그에 따른 부작용이다. 부작용이란 기능위주의 주입식 실기교육이 야기하는 창의력 및 흥미 저하, 과중한 과외비에 대한 학부모들의 부담, 실기평가를 위한 변별성의 부재, 학원결탁 등 각종 형태의 입시비리, 미술과 미술가에 대한 왜곡된 사회적 인식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으로 인해 미술대학을 포함한 예능계는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의 도피처이거나 부유층의 자녀들을 위한 결혼중매업소쯤으로 치부되어온 면도 있다. 입시와 관련해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제한된 시간과 획일적 평가기준에 의해 창의적 사고를 지닌 학생을 선발하는데 한계를 보였다는 것이다. 입시 실기평가를 해본 사람이면 마치 인쇄소에서 찍어낸 포스터처럼 획일화된 석고데생이나 정물수채화 앞에서 당혹감을 느꼈을 것이다.
한편, 이번 홍익대학교가 발표한 입시개혁안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홍익대학교의 입시비리에 대한 검찰수사와 관련해 연막작전 혹은 위기전환용으로 제시된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이러한 비난은 그동안 홍익대학교의 입시정책이 행정적 간편화를 위해 실기과목을 축소 폐합시켜왔으며, 창의적 끼를 지닌 학생들을 엄선하기 위한 방안연구에 소홀히 해 왔음을 지적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그러나 입시개혁안을 흑과 백의 논리로 나누고 극단으로 모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너와 나 그리고 우리들의 자녀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고 우리 공동체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홍익대학교가 발표한 대입 실기시험 폐지론이 미대입시의 비리나 학교나 학원에서의 교육방식의 한계와 같은 문제를 근절하기 위한 조치라고 보지 않는다. 입시비리란 법과 윤리의 사이에 흐르는 불확실한 실체이기 때문이고, 입시정책이 어떻게 변하든 학원은 수요와 공급의 원리 속에서 입학률을 높이기 위해 표준화된 전략을 구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 조치는 그간 지속되어 온 미대입시의 문제점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여론을 끌어안고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홍익대학교가 발표한 실기시험 폐지론을 둘러싼 평가는 다양하게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대학의 입장에서 우수한 미래의 예술적 자원을 선발하는데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가를 검토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국가적 차원에서 예술의 본성인 창의성을 증대시키는데 기여할 것인지를 따져 보는 일이다.
미대입시에서 실기시험 폐지의 궁극적인 목적은 각각 대학이 내세우는 목표를 성취시킬 우수한 지적능력과 창의적인 끼를 지닌 학생들을 선발하는데 있다. 우수한 지적능력을 평가하는 데는 수능과 내신 점수를 기준으로 세우면 될 것이다. 그러나 창의적 끼를 평가하는 데는 차별화된 평가방법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포트폴리오, 선묘테스트, 심층면접 등이 적극적으로 운용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고등학교에서의 미술활동 실적과 학업계획서도 평가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입시제도는 구미지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오래전부터 실행하고 있는 내용들이다. 포트폴리오의 경우 이를 대행하는 학원이나 개인의 출현을 염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입시과열과 도덕불감증 등 한국인의 윤리상의 문제이지 대학만이 떠안아할 책임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사회가 선진형으로 가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 할 수 있다. 21세기가 요구하는 예술가상은 창의적인 능력을 지니면서도 인문학적 소양 또는 과학적 인식 능력이 융합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오늘의 예술가는 철학, 사회학, 심리학, 역사학 종교, 테크놀로지, 과학 등과 융합하면서 큰 에너지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미술가는 현실도피적 태도를 지닌 부정부주의자나 보헤미안적 기질을 지닌 존재로 취급되지 않는다. 그들은 치열한 삶의 한가운데에서 인생의 본질을 직시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고급문화를 생산하고 전파하는 전도사들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맞게 이제 대학은 장인 양성소의 차원을 넘어 예술의 발전소로 거듭나야 한다.

출처: 아트인컬쳐, 2009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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