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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봉 / 자연 오브제 감싸안기

김영호


조각가 서성봉이 이번 개인전에 선보이는 작업은 바위와 나무둥치의 표면을 은백색의 알루미늄 철사로 감싼 것들이다. 용접기술로 처리된 철선들은 마치 담장을 뒤덮으며 자라는 덩굴처럼 보이거나 동물의 피부 밖으로 불거진 핏줄을 연상케 한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이번 작품 시리즈는 버려진 자연물을 감싸 안으려는 의도에서 제작된 것들이라 한다. 개발지역의 공사장에서 파헤쳐진 나무뿌리나, 강가에서 뒹구는 말라비틀어진 고목의 둥치, 그저 지나치기 쉬운 바위 덩어리에 대한 관심에서 작업 동기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작가는 인간에 의해 위협당하거나 소외되는 자연환경에 대한 발언을 하고 싶은 것이다.



신들을 주제로 삼았다 해서 모든 작품이 명작의 반열에 오르는 것이 아니듯 자연과 환경의 문제를 다룬다 해서 그 자체가 좋은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로부터 예술가란 자신이 처해있는 시간과 공간의 축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 두발을 딛고 서서 자신의 주변을 주시하는 관찰자이며, 그들이 선택한 당면 주제는 인생을 건 창조적 모험의 재료이기 때문에 존중되어 왔다. 서성봉의 경우 그가 선택한 자연과 환경의 문제는 이미 보편화된 화두라 하더라도 여전히 연구의 가치가 높다. 중요한 것은 작품의 가치가 단순히 주제를 설명하는 차원을 넘어 그것을 다루는 기법과 형식논리의 창의성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아는 일이다.

서성봉의 작업은 바위와 나무를 오브제로 선택함으로서 자연과 환경이라는 동시대의 문제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예술의 영역 안으로 들여온 그의 자연 오브제는 자체가 기호학적 접근의 대상이 될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자신이 발견한 자연물을 있는 그대로 전시장에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 생겨나는 의미들이란 생명ㆍ시간ㆍ환경ㆍ존재 등과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작가가 자연 오브제에 가하는 의미생산의 방식은 적극성을 띠고 있는데 이른바 용접기술로 처리된 알루미늄 철사의 사용이 그것이다. 바위나 나무의 표면을 감싸고 있는 알루미늄 선은 자연에 대한 작가의 발언 의지를 보여주는 요소이자 작품의 의미를 자연 오브제의 그것과는 다른 차원으로 반전시키는 요인이 된다.



이상을 정리하면 서성봉의 작업은 자연 오브제에 금속재질의 선으로 인위적 작업을 가함으로서 양자 사이에 어떤 관계성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요약된다. 바위(나무)와 알루미늄은 속성이 서로 다른 물질이다. 전자는 자연을 상징하는 물질이고 후자는 문명을 상징하는 과학적 산물이다. 따라서 두 재질 사이의 관계성은 상호 충돌하고 대립하는 느낌을 만들어 낸다. 작가가 시도하는 알루미늄 철사를 이용한 ‘감싸 안기’의 의미는 요셉 보이스의 펠트천이나 동물의 지방이 나타내는 ‘치유와 보호’의 의미와는 다른 것이다. 알루미늄 재질은 가볍고 부드러워 가공하기 쉽고 내식성이 뛰어난 소재지만 자연 오브제와의 결합은 결코 화합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데 해석의 초점이 있다.

서성봉이 사용하는 은백색의 알루미늄 철선은 바위나 나무의 표면을 따라 성장하는 덩굴이거나 동물의 피부 밖으로 불거진 혈관처럼 보인다. 알루미늄 철선으로 표현된 덩굴 이미지는 자연과 문명 사이의 관계를 역전시키고 있다. 자연 오브제를 덮으면서 자라는 알루미늄 철사의 이미지는 자연을 지배해온 인간의 문명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따라서 서성봉의 작업에서 느껴지는 드라마틱한 분위기는 자연과 문명의 조화와 상생 관계를 허무는 인간에 대한 고발의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서성봉이 선택한 작품 제목으로서 ‘감싸안기’의 의미는 궁극적으로 자연과 생명의 보호라는 희망을 담고 있다. 그러나 작품 제작의 과정에서 그가 선택한 형식논리는 역설적으로 ‘지배하기’의 어법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성봉이 작품으로 제시한 거대한 나무뿌리나 나무둥치에는 단절되어 버린 생명의 시간이 머무른다. 또한 그가 선택한 크고 작은 바위 덩어리 역시 광물질을 만들어낸 대자연의 힘과 영겁의 시간이 담겨있다. 그의 작품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시간과 생명과 존재 그리고 사멸과 탄생의 의미에 다시 귀를 기울이게 한다. 그러나 그의 작업 방식은 개념의 유희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가 시도하는 형식논리는 자연 오브제를 알루미늄 철선이라는 낯선 인공 오브제와 대질시킴으로서 그 의미를 감각과 은유라는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서 낭만주의자들의 비장함과 더불어 초현실주의자들의 상징성이 엿보이는 것은 주목할 부분이라 하겠다.(20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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