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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형 박물관 <케 브랑리>를 보고

김영호

파리의 에펠탑이 엎드리면 코 닿을 곳에 새 박물관이 들어서면서 세느강변의 공기가 소란스럽다. 유럽 언론에서는 퐁피두센터 이후 최고의 건축이라는 평가가 벌써 나오고 있다. 그런데 케 브랑리(Quai Branly)에 대해 국내 언론의 시각은 의외로 비판적이다. 요지는 집권 대통령의 정치적 산물이라는 것과 약탈유물의 집결장이라는 내용이다. 일리가 없지 않다. 중앙 현관에 설치된 자크시락 대통령의 메시지나 원형 유리벽 안쪽으로 기둥처럼 쌓아놓은 엄청난 양의 악기 유물들은 프랑스 식민지배기의 영광과 권력을 과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케 브랑리에 숨겨진 힘은 그렇게 상투적 언어로 평가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프랑스의 문화정책은 강력한 정부주도형 전통을 지니고 있으며, 대통령이 재임 중 가장 큰 사업으로 미술관들을 건립하는 것은 칭송해야할 일이 아닌가. 자크 시락이 개막 인사에서 케 브랑리의 정치적 기능(une volonte politique)을 오히려 강조한 것도 드골(문화정책의 기반구축), 퐁피두(퐁피두센터 건립), 미테랑(그랑 루브르 신축)의 계보를 염두에 둔 20세기 프랑스 문화정치에 뿌리를 둔 강한 자신감의 표명으로 해석된다. 또한 박물관의 기능 뒤에는 역설적이고 전략적 베일들이 숨쉬고 있어 약탈유물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새로 개관한 박물관 평가의 잣대가 될 수는 없다.





새로운 차원의 동서미술사 연구에 기여
미술사가로서 뮤제 뒤 케 브랑리에 거는 기대는 적잖이 있다. 무엇보다 파리가 지구촌 전체의 문명과 예술을 좀더 균형 있게 연구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라는 기대다. 이집트와 고대근동 그리고 그리이스 문명의 발전소 기능을 했던 루브르에 의해 그동안 소외되어 왔던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그리고 동남아시아와 남아메리카의 문명과 예술에 대한 서구인들의 관심을 새로운 차원에서 일으켜 세울 가능성이 그것이다. 서양 중심의 미술사에서 탈피하여 균형 잡힌 동서의 미술사를 짜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파리에 본부를 둔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 선언과 연계하여 케 브랑리는 프랑스가 현대사상을 둘러싼 담론생산의 기회를 뮤지올로지의 측면에서 선점하는 효과를 발생시키게 될 것이다.

가령 개관을 기념하며 내놓은 기획전인 <몸은 무엇인가(Quest-ce quun corps?)에서 이제 몸은 영혼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의 존재를 넘어 서아프리카와 아마존 지역 등지의 다양한 사회가 만들어 낸 인류학적 개념을 망각의 샘으로부터 퍼올리고 있다.




케 브랑리의 성과는 건축적 측면에서도 잘 나타난다. 삼성미술관 리움을 설계한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의 작품으로서 거대한 큐브와 잘게 배치된 표면장식을 기조로 한 기하학적 외관을 지니면서도 화려한 외벽의 색면은 그랑 루브르나 퐁피두와는 다른 차원의 공학적 산물이다. 내부는 동굴을 연상케 하는 자유로운 곡선의 벽을 근간으로 동선이 유도되고 있으며 전시기법은 유리와 철골의 조립을 최대한 활용한 설치형 방식을 이용하고 있다. 벽면위에는 가죽을 덮어 씌움으로서 기존에 느끼지 못했던 기이한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 벽을 따라 관객이 잠시 걸터앉을 수 있는 휴식공간과 터치식 모니터를 이용한 동영상 자료들은 엄청난 양의 정보와 자료들을 현장에서 검색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입구에서 매표소로 이어지는 정원에는 전자정원을 연상시키는 다양한 크기의 투명막대기들이 식물처럼 꽂혀 있는데 각각은 빛을 머금고 있다. 초입의 바닥과 벽면에 투사된 동영상이나 기호들은 신선한 즐거움을 제공하며 관객을 맞아들인다.

뮤제 뒤 케 브랑리는 이렇듯 기능과 건축 면에서 21세기의 기운을 담고 있다. 이제 남은 일은 기회 되는 데로 가서 자신의 취향과 가치관에 따라 즐기고 연구하고 주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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