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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건진 역사] <13> 수중 발굴 ‘고려 선박’ 특징

편집부

수중 발굴 조사를 통해 우리나라 바닷속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8만점이 넘는 고려청자와 고려시대 사람들이 먹었을 쌀과 콩이 나오고, 심지어는 젓갈까지 나왔다. 그 시대 사람들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겠지만 이 모든 것들이 바닷속 갯벌이라는 타임캡슐에 온전히 담겨 있다가 현재의 우리에게 그 시간의 생활을 생생히 들려주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 모든 것을 싣고 가던 고려시대 배의 온전한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미 바다 위에서 제 모습을 잃어서 그 자리에 침몰하게 되었을 테니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선박을 연구하다 보면 온전한 모습에 대해서는 수많은 의문점이 남아 안타까울 때가 종종 있다.
◇전남 신안군 안좌도 갯벌에서 고려시대 14세기 중후반 선박 안좌선을 발굴한 후 연구원들이 실측 도면을 작성하고 있다. 발굴 조사는 선체를 드러낸 후 매몰 상태와 선박 구조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현장에서 드로잉과 실측작업을 한다.
우리나라 가옥이 ‘한옥’으로 불리듯 우리나라 선박은 ‘한선’이라고 부른다. 선박은 건축물과는 달리 움직일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바다에서 발견되었다고 다 한선은 아니다. 우리나라 수중고고학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는 ‘신안선’은 전남 신안군 증도 해역에서 발견되었지만 중국 원나라 선박이다. 현재 수중에서 발굴한 선박 총 10척 중 신안선과 진도선 2척은 한선이 아니다. 나머지 8척은 모두 고려시대 선박이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한선을 구별할까. 선박에 실려 있는 유물들의 성격을 통해 규명하거나 혹은 선박 구조 자체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참고로 수중 발굴 선박의 경우 발굴 지역 이름을 따른다. 예를 들면 십이동파도선은 전북 군산의 십이동파도에서 발굴된 선박이라는 의미다.
수중에서 발굴된 고려 선박의 가장 큰 특징을 꼽자면 배 밑이 평평한 형태 즉 평저선이라는 점이다. 평저선은 고려뿐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에도 보이기는 하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중국에서는 평저선과 함께 배 밑이 뾰족한 첨저선이 사용되었는데,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 전시돼 있는 신안선이 대표적이다. 일본 선박은 완전한 평저선이라 보기 힘든데, 저판을 하나의 목재만으로 만들어 너비가 좁다. 고려 선박의 저판이 3개에서 7개에 이르는 것과 비교된다. 유독 고려 선박이 배 밑이 평평한 평저선인 이유는 갯벌이 발달한 우리나라 해안 환경상 연안 지역을 항해하거나 정박할 때 유리하다는 점 때문이다.
배밑(저판)과 배의 좌우 몸체(외판)가 올라가는 형태는 중국과 우리나라 평저선이 주로 U자형을 이루는 반면 일본은 V자형이다. 또 하나 한·중·일 3국의 선박 구조에서 차이점이 있는 것이 외판을 이어붙이는 방법이다. 중국 선박은 외판을 올릴 때 먼저 나무를 평평하게 잘 다듬은 후 아래쪽 부재와 위쪽 부재를 서로 맞대어 이어 붙였다. ‘카멜 이음’ 방식이라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래쪽 부재에 홈을 파서 위쪽 부재를 거기에 끼워 붙이는 구조다. ‘홈박이 붙이 클링커 이음’식이다. 또한 금속 못이 아닌 나무못만을 사용한 것도 특징적이다.
배의 몸체인 외판이 힘을 가지고 버티기 위해서는 좌우를 서로 연결시켜 줄 필요가 있다. 이때 우리나라에서는 가룡과 멍에를 사용한다. 하나의 나무 막대를 좌우를 가로질러 외판끼리 서로 연결해준 것인데, 가룡은 외판 1단에서부터 모두 사용되고 멍에는 외판 중간부와 최상단 외판에 사용한다. 가룡은 외판의 중간에 구멍을 내어 관통시키는 형식인 반면, 멍에는 외판 상단에 걸치는 형식이며, 크기도 가룡보다 멍에가 훨씬 크다. 반면 중국 선박은 격벽이라고 하여, 아예 좌우 외판을 이어 주는 벽을 설치한다. 양쪽 외판을 잡아주는 부재로 선량(船梁)과 노상(櫓床)을 사용하는 일본은 우리나라 가룡과 멍에와 유사하게 나무막대를 가로질러 외판까지 서로 연결해주는 형태이다.
한선의 저판은 물살이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중앙부가 가장 넓은 기다란 항아리 형태인데, 저판 끝 부분 폭은 이물(선수) 쪽이 고물(선미)보다 넓다. 이는 이물과 고물의 형태와도 상관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물이나 고물 형태가 온전히 남은 채로 발굴된 고려 선박이나 자료가 없어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 배 그림을 살펴보면 널빤지들을 세로로 연결한 것과 가로로 연결한 것이 모두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발굴 선박 중 십이동파도선과 태안 마도1호선에서는 이물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편이 나왔다. 이들 선박 이물은 세로형으로 보이는데 각각의 편들은 직사각형 형태를 이루고 있고, 외판과 연결되는 부위에 홈이 파여 있다. 이물판 뒤로 외판을 붙여 정면에 물이 스며들 수 있는 이음을 최소화하고 물의 저항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한 것이다.
고물판은 달리도선과 안좌도선에서 발견되었는데, 두 선박 모두 배밑(저판)과 외판에 홈을 파서 끼워 넣은 형태다. 선미판은 선수판과 달리 V자 형태로, 위로 갈수록 벌어지는 모양이며 외판은 선수판 뒤로 더 튀어나오게 되어 있다. 이는 선박의 방향을 조종하는 키를 보호하고 물살이 자연스레 배를 감싸 흘러가게 하기 위한 형태로 보인다.
발굴된 고려 선박들 저판에는 돛대를 세운 흔적들이 남아있다. 일반적으로 중앙저판에 11자 모양의 구멍을 냈다. 여기에 돛대를 끼워 사용하였을 것이다. 그중 안좌선은 독특하게 돛대구멍 부분이 돌출되어 있는 형태다. 돛대 아래쪽 연결 부위를 견고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높이가 높지는 않아 얼마나 많은 효과를 내었는지는 의문스럽다.

◇최유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연구원
고려시대 선박이 하나의 구조적 특징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시대적 변화인지 또는 선박이 만들어진 지역적 특징인지는 아직 결론지을 수는 없지만 약간씩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가장 특징적으로 꼽을 수 있는 구조는 ‘만곡부종통재’의 유무다. 만곡부종통재는 통나무를 ‘ㄴ’자 형태로 깎아 밑의 ‘-’ 부분은 저판과 연결하고, ‘l’ 부분은 외판과 연결한다. 십이동파도선에서는 2단, 완도선에는 1단이 나타난다. 통나무배에서 구조선으로 발달하여 가는 한선의 변화과정을 보여주는 구조로 꼽고 있다. 또 안좌선의 경우 첫 번째 외판은 이물 쪽으로 삼각형 모양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만곡부종통재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퍼즐 한 조각 한 조각을 맞춰가다 보면 조금씩 배의 형태가 그려지게 된다. 현재까지 발굴된 선박은 도자기와 함께 출토된 경우가 많아 도자기 운반선이 대부분을 이루었다. 하지만 2009년 발굴한 마도1호선과 현재 발굴이 진행 중인 마도2호선은 고려시대 곡물 운반선이었다. 고려시대 문헌을 보면 조운선, 군선, 무역선, 어선 등 많은 종류의 선박이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상부와 내부 공간의 구조 및 활용에서 각각 선박의 특징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현재로서는 뚜렷한 구분은 해낼 수가 없는 상황이다. 발굴된 선박의 선체 편 중에서도 정확한 용도를 확인하지 못한 것들이 많이 있다. 좀 더 많은 이의 관심과 노력이 모인다면 고려 선박의 마지막 퍼즐을 맞춰내는 날이 좀 더 앞당겨지지 않을까.
최유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연구원
-세계일보 2010.11.3
http://www.segye.com/Articles/ISSUE/ISSUES/Article.asp?aid=20101019003683&subctg1=&subctg2=&sid=3000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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