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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서울시립미술관 기자간담회

객원연구원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2023.04.20.~2023.08.20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전 층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길 위에서>’ 展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서울시립미술관은  ‘해외소장품 걸작전’의 일환으로 4월 20일부터 8월 20일까지 미국 뉴욕 휘트니미술관과 공동 기획한 전시이며,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길 위에서>는 ‘에드워드 호퍼’의 전 생애에 걸친 회화, 드로잉, 판화, 수채화, 아카이브의 자료 등 270여점이 전시될 것이라고 밝혔다. 


4월21일 열린 서울시립미술관의 ‘에드워드 호퍼’의 <길 위에서>’ 展 기자간담회

  애덤 와인버그 휘트니미술관 관장은 '호퍼는 그가 보고, 알고, 창조해내고, 소망한 세상을 그렸으며, 이번 전시는 그가 방문했던 장소들과 작품에 대한 접근 방식에 영감을 줬던 의미 있고 중요한 장소를 따라간다'고 말했다.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에드워드 호퍼라 하면 떠오르는 현대인의 고독을 그린 작품뿐 아니라 호퍼가 평생 쏟은 예술에 대한 열정과 노력, 그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이해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번 전시는 65년에 이르는 호퍼의 화업을 총망라하며, 우리에게 유명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 등 몇몇 작품이 빠졌지만,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 재직 당시 백악관 집무실에 건 그림이나 ‘철길의 석양’, ‘오전 7시’ ‘황혼의 집’, ‘밤의 창문’ 등 작품 160여점과 자료 110여점 등 총 270여 작품들이 호퍼가 어떤 예술가였고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서울시립미술관의 이승아 학예사와 뉴욕 휘트니의 킴코나티 학예사가 동시 통역으로 전시 개최의 과정과 전시 내용의 브리핑 및 질의 응답시간을 가졌다.

  기자 간담회 후에는 이승아 학예사와 뉴욕 휘트니의 킴코나티 학예사가 8개 섹션의 구역을 기자들과 함께 이동하며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에 관한 설명을 이어갔다. 



'에드워드 호퍼'섹션에서 이승아학예사가 호퍼의 작품 특징과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각 섹션의 전시명은 호퍼가 파리와 뉴욕, 뉴잉글랜드 지역, 케이프코드로 향하는 길이자, 그곳에서 호퍼가 독자적인 예술을 성숙시켜 가는 여정, 나아가 그 길 위에서 우리가 호퍼를 만나는 순간을 상징한다. 에드워드 호퍼, 파리, 뉴욕, 뉴잉글랜드, 케이프코드, 조세핀 호퍼, 호퍼의 삶과 업 등의 구역으로 나뉜다.

에드워드호퍼_자화상_1925-30, (사진 :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호퍼의 삶과 궤를 함께하는 자화상과 일련의 작품들은 크게 세 시기로 나뉜다. 1900년 초 학생 시절에는 얼굴과 상반신, 특히 손을 수차례 그리는데, 예술적 표현과 기술적 숙련을 위한 노력, 성공에 대한 열망을 느낄 수 있다. 상업 화가에서 전업 작가로 나아가는 과도기인 1910-1920년대의 자화상에서는 예술가로서의 자아 성찰적 측면이 부각된다. 극장을 가거나 야외 작업을 다니며 애용하던 중절모와 에칭프레스기가 본인의 상징물로 등장하며, 직업적 자의식이 안팎으로 영감을 얻으며 성장하는 면모가 드러난다. 이후 예술가로서 역량과 명성이 무르익은 1940년대에도 자화상과 손 그리기를 반복하여 세밀한 근육의 묘사, 명암의 사용 등에 있어 끊임없는 자기 계발을 시도했음을 보여준다.



에드워드호퍼_오전7시_1948, (허드슨강 인근의 나이액, 에드워드 호퍼의 고향집), (사진 :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허드슨강 인근의 나이액 고향 집은 예술가의 꿈을 키우고, 문명과 자연의 대비라는 주제적 관심을 형성해 나가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된다. 자화상, 스케치, 책, 노트 등이 보이는 〈나이액 예술가의 침실〉(1905-1906년경)은 예술가로서 자아를 형성한 침실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역시 나이액의 집을 떠올리며 작업한 후기작 〈계단〉(1949)의 구도는 문명의 상징적 공간인 집에서부터 수풀이 우거진 문밖 미지의 풍경으로 시선을 이끈다. 그의 작품에서 숲은 종종 문명의 대척점으로서 해석되어 왔으며, 계단, 창문, 현관문 등의 모티프는 안과 밖을 경계 짓고 양자 간의 시선 이동을 유도하며 상상을 촉발시킨다.

  1906년 뉴욕에서 삽화가로 일을 시작한 호퍼는 예술가의 꿈을 안고 당대 예술의 수도로 여겨졌던 파리로 향한다. 도시화로 인해 끝없는 개발이 반복되는 뉴욕과 달리 옛 모습을 간직한 파리의 매력에 빠진 호퍼는 1906년에서 1910년 사이 3회에 걸쳐 파리에 체류한다. 그는 자율적으로 파리와 근교의 거리로 나가 자연과 건축물, 사람들을 면밀히 관찰하며 시간을 보내고, 주변 유럽 도시를 여행하며 거장들의 작품을 관람한다.

에드워드호퍼_그랑오귀스탱깅둑_1909,  (사진 :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에드워드호퍼_푸른저녁_1914 (사진 :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야외 작업에 익숙해진 호퍼는 파리지앵의 일상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아침부터 밤까지 내내 생동감 넘치는 파리의 풍경은 그에게 흥미로운 소재였고, 다양한 직업군,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들, 유행하는 옷을 입은 남녀 등을 33점의 수채화 캐리커처로 기록한다. 이후 파리의 일상에 대한 관찰과 인물 묘사는 〈비스트로 또는 와인 가게〉(1909)와 〈푸른 저녁〉(1914)에서 구체화된다. 뉴욕에서 완성된 두 작업은 실제적인 관찰에 기초한 구성에서 출발하되 기억과 상상력이 더해지며 완성되는 호퍼의 리얼리즘적 특성이 본격화되는 초기 사례로서 중요하다.

  그중 〈푸른 저녁〉은 파리의 카페를 배경으로 왼쪽의 노동자, 중앙의 광대와 매춘부 그리고 담배 피우는 예술가, 오른편의 부르주아 남녀 등 다양한 인물 군상을 보여준다. 마지막 파리 방문 이후 4년이 지나 뉴욕에서 그린 이 작업은 인물들의 단절적 관계와 심리적 풍경 묘사라는 그의 성숙기 회화의 속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1915년 뉴욕 맥도웰클럽 출품 시 혹평을 받았다. 미국 내에서 독자적인 미술을 전개하려는 움직임으로 인해 파리가 아닌 뉴욕의 풍경을 원하는 분위기가 커졌기 때문이다. 세 번의 유럽 방문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뉴욕에 정착한 호퍼는 이를 계기로 미국적 풍경을 담기 위한 시도를 거듭한다.

  생계를 위해 선택한 삽화가로서의 현실 속에서 예술가의 꿈을 놓지 않았던 호퍼는 어린 시절부터 즐기던 드로잉처럼 선이 강조되는 판화 기법 에칭을 1915년 시도한다. 그는 1916년 에칭프레스를 구입한 뒤로 1928년까지 당대 뉴욕의 면면을 담은 약 70점의 판화를 제작한다. 그의 에칭은 뉴욕의 주택가와 고층 건물, 북적이는 번화가의 풍경을 생생하고 거친 선으로 표현하고, 고가 전철과 철도 등 교통체계의 발달을 포착하며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도시 개발이 본격화되던 당시의 분위기를 전달한다. 한편 도시를 밝히는 불빛과 텅 빈 거리, 실내의 인물 역시 에칭의 주된 주제였으며, 이러한 작업은 빛과 그림자의 효과를 연구하고 이후 회화 작업과 연결되는 주제 선정, 구도, 표현법의 초석을 마련한다. 실제로 호퍼의 에칭은 화단의 호평을 받으며, 그가 예술가로서 입지를 다지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에드워드호퍼_맨해튼다리_1925, (사진 :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뉴욕은 호퍼가 가장 잘 알고 좋아하는 미국의 도시였다. 호퍼는 1908년부터 1967년까지 평생을 뉴욕에 거처했으며, 그에게 뉴욕의 풍경과 뉴요커들의 일상은 자연스럽게 관찰의 대상이자 작업의 소재가 되었다. 뉴욕에 정착하기 전까지 그는 나이액과 뉴욕을 잇는 페리와 기차를 타고 통학을 한다. 어린 시절부터 키워 온 항해, 기차에 대한 관심은 한적한 교외에서 뉴욕으로 진입하며 변하는 풍경을 생생하게 경험하며 심화되었고, 이는 〈페리 선착장〉(1904-1906년경)과 〈검은 굴뚝이 있는 예인선〉(1908) 등에서 두드러진다.

  마천루 사이로 자리한 공원 역시 그가 즐겨 찾는 소재였다. 호퍼는 1913년 이사한 워싱턴 스퀘어 노스 3번가에서 일평생을 살며 창밖의 워싱턴 스퀘어 파크와 도시의 중심부에 자리한 센트럴파크에 관심을 가진다. 특히 땅거미가 지는 시간대에 센트럴파크의 셰익스피어 동상을 중심으로 많은 습작을 남기는데, 조명이 드리워지며 생기는 빛과 그림자, 어둑함이 만들어 내는 미스테리한 분위기 등 문학적인 영감을 투영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재즈시대’라고 불리는 1920년대 호황기를 시작으로 미국인들은 극장, 레스토랑, 스포츠 등에 열광한다. 호퍼와 그의 부인 조세핀도 연극이라는 공통의 취미를 바탕으로 극장을 자주 찾곤 했다. 그는 무대를 보며 앉아 있는 인물의 뒷모습이나 공연 전후 혹은 막간 사이 인물들을 적막하고 고독한 분위기로 묘사한다.


에드워드호퍼_철길의 석양_1929 (사진 :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호퍼의 미국 풍경화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적인 풍경이 아닌 작가의 내면에서 새롭게 그려진다. 철길 옆에 우뚝 선 신호탑 뒤로 녹색 언덕과 함께 장관을 이루는 일몰을 묘사한 <철길의 석양>(1929)은 기차 창문 너머로 목격한 장면인 것 같지만, 실은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풍경이다. 이 작품을 완성한 1929년, 호퍼 부부는 뉴욕에서부터 찰스턴, 사우스캐롤라이나 그리고 매사추세츠주와 메인주까지 함께 여행했다. 여정 중 길 위에서 얻은 인상은 기억에 남아 이후 작가의 작업에 지속적인 영감이 된다.

에드워드호퍼_석회암채석장_1926 (사진 :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1914년과 1915년에 호퍼는 3마일에 이르는 모래 해안으로 둘러싸인 작은 어촌인 메인주의 오건킷을, 1916년부터 1919년 사이에는 메인주의 해안선에서 가장 높고 험준한 바다 절벽으로 이루어진 몬헤건섬을 4번 방문한다. 몬헤건섬에서 그는 소지가 간편한 작은 크기의 패널을 지니고 암석 해안을 걸어 다니며 스케치를 하거나 밑그림 없이 즉흥적인 작업을 한다. 이 시기의 작품은 바다와 대지 간 극명한 색조 대비, 반사된 빛과 그림자의 색채 대조, 물감을 두껍게 칠하는 기법인 임파스토를 통해 강조되는 암석의 덩어리감, 가파른 해안 절벽과 주변의 부서지는 파도에 의해 만들어진 대담한 구성과 같은 역동성과 표현성이 배가되는 특징이 드러난다.

  뉴잉글랜드에서의 시간은 호퍼의 개인적인 삶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1923년 여름 매사추세츠주 글로스터에서 동문이자 작가인 조세핀 버스틸 니비슨과 교제를 시작했고, 1924년 결혼을 한다. 그는 조세핀의 영향으로 야외 수채화 작업을 시작했고, 곧이어 그녀의 소개로 브루클린 미술관 전시에 함께 참여하게 된다. 특히 이 시기에 작업한 호퍼의 수채화는 화단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판매로까지 이어지며 전업 화가로 진입하는 본격적인 기회가 열린다. 이처럼 뉴잉글랜드 여행은 그에게 도시와 다른 환경을 접하며 영감을 얻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계기가 된다.

  호퍼 부부는 1925년 기차로 미국을 횡단하고, 1927년 중고 자동차를 구입한 뒤로 미국 서부, 멕시코 등을 평생에 걸쳐 여행한다. 호퍼의 오랜 지인이자 뉴욕 휘트니미술관의 관장이었던 로이드 구드리치는 “여행에 대한 호퍼의 몰두는 꽤 의식적이었다. 호퍼는 운전을 할 때 그림 주제들이 떠오른다고 말했다”고 회상한다. 부부의 여행은 당시 본격화된 자동차의 보급과 도로의 확장으로 인해 용이했고 도시화, 대공황 등 사회경제적 문제로부터의 일시적 일탈을 가져다주기도 하였다.


에드워드호퍼_콥의 헛간과 떨어져 있는 먼 집들_1930,  (사진 :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뉴잉글랜드 지역의 매력에 빠진 호퍼 부부는 1930년 6월 매사추세츠주 케이프코드 반도의 남쪽에 위치한 트루로에 방문하여, 우체국장이었던 벌리 콥(A.B. Burleigh Cobb)에게 작은 집을 빌려 여름휴가를 보낸다. 길게 펼쳐진 해안선과 고운 모래 둔덕, 낮은 구릉 사이 띄엄띄엄 자리하는 집, 농가의 소박한 헛간, 따스한 햇볕을 즐길 수 있는 넓고 푸른 자연이 펼쳐지는 이 지역은 주민이 500명 남짓한 작은 마을로 번잡한 뉴욕에서 벗어나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완벽하게 고요한 장소였다. 1934년 트루로에 스튜디오 겸 집을 마련한 뒤, 부부는 매년 여름과 초가을을 케이프코드에서 보내고 뉴욕으로 돌아오는 일상을 반복한다.

  1930년대 말 이후 호퍼는 작업에 기억과 상상력이 결합된 이미지를 불어넣기 시작한다. 이 시기 작품에는 도시와 시골을 오가는 호퍼의 자전적 경험이 내면화된 것으로 보이는데, 현실과 환상, 자연과 인공물의 대비를 통해 나날이 원숙해진다.


에드워드호퍼_이층에 내리는 햇빛_1960 (사진 :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트루로 부근의 숲과 집, 해변가의 별장에 대한 호퍼의 인상은 <케이프코드 일몰>(1934), <이층에 내리는 햇빛>(1960)을 탄생시킨다. 두 작품 모두 여름날 해안의 분위기를 포착하고 있지만, 빛의 극적인 잠재력과 건축과 주변 환경이 교차하는 방식에 집중한다.

  조세핀의 기록에 따르면 <오전 7시>(1948)의 배경은 나이액 소재의 주류 밀매 업소다. 금주령이 해지된 지 15년 후인 1948년에 케이프코드의 트루로 스튜디오에서 완성된 작품은 시공간을 오가며 완성되는 작가의 독특한 사실주의적 특징을 보여준다. 시간대를 특정하는 작품의 제목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호퍼가 공간을 비추는 태양의 움직임과 밝기의 변화를 감지하는 데 주의를 기울였음을 알려준다.


에드워드호퍼_햇빛 속의 여인_1961 (사진 :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조세핀 니비슨 호퍼(1883-1968)는 호퍼의 훌륭한 조력자였다. 과묵한 남편과 달리 활달한 성격으로 예술 딜러들, 컬렉터, 큐레이터 및 기자들과 교류하며 작품을 홍보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녀는 1910년대 극단 워싱턴 스퀘어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한 경력을 살려 다양한 포즈를 남편에게 제안하였으며, 그 흔적은 작가의 수많은 작품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세핀이 30년 이상 지속하면서 적은 장부에는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 이력, 작품 판매 등 상세한 정보가 적여 있다. 그녀는 매니저의 역할도 수행했으며, 남편의 사망 이후 2,500여 점에 달하는 호퍼의 작품과 자료 일체를 휘트니미술관에 기증한다. 말수가 적은 편이던 호퍼가 언급하지 않았던 작품의 세부 사항들을 조세핀이 세세하게 기록한 덕분에 장부는 그의 작품 생애에 대한 핵심 자료로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뉴욕 휘트니미술관의 소장품과 산본 호퍼 아카이브가 함께 어우러진 <호퍼의 삶과 업>은 크게 여정, 삽화, 호퍼 부부, 작가의 말과 글 그리고 다큐멘터리로 나뉘어 작가의 예술과 삶의 행적을 세세히 전달한다



 <호퍼의 삶과 업>관람 후 이승아 학예사와 뉴욕 휘트니의 킴코나티 학예사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seoul.go.kr

작성 : 김순기
museum@dalj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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