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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대학 조소과의 현실과 문제

김영호

국내대학 조소과의 현실과 문제



I.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집계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4년 현재 국내 대학에 설치된 조소관련 학과는 모두 16개 대학으로 되어 있다. <조소과>라는 명칭을 쓰는 대학은 서울대, 성신여대, 홍익대, 충남대가 있으며, <조소전공>으로 편재된 대학은 동국대, 상명대, 이화여대, 대구가톨릭대, 대진대, 동아대, 영남대, 충북대 등이다. 또한 건축물 1%법 시행 이후 높아진 공공조형물에 대한 관심과 수요에 대응하여 신설된 <환경조각과>의 경우로는 서울시립대, 경원대 등이 있고 <환경조각전공>으로 설치된 대학은 경기대가 있다.
아쉽게도 이 통계자료는 현재 국내 대학 조소과의 현황과 문제점을 진단하기 위한 정보로서 신뢰할 만한 수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일례로 중앙대에 설치된 <조소학과>가 누락된 반면 동국대의 그것은 중복 표기되어 있으며, 새로운 교육이념을 내세우고 출범한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조형예술과>나 인천가톨릭대학 <종교미술학부>(1998년 개설) 등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수의 대학에서 운영하며 다양한 장르의 작가를 양성해온 <미술학과>나 <미술학부>도 이 통계자료에서는 조소과와 별개로 다루어지고 있다. 이른바 다양하고 복잡해진 미술대학의 학과 명칭은 혼돈시기에 접어든 미술계의 얼굴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장르간 구분이 사라지고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으로 기존의 순수조형작업이 위협받고 있는 현실에서 미술대학 조소과의 현황과 문제점을 진단하기 위한 것이다. 상아탑의 견고한 울타리에 안주하던 조소관련 학과들은 급변하는 국내외 미술환경에 대응하여 스스로 변화하거나 조소예술의 개념을 재정립하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에 놓여있다.
<II.
변화와 재편의 필요성은 비단 조소 관련 학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미술대학 전반에 걸쳐 제기되고 있으며 나아가 우리나라 미술계가 직면한 상황이기도 하다. 조소과의 문제점은 동양화과, 한국화과, 서양화과, 공예과 등 미술대학의 모든 학과가 지닌 문제점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커리큘럼의 개혁은 고사하고 아직도 우리는 학과의 명칭에서부터 한계를 안고 있다. 해방 후 반세기가 지나도록 우리의 대학은 일제가 만들어낸 학과의 명칭을 그대로 승계하며 동양화가, 서양화가, 조각가라는 왜곡된 이름의 전문인을 배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문제점을 누구나 인식하고 있는 이상 학과의 명칭을 바로잡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이름은 일종의 그릇과도 같은 것이며 잘못된 그릇은 삶에 대한 치열한 성찰의 편린들을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조소과를 포함한 미술대학의 환경변화를 야기한 근본적인 원인의 하나는 소위 <모더니즘 미술의 종말>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소위 전통적 조소예술이 고귀하게 품어왔던 ‘순수조형’의 목표가 삶과 현실에 대한 각성과 대응이라는 보다 근원적 예술 생산의 동원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 이제 예술은 자율과 순수형식에서 벗어나 인문학적 성찰에 젖줄이 연계되어 철학, 사회학, 심리학, 종교학, 역사학 등에서 자양분을 흡수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또한 예술은 생산자로서 작가 중심에서 벗어나 소통의 주체인 대중과 긴밀한 관계망을 구축하고 있으며, 문화산업 혹은 예술경영 등의 명목으로 경제논리가 영향력을 행사하며 독립적인 미술의 본성을 교란하고 있다. 이러한 모더니즘의 종말적 상황은 미술계의 세대교체를 요구하면서 대학에 급격한 변화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모더니즘 미술의 퇴조와 함께 나타나는 대학의 변화는 교육 주체들의 세대교체에서도 발견된다. 이른바 대상 재현적 표현을 근간으로 삼은 전통적 조소예술 1세대 교육자들에서 추상적 경향의 모더니스트 조각으로 교체된 2세대 교육자들 이후 현재는 다양한 매체와 설치적 경향의 작업을 전개하는 일종의 3세대 교육자들이 대학에서 새로운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세대교체는 국내 미술대학의 기능 변화와 궤를 같이하며 조소예술의 개념을 확장시키거나 해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역설적으로 국내 미술계의 서구미술의 유입과 정착의 과정에서 잠재되었던 혼돈의 씨앗을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국내 미술계와 대학에서 대두되고 있는 문제점들은 강점기에 유입된 서구미술이 뿌려놓은 이중적 왜곡과 연관을 지니고 있다.

III.
우리나라 조소예술교육의 문제점은 전기했듯이 미술대학 전반의 문제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웹사이트에 소개된 그간의 글들을 바탕으로 그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인문학적 자양분이 없는 커리큘럼과 장인적 기능을 강조하는 기능위주의 교과과정이 아직도 국내 미술대학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인문학적 성찰의 뒷받침 없는 창작교육은 그대로 빈약한 내용의 작품을 생산케 하는 원인이 된다. 작가는 배출하지만 예술가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대학교육의 한계가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의 축적 없이 순수조형 위주의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예술가로서 소명의식이 생기기 힘들며 인생을 온전히 건 예술가로 노정을 선택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게 된다. 앞서 말했듯이 오늘날의 미술은 철학, 사회학, 심리학, 역사학 등의 인문학적 성찰에 힘입고 있다. ‘예술이란 의미생산의 형식’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의미의 망을 형성하는 인문학적 비젼은 대학교육에서 필수적으로 강화해야할 대목이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지만 예술가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

2. 학습방법에 있어 도제적 승계를 존중하는 관습에 갇혀 비판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국내 대부분의 조소학과에는 아직도 토론식 교육이 자리 잡지 못하고 있으며 특정 교수의 울타리 안에서 장인적 기술전수 교육으로 자신의 관심분야에 대한 도전의식이나 성찰에 근거한 문제제기가 부족하다. 그 결과로 작품은 삶과 환경에 대응하는 삶에 대한 성찰의 결과가 아닌 내적 자율성이나 형식주의 등의 무표정한 모더니즘 효과에 빠져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표정 있는 자신의 예술을 위해서는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사회와 환경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해 부단히 의문을 제기하고 성찰하는 습관을 스스로 키워야 할 것이다. 대학의 예술교육은 전수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학습하는 것이다.

3. 작가양성을 위한 순수조형 위주의 교육으로 졸업 후 다양한 미술 관련분야 진로선택의 범주가 제한되어 있다. 미술대학생들의 졸업 후 취업 문제는 오래전부터 주된 관심 대상이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내놓은 조소과 졸업생의 취업분야를 참고해 보면 예술계 학원 강사를 비롯하여, 중등학교 교사, 행정사무원, 만화가 및 에니메이터, 인테리어 디자이너, 웹 및 멀티디자이너, 촬영기사, 제품디자이너 등이 제시되어 있다. 이외에도 조소과 졸업자들이 전문인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은 전시기획, 예술경영, 문화행정, 비평, 미술사, 문화정책, 미술교육, 방송디자인, 컴퓨터그래픽디자인, 디스플레이, 일러스트, 무대미술가 등 매우 다채롭다. 따라서 대학은 졸업 후 전문영역에서 활동할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와 연계를 위한 복합적 커리큘럼을 마련하는 한편 학생은 자신의 전공과 연계된 타학과 개설과목의 이수 기회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4. 국내의 미술대학은 190여개에 달해 이미 화단은 미술가들로 포화상태를 이루고 있다. 상기의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통계에 따르면 2004년 조소과의 학생수는 모두 1,624명이며 남여 비율을 보면 남자가 569명 여자가 1,055명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다 환경조각과의 재학생수 415명을 합치면 총 2,039명이 학교에 적을 두고 있다. 매년 300명 이상의 졸업자가 조소예술분야의 학사과정을 마치고 배출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이미 대학의 정원을 축소하고 유사학과를 통폐합하기 위해 일련의 정책안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일부 대학에서는 이미 실행단계에 와 있다.

5. 변화하는 시대상에 부응하는 조소예술의 패러다임이 취약하다. 예술적 패러다임이란 일종의 변화 속에 나타나는 정통성을 말하는데 이는 역사가 만들어 내는 동시대적 비평안 위에 구축되는 조소예술의 본성을 지시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최근 국내의 예술계는 문화산업이라는 미명하에 작가들에게 특정분야에 편중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즉 ‘단기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분야로서 애니메이션, 컴퓨터그래픽, 디지털영상’에 지나치게 정책적 지원의 무게를 둠으로서 상대적으로 ‘단기생산성과 가시성의 측면에서 부적절하다고 판명되는 분야들은 제외되거나 소외되는 현상을 보인다. 이러한 상황은 변화하는 시대상에 발맞추어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소예술의 정체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IV.
모더니즘의 종말과 함께 전래적 조소예술이 막을 내렸으나 그것은 새로운 장을 위한 제로지점에 서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우리가 변화하는 환경에 맞서 조소예술의 존재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역설과 모순으로 짜여진 역사적 패러다임을 구축하고 그를 통해 삶을 통찰하는 일이 필요하다. 현재는 과거에서 비롯되었으며 미래도 이와 다르지 않은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대학은 바로 이러한 유기적 구조를 지닌 예술의 본성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험하는 장소이다.
장르간 구분이 사라지고 새로운 미디어와 설치적 경향의 출현으로 기존의 순수조형작업이 위협받고 있는 현실에서 미술대학 조소과는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그 변화의 바퀴를 돌리는 원동력은 조소예술의 본성이라는 점을 제대로 인식해야하는 지적 또한 새겨둘 일이다. 급변하는 국내외 미술환경에 대응하여 조소예술의 개념을 재정립하는 일은 해체와 조합 사이를 흐르는 사유의 강을 발견하는 일이고, 현실과 이상 사이의 틈을 적극적으로 성찰하는 일이라 생각된다.

<계간조각> 창간호, 2005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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