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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춘의 컴포지션 조각-혼돈의 대지에서 순수조형의 세계를 찾다

김영호

고재춘은 모더니스트의 길을 걸어왔다. 적어도 순수조형의 탐구를 근간으로 조소예술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모더니스트다. 작품의 제목으로 붙인 <컴포지션>이라는 단어에서 볼 수 있듯 그의 관심은 일체의 재현적 묘사를 거부하고 형태의 단위와 그 단위를 이용한 구성에 집약되어 있다. 조소예술의 바탕이자 작품제작의 기본 원리로서 컴포지션에 대한 관심을 기울인지도 10년이 넘었다. 순수형태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는 그로 하여금 조각가로서 갖추어야할 손의 힘과 조형감각의 날을 세우며 외길을 걷게 한 것으로 보인다.

고재춘이 사용하는 매체는 돌이다. 국내대학에서 조소수업을 마치고 1993년 이태리로 유학을 떠나 대리석 생산지로 손꼽히는 카라라의 국립아카데미에서 학업을 하고 2003년 말 귀국할 때 까지 고재춘은 돌조각에 전념해 왔다. 엄청난 대리석 재원을 지닌 카라라는 과거에서 오늘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명장들의 창조적 영혼을 자극하고 불후의 명작들을 탄생시킨 조각가들의 예향이었다. 이재춘의 이태리 생활은 이러한 역사적 현장이 발산하는 에너지를 공유한 시기였으며 자신의 창조적 욕망과 새로운 실험을 위한 용기를 제공해 주었을 것이다.

유학생활 10년의 세월동안 그의 학업은 적어도 돌을 매체로 한 조형과 구성 그리고 형태와 공간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의 작업에서 입체주의나 구성주의적 요소들이 엿보이는 것은 그의 환경이었던 유럽에서 수많은 선배대가들의 숨결을 현장에서 체감한 결과일 것이다. 유럽 조각가들의 조형어법을 따르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그들 선배의 영향 아래 놓여 있었다는 것은 좌시할 일이 아니다. 우리가 그의 작품 앞에서 섬세한 조형감각과 질 높은 구성능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그가 투자한 시간과 노력의 결실로 보인다.





이번 전시회는 두 번째 개인전이다. 귀국보고전의 성격을 지닌 전시회지만 유학의 결과물들을 공개하는 작가의 태도는 일견 소박하기 짝이 없다. 작가 자신은 이번 개인전에 남달리 큰 이슈를 내걸지 않고 있다고 겸손을 보인다. 그러나 사실 이번 개인전은 그에 있어 적잖은 의미를 갖고 있다. 그간의 작업들 전체를 함께 모아 선보임으로서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회를 위해 모아놓은 그간의 작품들은 인체작업과 순수추상작업 그리고 설치적 경향의 작업이다. 그 중 몇몇에는 전구를 사용해 빛에 의한 형태와 그림자의 변화에 주목케 하고 있으며 이태리산 대리석이 지닌 투명성을 작품으로 적극 끌어드리고 있다.

첫째로 주목되는 시리즈는 그동안 일관되게 탐구해 온 인체상이다. 인체란 작가의 조형능력과 표현 기량을 단숨에 노출시킬 만큼 어려운 주제라는 것은 작업을 해 본 사람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역시 인체조각을 완성하기 위해 소요되는 시간과 노력이 만만치 않았다고 토로하고 있다. 그만큼 인체조각에 애정이 깃들여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단위로 해체된 신체의 부분들을 기하학적 형태 또는 표현적 이미지로 형상화 하고 그 단위들을 조립해 나가면서 작업을 완성시키는 형식을 취한다. 엄격한 과정을 거쳐 결과물로 생산된 작품의 조형성은 <트라베르티노 로소>나 <카라라 비안코>의 독특한 재질감과 더불어 관객들의 심미적 욕망을 충족시키기에 손색이 없어 보인다.

작가가 이번 개인전에 선보이는 두 번째의 작품 시리즈는 불꽃 혹은 날개를 연상시키는 추상작업이다. 인체작업에서 갖게 되는 심리적 부담과는 달리 기하학적 형태의 작업은 작가에게 자유로운 순수조형의 세계로 몰입하는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물론 작가는 사전에 흙으로 에스키스를 만들고 지속적인 수정작업을 거쳐 최종적으로 돌로 옮기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깎아 세운 <스타두아리오> 대리석판의 둘레는 예리한 삼각형 비늘로 돌출되어 있는데 석판 내부에 뚫어놓은 삼각형의 형상들과 어우러지면서 비워내고 채워짐이라는 대비적 효과를 만들어 낸다. 작가는 이 대리석판은 일정한 비율로 간격을 두고 세워놓음으로서 입체적 볼륨을 만들고 게다가 빛과 그림자의 리듬을 가미시킴으로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낸다.

작가의 조형의지가 한 단계 더 공간을 향해 확산된 경우가 설치적 경향의 작업들이다. 사각의 다반위에 얹혀진 빵처럼 보이는 오브제들이 반복적인 패턴을 이루며 설치되어 있는데 각각은 하부에 조명장치가 되어 있어 빛을 머금고 있다. 대리석의 살을 통과해 비치는 빛의 효과는 그 위에 얹혀있는 오브제들을 귀한 대상으로 축성하는 효과를 발생시킨다. 그 오브제는 대리석 돌맹이로서 카라라 해변에서 채취한 것이다. 영겁의 시간이 만들어낸 둥글고 다양한 자갈의 표면에 작가는 절단의 행위를 가함으로서 인위성을 띤 인식 대상으로 변화시킨다. 그것은 마치 작가가 서있는 대지에 바쳐진 제물이거나 현대미술의 제단에 봉헌된 순수조형의 상징처럼 보인다.





이상 세 가지의 형식들은 저마다 독립적이지만 작가의 조형방식에 의해 하나로 집약되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조합에 의한 컴포지션>이다. 조합이란 말 그대로 단위를 모아 구성해 놓은 것이다. 단위의 조합은 작가가 다루는 대상으로서 인체를 이루거나 관객에 의해서 불꽃이나 천사의 날개로 상상되기도 하는데 이 모두는 작가의 손끝을 거치며 나름의 미학적 의미를 파생시키고 있다.

실로 고재춘의 조각은 모더니즘의 언어로서 성장해 왔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시대를 사는 오늘날 그 형식의 미학적 의미들은 새로운 구조와 함께 서술적 함의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작가의 작업은 이러한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보여준다. 컴포지션을 둘러싼 새로운 미학적 의미들이란 구성, 조립, 조직, 합성, 혼합, 성분, 기질, 성질, 배치, 배합, 구도, 단위, 구조 등과 연계된 것들이다. 이 무수한 개념들을 가시적 대상물로 현존시키는 고재춘의 작업이 그가 속해있는 시간과 공간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어떤 결실을 맺게 될 것인지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갖고 두고 볼 일이다. (20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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