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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언의 <제주 사람들>은 누구인가?

김영호

강동언이 선택한 그림의 소재는 ‘제주 사람들’이다.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에서 대학교육을 받은 그로서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의 그림에 <제주 사람들>이라는 제명을 붙임으로서 자신의 인물들에 특수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해녀를 비롯하여 어시장이나 밭에서 일하는 아낙네들은 남해 고도에서 강인한 삶을 살아가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한편 작가는 이러한 자신의 인물화에 마을의 지명을 제목으로 붙이기도 하는데 이는 지역적 특성을 강조하는 적극적인 의미생산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성산포 사람들>, <우도 사람들>, <차귀도 사람들>, <한림 사람들> 등에 붙은 향리는 그대로 지역서정을 물씬 드러내는 요인이 된다.




제주각지의 지명을 붙인 강동언의 그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정작 자신의 작품에 지역 사람들 간에 신체적 차별화를 특별히 시도하고 있지 않다. 체형이나 복장 그리고 안면골상의 특성을 구분하지 않음으로서 그저 제주 사람들을 표상한다. 작가는 제주의 여러 마을에서 열리는 오일장이나 부두 등 시정생태의 현장과 사람들을 화폭에 담아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는 개체적 삶을 살아가는 일꾼들의 초상이나 개인사를 담아내려는데 무관심 하다. 마치 그의 인물은 고전기 그리이스의 인물상들처럼 양식화 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강동언의 <제주 사람들>이 어촌의 일상을 살아가는 보편적 인물의 표상이거나 그 인물의 삶을 드러내는 도상들로 읽혀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강동언이 일구어낸 그림의 형식적 방법론은 이러한 보편적 인물상을 드러내는데 적절하게 개발되어 왔다. 2000년 이후의 작업들에서는 거칠고 투박한 필선을 근간으로 한 독자적 어법을 발견하게 된다. 강동언이 연출해내는 수묵필선의 자유로움은 손의 힘과 장지의 표면 그리고 목탄과 아교로 형질이 강화된 먹과 청회색의 안료가 만들어내는 종합적 결실이다. 한편 닥지의 섬세한 성질과 수묵을 받아드리는 수용성으로 인물 이미지들은 마치 세월을 머금은 프레스코 벽화처럼 신선하면서도 즉자적 물성을 느끼게 한다. 특히 작가의 작업에 심리적 깊이를 주는 요소는 바로 회청색의 필선이다. 백색 바탕과 강렬한 먹선 사이에 형성되는 명암의 괴리감을 중재하거나 화면의 농도를 적절히 조율함으로서 이 회청색 필선은 작가의 창작과정이나 관객의 감상과정에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해 주는 요소로 생각된다.
강동언의 인물작업에 특징을 이루는 또 하나의 형식적 요소는 배경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여백을 중요시하는 동양화의 전통적 문맥에서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강동언의 작업에서 빈 배경은 새벽빛으로 채워진 시간을 나타내기도 하고 일터라는 공간을 연상시키고 있다. ‘비어있음’은 채워진 것이 사라진 상태를 나타내는 개념이므로 ‘없음’의 의미와는 다른 철학적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작가는 이러한 연상 작용을 돕기 위해 태왁, 좌판, 부대자루, 도시락 같은 소품 오브제들을 인물 곁에 배치시키고 있다. 보는 이의 상상력으로 하여금 상상의 풍경을 그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보듯 강동언의 인물화는 제주를 드러내면서도 개체적 경험과 초상으로서의 인물 그림에서 벗어나 있다. 작가의 작업태도는 회화의 본성으로서 필선과 평면성이라는 순수조형적 방법론에 표현의 근간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 미루어 보면 강동언의 작업을 단순히 인물화의 범주에 가두거나 제주인의 향토적 삶을 드러내는 작가로 국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강동언이 표상하는 제주 사람들은 노동의 소명을 실천하는 보편적 인간의 모습이자 환경에 대응 혹은 순응하며 살아가는 자연인의 모습이다. 그러나 작가의 개성은 그 보편적 노동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과 그림이라는 의미생산의 순수형식 사이에 틈을 경영하는 재능에서 발견되며 이 점이 그를 현대 한국화의 새로운 장을 여는 주역으로 인도하고 있다.

- 미술세계 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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