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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미술행사의 증식, 그 허와 실

김영호

Ⅰ. 총론 : 대형미술행사의 증식, 그 허와 실


Ⅰ. 머리말

2002년 한해의 미술분야에 나타나는 전반적 특성은 대규모 미술행사의 숫자가 증가하였고 이에 따른 대중일반들의 미술문화에 대한 관심과 무관심의 편차가 증폭되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서울과 광주 그리고 부산 등 전국의 주요도시를 중심으로 개최된 비엔날레와 미술제 그리고 아트페스티벌 등은 2002년이 외적으로 풍성한 수확을 거둔 한해였음을 증명해보인 사례들이다. 공공단체뿐만 아니라 사설미술관이나 아트센터 그리고 상업화랑에서도 의욕적인 기획전을 다수 개최하였으며 평단과 학계에서도 대형행사에 대한 비평과 다채로운 학술행사를 전개함으로써 전에 없는 열기를 느끼게 하였다.
대형미술행사의 확산과 미술분야에 대한 대중적 기반이 상향세를 이루었던 한해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해 치러야 할 홍역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대표적인 증상은 대체로 ‘외적 풍요를 감당할 전문인력의 부재’와 그에 따른 ‘전시구성과 진행의 미숙함’ 그리고 ‘행정 편의적 운영에 의한 미술제의 내용 빈곤’으로 요약되며, 일부 장르의 경우 행사 자체에 대한 존립에 회의를 제기하는 비판론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미술시장에서도 이러한 외적 풍요가 문화적 거품으로 인식되는 가운데 편향적 성장세를 보였고 불완전한 미술시장 구조가 대중들의 문화 소비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었다. 미술제의 ‘순기능’에 항상 따라다니는 ‘역기능’의 현상들이 유난히 지적되었던 것은 서구화의 기치 속에 급속히 팽창해온 우리나라 미술문화의 과도기적 현상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
이 글은 미술분야의 10개 장르인 전통회화, 현대회화 및 판화, 조소, 공예, 디자인, 건축, 사진, 뉴미디어 및 설치, 서예, 평론 및 미술사로 구성된 필진들의 원고를 중심으로 2002년 한해의 미술계를 종합적으로 정리하려는 것이다. 그 내용은 대체적으로 지난 2001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장르 파기현상과 함께 표현영역이 확장되는 가운데 뉴미디어 및 설치, 사진, 디자인 장르가 강세를 보였으며 이와는 대조적으로 현대회화 및 판화, 전통회화, 조소 장르는 전통의 현대적 변용을 위한 개별적 실험들을 시도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한편 공예, 건축, 서예 장르는 전시회의 외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만성적 침체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년부터 미술사를 더한 미술평론 장르에서는 미술이론가의 양산이 전문적 검증의 과정없이 평론가 혹은 전시기획자로 활동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현실이 비판적으로 조명되었다.
연감 집필에 참여한 대부분의 필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장르에 대한 종합적 진단과 평가 그리고 한계를 정리함으로써 한국미술계의 현주소를 찾는데 나름의 객관적 지침을 세워주었다. 그러나 몇몇의 경우에는 글의 목표설정에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문예연감의 목적은 한해의 각 분야별 장르에 대한 주요 흐름을 진단하고 활동 자료 수집과 정리 그리고 분석을 통한 현황을 제시함으로써 특정시기의 미술현상을 정리하는 데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한해의 현장을 분석하는 취지의 글에서 그 현장이 빠진 연감의 글쓰기는 시정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Ⅱ. 풍성했던 대형 미술행사와 그 문제점

2002년 한해 동안에 개최된 국제규모의 대형미술행사는 크게 비엔날레와 엑스포 그리고 미술관에 의한 대형기획전 등으로 구분될 수 있다. 그중 대표적인 비엔날레로서는 광주와 부산 그리고 서울에서 각각 지역적 특성을 내세우며 열렸던 『제4회 광주비엔날레』『2002 부산비엔날레』『미디어시티 서울 2002』를 들 수 있겠다. 이들 비엔날레는 동시대 미술계에서 전개되는 주요한 경향들을 특정주제로 초대해 대중들에게 선보임으로써 담론을 생산하고 그를 통해 오늘의 문화적 현주소를 점검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 비추어 비엔날레의 성공은 단순히 관객의 수나 재정적 이익의 창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결정체인 문화를 통해 지역 정체성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공동체의 결속된 에너지를 모으는 힘을 생산하는데 있다고 할 것이다. 이상의 세 비엔날레는 국내에서 개최한 미술행사로서 사진과 뉴미디어 뿐만 아니라 회화와 조소 등 미술의 전반적 장르에 영향을 끼친 전시회로서 위상을 굳혀가고 있다. 이와 함께 국내의 미술계에 영향을 끼친 해외의 주요 비엔날레로는 『제25회 상파울로 비엔날레』와 『후쿠오카 트리엔날레』그리고 중국의 『제1회 청두비엔날레』가 주목되었는데 특히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참가한 김아타의 사진작품이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미술관에서 개최되었던 주요 기획전을 보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되었던 <젊은 모색전>과 <바벨 2002전>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젊은 모색전>은 기존의 순수미술 중심의 기획전이라는 관례에서 벗어나 공예와 디자인 그리고 순수미술의 경계에 대한 담론을 촉발시킨 전시로서 알려져 있다. 한편 대전시립미술관이 주최한 <2002 미디어아트 대전-뉴욕 Special Effect> 역시 2002년에 개최된 미디어아트 전시 중 규모나 내용이 풍부한 전시회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사설미술관으로서는 로댕갤러리의 <현대조각과 인체전>을 서두로 하여 <미국 현대사진 1970-2000> 등이 있었고,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위상을 굳혀가는 대림미술관에서의 <사진과 패션모델의 변천사> <하나로서의 세계-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독일사진들> 등이 한해의 화단에 영향을 끼친 대표적 전시로 알려져 있다. 그밖에도 서울대박물관이 기획한 <근역서휘-근역화휘 특별전> 등도 기억에 남는 전시회로 평가되었다.
지역 단위의 미술행사로서는 상기한 광역시 단위의 비엔날레와 미술관 기획전 이외에도 다양한 지역에서 크고 작은 축제들이 열렸다. 그중 주목받았던 행사는 강원도 영월군을 사진마을로 선포하면서 개최한 『동강사진축전 2002』과 『하남 국제사진페스티벌 2002』그리고 『목포국제도예공모전』『청주공예문화상품대전』『부산국제섬유, 패션아트페스티벌』등이 있다. 특히 공예분야의 행사는 1999년에 창설된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와 2001년에 창설된 『경기도세계도자기엑스포』가 낳은 부속행사들로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행사를 치렀다.
이러한 대형미술행사들은 새천년의 서두를 설계하려는 자치단체들의 의욕이 외적으로 표출된 것이며 아울러 세계인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2002 월드컵 기간 동안 해외에 한국문화를 알리려는 기획의도에 따른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한국경제가 점차 지식문화산업으로 노선을 전환하고 선진형 사회구조로 변화해나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으로 분석될 수 있다. 그러나 2002년 한해 동안 열린 대형미술행사들은 국내 미술계의 외적풍요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었음에도 이에 대한 적지않은 비판이 쏟아졌다. 문제점은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외적 풍요를 감당할 ‘전문인력의 부재’와 그에 따른 ‘미술제의 형식과 내용 빈곤’으로 요약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대학에서는 대학원을 중심으로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학과들을 최근 들어 개설하고 전시기획, 전시디자인, 관객연구, 미술관교육 등의 과목을 설치하고 있으며, 정부는 학예사 국가인준제도를 실행하는 한편 현실적으로 적용시키기 위한 과제들을 마련하면서 시행착오를 벌이고 있다. 또한 미술관은 이전과 달리 학예사 양성을 위한 인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결국 대학과 정부 그리고 미술관 현장이 삼위일체가 되어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으나 여전히 총체적이 아닌 개별적 영역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Ⅲ. 여전히 강세를 보인 뉴미디어 및 설치, 사진, 디자인

전국에 걸친 대형미술행사의 확대현상은 창작과 비평 그리고 감상에 이르는 미술의 지형도를 다시 그리는 계기가 되었다. 문화적 유기체의 속성을 지닌 비엔날레와 엑스포 그리고 다양한 유형의 미술축제는 현대미술의 지역확산과 대중화현상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정보사회가 가져다준 새로운 매체들은 동과 서의 새로운 미술경향들의 국내유입을 직접적으로 야기시켰고 국내의 미술계는 대형미술행사를 통해 현대미술에 대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미술계의 상황을 대중으로 연결시켜주었던 행사가 비엔날레였으며 엑스포들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대형미술행사가 국내화단에 끼친 영향은 결코 경시될 수 없을 것이며, 그 성과와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일은 당면과제라 할 것이다.
대형미술제의 속성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실험적 경향들을 행사장 안으로 끌여들여 그 당위성과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라면 이들 미술제는 항상 전통과 혁신 사이에 충돌과 마찰이 그치지 않고 생겨나기 마련이다. 새시대의 정신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비엔날레와 같은 행사를 인식하는 이유는 이러한 진통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확보하는 기능이 거기에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문제시되고 확산되는 장르가 바로 뉴미디어로서 사진과 비디오 그리고 컴퓨터와 웹 시스템을 이용한 설치 평면 작업들이라 할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담아내는 매체로서 뉴미디어들은 비엔날레의 꽃이자 수많은 담론생산의 원인이 되는 것 또한 이 때문이다.
2002년의 뉴미디어 분야에 대한 정리는 앞서 언급한 두개의 국제행사, 서울시가 주최한 『미디어시티 서울 2002』와 대전시립미술관이 주최한 <2002 미디어아트 대전-뉴욕 Special Effect>에서 정점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용인의 한국민속촌이 현대미술관을 개관하여가진 <백남준 특별전>을 비롯하여 개인전 차원의 전시회로서 심철웅, 김기라, 오경화, 유현미 등이 언급되었다. 이들은 전시장 발표라는 전래적 방식과 함께 공연, 상영, 웹 사이트를 통한 전시방식을 사용하면서 한편으로는 청각과 후각을 동원한 작품감상을 유도하는 시도를 하였다. 이러한 매체의 확장과 새로운 전시유형과 함께 대중이 작품에 참여하는 뉴미디어 경향의 작업들은 미술계의 지형을 뒤바꾸는 데 공헌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지적되는 대목은 ‘매체가 내용을 압도해버리는 역설적 국면’ 속에서 뉴미디어가 단순한 눈요깃거리로 머무른 작업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며, 매체에의 지나친 의존은 극복되어야 할 현상이라는 점이다.
2002년에 가장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분야는 사진이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호암미술관의 <미국 현대사진 1970-2000>과 대림미술관의 <사진과 패션모델의 변천사>와 뒤를 이은 <하나로서의 세계-1989년 베를린 장벽 분리 이후 독일사진들> 등은 기존의 순수미술 축성을 위한 공간으로서 미술관이 사진에게 바치는 헌정이었다. 특히 대림미술관은 사진전문 미술관으로 위상을 굳혔으며 사진전문화랑과 일반화랑에서의 사진전시회는 이제 일상이 되고 있다. 현대미술의 보조적 재료가 아닌 그 자체가 작품의 서열에 올라와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미술의 현주소와 향방을 가늠하는 매체가 되어 있음을 우리는 앞서 언급한 비엔날레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진과 미술의 결합은 이미 20세기 초반에 시작된 것으로서 우리는 다다와 초현실주의자들이 시도한 포토몽타쥬나 포토콜라쥬 등의 기법에서 그 사례를 찾아낼 수 있다. 추상미술의 화단 점거와 함께 한동안 침체적 양상을 보였던 사진과의 결합은 이차대전 이후에 다시 고개를 힘차게 들어 네오다다나 팝아트에 이르면 사진의 다양한 변주가 이루어지게 되고, 비디오 영상 이미지와 더불어 사진은 삶의 현상을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으로 담아내는 매체로 등장하게 된다. 포토리얼리즘으로도 불리우는 하이퍼 리얼리즘에 뒤이어 개념미술과 대지미술 등 역시 사진을 주요매체로 부상시킨 미술운동이었음을 볼 때 사진의 미술사적 문맥은 어느덧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고 있었던 것이고, 급기야 전통적 사진 스스로가 현대미술의 영역에서 홀로서기를 완성시키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진의 부상은 디지털 기술의 결합에 따른 표현가능성의 확장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것이다. 디지털 기술에 의한 이미지의 조작과 재구성은 다큐멘터리 사진의 기록성과 순수성을 거부하고 청년세대의 분열된 주체를 표현하는 강력한 도구로 이용되고 있어 사진의 강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디자인 분야에 대한 종합적 진단은 2002년이 ‘한국적 위상을 세운 해’로 평가되었다. 그 계기는 2002년 한일월드컵축구대회의 디자인행사에 따른 것으로서 사회현상과 연계된 디자인의 역할을 강조하는 측면을 내세우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의 문화현상이 지닌 한계성은 예술활동이 대중들과 연계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생활 속의 미술, 즉 디자인이 생활화되지 못하였다는 데 연유한다고 볼 수 있다. 전위미술 혹은 실험미술이라는 미명하에 대중과 분리된 채 미술이 자기정체성을 탐구하였던 우리의 근대는 결국 대중과의 틈을 벌려놓았고 뒤이어 외면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나는 미술에 문외한”이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은 말로 일상화되어버린 현실의 저변에는 생활미술의 직무유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디자인계가 대중적 지반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음을 진단하는 필자의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디자인계의 내부를 살펴보고 한해의 성과를 점검하려는 연감의 취지를 충족시키기에는 하나의 개인전과 특정 대학교의 기획전, 그리고 자신이 공동기획한 프로젝트에 대한 선택적 성격의 글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으로 남는다.

Ⅳ. 침체상황 속의 정체성 모색 - 전통회화, 현대회화, 판화, 조소

대형 국제미술행사로서 비엔날레 중심의 미술계 진단은 전통적 장르로서 회화나 판화, 그리고 조소에 대한 상대적 침체현상을 유발시키는 계기로 나타난다. 특히 최근의 동아시아 지역에서 탄생한 신생 비엔날레로서 타이페이, 요코하마, 샹하이 비엔날레가 국내화단에 소개되면서 이러한 현상은 가속화되기 시작하였다. 물론 회화와 조소의 퇴조가 반드시 비엔날레의 확산과 정비례하여 나타나는 화단의 현상이라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현대미술관이나 화랑에서는 여전히 페인팅과 전통적 형식을 담은 조소예술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대학과 공모전에서도 그 가능성이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미술사적 맥락을 보더라도 매체의 확산현상과 병행하여 평면회화는 다양하게 실험되어왔으며, 특히 1980년대에 고개를 든 신형상주의 미술은 국제화단에 여전히 강세를 보여왔다. 이태리의 트랜스아방가르드와 미국의 배드페인팅 프랑스의 자유구상, 그리고 독일의 신표현주의 미술은 화단의 중심적 경향으로 다루어지고 있음은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회화와 조소예술의 위축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고 제시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전통회화의 경우 ‘새로운 가치 모색을 위한 의식과 방법론의 부재’를 손꼽고 있다. 화단에서 자구적 의도를 가지고 온고지신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가령 2002년의 한해를 두고 세인들의 주목을 끌었던 전시회들로서 동산방 화랑과 학고재 화랑이 공동기획한 <완당과 완당바람전>과 간송미술관이 기획한 <추사명품전> 그리고 <격조와 해학 : 근대의 한국미술전>의 경우 과거의 대가들에 대한 재조명을 시도한 경우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적 변용으로서 새시대를 담아내는 회화의 패러다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아직도 회고전 형식의 전시회에 국한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고 보여진다. 이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젊은 세대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치열한 현재적 삶의 현장 위에 전통적 형식과 사상을 오늘에 맞게 재해석하고 승계하려는 작가들이 점차 늘고 있다는 점은 다행스런 일로 평가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나화랑에서 개최한 권영우의 한지작업은 새로운 현실인식과 기법확산의 중심으로서 후배 세대들에게 자극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현대회화와 판화의 경우에도 새로운 형상성을 내세우는 개성적 작가들과 패러디를 통해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을 찾아나서는 작업, 그리고 대중적 이미지를 통해 사회적 문제를 찾아나서는 작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형들이 소개되었다. 이들 젊은 세대의 작가들은 그룹이나 단체전을 이용한 집단적 전시의 유형에서 벗어나 지극히 개인적 일상에서 경험한 개체성을 드러내는 특성을 지님으로써 반역사적 혹은 반유형적 특성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추상적 경향의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됨으로써 과거의 절대적 기준으로부터 자유로운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디지털 이미지의 확대를 통해 전통산수의 세계를 임의적으로 번안하는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판화의 경우 디지털 프린팅 등의 새로운 매체와 형식의 도입은 전통판화의 개념과 방법을 와해시키면서 시각과 인식의 영역을 확대시키고 있다.
전통의 퇴조는 새로운 전통생산의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진단은 고금을 막론하고 가능하며 그것이 현대미술을 가능케 하는 에너지일 것이다. 조소예술의 경우 통합적인 재료 사용에 따른 정체성 위기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있지만 이러한 위기상황은 새로운 모색을 위한 계기가 되고 있음도 눈에 띄게 증명되고 있다. 예를 들어 ‘조각 고유의 특징인 무게와 견고함 그리고 영구적 형태의 가치’가 와해될 때 연성조각이나 설치적 경향의 입체물의 탄생이 이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의 논리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변화와 해체 그리고 새로운 방법론에 대한 작가의 신념과 표현적 실천의 과정에 나타나는 필연성이다.

V. 양적 풍요 속의 빈곤 - 서예, 공예, 건축

2002년 한해의 공예, 건축, 서예 장르는 전시회의 외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만성적 침체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예의 경우 그 원인을 ‘한글전용으로 치닫는 어문정책’에서 찾고 있는데 서예창작의 핵심제재로서 한자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날로 하향세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협서예분과, 한국서예협회, 한국서가협회 등의 단체와 한해 동안 치러진 공모전 130여건과 290회의 단체전이 열렸다는 통계자료에 비추어 침체현상은 서예분야의 인적자원이 풍부하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따라서 파벌형성과 계파에 따른 부정적 측면들이 서예계를 좀먹는 요인들이라는 지적이 보다 설득력있어 보인다. 서예의 부흥은 전통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성을 담는 제재와 형식을 개발해야 한다는 데 이론이 없어 보인다.
공예분야의 문제점은 서예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와 『경기도세계도자기엑스포』의 대형미술제의 창설 그리고 공예문화진흥원의 개원 등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공예에 대한 부흥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그러나 처음으로 개최하는 신생미술제에서 흔히 발생하는 전문인력과 운영경험의 미비로 인해 공예가 지닌 수천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대중화의 단계로 끌어올리는 데는 걸음마 수준으로 평가를 받아야 하는 처지에 있다. 이러한 자체적 비판론과 공공연구기관의 발족은 향후 공예계의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디자인 장르에 대한 진단은 한국건축의 전반적 상황을 개념적으로 정리하는 것으로 일관되고 있다. 그 요지는 2002년 한국건축은 <혼성모더니즘>의 흐름 속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 혼성의 대상은 1920년대 서양의 추상 아방가르드 양식으로 보고 있으며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한국 건축계에 던져진 과제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 출처 : <2003 문예연감> 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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