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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도 미술사 및 평론 분야

김영호

열린 성장판 & 이슈 생산의 아쉬움
- 2005년도 미술사 및 평론 분야




개관

2005년의 미술사와 평론을 포함한 미술이론 분야는 전년도에 이어 꾸준한 양적 성장세를 유지했다. 기존의 학회와 협회에서는 두 차례 이상의 학술대회를 개최한 가운데 앞을 다퉈 국제 규모의 심포지엄을 기획했고,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여 새로운 연구방법론 모색을 위한 학회들이 창립되었다. 이러한 미술이론 활동의 양적인 증가와 영역 확대는 최근 급증하는 미술관, 화랑, 대안공간 등의 전시공간이나, 블록버스터형 전시회의 활성화 그리고 비엔날레 같은 국제 교류 활동의 확산에 자극을 받아 기존의 문화 현상에 대한 반성과 새 지형도 그리기에 대한 관심을 자극했다. 그러나 심화되는 외적 풍요로움에도 불구하고 동시대의 미학적 기준과 가치를 담아내는 학문적 성과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모습을 보였던 것도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일부 단체가 국제학술심포지엄을 통해 동북아시아 국가들 간의 네트워크 구축이나 구미 문화의 지배 담론에 대응하려는 공동의 노력을 전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언론과 대중 사회의 관심을 촉발시키는 이슈 생산에는 한계를 보였다.

미술이론에 요구되는 사회적 기능의 쇠락 현상과 미술비평에 대한 대중들의 무관심은 1990년대 중반 이후에 본격화된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궤를 같이한다. 우선 디지털 미디어가 생활의 중심에 똬리를 튼 사회에서 미술 애호가들이 원하는 것은 ‘정보’ 자체이며 수고와 인내를 요구하는 학회 참여가 아니다. 이미 정보 중독 현상을 보이는 대중들은 웹사이트를 주도하는 마니아들과 ‘네이버’나 ‘구글’과 같은 검색 엔진을 신봉하고 있다. 아울러 디지털 마니아들은 아날로그형 일간지의 기자들과 더불어 미술사가나 평론가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다. 얼굴 없이 떠다니는 신속한 정보 환경 변화에 편승하여 한해의 이슈는 이중섭과 박수근의 ‘위작 사건’을 불러일으켰고 결과를 법정으로 넘김으로서 미술 이론계의 자정 능력 부재를 드러냈다는 비난을 받았다. 3월에 시작된 미술은행제도나 미술관의 ‘책임운영기관화’ 그리고 ‘문화예술위원회’의 출범 등이 한해를 장식했던 사건으로 떠올랐지만 이들 사안에 대한 이론가들의 역할과 성과는 방관과 추종에 그쳤다. 미술 전문가들로서 미술사가나 평론가들에게 할당되었던 비평과 분석의 지면은 이미 미술기자들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

한편 문화의 세기라는 화두가 정부 차원으로 이동하면서, 공공 기관이 기존의 미술사와 비평가들을 제도와 권력의 울타리로 몰아넣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1990년대 이전의 미술이론가들은 독립적이며 자신의 사상과 심미안을 고집하는 문화적 투사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이론가들은 관료가 되어 정부 기관과 공공 단체가 요구하는 정책보고서나 연구 용역을 담당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이 과정에서 상실되기 시작한 것이 이른바 작품의 해석과 비판을 위한 개별적 기준과 가치 그리고 문화사회학적 의미를 검출해 내는 차별화된 방법론의 개발 의지였다.

이처럼 미술이론의 위상을 취약하게 만드는 원인들이 환경과 제도 등 미술 외적 요인의 변화에 따른 것이었다면 내적인 문제도 있다. 아직도 동·서 양비론에 치우친 학문적 성찰의 태도와 방법론이 그것이다. 이는 비단 우리 미술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동북아지역의 미술문화 발전을 위한 과도기적 현상이면서, 동시에 내부에 모순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페미니즘 운동의 사례에서 보아온 것처럼, 유럽 중심주의에 대응하여 형성된 아시아 문화의 정체성은 그것이 완성되는 순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가설이 그것이다. 가령 여성의 정체성을 남성의 부재로 규정하는 것에서 오는 한계가 양비론적 사유와 해석의 문제라 할 수 있다. 2005년 벌어진 국제 규모의 학술 행사에서 보인 방법론은 이러한 방법적 한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는 차별성의 문제가 과거사 극복의 단계를 위한 현대의 당위적 방법론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 내재된 한계와 모순의 구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 미술사와 미술 비평의 위기는 21세기에 들어 심화되는 인문학의 위기와 맥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지구촌의 보편적 현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른바 ‘예술 창작과 비평의 혼돈기’로 불리는 현실에서 구미지역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적 기류에 감염되어 있고, 아시아나 아프리카 대륙의 각국은 문화의 지형도를 새로 구축하기 위한 노력과 자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세우기 위한 시도는 세기말 유네스코가 선언한 ‘문화적 다원주의’의 울타리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성장판 열린 학회활동

2005년 국내 미술이론단체의 활동은 예년과 같이 크게 정기 발표회와 주제를 내건 심포지엄의 형식으로 전개되었고 발표된 논문들은 대부분 학술지로 출간되었다. 전자는 연구자 각자의 개별적 연구 성과를 소개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후자는 학술 문화를 형성하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지닌다는 점에서 차별화 된다. 본고에서는 글의 성격상 후자를 중심으로 주요 단체들의 활동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1989년에 창립되어 서양미술을 둘러싼 학술 문화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쳐온 서양미술사학회(회장 이한순)는 두 차례의 정기 학술발표회와 두 차례의 학술심포지엄 등 모두 네 차례의 학술 행사를 개최하는 의욕을 보였다. ‘동아시아 미술과 서양미술사’라는 주제를 내건 국제학술심포지엄(이화여자대학교, 4. 26)은 오래된 화두임에도 수용과 변용의 역사를 아시아의 범위로 확장시키는데 기여했다. 발표된 논문은 <선망과 극복의 대상: 한국 근대미술과 서양미술>(김영나), <중국에서의 개혁의 요구와 서양미술사의 해석들: 1917-1937>(완칭 리, 홍콩대학교), <대만 현대미술에 나타난 이데올로기적 자연주의의 변용>(쉐 바오샤, 국립 타이난대학교), <‘미국’을 소비하기: 전후 동아시아에서의 문화적 헤게모니>(요시미 슝야, 동경대학), <파리 비엔날레와 한국 현대미술>(정무정) 등이다. 한편 4회째로 접어든 분과학술심포지엄(계원조형예술대학, 10. 22)에서는 ‘미술사와 혼성성’이라는 주제 하에 <혼성성과 이질성: 다비드 레제의 작품에 나타나는 이질적 기법의 혼용과 그 의미>(김승환), <추상미술, 그 의미의 다양성>(마순자), <스테레오타입: 재현된 아시아 여성과 아시아계 여성의 재현>(김현주), <‘잡종’ 미국인들: 1990년대 자서전적 작품들의 범람과 저자의 부활>(김진아) 등의 논문이 소개되었다.

1993년에 창립되어 한국 근대미술 분야의 연구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 온 한국근대미술사학회(회장 이중희)는 두 번의 정기학술대회와 국제학술심포지엄 등 세 차례의 학술행사를 개최했다. 그 중 춘계학술대회(이화여자대학교, 4. 16)에서는 ‘1950년대 한국사회와 미술’을 주제로 내걸고 전쟁과 전후 시기의 사진과 회화, 조각에 대해 진단했으며 <1950년대 미국에 소개된 한국미술>(정무정), <1950년대 한국 사진과 ‘인간가족전’>(박주석), <전후 한국 미술에 나타난 가족 이미지>(김이순), <이승만 동상 연구>(조은정) 등의 논문이 소개되었다. 한편 국제학술심포지엄(10월 1일, 덕성여대)에서는 ‘한·중·일 근대관전 비교’라는 주제 아래 동북아시아 3개국에서 개최되었던 관전의 성립 배경과 전개 그리고 화풍 분석에 이르는 세부적 내용들을 다뤘다. 발표된 논문들을 보면 <일본 근대에 있어서 관전 성립과 전개>(사토 도신❲佐藤道信❳, 동경예술대학), <일본 관전의 작품 경향-제전기(帝展期)의 일본화를 중심으로>(후루타 류❲吉田亮❳, 동경근대미술관), <식민시대의 대만 관전과 재야 단체전의 비교>(셰리파❲謝里法❳, 前 대만사범학교), <일제 시기 대만미전에서의 화풍 재고(再考)>(린위춘❲林育淳❳, 대북시립미술관 연구원), <조선미전의 설립과 그 결과>(이중희), <조선미술전람회의 관전 양식-일본 관전과의 관련을 중심으로>(김현숙) 등이 있다.

‘미술사, 미학, 조형예술학, 미술비평, 철학 등 다양한 영역간의 상호보완적 연구방법을 근간으로 20세기와 그 이후의 미술을 진단한다’는 설립 취지를 내세우며 1997년에 창립된 현대미술학회(회장 박일호)는 한 해 동안 전시 기획과 비평이라는 화두에 초점을 맞춰 현대미술의 쟁점들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냈다. ‘미술 전시기획의 실제’라는 주제로 개최된 춘계학술대회(중앙대학교, 4. 23)에서는 <예술의 종말 시기의 미술관>(김영호), <중국의 ‘대장정: 행진하는 시각전시’를 통해서 본 글로벌 시대의 전시 기획의 몇 가지 과제>(양은희), <디지털 아트 전시에 있어서 접촉의 양상에 관한 연구: 제3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를 중심으로>(윤진섭) 등이 논문이 소개되었다. 한편 ‘미술과 미술비평’이라는 주제를 내건 추계학술대회(이화여자대학교, 10. 8)에서는 <김복진과 미술비평론>(윤범모), <에꼴 드 니스와 미술비평>(서영희), <미술비평의 효용성에 대해 다시 묻는다>(최태만) 등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현대미술사학의 발전과 저변인구 확대 및 교육을 목표’로 1990년에 창립된 현대미술사학회(회장 김정희)는 두 차례의 정기 발표회와 한 번의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춘계와 추계에 걸친 발표회에서는 스테인드 글라스에서 컴바인 페인팅에 이르는 매체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한국미술과 여성미술가, 그리고 전시회와 시각 문화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의 논문들이 다수 소개되었다. 한편 제6회 학술심포지엄(서울대학교, 10. 29)에서는 ‘Higt Art / Low Tech’를 주제로 내걸었다. <동시대의 테크놀로지와 시간, 공간의 직조>(이영준), <대중문화의 표면과의 게임 또는 새로운 매체와 지각 양식의 모색-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의 바이마르 문화비평 및 영화이론과 그 현재성>(김지훈), <은유의 건축술: 앨런 케이(Alan Kay)의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박해천), <레베카 혼 또는 전미래시제의 패러독스>(강영주), <노동과 글쓰기: 슈빙(Xu Bing)의 [S]low-Tech>(이지은), <회화와 사진: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18. October 1977>(김승호) 등의 논문이 소개되었고 최병일, 최성민, 홍승표 등의 미술가를 발제자로 초청해 눈길을 끌었다.

‘미술창작 현장의 활동을 이론적으로 지원한다’는 지표아래 작년인 2004년에 창간된 한국미술이론학회(회장 정영목)는 두 돌 행사로 ‘전시와 권력: 1960년대 이후 한국현대미술’이라는 주제의 춘계학술대회(대전시립미술관, 6. 11)를 개최해, 미술을 둘러싸고 형성되어온 문화권력의 정체와 의미를 살펴보았다. 이색적으로 지역미술관 현장에서 열린 이 행사에서는 <큐레이터십과 관련한 전시권력>(이지호), <1960-70년대 한국현대미술에 작용한 권력>(김형숙), <지역미술과 전시권력>(박영택), <휴지기의 파워게임- 권력과 비엔날레>(김현도), <전시기획을 통해 살펴보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새로운 패러다임>(최은주) 등의 논문이 소개되었다. 한편 학술심포지엄(국민대학교, 11. 5)에서는 ‘한국의 초기추상미술’이라는 주제로 일제 강점기에서 1970년대에 이르는 추상미술의 기원과 전개 양상에 대한 그간의 논의를 재정립했다. 행사는 발제문 <추상,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오광수)에 이어 발표된 논문으로 <한국의 근대추상미술>(정형민), <1920~30년대 일본의 추상미술>(고바야시 슌수케❲小林俊介❳, 야마가타대학), <추상, 그 미학적 담론의 초기현상>(이인범), <색으로 본 김환기의 작품세계>(김현숙), <유영국의 초기추상, 1937-1949>(정영목) 등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금년 2005년에 창립된 학회는 ‘한국예술학회’와 ‘인물미술사학회’ 두 단체였다. 한국예술학회(회장 김복영)는 기존의 미술사학, 미술비평, 미학과의 연대를 시도하고 자연, 인문 사회 영역의 학제간 연구를 강조한다는 취지 아래 창립되었다. 이 학회의 창립 취지는 기존의 현대미술학회와 더불어 학제간 통합연구를 통해 미술이론의 난맥상을 극복하려는 시도라는 차원에서 주목된다. 창립학술대회(홍익대학교, 5. 28)에서는 ‘미디어 시대의 예술의 역할’이라는 주제 하에 네 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는데 <미디어 시대의 예술의 문제와 전망>(김광명), <디지털 매체예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심혜련), <매체미술의 미학: 페터 바이벨의 소론을 중심으로>(박정기), <후기매체시대와 이종적(異種的) 예술>(김원방)이 그것이다. 한편 추계학술대회(홍익대학교, 11. 12일)에서는 ‘현대미술과 이미지’를 주제로 현대미술에서 영화, 미디어아트, 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음과 같은 다양한 분야의 논문들이 발표되었다: <들뢰즈와 매체예술에서의 이미지>(박영욱), <테크놀로지 사회의 이미지 커뮤니케이션>(전혜현),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공(空) 이미지>(이봉순).

한편 인물미술사학회(회장 윤범모)는 모더니즘의 시기를 전후하여 미술작품 중심으로 전개되던 미술사의 관행에 물음을 던지고, 작가의 전기적 관점이나 작품을 생산하는 미술가의 주체에 대해 사적인 맥락으로 접근하려는 의도에서 창립되었다. 창립학술대회(국민대학교, 10. 15)는 ‘인물미술사학의 현황과 과제’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는데, 인물미술사의 필요성과 가능성 등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이 행사를 통해 <인물미술사 기술의 가능성과 범위>(김백균), <미술사연구에 있어서 바이오-비블리오그래피(Bio-Bibliography)의 의미>(강태성), <아도르노의 비판이론과 탈근대적 예술가 주체의 문제>(김준기), <인물미술사학의 현황과 과제>(최열), <반추되는 일제 관학자 세키노 타다시-‘이시아 답사’ 전시를 중심으로>(김영순) 등의 논문이 발표되었고 행사장을 메운 방청객 수는 관심의 정도를 반영하였다.

마지막으로 1956년에 창립되어 50주년 행사를 앞두고 있는 한국미술평론가협회(회장 윤진섭)은 ‘미술계의 제도변화 바람직한 방향은?’이라는 주제를 내건 춘계 세미나(이화여자대학교, 5. 14)를 통해 <국립현대미술관 책임운영기관화의 문제점>(최열), <문예진흥원의 민간기구로의 전환에 대하여>(이선영), <미술은행제도의 운영과 정책과제>(김찬동)등 미술계의 세 가지 현안문제를 다루었다. 한편 제1회 동북아비평포럼(포스코빌딩, 7. 28)을 개최하면서 ‘비평의 위기: 미술비평과 전시기획 사이’라는 주제를 내걸었다. 이 국제학술행사에서는 <미술비평의 위기와 그 역할의 변천: 일본의 경우>(타니 아라타❲谷新❳), <큐레이터의 영역확장과 현대비평의 딜레마>(이준), <비평의 위기>(윤진섭), <새로운 미술비평과 큐레이팅의 접점을 위한 모색>(이원일), <예술의 비평: 다원과 규범>(인슈앙시❲殷双喜❳, 북경중앙미술학원교수), <미술에 대한 글쓰기와 큐레이팅의 현장>(창쏭쭝, 구겐하임미술관 아시아미술컨설턴트) 등의 글이 소개되었다.



현상과 쟁점

한 해 동안 개최된 학술 행사에서 예년에 비해 눈에 띄게 달라진 내용은 ‘동북아시아에 대한 관심’이었다. 그 중에도 중국미술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되었는데 이는 세계의 주요비엔날레에 중국작가들이 대거 진출한 이후 그 여파가 미술시장으로 쏠리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라리오 베이징, 표화랑, 예술공간 이음 등 화랑과 대안공간의 북경 상륙을 기점으로 국내의 화랑들이 중국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것도 중국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데 직접적인 동인이 되었다. 중국미술의 약진은 국내에서도 학술 행사를 통한 이론가들의 교류 활동 증대를 가져왔고, 구미 지역 일변도의 관심에서 동아시아 미술의 정체성 찾기와 국제적 미술지형도의 변화를 주도하기 위한 공동 학술 행사를 개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언급한 ‘동아시아의 근대관전 비교’, ‘미술비평과 전시기획의 전략’, ‘동아시아 미술과 서양미술사’ 등의 화두는 이 같은 배경에서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의 개관부에서 밝힌 것처럼 학술 행사를 통한 한·중·일 이론가들의 만남은 여전히 소극적이었고 ‘심화된 동·서 양비론의 대립각 세우기’라는 시각에서 여전히 한계를 드러냈다.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한국미술의 발자취에 대한 비판적 고찰 역시 2005년 한 해 동안 꾸준히 이뤄졌다. 유영국과 김환기를 중심으로 형성된 한국의 초기 추상미술에 대한 재조명이나, 일제 강점기 하에 설치된 조선미술전람회(선전), 해방 이후에 동일한 제도를 승계하며 지속되었던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와 같은 관전의 기능과 역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의 성찰들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1950년대 한국 사회 속에서 변화되어 온 미술의 궤적에 대한 연구들이 줄을 이었고, 2005년 정부 차원의 3대 정책 현안과제로 불리는 미술은행제도, 공공미술관의 책임운영기관제, 문화예술진흥원의 문화예술위원회로의 전환 등이 논의되었다. 그러나 학회 내에서의 강경한 발언이나 열띤 토론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행사장의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적 논쟁과 이슈로 확대되고 미술계의 토론과 대안을 도출해 내는 데에는 여전히 한계를 보여주었다. 미술전문지의 귀는 학술 행사와 그 성과에 대해 여전히 닫혀 있었고, 일간지의 입도 그와 다르지 않게 다물었던 한해였다.

미술사와 비평의 방법론에 대한 변화도 한 해 동안의 자료를 정리하면서 발견된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어느 때보다도 혼성, 다양, 잡종이라는 용어가 피상적 구호를 넘어 구체화 된 사례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미디어 시대에 있어서 미술의 역할이 그만큼 큰 폭으로 파장을 일으키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현상은 우선 예술이론 쟁점의 복합성과 방법의 교차 연구에서 발견되었다. 가령 미술비평이라는 용어는 점차 사라지고 문화비평, 미디어비평, 시각문화이론, 메타비평 등의 용어가 빈번히 사용되고 있음이 이를 확인케 한다. 이러한 현상은 <다빈치 프로젝트>, <기술과 인간의 만남>이나 <예술과 과학의 만남>과 같은 예술 생산과 해석을 둘러싼 담론의 가능성이, 미술을 넘어 인문학적 성찰을 기반으로 자연과학에 이르는 영역으로 통합되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이제 인터넷과 휴대폰 그리고 DMB 등의 미디어에 휩싸여 살고 있는 우리에게 예술과 과학간의 관계에 대해 재고하는 것은 그야말로 시대적 소명이 되었다. 기계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성찰의 키워드들은 이 시대의 예술 생산뿐만 아니라 그것의 근원과 전개 양상 그리고 해석의 잣대를 제시해야 하는 과업이 미술이론계에도 주어져 있음을 암시한다.

마지막으로 미술비평의 실종에 대한 자성의 소리도 최근 몇 년에 걸쳐 연중행사처럼 지속되었다. 이는 미술이론의 방법론이 혼성주의적 경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현상적 특성과는 별도로 다뤄야 할 사안이다. 달리 말하자면 하나의 장르로서 미술비평의 실종은 미술이론의 사회적 기능의 상실쯤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한국 사회의 성격에 대한 문화적 대응의 상실이라는 말이 된다. 이미 미술계에 만연되고 있는 미술이론 경시현상과 미술비평의 위기는 2005년에도 큰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이는 비단 미술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문학이나 영화 그리고 음악 등 문화 현상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포괄적 현상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미술비평의 위기는 미술정보의 과잉 생산을 야기하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맥을 같이한다.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전문 비평가의 글이 아니라 인터넷 지식검색에서 마니아들이 쏟아내는 정보’라는 이동연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의 다음과 같은 주장은 암시하는 바가 크다. “비평의 위기는 단순히 텍스트나 이미지 해석의 위기를 넘어 비판적 상상력의 실종과 비판적 글쓰기 생태계의 위기”를 의미한다.”

<월간미술 연감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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