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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판화시장의 문제와 대안

김영호

한국 판화예술계 현황

국내 판화시장의 침체기가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 이는 판화가 한창 붐을 이루었던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전반과 비교되는 가운데 나온 지적이기도 하겠지만 최근 심화되고 있는 미술시장 전반의 위기상황을 고려하면 판화계 만의 문제는 아니다. 돌이켜 보면 국내 판화 1세대 그룹인 <한국판화협회>가 창립된 1958년 이후 국내의 판화예술계는 발전적 변화를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특히 대학에 판화과가 설치되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 이래 매년 100명 이상의 졸업생들이 배출되면서 판화가 하나의 독립적인 장르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전문 판화가들이 활동을 개시했다. 또한 현대미술시 확산기인 1968년 <한국현대판화가협회>가 창립되고 여기에 외국에서 판화를 전공한 유학세대가 합류하면서 현대판화라는 명칭아래 실험적 판화들이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급변하는 판화개념과 유통구조 등의 문제를 지적하고 그 대안을 마련하는 일이 절실히 요구된다.
현재 국내의 판화시장에 전문인력을 배출하는 판화과 또는 판화전공이 설치된 대학은 대학원의 경우 성신여대, 홍익대, 한성대, 서울대, 동아대, 이화여대 등이 있으며, 학부의 경우는 추계대, 홍익대, 이화여대, 조선대 등이 있다. 이외에도 많은 예술대학에서는 다양한 기법의 판화과목을 개설하고 동아리를 통해 전시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판화교육의 전문화 추세는 판화가 회화를 위한 형식실험의 한 방편으로 인식되어오던 과거의 상황에서 벗어나 그것이 새로운 장르로 독립케 하는 한편 장르간의 경계를 넘어 예술표현의 다양한 방법론으로 인식되면서 예비작가들의 의욕을 크게 향상시켰다. 대학에 판화과의 설치는 유학파의 교육현장 투입이 시작되는 1970년대, 그리고 판화의 붐을 일으켰던 1980년대 후반의 화단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1988년 올림픽을 계기로 팽창되었던 미술시장의 열기는 수많은 판화공방과 판화전문화랑을 탄생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판화예술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관심은 1993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현대판화 40년전>을 개최하면서 절정에 이르게 된다. 한편 미술관의 판화전에 힘입어 1995년에는 예술의 전당에서 <서울판화미술제>가 처음으로 개최되었고 판화예술가와 예술애호가들의 관심을 높이는 기회가 되었다. 서울판화미술제를 계기로 결성된 <한국현대판화진흥회>의 활동도 1990년대 중반 이후의 판화계에 영향력을 끼친 단체로 주목된다. 화랑과 공방 그리고 판화관련업체들이 회원으로 소속되어 있는 이 단체는 판화의 대중적 확산과 미술의 유통구조를 체계화하고 활성화시키는데 나름의 기여를 하였으나 덤핑가격의 형성 등 부작용과 역기능을 낳음으로서 판화시장의 기반을 고사한다는 지적도 있다. 판화예술의 붐은 <판화VISION>와 같은 판화 전문지의 창간으로 이어지는데 특히 1995년 첫호를 낸 <판화VISION>은 다양한 대담과 논문들로 한국판화의 현황과 위상을 학술적으로 살피는데 큰 몫을 담당했다. 그러나 단발성으로 그친 이 전문지는 1997년 IMF와 뒤이어 올 미술계의 위기상황을 예견하는 것이었다.
2005년 1월에 정부는 10년 가깝게 지속되고 있는 미술시장의 불황에 대한 대응책의 하나로 미술은행(Art Bank)제도를 시행하기로 하였다. 미술은행이란 선진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시행해 오고 있는 제도로서 일종의 ‘현대미술지원 국가기금’의 운영사업이라 할 수 있다. 그 요지는 매년 25억-30억의 정부예산으로 200-300점의 미술작품을 사서 중앙부처 및 지방자치단체, 대사관, 병원, 철도역사 등 공공건물에 전시하거나 빌려주는 것이다. 올해부터 시행하게 될 이 제도의 작품 구입방식 중에는 한국 국제아트페어나 화랑미술제를 통해 현장 구입하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제도가 과연 판화를 비롯한 미술시장을 살리는 계기가 될지 미술인들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예술분야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관심은 최근 불어오는 한류의 열기에 힘입어 문화의 산업화 가능성과 그 영향력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높아져 가고 있음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판화의 개념과 경제적 가치의 변화

정보소통의 도구로서 인쇄물의 기능을 담당했던 판화가 예술표현의 장르로 규정된 것은 1960년대 초반에 와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제조형예술협회(IAA)의 총회에서 판화의 개념을 회화와 구분하면서 오리지널 판화를 원판에 의한 ‘복제성’과 다수제작으로서 ‘복수성’을 특징으로 내세운 것이다. 나아가 인쇄의 발달과 더불어 판화의 특성을 보호하고 차별화시키기 위한 장치의 하나로서 ‘에디션’을 넣게 되었다. 결국 작가의 친필 에디션은 회화의 유일성과 인쇄물의 속성으로부터 판화를 보호하고 그 경제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방법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시대의 변천과 함께 판화 개념도 변모되었다. 현대판화의 범주에서 모노타입의 판화가 국제공모전에서 대상을 받는가 하면 사진술을 이용한 판화 역시 실험적 판화로 인정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컴퓨터 매체를 이용해 제판작업을 모니터 상에서 실행하고 프린터기를 통해 인쇄된 이미지들을 판화의 영역으로 수용하는데 이의가 없는 추세이다. 뿐만 아니라 조소예술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되어온 캐스팅 기법과 종이가 아닌 곡면의 오브제로서 드럼통이나 바위 위에 찍어냄으로서 입체적 원리를 차용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내용을 정리해 보면 1980년대 이후 급변하는 판화의 지형도는 전통적 판화기법인 동판과 목판에서부터 탁본, 실크스크린, 소멸목판, 콜라그라프, 리도그래피, 옵셋 인쇄, 제록스, 캐스팅, 컴퓨터프린트, 비디오이미지와 레이져 컷팅을 이용한 설치경향의 그것까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들 기법은 한 작업 안에서 상호 혼재되기도 하고 평면을 넘어 볼륨을 지니거나 입체적 공간을 점유하기도 한다. 현대판화의 영역에 남은 마지막 카드는 이제 ‘복수성’에서 해방되어 판화라는 단어가 규정하는 판으로 찍어내기로서 ‘복제성’이 될 것이라는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통적 판화의 개념인 ‘평면성’과 ‘복수성’ 그리고 ‘장식성’ 등이 허물어지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 판화예술은 분명 과거의 그것과 차별화된 면모를 보인다. 이러한 개념과 표현방법의 전복은 판화의 경제적 가치를 매기는 가격결정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종이에 인쇄된 다수의 복제물이라는 인식이 대중들에게 사라지면서 현대판화는 회화나 조소예술작품의 그것과 경쟁관계에 돌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판화의 규모가 거대해 지는 90년대 후반의 추세도 이와 다르지 않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좀더 정밀하게 진단한다면 장르 사이의 혼재현상에 따른 판화개념과 방법의 변화는 값싼 인쇄물로서의 판화라는 인식을 불식시키고 있다.






판화유통의 문제들

국내의 판화예술의 위기는 화단 전반에 나타나는 침체와 연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따로 떼어 진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외국의 사례와 비교했을 때 나타나는 구조적 문제는 판화전문화랑의 부재를 들 수 있다. 이는 판화가격형성을 위한 기준과 보급의 전문성이 취약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일반대중들이 가격에 대한 의문과 혼란을 야기하는 간접적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판화예술의 침체는 판화시장의 취약성에서 온 것이라는 점에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판화예술을 유통시키는 주체는 화랑 이외에 아트페어, 온라인과 오프라인 경매를 포함한 경매시장, 미술품 전문 아트샵 등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판화 유통의 업무를 담당하는 시장은 앞서 말한 한국현대판화진흥회에서 주최하는 서울판화미술제를 제외하고 활성화되어 있지 못한 실정이다.
판화유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서 판화가격의 불안정성을 빼놓을 수 없다. 판화의 가격설정은 일반적으로 에디션 숫자, 재료, 기법, 색의 종류, 복제판화, 판종 등의 세부적 항목들을 통하며 차별적으로 정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의 경우 유통과정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대목은 복제판화와 오리지널판화 사이의 차별 방법과 기준이 모호한 상태에서 포스터처럼 판매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술관의 아트샵 뿐만 아니라 일반 화랑에서도 양자의 구분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고 가격을 설정하고 있어 인쇄물이 판화와 같은 가격으로 거래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이러한 경우 작품의 가격은 액자가격에 따라 달리 책정되고 판화작품의 가치는 차제의 문제가 되어버린다. 이러한 옵셋 인쇄물의 보급과 명시된 가격책정 기준의 부재는 소비자들의 믿음을 점차 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하고 결국 판화 자체에 대한 외면으로 이어지게 되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판화시장의 침체현상은 판화예술에 대한 대중의 인식 부족에서도 가중되고 있다. 아직도 많은 일반대중들은 판화가 회화의 하위개념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러한 생각은 물론 그들이 판화예술의 기법적 다양성과 표현의 차별성 그리고 미학적 가치 등을 분별할 기회를 제공받지 못한데 연유한 것이다. 중등학교에서 목판화와 고무판 정도의 체험을 지닌 대중들이 다양한 기법으로 찍힌 동판화와 석판 그리고 컴퓨터프린트, 디지털페인팅 등의 확장된 현대판화의 작업성과들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대중적 확산을 위한 판화미술제 등의 전시행사 이외에도 판화매체를 제대로 수용할 안목을 높혀 줄 판화전문지가 전무하고 유통구조마저 판화미술제 하나로 제한된 현실에서 일반 대중들의 판화문맹 현상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대중성의 지나친 강조에 따른 역기능의 현상도 문제가 되고 있다. 판화예술 자체가 소수특수층의 문화소비 독점현상을 타개하고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작품감상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기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중화의 미명하에 판화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간접적으로 하락시키는 회화작품 구입시 제공하는 선물용 판화 사례 등은 대중화에 결코 도움을 주지 못한다. 판화 전문화랑 부재, 가격형성의 객관성 결여에 국한되지 않고 세일상품과 같은 판매전략은 박리다매의 대상으로 판화를 추락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소비자는 금전적 투자의 정도에 따라 작품의 가치를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 연구결과로 제시되는 현실에서 문을 닫을것처럼 저가로 처분하는 판매행각은 판화예술의 미래를 위해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내일의 판화계를 위한 대안

앞서 지적한 내용을 토대로 해 대안을 마련한다면 우선 유통구조의 확대와 열린 시장질서의 확립이 그 대표적 사안으로 떠오른다. 판화미술제는 판화전문화랑들이 운영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오늘의 우리 현실에서 하나의 대안적 특성을 지닌 미술시장이다. 하지만 화랑과 미술제 이외에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이용한 경매방식의 도입, 아트샵 운영 등 시장구조의 다양성은 작품가격형성이나 대중저변확대에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뉴욕의 소더비와 크리스티 같은 경매회사에서 판화가 취급되면서 정당한 가격형성을 주도하고 있는것도 타산지석이 사례다.
미술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왕에 정부차원에서 실시하기로 한 미술은행(아트뱅크) 제도를 합리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기초를 세우는데 문화관광부는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운영의 주체와 대상작가 그리고 구입방식 등에 대한 연구가 그것이다. 특히 구입방법에 대한 미술협회의 입장과 화랑협회의 입장이 대립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작가들로부터 직접 구입하는 것과 화랑을 통한 구입 사이의 대입이다. 시장거래의 활성화는 화랑의 개입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고 시장거래의 활성화는 곧바로 작가들의 작품거래가 안정되고 체계화 된다는 점에서 양자간의 조율이 필수적이다.
판화계의 내일을 위해서는 대중의 인식변화 유도할 전문매체의 활용이 필요하다. 미술잡지 및 신문 담당자들의 판화예술에 대한 특집이나 작가소개 등의 기사 확대는 판화예술의 미학적 가치나 유통구조의 문제와는 다른 차원에서 전개되어야 할 대목이다. 판화에 대한 인식적 결여란 판화가 다양한 조형표현의 한 방법이며 단순한 매체적 특성과 테크닉에 지나치게 비중을 두는 태도는 바람직 한 것이 아닐 것이다. 또한 판화의 가격도 판종이나 인쇄방식, 색도, 에디션 숫자 등에 따라 합리적으로 책정함으로서 상업적 판화와 창작판화를 구분하고 가격시비를 최소화하도록 해야 하는데 이 역시 미술 저널리즘이 담당해야 할 내용들이라 하겠다. 특히 최근 한국문예진흥원 지원사업에서 노출되고 있는 ‘미술이론과 비평 분야에 대한 경시현상’은 이런 차원에서 극복되어 예술창작과 결부되는 이론서 발간사업과 학술행사에 대한 지원을 강화시켜야 할 것으로 본다.
대학교육과 관련하여 미술대학에서 판화과에서 체계적이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판화과가 아닌 예술관련 학과에서 판화과목을 정규 커리큘럼에 삽입해 현대판화의 다양한 기법 체험기회 확대해야 할 것이다. 사진, 영상, 인쇄, 컴퓨터 미디어가 현대사회의 가장 중요한 시각매체로 상승되는 가운데 전통적 기법의 전승도 중요하지만 변하는 환경에 적합한 매체를 숙지시키는 일이 시급하다. 현장에서 이미 장르간의 경계가 통합되고 다양한 기법들 사이의 혼재현상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현상을 고려할 때 대학에서의 뉴 미디어 분야에 대한 체험과 숙련과정은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닐 것이다.
판화의 미래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판화예술의 미학적 기준을 되찾는 일이 요구된다. 유용성의 측면에서 판화란 문화의 기록을 위한 도구이자 텍스트 전파를 담당하는 기능을 지니면서 발전해 왔다. 이러한 기능성은 기록원판과 복수제작의 형식으로서 판화만의 독자적인 개념과 존재의미를 구축케 하였다. 시대가 바뀌고 예술의 영역에서 독립적인 표현매체로 자리 잡기 시작한 이래 판화는 첨단 매체를 수용하면서 그 가능성을 주변으로 확대시키고 있지만 그러나 시각을 달리하여 보면 판화가 지닌 지식과 정보전달의 기능성은 사진이나 비디오 또는 컴퓨터 등의 첨단장비의 등장에 의해 위협받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판화예술이 소멸하지 않으려면 존재하는 모든 것이 판화로 불리울 수 있다는 무차별적 수용론에 반박하고 판화예술의 정체성을 확보할 명증한 논리를 세우는 일이 필요한 시점이며, 이를 위해 미술계의 모든 구성원들의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다.(미술세계 2005년 2월호)


(* 이 글은 2002년 7월 ‘한국판화시장의 현황과 문제점’이란 제목으로 월간지에 발표되었던 글을 수정 보완한 것임)

- 미술세계 2005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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