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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현대미술의 현주소

김영호

I. 머리글

<현대미술>은 보통명사로 쓰일때 우리시대의 미술로서 20세기와 그 이후의 미술을 가리키는 시간적 범위를 뜻하는 용어로 넓게 사용되고 있다. 미술사적 측면에서 보면 현대미술(Contemporary Art)는 근대미술(Modern Art)과 대립되는 미술로 정의된다. 이때의 시기는 1960년경 이후에서 현재에 이르는 미술을 지칭하며 모더니즘 미술의 비평원리인 형식, 환원, 본질, 구조, 전위 등을 가지고 더 이상 규명할 수 없는 미술이며 내용, 확산, 차이, 서술, 탈전위 등의 소위 포스트모더니즘 비평원리를 적용시키는 미술을 뜻한다.
개념적 측면에서 그것은 현재 ‘진행중인 미술’이자 ‘살아있는 미술’로 규정되기도 하지만 특정한 조형양식을 나타내는 개념도 아니고 이념적 동질성을 내세우는 그룹도 아닌 편의적 개념이다. 이러한 시간적 범주와 개념적 측면의 모호성에도 불구하고 현대미술이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미래의 역사를 구성할 현재의 자료이며 언젠가 미술사적 문맥으로 다루어질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현대미술은 과거미술로 분류되어 역사속으로 자리잡게 되며 또 다른 현대미술을 건강하게 키우는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현대미술의 가장 큰 특성은 현재성에 대한 관심이며 동시대를 사는 우리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성찰하는 시도라는 점 그리고 과거와 미래가 상호 유기적인 연결고리임을 확인케 해 주는 개념이라는 점에 있다.

<제주현대미술>이란 현재 제주에서 진행중인 미술이자 불가피하게 앞으로 역사속에 자리잡게될 미술이다. 이러한 역사적 관점을 현대미술에 적용시켜 보려는 시도는 미래와 과거를 확정되거나 완결된 사실로 인식하지 않고 시간의 흐름속에서 바라보려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현재의 삶과 예술에 대해 치열한 성찰을 도모해 보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제주의 현대미술이 미래의 시점에서 보다나은 과거의 미술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당대의 미술사가와 비평가들이 진행중인 미술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에 대한 일차적 자료들을 사려깊게 생산하는 일이 필요하다. 향후 제주미술의 역사를 서술하기 위한 자료들의 생산과 보존은 제주미술의 정체성과 그 가치를 판단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현대에 대한 성찰의 노력이 없으면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고 한다면 필자의 지나친 편견일까?

이 글은 제주현대미술의 현상을 진단하여 현주소를 자리매김하려는 것이다. 필자는 우선 제주도 미술인과 미술단체의 현황을 살펴보고 아울러 문화생산을 뒷받침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제주도의 문화예술정책과 지원사업에 대해서 진단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번 제주도문예회관에서 열리는 <바람의 신화 -2004 제주현대미술전>에 참가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하여 제주현대미술에 나타난 제주의 고유한 특성이 있는지를 진단하고, 그것이 있다면 어떠한 모습을 띠고 있는 지를 조사할 것이다.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제주현대미술을 미술사적 문맥으로 정리하기 위한 학술세미나가 열리게 되는데 세미나에 소개되는 논문은 ‘한국화단과 지역미술’, ‘제주현대미술의 현주소’, ‘제주를 찾은 미술인’, ‘제주미술 50년사’로 정해져 있고 각각 다른 필자에 의해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이 글은 그 중 제주현대미술의 현주소를 언급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겠다.






II. 제주도 미술인과 미술단체 현황

최근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미술>의 장르적 범주는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을 포함한 한국화(또는 동양화), 회화(또는 서양화), 조각, 건축, 공예, 디자인, 서예, 드로잉, 판화, 뉴미디어, 사진, 미술사, 미술평론 등 13개의 분야을 포함하고 있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품 정책을 위해 분류한 <작품유형>은 한국화, 회화, 드로잉/판화, 조각, 뉴미디어, 공예, 사진, 서예, 디자인, 건축 등 10개 분야로 나누어져 있다. 그런데 미술관이 분류한 <작가유형>을 보면 한국화, 서양화, 드로잉/판화, 조각, 뉴미디어, 공예, 사진, 서예, 디자인, 건축, 미술사/미술평론 등 11개 분야로 나누어 진다. 특이한 점은 작품유형에서 ‘회화’로 명명한 것을 작가유형에서는 ‘서양화가’로 부름으로서 혼선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아직도 국내 화단에서 ‘서양화’ 또는 ‘서양화가’라는 명칭의 사용이 과도기적 혼란의 시기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용어 사용의 문제점은 한국미술계가 심각하게 검토해야할 대목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미술품 구입이나 전시활동의 대부분은 순수미술 분야인 한국화, 회화, 조각, 드로잉/판화, 뉴미디어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건축, 공예, 사진, 디자인 등 응용미술 분야와 서예는 이 분야의 전문 미술관 또는 박물관들이 건립되면서 업무가 점차 분리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국내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 글에서 시도하는 제주현대미술의 유형분류는 순수미술의 영역에 넣을 수 있는 회화, 한국화, 조각, 판화, 뉴미디어 등 5개 단위로 분류 될 수 있으며 공예와 사진의 경우는 실용적 측면보다 순수미술적 측면을 고려한 작업들의 경우에 한해서 예외적으로 포함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사진은 현대미술의 영역에서 중요한 매체로 다루어지고 있는데 최근의 베니스나 상파울루 비엔날레와 같은 국제미술제 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피악(FIAC)이나 바젤 같은 미술시장에서도 회화나 조각과 더불어 주요상품으로 거래되고 있다. 이러한 사진 작업은 비디오 미술과 설치적 경향을 포함한 매체와 더불어 뉴미디어라는 신생 쟝르로 분류되기도 한다. 한편 공예 역시 기능적 측면을 부정한 순수 조형물로서 제작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제주미술인>이란 누구인가? 제주에서 태어나 상당기간 도내에서 교육을 받았고 이후에 도 내외에서 전문인으로 홛동하는 미술인이 제주미술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외지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았으나 도내에 입도하여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들도 제주미술인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제주지역의 특수한 환경과 역사 그리고 문화현상에 영향을 받았고 또한 제주지역의 문화생산에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미술인들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제주도 현지에서 오랫동안 교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작품활동을 했거나, 어떤 계기로 입도하여 상당기간을 도내에서 거주하며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경우가 그것이다. 활동지역을 기준으로 제주미술인들을 분류하면 재향미술인과 출향미술인으로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육지에서 창작활동을 전개하는 경우 이들의 작품 근저에 흐르고 있는 문화적 정체성은 유아기와 청소년기에 형성된 고유한 성질 위에 구축되어 있으므로 제주작가가 되는 것이다. 굳이 테에느의 ‘환경결정론’을 빌지 않더라도 예술창조에 있어 환경의 영향은 불가피한 것이며 굳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을 빌지 않더라도 유년기의 기억은 예술 생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물론 환경이 변하게 되면서 의식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고 이러한 변화는 결국 혼성적 속성을 지니게 되기 때문에 두부를 나누어 놓듯 제주작가 서울작가 등으로 구분하기는 힘이 들고 그러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다만 사람이 떠나더라도 그 작가의 자취가 특정지역의 미술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에 따라 제주작가의 범주에 넣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술사 기술의 시각에서 지역에 따른 문화적 토양의 차별성은 그 지역문화를 대변하는 미술인의 작품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에 앞서 말했듯이 제주의 자연적, 역사적, 문화적 환경에 영향을 받았거나 제주의 미술문화 형성에 영향을 끼친 작가는 제주미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가령 조선시대에 9년간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추사 김정희가 입도하게 된 것은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다 하더라도 제주의 환경에 영향을 받았고 후에 그의 예술관이나 화풍이 제주미술에 끼친 영향이 인정되면 그는 제주미술사에 남게 되므로 미술사적 견지에서 김정희는 제주미술인이 될 수 있다.


2004년 현재 제주도가 집계한 제주미술인 총 수는 ‘법인단체’로 등록된 회원의 경우 204명(한국미술협회제주도지회 155명, 한국미술협회서귀포지부 23명, 한국민족미술인협회제주도지회 26명)으로 집계되어 있다. 그러나 ‘일반단체’로 등록된 회원이 무려 36개소 672명에 달하고 있어 법인단체와 일반단체의 회원들 모두를 합하면 총 876명의 미술인들이 등록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세부내용은 문화예술재단 홈페이지 www.jcaf.or.kr 문화예술종합안내를 참조할것.
물론 이 숫자는 연극이나 음악 등 공연영상예술 분야의 예술인들과 서예, 사진, 건축 등의 부문을 모두 포함시키지 않은 회원수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러한 미술인의 수자는 제주도의 전체인구가 553,864명(194,855세대)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결코 적은 숫자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며 서예(26단체 1137명)와 사진(26단체 524명) 그리고 건축 분야를 포함하면 그 숫자는 2500명이 넘고 있다. 이들 미술인의 활동하는 영역을 보면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출향작가도 없지 않지만 거의 대부분은 제주도내에 단체로 주소등록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제주미술인 현황을 좀더 분석해 보면 도내에서 활동하는 미술인으로 구성된 일반단체의 36개소는 동문, 동향, 문하생 등의 연고에 의해 결성된 것이 많고 심지어 대학에 재학중인 학생들이 만든 동호회의 성격을 지닌 집단들도 있다. 또한 이들 중에는 한사람이 몇 개의 단체에 이름을 올려 놓은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실재 제주미술인 총 수는 단체등록 회원수와는 크게 차이를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지역의 미술을 포함한 문화적 진흥은 특정 소수의 전문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미술의 저변적 요인들로서 아마추어와 동호인 그리고 일반 대중들의 집단적 문화적 활동을 통해 활성화 되기 때문에 이러한 단체의 숫자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물론 이들 일반단체 중에는 분야별 미술인들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집단적 연구활동을 통해 창작활동을 개선하기 위한 단체들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 중에 <제주조각가협회>(1998년 창립, 현회원수 28명), <제주판화가협회>(1999년 창립, 현회원수 21명), <제주한국화회>(1991년 창립, 현회원수 36명) 등은 해당 분야의 대표적인 활동을 전개하는 작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기전을 통해 그룹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오고 있다. 또한 신성여고 동문들이 중심이되어 1982년에 결성된 <에뜨왈>이나 1978년에 현대미술의 다양한 흐름을 비판, 수용, 해석하여 지역성을 극복한다는 취지로 창립된 <시상작가회>와 같은 그룹의 활동은 괄목할 만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제주를 떠나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모임인 <한라미술인협회>도 거의 유일하게 제주도 외지에서 형성된 단체로서 1996년 창립된 이래 매년 정기전을 통해 활동해 오고 있다. 한라미술인협회는 제주가 고향이거나 제주와 관련된 미술인단체로 구성원의 전공분야는 한국화, 회화, 조소, 판화, 서예, 공예, 미술사(미술평론) 등 다양하다. 회원으로는 김영철, 고영훈, 고경훈, 김영호, 김용주, 전재현, 김순겸, 강승희, 문봉선, 고봉수, 정성실, 한용국 등 70여명이 등록되어 있다.


20세기 후반의 국내 화단의 전체적 흐름에 비추어 제주화단을 살펴보면 타도시와 마찬가지로 제주도 미술단체들이 제주화단의 진흥에 미치는 영향은 그다지 만족할만한 수준이 되고 있지 않아 보인다. 최근의 국내외 화단 상황은 과거 70-80년대 1972년 제주대학 미술교육과 신설되면서 미술인이 증가하고 단체전 활동이 증가하였는데 1973년 제대미전, 1975년 재학생 모임인 녹우회, 1978년 제미동문전이 탄생되었고 1975년 제주신문사 주최하는 제주도전이 출발하였으며, 1971년에는 제주의 첫그룹으로서 ‘화실동인’(창립맴버는 강용택, 양창보, 조석춘, 강광, 강영호, 김원민, 김택화 등 7명) 이 활동 시작. 1977년에는 실험적 그룹인 ‘관점동인’(창립멤버는 강광, 강요배, 오석훈, 고영석, 백광익, 김용한, 정광섭 등 7명)이 결성되어 타지방과의 활발한 교류전을 개최하였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 1981년 에뜨왈, 1984년 프린트미디어, 상황과표현 등의 새로운 그룹이 다수 활동을 개시하였고 이를 계기로 도내에는 전문전시관이 다수 개관되어 타지역과 교류전과 그룹에 대한 초대기획전이 줄을 이어 개최되었다.
와는 달리 집단적 이념을 내세우는 그룹중심의 전시가 줄어들고 개인적 차원의 전시활동이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의 미술가들에게 부여된 예술적 소명이라는 것이 특정한 이념이나 사상 등의 거대담론을 드러내는 것에 있지 않고 개체적 존재에 대한 성찰과 타자에 대한 관심 그리고 개인적 욕망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편 모더니즘의 시대에 공동체를 결속시키던 중심적 조형형식과 관습 그리고 미학적 기준과 가치들이 해체되고 탈중심적 사고와 반미학적 태도를 선호하면서 예술자체의 정의를 규정짓기 힘든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상황도 그룹전이 약화되는 배경이 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도내의 대표적인 법인단체로서 한국미술협회제주도지회(이하 미협)의 경우를 보면 조직과 운영 그리고 전시를 통한 이슈생산에 적지않은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화가 김순관은 자신의 논문을 통해 ‘1990년대에 들어와서 미협은 서서히 붕괴되어가고 도내 미술계의 중심축은 다원화되기 시작’ 하였고, ‘제주도미술대전 역시 제주대 미술학과 학생들의 출품거부로 도내 미술계의 내부적 갈등을 표면화되면서 파행적 운명으로 치닫게 되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진단하고 있다. 김순관, “제주미술의 어제와 오늘(1946년-1999년)”, 논문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대응하여 1993년에는 탐라미술인협회(이하 탐미협)가 창립 되어 제주미술은 그간 미협의 단일 구조 아래 여러갈래의 가지로 분열되었던 과거와는 달리 미협과 탐미협이라는 두개의 조직으로 크게 이분되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

탐라미술인협회는 한국민족미술인협회의 제주지회 조직으로서 법인단체의 성격을 지니면서 미협과 비교할 때 회원수의 불균형에도 불구하고 제주미술계를 양분시키는 힘을 지닌 단체로 급성장 했다. 탐미협이 힘을 가지게 된 원인은 당시 거대조직이었던 미협의 분열상황도 있었지만 미술의 진정성 회복과 고답적인 향토주의나 허구적 모더니즘에서 벗어나 삶과 밀착된 당대의 리얼리즘의 추구를 통해 제주지역 미술의 위상을 높인다는 설립목적의 명분이 당대 제주화단에 하나의 신선한 청량제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새로운 피를 수혈 받으면서 제주화단은 지역의 항쟁사와 민중 그리고 민족에 대한 미술적 해석과 표현을 활발히 전개하는 기점을 마련하게 되었다. 특히 그동안 문화예술계의 숙원사업으로 내려오던 4.3에 대한 재조명 작업은 이 단체가 일군 성과의 하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긍정적 요인에도 불구하고 이 단체의 탄생에 따른 역기능이 그만큼 나타나게 되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이른바 해방공간 이래 국내 화단에 지속적으로 전개되어오던 구태의연한 보수와 진보, 수구와 개혁 등의 정치적 분열 상황이 제주 땅에도 뒤늦게 이식되었던 것이다. 그 역기능은 열악한 숫자의 자원을 가진 제주도의 화단에 현안과 문화 정책의 이슈에 대한 연구활동에 서로 비협조적 태도를 보임으로서 문화를 통한 지역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을 원천적으로 차단시는 효과를 발생시켰다. 이러한 현상을 시대의 탓으로 돌려야 할 것인지 아니면 두 단체의 집단이기주의 때문인지에 대해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정리될 것이다. 민족미술인협회제주도지회로 등록되어 있으면서도 이 단체의 명칭을 탐라미술인협회로 독립해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정체성의 측면과 당시의 단체 구성원들의 중앙조직과의 관계 설정에 따른 복잡한 정황을 이해하는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다.

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단체활동에는 기능과 역기능이 함께 공존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며, 또한 과거의 관습위에 자리를 틀고 있는 조직의 폐쇄적 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미술을 포함한 예술의 역사는 기존에 형성된 제도와 관습 위에 형성된 이념 및 완성된 조형적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또한 예술이란 당대의 삶에 치열한 성찰의 결과를 개성적 언어로 표현해 내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본성 때문에 예술은 고독한 활동이지만 수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걸고 도전해 온 것이며, 당대의 시대정신을 반영함으로서 삶의 질을 높이고 긍정적 의미로서의 지역공동체 결속을 강화시키는 문화효과를 발생시켜왔다. 다시 말하자면 예술활동은 문화적 공유의 고리를 형성하고 사람 사는 맛이 나게 하는 활동이다. 자본주의 체제를 살아가는 예술가는 사회적 구성원의 하나로서 불가피하게 정치나 경제적 그룹을 형성할 수 있다. 그러나 단체나 조직의 굴레에 구속받지 않고 역사 속에서 자유로운 태도를 당당히 고수할 수 있었던 힘은 자유의지로 변화하는 사회를 반영하는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어나가는 예술의 본성 때문이었다. 전통과 혁신, 혹은 지속과 단절, 혹은 개인과 집단 사이에 설정된 예술의 역설적 본성에 대한 성찰과 이해는 제주화단이 가져야할 태도이며 육지와는 달리 고유한 문화를 유지해 온 제주도 작가들이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한다.





III. 제주도의 문화예술정책과 지원사업

다음으로 짚고 넘어갈 것은 미술인과 미술단체의 활동을 가동시키는 소프트웨어로서 미술정책과 행정에 관한 것이다. 새천년의 입구에 들어서면서 제주도는 다시 한번 문화적 전환기를 맞고있는데 이것은 국제자유도시와 연관된 전례없는 문화진흥 프로젝트의 설정에 관련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정부는 2002년 ‘제주국제자유도시’를 공포하였고 제주도는 이를 위한 ‘제주국제자유도시 종합계획’을 2003년에 고시하였으며 그 이듬해인 금년 상반기에는 제주지역 문화예술의 자율적인 발전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제주향토문화예술진흥중장기계획’이 수립되었다. 이 중장기계획의 이념과 기본방향을 보면 제주도가 추진해야할 실천적 범주를 ‘제주의 정체성구현’, ‘전통과 현대의 조화’, ‘지역공동체의 결속’, ‘대자연과의 조화’, ‘세계화 지향’ 등의 5개항목을 내세우고 있으며 부문별 진흥계획을 보면 기본방향에 근거한 7개의 세부 항목 진흥계획의 7개의 항목은 ① 향토문화예술진흥에 관한 기본시책 및 계획, ② 전통문화예술의 보존 전승 개발에 관한 사항, ③ 향토예술단체의 지원에 관한 사항, ④ 문화예술 관련시설의 확충 및 정비, ⑤ 문화산업 육성에 관한 사항, ⑥ 제주문화의 정체성 확립 및 문화복지기반 구축, ⑦ 제주문화예술의 세계화와 교류 등으로 되어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적 차원에서 마련된 이 중장기계획이 제주도의 문화예술분야의 진흥을 위한 구체적 계획과 실행에 얼마나 실효를 거두게 될 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제주국제자유도시 종합계획이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고 대통령의 제가를 받은 사업으로서 국가차원의 재정지원을 받을 법적 장치가 되어 있다는 점과 문화예술부문 투자계획으로 설정된 사천억원이 넘는 예산 국제자유도시 종합계획에 반영된 투자계획 중 문화예술부문 투자계획은 총 406,459,000원으로 잡혀있다. 이는 제주도립미술관 건립, 문화예술해외교류행사, 문화의 집 조성, 제주국제 자연미술전, 4.3평화공원 조성 등 41건의 사업을 위한 규모이며 그중 약 3분의 2에 해당하는 259,177,000,000원이 국비로 되어 있고 약 3분의 1에 해당되는 137,502,000,000원이 비방비이며 기타가 9,780,000,000원으로 되어 있다. (문화예술재단, ‘국제자유도시 종합계획에 반영된 투자계획, 2003.10)
이 전례없는 규모로 잡혀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프로젝트가 문화예술인을 포함한 도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계획대로 집행된다면 적어도 이 사업의 시간적 범위인 2011년까지 제주도내 문화예술 시설의 확충과 정비, 단체의 지원, 국제미술행사 등의 사업을 수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도내의 문화예술정책안과 그에 따른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 제주향토문화예술진흥중장기계획은 아직도 대부분의 미술인들에게 별다른 동요를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도정책이나 행정에 무심한 것이 예술가들의 속성이기도 하겠지만 기존의 문화예술진흥계획이 말 그대로 계획안으로 존재할 뿐 탁상공론으로 흐지부지 되어 버린 사례가 있을 뿐만 아니라 행정기관과 미술인 사이에 신뢰적 차원의 연결고리가 취약한데서 온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지금 전개되는 국제자유도시 프로젝트 하의 문화예술중장기계획은 제주도에 다가온 하나의 기회이자 이 기회는 앞으로 다시 올 수 없는 호기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 사업에 대한 도민적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시점으로 본다.

한편 제주도의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공공기관의 현황을 보면 새천년의 벽두인 2000년에 설립된 제주문화예술재단과 제주도의 산하기관인 제주문화진흥원의 활동에 대한 관심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은 우리나라에서 경기문화재단에 이어 두 번째로 설립된 기금으로서 매년 문예진흥기금 지원사업과 다양한 연구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문예회관 전시실을 운영하고 있는 제주문화진흥원 역시 전시지원사업과 신인작가 발굴사업에 기여하는 단체로서 미술인 사이에서 비판적 시각도 없지 않지만 미술문화의 진흥에 직접적인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은 지역문화의 활성화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단체이며 앞서 언급한 제주도종합개발 계획에 따른 문화예술중장기계획과 같은 정책연구를 담당하고 문예진흥기금을 운영함으로서 창작 및 예술활동에 대한 개인과 단체 차원의 지원사업을 담당하고 있으며 매장문화재와 유적에 대한 연구 및 조사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제주문화진흥원은 제주도의 도사업소로 설치된 기관으로서 진흥원 소속 건물인 문예회관의 대관업무와 공연 및 전시활동 지원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단체이다. 문화진흥원의 미술분야에 관한 사업으로는 전시실 대관, 기획초청전시 대상선정, 그리고 제주청년작가 전시계획 수립 등의 업무가 있는데 대부분의 중요한 전시회는 이 곳에서 열리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제2전시관 확충공사가 진행되어 7월 초에 개관하게 됨으로서 명실공히 제주도의 전시문화의 중심으로 인정받는데 손색이 없다.

그러나 제주도의 전시문화는 제주문예회관 전시관 하나만으로 실속있게 전개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러한 판단에서 현재 추진되고 있는 제주도립미술관 건립에 거는 기대는 크고 실재로 이 미술관이 완공될 경우 제주도의 전시문화는 일대의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미술관의 업무가 전시기획 뿐만이 아니라 소장품의 체계적 수집과 연구, 대중과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미술관 교육, 유형문화재의 보존과 복원 등의 사업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전시문화의 환경은 근본적으로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최근의 미술관 정책이 문화소비자인 대중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만큼 도민들의 문화향수권 향상에 많은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최근 제주도립미술관 추진 상황이 이러한 도민들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시민연대와 언론에서 보여주는 관심 이상으로 건립의 주체가 되는 제주도와 추진위원회가 발벗고 나서야 할 시기라 생각된다. 도립미술관 건립을 포함해 제주도의 문화정책과 지원사업을 위한 과제들은 이미 도지사의 공약이나 문화예술중장기계획을 통해 제시된 사항들이다. 이제 문제는 계획실행을 위한 도와 미술계의 의지에 달려있다.


IV. 제주현대미술의 원천으로서 <바람>

최근 전개되는 도 차원의 문화예술진흥정책과 관련해서 정작 선택과 집중의 대상이 될 제주도의 문화적 특성이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제주도 예술문화의 핵심적 정체성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현대미술분야에서 어떤 시각언어로 나타나고 있는 지를 살펴보는 일이 요구된다.

제주의 문화적 정체성은 다양한 원인 통해 형성된 것으로 분석될 수 있지만 대표적인 원인으로 지리적 역사적 토양으로서 환경과 연관해서 형성되어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환경을 가꾸어 온 제주지역의 특수한 자연에너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바람>이다. 지구상에 대기로서 바람이 없는 지역이 어디 있으랴 마는 제주도의 바람은 오래전부터 의미생산의 주체적 대상이 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무명으로 남아 있다가도 명명함으로서 의미가 주어지듯 이미 제주도의 바람은 상징적 기호가 되었으며 예술가들에 의해 작품소재로 다루어져 왔다. 한라영산(漢拏靈山)과 360여개의 기생화산(寄生火山)인 오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자연에너지로서 바람은 백록담에서 산자락을 지나 현무암이 덮힌 해안에 이르는 제주의 환경을 영겁 속에서 쓸어내리며 육지와 다른 환경을 형성시켰다.

제주도의 바람은 그저 물리적 자연 뿐만 아니라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일구어온 힘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제주인은 바람에서 자연의 법칙성과 향기를 감지하고 바람의 자취를 통해서 당대의 삶과 과거의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을 배워왔다. 해변에 줄지어 서있는 소나무의 거친 표피는 바람에 대응하여 자신을 지키려 했던 제주의 피부이며 그와 이웃하여 검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팽나무는 제주의 역사를 끌어안고 서 있다. 그 팔을 하늘로 뻗치고 있는 형국이 마치 하늘의 영기를 받아 내려 대지로 전달하려는 듯 비장하고, 잔가지 사이로 스쳐가는 바람소리는 자연이 들려주는 숨소리이자 제주의 노래이다. 제주의 초가나 담장 그리고 어부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도구들이 바람과 연계되지 않는 것이 없음은 바로 제주의 혼이 바람에 의해 실체를 드러내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사계절의 순환적 사이클을 축으로 삼아 제주의 자연을 키워온 바람은 제주인들에게 전령사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그것은 계절마다 다른 기운으로 대양 넘어 육지에 대한 이름모를 노스텔지어를 안겨주었다. 또한 바람은 공기중의 먼지를 거두어감으로서 별로 채워진 여름밤의 광대한 우주공간과 대면케 하며 숭고의 감정을 키워주었던 것이다. 제주지역이 국내 최고의 청정지역으로 조사된 것도 따지고 보면 바람청소의 산물이었다. 이렇듯 사방이 바다로 둘러쳐 고립된 섬의 주인으로서 제주인은 대양을 넘어 미지에 대한 꿈과 자연의 위대하고 통렬한, 그리고 두려움의 감정을 동반한 쾌의 경험을 했던 유년시절을 누구라도 기억하고 있다. 한라산 자락에 흩어진 기생화산 지역에 서식하는 식물의 숫자도 1800여종에 이르는데 제주의 바람은 다양한 자연의 생명들을 싹틔우고 키워내는 섬세함을 지니고 있었으며 한편으로는 풍랑을 동반해 바위를 깎아내는 엄청난 에너지의 파도를 지휘하는 위력을 동시에 지니며 섬을 지배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바람이 제주의 자연과 역사를 만들어낸 원인이었다면 그것을 신화화하고 가시적 조형언어로서 상징화 하는 일련의 활동이 현대미술이라 할 것이다. 즉 현대미술이란 바람의 신화를 현대적 조형언어로 가시화 시키는 일이다. 만일 우리가 바람을 제주성 혹은 제주인을 상징하는 대상으로 여길 수 있다면 신화는 그 바람에 의해 키워진 문화 혹은 예술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바람은 제주의 상징이며 신화는 그 바람이 만들어낸 문화가 된다. 바람이 일으킨 문화가 제주의 문화이며 그것은 예술의 이름으로 시각화 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할 수 있다면 역으로 거슬러 올라 우리는 다시 그 작품을 통해 제주의 자연과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작품을 통해 바람의 역사를 거슬러 오르고 그 안에 숨겨진 자연의 비밀과 법칙성 그리고 은밀한 은유와 숨결을 예술작품 속에서 발견해 내는 일은 더없이 귀한 일이라 하겠다.

바람이 일으킨 신화가 무수하듯이 제주의 작가들 개개가 만들어내는 작품세계의 종류는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다. 어떤이는 섬의 자연 이미지를 통해, 어떤이는 역사화의 서술적 형상을 통해, 어떤이는 인물이나 민속 혹은 무속의 소재를 통해, 어떤이는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작업형식을 통해 저마다 다른 메시지를 드러낸다. 그러나 이러한 소재와 조형상의 차별성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바람을 거느리고 제주의 모태성징(母胎性徵)으로서 한라영산에 의해 길들여진 어떤 공통분모가 있다고 필자는 믿는것이다.

이상과 같은 이론적 근거 아래서 기획된 전시회가 이번 제주도문예회관 전시실에서 개최되는 <바람의 신화 2004 - 제주현대미술전>이라 할 수 있다. 필자가 이 전시에 거는 기대는 자연에 대응하여 형성된 차별적 삶의 흔적 사이를 흐르는 보편성을 찾아내는데 이 전시가 나름의 기여를 할 것이라는데 있다. 결국 <바람의 신화 2004 - 제주현대미술전>은 바람을 통해 제주도와 제주인이 키워온 문화적 정체성의 한 줄기를 검색하는데 일차적인 목표가 있다. 물론 이는 자족적인 하나의 제안일 뿐이며 완결되거나 불변하는 미학적 가치를 제주로부터 생산하고 그것을 한국화단으로 올려세워 구축하자는 문화적 프로파간다가 되기를 거부한다. 예술은 가변적인 실체이며 확정된 기존의 제도나 관습 그리고 형식에 항구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고 새롭과 변신하는 하나의 과정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결코 무의미한 것은 아닌 것이 이러한 과정 그 자체가 뒤이어 올 세대에 의해 다시 극복된다 하더라도 이러한 노력의 과정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맛을 높이고 지역공동체를 결속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라는 점을 필자는 믿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람의 신화 2004 - 제주현대미술전>에 초대된 작가는 모두 55인으로서 그 명단은 다음과 같다 : 강동언, 강민석, 강부언, 강승희, 강시권, 강영호, 강요배, 고경훈, 고길천, 고봉수, 고영우, 고영훈, 곽정명, 김만수, 김방희, 김상현, 김순겸, 김순관, 김연숙, 김영철, 김용주, 김용환, 김원구, 김재경, 김천희, 김택화, 김현숙, 문봉선, 문창배, 문행섭, 박경훈, 박성배, 박성진, 박유승, 백광익, 변금윤, 변시지, 부현일, 성창학, 안진희, 양경식, 양미경, 양용방, 양창보, 이성만, 이왈종, 임춘배, 전용성, 전재현, 정성실, 채기선, 하석홍, 한용국, 홍성석, 홍진숙.

초대작가들은 모두 다섯 개의 장르로 분류되어 있는데 회화, 한국화, 조각, 판화, 뉴미디어 등이 그것이다. 그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회화 (26명) : 강영호, 강요배, 고경훈, 고영우, 고영훈, 김만수, 김순겸, 김순관, 김원구, 김영철, 김용주, 김용환, 김택화, 문행섭, 문창배, 박성진, 박유승, 백광익, 변시지, 양경식, 양미경, 이성만, 채기선, 하석홍, 한용국, 홍성석 / ② 한국화 (12명) : 강동언, 강부언, 김천희, 곽정명, 김현숙, 문봉선, 박성배, 부현일, 양창보, 이왈종, 전재현, 정용성 /③ 조각 (9명) : 강민석, 강시권, 고봉수, 김방희, 김상현, 성창학, 양용방, 임춘배, 정성실 / ④ 판화 (5명) : 강승희, 김연숙, 김재경, 안진희, 홍진숙 / ⑤뉴미디어(3명) : 고길천, 박경훈, 변금윤
필자가 내세운 전시개념에 비추어 보자면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모두가 ‘바람에 의해 잉태된 자식’들이라 할 수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출품작들은 바람에 의해 형성된 문화적 결정물들이며 신화화된 바람의 전설이 작품의 요소요소에 담겨 있다. 따라서 역으로 우리가 작품들 하나하나를 바라보면서 그 안에 숨겨진 바람의 역사와 삶의 기억을 추적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본다. 비평을 또하나의 창조적 활동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필자에게 이 일로 시비를 걸 일도 없을 것이다.


V. 제주현대미술의 미학적 지평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이 내세우는 의미들은 작가의 수만큼 다양하지만 작품의 해설을 위해 위해 편의상 작품의 주제를 중심으로 분류하면 그것은 앞서 제시한 것처럼 다음과 같은 네 개의 성향으로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섬의 자연>, <제주의 역사>, <제주인의 삶>, <제주의 정신>이 그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제적 성향은 한 작가의 작품에서 혼재되어 동시에 나타나기도 하며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바뀌게 되는 경우도 적지않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자신이 정한 단일 주제에 충실하고 한동안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사실이며 그 결과물은 구체적 대상으로 남아 있으므로 어느정도의 분류가 가능하다.

우선 <섬의 자연>을 주제로 한 그림은 해변이나 산자락 풍경을 그려낸 작품으로서 변시지를 비롯하여 양창보, 부현일, 곽정명, 박성배, 정용성, 김천희, 문봉선, 강부언, 강영호, 강요배, 문행섭, 김용주, 문창배, 채기선, 김순겸, 한용국, 강승희 등을 들 수 있다. 작가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현실의 주변 풍경을 화폭에 담아내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로 보이지만 그러나 결과적으로 표현된 작품에 나타나는 풍경은 작가마다 매우 다른 내용과 형식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물론 작가의 세계관 즉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개개의 작가들에 있어 자연은 같다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작품으로 표현된 자연은 작가에 의해 창작된 자연으로서 또하나의 자연 즉 ‘의사자연(擬似自然)’이 된다. 의사자연이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축성된 자연이며 신화화된 자연이라고도 할 수 있다. 동서를 막론하고 예로부터 이 의사자연의 아름다움에 더 점수를 높게 부여했던 이유는 그것이 철학적 혹은 미학적 성찰이 빗어낸 자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찰은 풍경이라는 표피적 의미를 벗어나 그 외형이 품고 있는 내적 의미에 관심을 갖도록 관객을 이끌게 된다.

가령 변시지의 경우 섬의 자연은 ‘폭풍’의 회화적 표상이라 할 속성을 지니며 무한한 두려움을 동반한 쾌로서 숭고의 감정을 발생시킴으로서 자연의 외적 이미지를 그려낸 차원을 넘어 미학적 인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풍경은 결국 작가 자신의 세계관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자화상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며 이때 나타나는 기호적 의미는 바로 ‘절대고독’이 된다. 한편 이와는 대조적으로 자연풍경은 전통적으로 이어져 온 회화상의 소재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관념적 가치와 문맥이 나타나는 경우를 보게된다. 가령 양창보의 수묵화에 그려진 제주 자연은 실명의 풍경이면서도 낯선 요인들이 동시에 자리잡고 있다. 작가는 제주의 섬과 풍광을 그려내고 있느나 대개의 경우 거칠고 척박한 화산암의 섬이 아닌 풍요롭고 서정적인 대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이를 통해 현세적 가치관 위에 존재하는 이상적 세계를 추구하는 작가의 태도, 혹은 현세와 적절하게 거리를 두고 그것을 초월한 관념의 세계에 관심을 두려는 작가의 의도를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특정한 해안지역의 풍경을 실경으로 담아내려는 부현일이나 강영호의 근작 그리고 제주의 오름과 야산을 주제로 삼는 박성배의 리얼리즘적 관점과는 차이가 있다. 또한 서정적 감성의 창을 통해 자연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려는 강승희와 곽정명의 작업과, 문인화의 전통 속에서 수묵의 물성을 격조높게 다루는 문봉선과 정용성의 작업, 그리고 유화의 자유분방한 마티에르와 파도의 물성이 합치되는 가운데 생동감 넘치는 바다 풍경을 그려내는 문행섭의 작업과, 극사실적 기법으로는 현무암의 물성을 살아있는 생명질처럼 묘사해 내는 문창배의 작업과 기억의 회상에 풍경이미지를 대입 시키는 김순겸 등은 저마다의 개성적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와같이 ‘해석된 자연 이미지’는 제주의 땅이라는 대상을 소재로 삼고 있으나 외형을 넘어 자신이 지배하는 미의 영역을 구축해 내는 일종의 또하나의 자연이다. 이러한 일들이 귀한 것은 앞서 말했듯이 작품에 자연에너지로서 바람에 대한 자신의 관점과 삶에 대한 스스로의 성찰이 온전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제주의 역사>를 그려내는 작품으로는 앞서 섬의 자연에서 언급했던 강요배를 다시 포함해서 고경훈, 고길천, 박경훈, 양미경, 그리고 자연사의 시각 혹은 생태적 문제를 다루는 하석홍 등이 있다. 역사화라는 장르는 사회상을 포함해 삶을 반영하는 광의한 것으로서 해석할 때 적지 않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어서 보다 신중하게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미술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 위에 구축되어 있지만 양자의 관계가 일방적인 방향 혹은 종속적인 구조 아래서 흐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진실의 측면에서 역사를 해석할 때 문학적 진실과 역사적 진실이 일치되는 것이 아니듯이 미술적 진실은 역사적 진실에 종속적이지 않다는 입장이다. 물론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경우처럼 미술이 종교 혹은 정치나 사회 현상에 종속적인 활동으로 유지되었던 사례를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미술의 영역에서 역사화는 더 이상 역사에 종속되어 있지 않고 새로운 유형의 역사로서 미술사를 창출하기 위한 자료로서 인식되고 있다. 해석된 자연처럼 역사화는 작가에 의해 해석된 사회상을 드러내기 때문에 또다른 진실을 내포하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4.3 항쟁을 다루어 왔던 강요배 등의 작가들의 작품을 사실적 기록으로서 4.3으로 해석하는 것은 오류의 덫에 빠질 위험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역사화는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삼아 그려지지만 분명한 것은 의사된 역사로 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가령 피카소가 한국전쟁을 소재로 그린 그림 “한국의 학살”은 보편적 진실로서 전쟁의 폭력성을 드러내는데 있지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이러한 공식은 의사자연과 의사역사라는 문맥에서 앞으로 더 다루어야 할 내용들이다.

정치사와 사회사적 문맥에서 벗어나 삶의 역사를 예술적 견지에 해석하자면 제주의 역사는 바람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이 때 바람은 제주를 지배하는 자연에너지일 뿐만 아니라 제주의 민속과 신앙이라는 문화를 가꾸어온 힘이라 할 것이다. 역사화가 이렇듯 정치나 사회상을 넘어선 삶의 문제로 확대된다면 모든 작가들의 작품에는 역사적 요인들이 자리잡고 있다고 볼 수 있지않느냐는 질문이 나오게 된다. 그것은 사실이다. 미술에 있어서 역사는 인간의 역사이며 세상을 사는 존재자들이 인간 스스로와 자연에 대응하여 자신을 유지하려는 자들의 역사인 것이다. 결국 제주의 풍경과 인물 그리고 민속신앙을 담아낸 그림에는 제주의 역사가 담겨있으며 이 두개의 사실은 서로 다르지 않는 활동 즉 예술로 하나가 될 가능성이 주어진다.

세 번째로 <제주인의 삶>을 나타내는 작품의 경우도 위에 언급한 차원에서 바람이라는 공통분모 위에 차별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를 느낀다. 제주인의 삶을 나타내는 작업의 유형은 주로 인물작업을 중심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 분야의 작가로는 이번에 농가를 표현한 김택화와 어시장의 아낙네 들을 절약된 선묵으로 포착해 내는 강동언, 그리고 앞서 제주의 역사에서 언급하였으나 이번 전시회에는 등짐을 진 여인을 선보인 고경훈과 해녀를 그린 김원구 등이 있다. 제주의 경우 역사의 주체가 되는 인간은 언제나 자연에 대응적 입장을 보이면서 문화를 형성해 왔다. 작업복으로서 갈옷이나 머리에 두른 수건 그리고 웅크려 구부려진 허리와 돌하르방에 표현된 돌출된 광대뼈의 모습은 자연인으로서 제주사람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제주인들의 외형에 나타나는 기의적(記意的) 의미들은 대개 자연물과 유사한 형상 혹은 마티에르로 표현된다. 가령 신체는 토지나 바위의 형상과 다르지 않으며 손은 소나무의 껍질처럼 거칠고 그림에서 소리를 읽어낼 수 있다면 해녀의 휘파람은 팽나무 사이를 지나는 바람소리와 유사하게 묘사된다. 제주인은 자연에너지로서 제주의 바람이 만들어낸 체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주인을 상징하는 의미는 대체적으로 국내 작가들이 그려내고 있는 농부의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제주 작가들의 작품에 나타나는 인물상이 지닌 개성은 한층 더 자연과 가깝다는 점이며 그 몰골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나오는 노송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그러나 제주인과 제주인의 삶을 표상하는 대목에서 가난과 어두움의 색채를 강조하는 것은 그리 좋은 시각이 될 수 없다. 자연을 살아가는 인간의 삶은 물질적 풍요에 영향을 받는다 하더라도 자연에 대응하여 삶을 유지하려는 인간존재의 건강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며 이러한 대목 역시 앞으로 제주미술사를 통해 연구되어야 할 대목이라 생각된다.

이번 전시와 관련해서 인물을 소재로 삼으면서도 제주의 지역적 특성을 넘어 보편적인 인간의 삶을 문제시 삼는 경우는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임춘배, 강민석, 강시권, 정성실이나 고영우, 김순관, 양경식 등의 작품이 그것인데 이들의 작업은 실존하는 인간의 무게와 가치를 탐구하거나 육질화되어 물성으로 존재하는 인간상 그리고 장식적 패턴의 조형언어로 신체를 나타내는 등 조소와 평면작업에서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한 10년 이상을 제주에 머물면서 중도의 세계관으로서 인간과 자연물이 서로 어우러진 삶의 여러 단상을 화폭에 담아내는 이왈종의 경우도 제주의 풍광과 서정을 즐겁게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주의 정신>을 표상하려는 시도는 추상적 어법을 사용하고 있는 김용환, 박성진, 백광익, 김연숙, 김만수, 김재경, 박유승, 안진희, 이성만, 전재현 그리고 조소분야에 고봉수, 김방희, 김상현, 성창학 등의 작품에서 발견된다. 제주의 정신이라 할 때 그 정신의 근간은 제주의 자연과 역사 그리고 제주인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는 점에서 매우 포괄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개념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제주의 정신을 다루는 조형적 방식으로서 추상적 경향의 작품과 그 작품에 나타나는 정신성을 역으로 추적해 보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추상적 경향을 나타내는 이러한 작품 유형이 유난히 수적으로 많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현세로부터 자유스러운 태도를 지니려는 일종의 의도적 사고의 결과로 보인다. 추상적 경향이란 대상 재현적 사실주의와 다른 배경을 지닌 것으로 정리되는데 대체적으로 그것은 재현적 사실주의와는 대조적으로 현실 혹은 자연풍경을 넘어선 존재의 영역을 연구하려는 태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제주의 정신이란 반드시 추상적인 어법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지만 비가시적인 대상으로 표현될 때 그 순수성은 효과적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가령 기하학적 도형과 완결된 표면처리를 어법으로 삼고 있는 고봉수의 경우 거기에는 자연을 지배하는 규칙 혹은 질서의 감각이 응축되어 있다는 식이다.

기하학적 형상이 대자연을 운영하는 법칙성의 원형적 모습이라는 점을 전제 한다면 거기에는 자연의 운행을 살아있게 하는 호흡으로서 바람의 존재가 있다. 자연의 숨결이 바람이라면 그 바람의 본질적 도형적 표상은 기하학적 형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작가가 기하학을 근간으로 작업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하학적 구성의 외형을 파괴, 변형, 생략, 외곡 시키는 작업이 곧 비기하학으로 나타난다면 이 두가지 구성 사이에 관계성은 인정되며 별개의 것으로 나눌 수 없는 연관성을 인정하게 된다. 가령 태양의 모습은 기하학이면서도 서정적인 형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대자연의 규칙적인 질서감각에도 가변적인 자연의 호흡의 마디로 구성되는 계절의 우연성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이렇듯 자연의 본질을 노래하는 추상적 경향의 작업들에는 바람이 지닌 유연함과 거침 그리고 부드러움과 광폭함이 동시에 자리잡고 있다. 봄날의 산들바람과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의 풍경에서 우리는 이러한 자연의 본성을 배우고 깨우쳤을 터이다. 제주의 정신은 자연이 정신이며 그것은 또한 바람의 정신이라는 점을 발견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밖에도 위에 정한 네 개의 성향에 포함시키기 어려운 작품들로서 돌의 이미지에서 시작하여 최근 다양한 주제를 콜라주와 극사실적 기법으로 그려내어 이미 국내외 화단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고영훈, 실내의 정물과 방파제가 있는 풍경을 색면주의 추상의 어법으로 그리는 김영철, 그리고 제주의 자연을 화초의 이미지에 대입해 다양한 기법의 조형적 실험을 전개하고 있는 김현숙 등의 작업에도 근간에는 제주의 정신과 서정이 깃들어 있음을 보게된다.

VI. 맺는글

조형예술작품에 나타나는 제주성을 규정하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불필요한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 제주성은 고정된 개념이지 않고 시간과 더불어 변화하는 유기적 속성을 지닌 것이기 때문이고, 빠른 속도로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는 현실에서 지역적 특성을 규정하는 것은 자칫 부정적 측면에서의 지역주의로 비추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살던 그저 자신의 길에서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면 그만 아니냐는 태도를 보일 수 있고, 아예 문화적 유목주의 혹은 혼성주의를 내세우면서 제주성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도 없지않을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일견 타당한 것이다. 그러나 머리글에서 밝혔듯이 우리가 문제시 삼는 것은 당대의 현재성과 동시대의 삶에 성찰하는 일이며 이를 통해 현주소를 찾아내는데 가치를 두고있다.

삶은 시간이라는 수직적 축과 공간이라는 수평적 축의 지배를 받는다. 이 두개의 축을 도형화 해 보면 “+” 모양을 하고 있어며 항상 두개의 선에 의해 교차되어 만나는 지점인 접점을 갖게 된다. 이 접점이 현재 나 혹은 우리가 현재 자리하고 있는 주소지라 할 수 있다. 이 접점은 시간이 흐름과 공간의 이동에 따라 끊임없이 이동되며 우리가 살아있는한 그것이 고정되어 머무는 법은 없다. 두개의 축 위에 정해진 주소지를 찾는 일은 중요한 것은 그것은 항해하는 배의 위치를 확인하는 일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은 바다를 항해하는 배와 같다는 비유를 한다. 배가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방향을 정하못하고 대양을 떠도는 표류하는 배의 신세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현주소를 찾는 일은 수직적 구조를 지닌 ‘시간의 축’ 위에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며 수평적 구조를 지닌 ‘공간의 축’ 위에서 세계를 지각하는 일이라 할 것이다.

제주현대미술의 현주소를 파악하는 일은 궁극적으로 “제주”라는 특정 지역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일의 차원을 넘어서 모든 지역의 미술을 진단하는 일이 된다. 나아가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 혹은 한국의 정체성을 앞뒤로 판단해 보는 노력으로서 미시적이고 거시적인 입장을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는 과업이다. 우리가 미술에 거는 기대는 그것이 치열한 삶의 성찰의 결과이자 시대가 남긴 아들이기 때문이라면 제주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파악하는 일은 결국 자신의 과거를 자리매김하고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 된다. 결론적으로 제주현대미술의 현주소를 아는 일은 결국 제주라는 지역을 떠나 개인과 집단인 나와 우리모두에 있어 자신의 과거를 진단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할 것이다. (2004)

- 제주현대미술전 '바람의 신화 2004' 7.10 - 7.15 제주 문예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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