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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에 쓰이는 수의 마술

김영호



어느 과학영재교육원이 주최한 특별강연회에서 저명한 수학자의 흥미로운 발표를 들은 적이 있다. 강연의 요지는 ‘투표의 결과는 방법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 집단이 겨울여행을 떠나기로 하고 장소를 정하는데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 결국 투표를 하게 되었다. 강원도 평창과 강릉 그리고 제주가 거론되었는데 각자에게 용지를 나누어 주고 투표한 결과 전체인원 10명 중에 평창 3표, 강릉 3표, 제주 4표가 나와 제주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만족스런 결정이라 볼 수 없다. 제주 이외의 지역을 택한 사람이 전체의 과반수가 넘는 60%나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유도하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겨울을 만끽할 것인가 따뜻한 곳으로 피한을 갈 것인가를 우선 정하기로 한 것이다. 그랬더니 겨울만끽 6표(평창, 강릉) 따뜻한 곳 4표(제주)로 결정되었고, 제주는 1차 투표에서 탈락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2차 투표에서는 바다(제주)를 선호한 탈락자들이 합세하였기 때문에 평창 3표와 강릉 7표로 강릉이 결정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이상야릇한 숫자의 술법으로 사람을 헷갈리게 한다는 면에서 ‘수(數)의 마술’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같은 사례는 생활의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수의 마술은 비단 수학의 문제만이 아니라 집단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나아가 그것은 경쟁의 전략이자 경영술이요 나아가 정치의 기법이 된다.


최근 제주에서는 공공조형물 건립을 둘러싸고 불협화음이 그치지 않고 있다. 쟁론의 주제들을 보면 특정대학 출신자들 혹은 특정단체 구성원들의 담합, 제주가 아닌 타지역 특정 작가들의 독점, 심사위원과 응모자의 친인척 관계 등을 내세운다. 또한 심사의 투명성이나 심사위원 자격의 적부성 등을 따지기도 한다. 이에 대한 자치단체 담당부서의 입장이나 해명은 심사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집행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매번 동일한 문제들이 계속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나열한 쟁론의 내용들은 문제의 해결을 위한 근본적 요인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동일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를 심사위원으로 위촉할 경우 응모작가와 학연이나 단체 지연 그리고 혈연 등의 관계에서 자유스러운 사람을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또한 심사의 방식과 절차 그리고 기준을 사업의 특성에 맞게 정하는 지침서가 없는 상황에서 ‘수의 마술’을 불온한 의도로 사용할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심사위원 위촉과 심사규정의 제정 자체가 벌써 전문적인 사업이며 사업의 성공을 위한 근간이 됨을 알 수 있다.

작금에 벌어지는 문제의 근원은 바로 주최측이 사업 추진을 위한 메카니즘의 기본을 회피하거나 또는 생략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운영위원회와 같은 전문가로 구성된 추진기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추진기구는 심사위원의 선정과 심사규정의 제정뿐만 아니라 공모지침이나 조형물의 성격에 이르는 이른바 사업의 책임과 권한을 동시에 부여받은 조직이다. 사업의 성패는 이 조직의 전문성과 윤리성 그리고 추진력에 의해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주어진 조건 속에서 응모작을 대상으로 최고의 작품을 뽑는 심사위원의 권한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의 기구라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추진기구의 구성은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해야할 업무이다.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에 대해 주관부서 행정직 공무원들이 심사위원을 직접 선정하거나 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타 기관이나 단체에 일임함으로서 발단된 것이라는 언론의 지적은 타당한 것이다. 현재 제주도는 도립미술관건립사업이나 제주종합문화센터와 같은 대규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수의 마술’이 주는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한라일보, 한라칼럼, 2006년 3월 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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