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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도 미술사 및 평론 분야

김영호

심화되는 풍요 속의 빈곤
2004년도 미술사 및 평론 분야



2004년 한 해의 미술사와 미술평론을 포함한 미술이론 분야는 어느 때 보다 양적인 풍요로움을 누렸다. 그러나 연구방법론 개발이나 구체적 이슈의 생산이라는 측면에서 상대적 빈곤감을 보여주었다. 대부분의 학회와 협회에서는 두 차례 이상의 학술행사를 개최하며 논문을 생산했고 다수의 논문집을 펴내었으나 왕성한 활동에 비해 동시대의 미학적 기준과 가치를 담아내는 담론 생산과 그 결과물은 빈약해 보인다. 세기말 이후 최근까지 미술계를 가로질렀던 오리엔탈리즘, 후기식민주의, 페미니즘, 문화권력, 혼성주의, 테크놀로지 문화이론, 매체미술,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 커뮤니케이션 문화이론, 예술대중주의 등의 기존주제는 연구자의 글속에 용해되어 있으나 주체적인 미술문화를 선도하는 미술사의 방법론과 비평의 새로운 칼날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출판계는 저작권법이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인상파를 중심으로 한 모더니즘 미술사의 자취를 상업화 하거나 구미서적의 번역본을 내는데 그치는 비판을 면치 못하였다.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미학적 기준과 가치의 부재현상’은 사실 미술의 종말 이후의 미술을 언급할 때 사용되는 비평용어라는 점에서 새삼스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비단 미술이론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술창작 분야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으니 우리나라 미술계 전반에 걸쳐 제기되어온 사안이다. 그러나 ‘제로지점’이나 ‘다원주의’ 혹은 ‘빈곤의 미학(아르테 포베라)’ 등으로 멋쩍게 포장된 미술사와 평론의 개념들은 증대되는 예술 현상과 맞물려 역설과 모순을 증폭시키고 있다. 가령 미술사의 종말이나 미술비평의 죽음 그리고 미술시장의 침체기에도 불구하고 청년미술가들의 전시활동은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대안공간을 비롯한 다양한 유형의 전시공간들이 속속들이 새 얼굴을 내밀고 있다. 총체적 위기 또는 혼란기에 접어든 미술계에서 생산되는 미술이론의 영양가 없는 수확물들은 외래 미술담론의 무비판적 수용이나 감각에 의존하는 글쓰기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자성론에도 불구하고 현장 적용과 실천에 있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시각을 달리해 보면 미학적 기준과 가치의 부재현상은 오늘날 미술사와 비평의 방법론이 작품의 형식이나 인물 혹은 시대별 분류개념에서 벗어나 사회학이나 심리학을 포함한 민족, 인종, 국가, 성, 계급 등으로 확장되면서 나타나는 결과라 할 수 있다. 가령 오늘의 미술은 순수주의 미학에 의존하던 과거의 인문학적 태도에서 벗어나 다학문간의 상호텍스트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밀착되면서 전통적 미학의 기준이나 가치가 더 이상 미술을 규정하는 잣대로서의 유용성을 잃어버렸다. 사실 이제 미술이론은 정치, 경제, 사회, 과학을 포함한 문화이론의 총체적 영역으로 편입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에서 오늘의 미술이론 연구방법론이 “종래 미술사나 미학, 비평영역의 구조적 붕괴가 아니라 계보학이나 영역학문으로서의 성격이 점차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은 의미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아직도 우리의 근대는 <오만과 편견>(임지현/사카이 나오키, 휴머니스트)의 벽을 허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고, 미술사와 비평의 영역도 이와 다르지 않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풍성했던 학회활동들

전기하였듯이 2004년 한 해 동안 국내의 미술관련 학회들은 학술행사를 활발히 개최하였다. 정기학술대회는 대개 춘계와 추계로 나누어져 실시되었으며 이와 함께 특별주제를 설정한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하는 학회도 다수가 된다.

우선 서양미술사학회(회장 윤난지)가 <미술의 공간정치학>이란 주제로 개최한 제9회 학술심포지엄(4.24 이화여대)이 주목할만한 행사로 기록된다. 이 행사는 ‘미술 속의 공간’ 혹은 ‘미술작품이 놓이는 공간’에 나타난 권력관계와 그것을 만들어내는 지배 이데올로기 등을 다룬 6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었다. 세부를 보면 ‘이상도시: 우르비노 궁전에 재현된 15세기 이탈리아 전제군주의 꿈(조은정), 신인상주의 풍경화에 나타난 유토피아적 공간(전경희), 유토피아의 신기루: 정치적 공간으로서의 사회주의 도시와 모뉴먼트(김영나), 영국의 도시공간과 현대미술: 2차대전 이후의 런던(전영백), 사이버공간의 몸: 미술, 권력, 그리고 젠더(이지은) 등으로 되어있다.

한국근대미술사학회(회장 이중희)는 동아시아와 한국의 근대기에 전개되었던 전람회와 작품경향들에 대한 연구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는데 그 중 추계학술대회(10.8 계명대)에서는 <한국미술의 근대성 탐구>를 주제로 하여 ‘한국근대미술 기점 재론’(최 열), ‘조선후기 풍속화: 근대성의 맹아’(이중희), ‘심전 안중식 회화의 근대성과 작품 진위문제’(박동수), ‘조선미전의 동양화 화풍분석’(이미애), ‘동원된 근대: 일제시기 경성을 통해 본 식민지 근대성’(박세훈), ‘일제시대 재한 일본인의 청자제작’(엄승희) 등의 논문을 통해 근대미술의 제 현상들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 내었다.

현대미술학회(회장 박일호)는 춘계학술대회(5.15 경기대)에서 <미술과 병리현상>이라는 주제를 내걸었고 ‘막스 베크만, 조르주 바젤리츠, 브른 하이지히와 병리적 현실인식’(김재원), ‘매튜 바니의 작품 크리매스터에서 무성(asexualism)에 대한 집착’(조광석), ‘모던미술과 모스트모던미술의 임상적 증후: 편집증’(심상용) 등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한편 추계학술대회(10.16 이화여대)에서는 전자시대의 예술에 대한 성찰로서 ‘디지털예술의 미학적 논점 : 상호작용’(김진엽), ‘설치된 영상에 의한 ‘인터스페이스’에 관한 연구’(이원곤), ‘대중문화와 키치’(조주연) 등이 소개되었다.
현대미술사학회(회장 김정희)의 학술심포지엄(10.23 서울대)은 <공공포럼으로서의 미술>이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는데 ‘공공미술의 제도적 기반 ; '미술을 위한 퍼센트 제도(percent for art scheme)' 를 중심으로’(양현미), ‘도시 담론의 변화와 공공미술의 가능성: 플라잉시티의 청계천 프로젝트를 중심으로’(전용석), ‘공공미술, 또 하나의 접근법: <행동하는 문화(Culture in Action)> 사례를 중심으로’(김윤경), ‘1930년대 후반 프랑스 미술의 <만인을 위한 미술> 혹은 <미술의 대중화> 이념: 프랑스 인민전선 문화 주체의 활동과 페르낭 레제의 작품을 중심으로’(김승환) 라는 논문을 통해 현안 문제를 다루었다.

한국미학예술학회(회장 서인정)는 <그리스도교 미학사상>을 주제로 춘계학술심포지엄(5.1 서강대)을 열어 그리스도교적 신플라톤주의의 미학사상(이순아), 성 아우구스틴의 미학사상(백영제), 제2차 비잔틴 이코노클라즘과 동방신학(김산춘), 성공회 서울대성당의 건축 양식과 그리스도교 빛의 미학(김정신) 등의 주제를 폭넓게 다루었다. 한편 <예술용어와 예술현장: 한국 근현대 예술의 기원과 성격>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추계학술심포지엄(10.16 한국예술종합학교)은 예술용어들의 성립과 그 기원에 대해 조명하는 이례적 행사였다.
마지막으로 2004년에 창립된 한국미술이론학회(회장 정영목) 역시 두 차례의 학술대회를 가졌는데 <현대미술의 반성과 전망>을 주제로 제1회 춘계학술대회(6.5 국민대)에서는 회화의 위기, 회화의 대안: 동시대 회화 관련 기획전을 중심으로(박영택), 과연 비엔날레는 세계화의 전도사인가?(최태만), 국내 서양미술사, 서양미술비평 연구의 문제들에 관한 연구(심상용), 미술관의해석과 소통의 모색(김은영), 미술 저널리즘과 비판 의무(안인기) 등의 현안문제들을 다루었다.







쟁점 : 병리현상, 디지털 매체, 미술과 권력, 정체성


학술행사의 형식은 특별주제를 설정한 경우와 그렇지 않고 개인적 연구결과를 자유롭게 발표하는 경우로 구분된다. 그 중 특별주제를 내세운 심포지엄은 화단의 흐름과 현상을 종합적으로 진단하고 이슈를 생산해 내려는 공동의 노력으로서 기획단계에서 적잖은 수고가 뒤따르지만 기대도 크게 마련이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고 공통적인 주제를 이끌어낸 경우가 서양미술사학회의 <미술과 잔혹성>과 현대미술학회의 <미술과 병리현상>을 들 수 있다. ‘비정상적이고 추함을 강조하는’ 병리적 미술현상에 대한 연구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가령 제들마이어는 병리현상을 15세기 미술에 적용하면서 ‘지속적인 가치개념의 혼란’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20세기 이후에는 인간존재에 대한 회의와 죽음, 폭력, 자학, 좌절, 회의, 억압, 증오, 잔혹, 탐욕, 혼란, 갈등, 편집 등의 내적 정서를 드러내는 미술로 인식되면서 현대미술의 주요한 경향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현대인과 현대적 삶을 갈파하는 심리학과 사회학의 연구 성과에 힘입어 현대인의 광기와 분열된 자아, 욕망의 해체, 성 도착, 그리고 가치의 상실 등의 담론과 공동전선을 구축하면서 포스트모던 미술의 중심적 담론의 하나로 대두되고 있다.

한편 한 해 동안 미술이론가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논문의 주제는 ‘디지털 아트’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미술현상이 작가가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적 환경에 대한 치열한 성찰과 대응의 결과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디지털 사이버 환경에 대한 예술적 표현과 연구는 필연적이고 자연스럽다. 학술발표를 통해 제시된 논문을 보면 주로 ‘상호작용의 증가’와 ‘가상현실의 대면’에 대한 관심이 주를 이루었다. 가령 현대미술학회의 ‘디지털예술의 미학적 논점 : 상호작용’, ‘설치된 영상에 의한 ‘인터스페이스’에 관한 연구’, 현대미술사학회에 발표된 ‘게리 힐(Gary Hill)의 비디오아트에 나타난 상호텍스트성’,(박미연) ‘몰입과 각성 사이 : 전자매체 예술에 있어 환상과 충동 역전의 구조에 대한 분석’(김원방) 등의 논문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2004 한영 교류 디지털 표현전>(10.13-23, 이화여대미술관), <디지털 서브라임(Digital Sublime: New Masters of Universe)전>(5.16-8.8, 타이페이미술관) 등 2004년 한 해 동안 국내외에서 열린 수많은 미디어 아트전과 그 이론적 생산물들은 이 분야에 대한 미술계의 열기를 보여주었다.
2004년 학술대회에 나타나는 세 번째의 특성은 ‘권력과 정치 그리고 미술’에 대한 연계적 관심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서양미술사학회의 학술심포지엄 <미술 속의 공간정치학>은 미술작품 속에 그려진 도시와 풍경 그리고 인체와 사이버공간을 통해 표현된 인간의 권력과 유토피아를 추적한 행사로 주목되었다. 이와 관련한 논문들로서는 현대미술사학회 추계학술대회에 발표된 ‘앤디 워홀 회화의 표면성에 관한 이론적 논의 ; 1960년대 <죽음과 재난>중심으로’(이은이)와 ‘정밀주의 담론과 그 배후의 정치성’, ‘온 카와라의 유목민적 방랑과 미국 개념미술의 형성과 와해, 1964-1969’(양은희) 등이 있는데 이들 역시 미술의 권력 혹은 미술에 나타난 권력의 구조를 진단하고 있다.
그 밖에도 한국미술의 원류와 정체성을 세우려는 노력들도 한 해 동안 지속되었다. 이 분야의 주요 논문들은 주로 한국근대미술사학회와 미술사연구회 그리고 한국미술사학회의 학술대회를 통해 발표되었는데 그 내용적 범주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근대미술에 대한 주제별 검토와, 한국미술의 근대성을 둘러싼 기점과 화풍분석 등에 대한 탐구가 주를 이루었다. 특히 한국근대미술사학회의 추계학술대회 <한국미술의 근대성 탐구>는 오랫동안 화두가 되어온 한국 근대미술의 기점에 대한 논의를 비롯하여 풍속화, 조선미전, 식민지 등의 각론을 통해 근대성에 대한 논의를 활발하게 전개시킨 행사로 기록된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학회에서는 개별적 연구의 결과를 학술대회를 통해 발표하는 단발성 발표회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러한 원론적 접근은 순수 학문적 성찰의 과정으로서 나름의 의미를 가지나 현대미술문화의 쟁점의 생산이나 확대를 위한 검증작업이 결여된다는 아쉬움이 있다.


2004년 한해의 학술행사를 통해 제시된 다양한 거대 주제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는 것은 서두에 밝혔듯이 한국미술이론계의 이슈가 될 주체적 담론이 여전히 얼굴을 나타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모더니즘의 몰락과 포스트모더니즘 미술비평이 내세우는 미학적 가치의 상실에 따른 동공화 현상으로 자위하기에도 그 연구의 방향이 지나치게 동시대의 위기상황에 지나치게 무심하며 연구의 학문적 성과가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미술과 병리현상 미술과 잔혹성 등의 연구는 현대인의 일면을 진단하는데 기여한 행사였고, 또한 디지털 시대의 미술에 대한 성찰이나 미술과 권력의 관계, 그리고 한국근대미술의 시점과 정체성을 따지는 논문들도 시대적 정황과 미술문화의 폭을 확장시키는 성과물들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성찰의 화두는 방법론과 현장적용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한 결론을 도출하는데 소홀하였고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우리는 포스트모던과 그 이후의 미술에서도 모더니즘 시대와 똑같은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자성해볼 필요가 있다.

학술행사와는 별도로 월간미술이 연재한 <한국근대미술사특강>은 한국의 ‘근대미술’에 대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체계적으로 모색하는데 기여했다. 2004년 12월호의 14회를 마지막으로 끝을 맺은 지상강의(2002년 5월호부터 시작)에서 필자인 홍선표 교수는 한국의 근대미술을 단절의 역사가 아닌 한국미술사의 한 과정으로 통사화 하는 관점에서 서술함으로서 한국미술의 연속성과 자생성을 강조하였다. 또한 그는 기존의 한국근대미술사가 대항민족주의와 근대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과잉 해석되었다고 주장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문화사회론에 기초한 실증적 사실의 증대와 더불어 동아시아 내지는 세계미술과 유비관계를 통해 재구축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미술이론 경시현상과 비평의 위기의식


학문영역으로서 미술사와 더불어 국내 미술계에 대중적 관심과 주목을 받아야 할 분야가 미술평론이다. 현대미술은 작품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작품과 행위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이론적 뒷받침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해 동안의 정황을 보면 아직도 미술 외적인 요인들이 미술이론분야의 육성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들을 접하게 된다.

신년 벽두에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지원사업에서 나타난 ‘미술계 내부에서의 미술이론 경시현상’은 대표적인 사례로 지적된다. 미술인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의 담합에 의해 미술이론단체의 지원서류를 심의 대상에서 원천적으로 배제시켜 버린 것이었다. 2004년 문예진흥원이 발행한 문예진흥기금사업 안내서를 보면 <문예진흥기금의 4대 지원목표>가 설정되어 있으며 그중 ‘예술의 보존과 계승’의 항목에 “예술현상에 대한 비평과 연구 활동을 활성화 하고(예술보존조사연구지원)”라는 문귀가 명백히 들어있고, 이러한 정책목표에 근거해 지난 30여년 동안 미술이론단체의 사업을 열악한 데로 지원해 왔다. 이러한 관례를 무시하고 심위위원회에서는 미술사연구회, 서양미술사학회, 한국근대미술사학회, 한국미술사교육학회,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한국미술사학회, 한국영상학회, 현대미술사학회, 현대미술학회 등의 단체를 모두 탈락시켰다. 결국 9개의 미술이론단체 대표들이 모여 공동으로 항의문을 작성해 전달하였고 몇 일 뒤 문예진흥원장이 주관하는 간담회를 거쳐 문화관광부가 개입됨으로서 해결점을 보게 되었다. 대표들은 항의문에서 문예진흥기금지원사업 미술분야에 <창작활동지원>과 <미술이론활동지원>을 독립적으로 구분해 창작과 비평학술간의 균형을 꾀할 수 있도록 명문화함으로서 심사위원들의 월권이나 규정 해석상의 오류가 없도록 하길 요청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아직도 우리의 미술문화가 창작 중심으로 이해되고 있으며, 정책이나 지원사업도 이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기록된다. 국내의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문예기금도 코드 맞춰 지원하나’(문화일보 01/28) 등의 제하에 “민중미술 성향의 인물이 심사를 주도하게 되면서 지원 대상의 선정결과에도 코드 맞추기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의 대립적 구조나 논쟁과는 다른 차원에서 이 사태의 내용에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한국 미술계 내부에서의 미술이론 경시현상’이었으며 향후 이에 대한 각별한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미술평론 분야의 경우 여전히 ‘비평가의 침묵’ 상황이 유지된 한해였다. 우리나라 미술평론가협회는 유일하니 그 화살은 자연스럽게 이 단체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한국미술평론가협회는 1956년 11월 27일 한국미술평론인회가 결성된 이래 김영주(57-62), 최순우(62-65) 등이 대표로서 활동했고 1965년 한국미술평론가협회로 개편되면서 최순우(65-66), 이경성(67-), 유준상, 이구열, 이일, 오광수, 유재길, 윤우학, 윤진섭으로 회장단이 이어지고 있다. 2004년 한해에도 계간지 <미술평단>을 네 차례 발간하고 국제평론가협회(AICA)의 회원국으로서 총회 참가를 비롯하여 제주, 부산, 강릉을 위시한 전국에서 세미나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특히 여름호의 특집으로 실은 <제주도의 현대미술>은 기획전 <바람의 신화 2004-제주현대미술전>을 계기로 마련된 학술세미나(7.10 문예회관)의 발표문들을 모은 것으로 ‘제주현대미술의 현주소’(김영호), ‘제주를 찾은 외지미술인: 추사와 이중섭을 중심으로’(김현돈), ‘한국미술속의 지역미술’(윤진섭) 등의 글을 게재하여 지역미술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미술평론의 실종이나 현장비평의 사망이라는 설이 나돌고 있음은 유일한 이 미술평론가협회가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을 대변하고 있다. 무엇보다 국내 비평계의 위기는 평론가 자신들의 현장비평에 대한 소극적 태도와 비평의 창조적 기준과 방법론에 대한 자성 부족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미술평론가협회는 변화하는 환경에 부응하는 구조조정과 비평적 성찰의 산고를 거쳐야 할 것이다.

그 밖에도 미술전문지에서 다루어진 미술사와 평론분야의 이슈는 대안공간과 대안적 미술에 관련된 내용이 눈에 띤다. 월간미술 2월호는 ‘대안공간에서 꿈꾸는 대안적 미술’이라는 제하에 ‘동시대 한국 대안공간의 좌표’(백지숙), ‘대안공간의 발생과 변천사’(윤재감), ‘미국․유럽․아시아 대안공간’(안미희 이지윤 서진석)이 대안공간 9곳에 대한 앙케트와 좌담(김찬동, 서진석, 최금수)과 더불어 다루고 있다. 한편 미술세계에서도 7월호를 통해 ‘대안 필요한 대안공간’이라는 제하에 두편의 평문 ‘대안공간에 대한 진실, 혹은 거짓’(김영진), 대안공간에 대한 제시(이명훈, 민운기)가 설문조사와 함께 실렸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의 기획전시와 관련해 구성된 특집기사 ‘유쾌한 아트로 변신한 일상의 오브제’ (월간미술 6월호) 역시 신선한 반응을 보였다. 한편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의 테마를 점검(월간미술 1월호)하는 ‘문화권력과 그 생산, 소비체제의 교란’(이용우), ‘틈, 현실과 이상의 간극에서’(최태만) 등의 글은 <성장판 없는 성숙>(미술세계 8월호)의 제하로 발표된 ‘미술없는 미술세계로의 낯선 여행’(김영호), ‘참여관객제를 보는 하나의 관점’(심상용)과 더불어 최근 거대담론으로 등장한 국제미술이벤트로서 비엔날레의 기능과 역기능에 대해 고찰한 글들이다.

한 해를 돌아보는 글에서 지나치게 부정적인 면들을 강조한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술이론가들은 아직도 외래 이론에 함몰되어 지적 유희를 즐기고 있으며, 학회나 미술단체에서는 계보를 따지고 줄서기에 여념이 없고, 단체 운영은 파벌과 독단으로 의욕을 저하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술의 종말에 이어 미술사의 종말 그리고 미술평론의 부재를 선언 당한 2004년의 학계와 비평계는 자생적 미술이론과 방법론의 고갈현상과 현장비평에 대한 무관심을 극복하기 위한 수혈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 월간 미술연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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