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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파리의 한인화가들 (1954-1960)

김영호

한국미술사상 최초의 프랑스 미술유학생으로는 1925년 파리에 도착한 이종우를 들고 있다. 이와 함께 1922년 경제학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로 건너간 후 베를린 예술학교에서 유학하고 1937년 파리에 도착한 배운성이나 1929년 도불해 6개월간 머물렀던 나혜석도 재불 한인화가들의 기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의 경우 일제 식민지 상황과 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활동이 매우 제한되어 있었다. 따라서 본격적인 파리 한인화가의 역사는 해방과 정부수립 그리고 전쟁의 고통을 모두 치룬 1950년대 중반 이후의 작가들로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고 이는 이종우가 파리에 첫발을 디딘지 30여년만의 일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전후시기의 화가들에 의한 한불 문화교류의 역사는 일반적으로 남관(54), 손동진(54), 김흥수(55), 김환기(55), 이성자(58), 이응로(58) 등이 도불한 1954-1958부터인 것으로 되어있다.

프랑스에 한인 미술가들이 정착한 시기는 재불 한인 교민사의 기원과 일치되고 있다. 이곳의 한인사회는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건너간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전쟁 직전인 1950년에 입국, 파리에서 신학공부를 마치고 서품을 받은 이영식 신부에 의해 최초의 파리한인공동체가 1954년 교구청의 승인아래 발족되면서 한인사회가 본격적인 집단활동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 활동의 배경은 주로 종교와 관련된 것이었지만 사업의 구체적 내용은 당시의 어려운 국내사정에 비추어 인재양성을 위한 장학사업에 그 주안점을 두고 있었다.

전쟁의 여파로 당시 유학생들의 생활은 경제적으로 극도의 궁핍을 면치 못하고 있었고 이같은 환경 속에 파리한인공동체의 주임신부는 유학생들의 정신적 지도자였다. 이영식 신부는 파리 6구 생 쟝 밥티스트(St-Jean Baptiste)가의 어느 성당 종탑아래 세칸방의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화가 유학생들과도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게 되었다. 1954년 도불한 남관이 집을 구하지 못해 사제관에서 6개월간 거처하기도 했고, 뒤를 이어 유학온 김흥수도 이 사제관에서 한동안 지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해방과 전쟁을 거친 근대화의 첨병들 중에 문화적 전사들의 예술은 이렇듯 개인적 삶의 어려움과 전후 국제 정세의 소용돌이 속에서 싹을 틔우고 있었고, 당대의 살롱전과 개인전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전후에 입국한 한인화가들의 주요 활동상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아카데미 드 라 그랑쇼미에르’에서 수학한 남관은 1958년 부터 <살롱 드 메>에 초대출품 하였고 트랑스포지숑(1964)과 우스똥 브라운(1965)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1966년 <망통회화비엔날레>에 대상을 받으면서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된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파리국립미술학교를 졸업(1959)한 것으로 알려진 손동진은 <살롱 데 장데팡당>, <카뉴국제회화제> 등의 전시회를 통해 작품을 발표하였고 한때 프레스코를 연구하기도 했다. 남관에 뒤이어 미도파화랑에서 도불기념전을 마치고 1955년 파리에 정착한 김흥수의 경우 동년의 <살롱 도톤느> 출품을 시작으로 라라 벵시(Leonard de Vinci)화랑(1957)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같은해 파리에 정착한 김환기는 베네지(Benegi)화랑(1956)과 파리 랭스티튜트(Linstitut de Paris)화랑(1958)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한편 1958년에 이주해온 이성자는 라라 벵시화랑(1958)을 위시로 1960년대에 파리와 칸느 등지에서의 개인전을 통해 꾸준히 활동을 하였고, 동년에 도불한 이응로는 앵포르멜 운동을 주도한 전위적 화랑이었던 파케티(Galerie Facchetti)와 전속계약을 맺고 1961년 개인전을 가져 콜라쥬 기법의 추상작품을 발표했다.

재불 한인화가들의 성과는 전후시기의 한국 화단으로 눈을 돌려보면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현대미술의 원년을 1957년으로 잡고 그 조형적 특성을 비정형적 추상미술에 두고 있는 우리로서는 국제적 경향으로서 전후 프랑스의 앵포르멜(Informel) 운동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현대미술의 태동이 전후 파리화단과 밀착되어 있고 그 선각자들은 파리 현지의 미술경향에 민감했던 재불 한인화가 들이었음을 당시에 제작된 작품들을 통해 재확인할 수 있다. 이들의 활동상황은 (비록 1960년대 이후의 파리화단은 앵포르멜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실험기였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한 면이 있다 하더라도) 1961년 제2회를 시발점으로 하여 1982년 제12회 까지 20년이 넘게 지속되었던 <파리비엔날레>의 출품작가들과 영향을 상호간에 주고받으면서 전통사상에 근거한 한국 추상미술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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