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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건진 역사] <9>난파선 보존처리 어떻게 하나

편집부

신안 해저 유물선 전시까지 30년 걸려
육상이건 수중이건 발굴된 문화재는 보존과학자의 손을 거쳐야 한다. 박물관 깊은 곳에 위치한 보존과학실은 유물을 치료하는 일종의 ‘문화재 전문병원’이다. 우리는 눈이 아프면 안과에, 피부에 염증이 생기면 피부과에 가서 진료를 받는다. 수중에서 발굴된 유물도 재질이나 유물의 훼손 정도에 따라 처리 방법을 달리해 과학적 보존처리를 한다.
발굴 유물들은 땅속이나 물속에 오랜 시간 묻혀 있어, 공기 중에 노출되었을 때는 변형을 일으키고 적절한 보존처리를 하지 않으면 훼손되고 만다. 문화재를 잘 보호하고 후손에게 온전하게 물려주기 위해서는 과학적 보존처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호이스트를 이용해 선체를 약품에 담그는 모습. 수중에서 발굴된 선박은 목재에 남은 수분을 제거하고 형태와 강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약품으로 목재 내부를 채워주는 경화처리를 한다. 약품이 완전히 스며들 수 있도록 농도를 한 단계씩 점차적으로 높여 나가는데 7∼10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수중 발굴 목재 유물에 대한 보존처리 과정을 통해 문화재와 과학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자.
수중에서 발굴된 목재 유물은 육안으로 보기에는 일반 나무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나무를 구성하는 셀룰로오스(Cellulose), 헤미셀룰로오스(Hemicellulose), 리그닌(lignin) 등 고유 성분이 분해되어 버리고 그 자리를 물이 차지하고 있다.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현미경으로 세포를 들여다보면 마치 구멍이 뚫린 스펀지와 같은 상태다. 보존처리를 거치지 않고 공기 중에 선박을 그대로 노출시켜 건조하면 어떻게 될까. 대답은 간단하다. 바싹 말라비틀어지고 부서져 형태를 알 수조차 없게 돼 유물로서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때문에 나무로 만들어진 난파선이 바닷물 밖으로 나왔을 때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한 것은 목재가 함유한 수분 증발을 막는 것이다. 선체의 표면이 마르지 않도록 부직포와 비닐 등을 이용해 선체를 꼼꼼히 포장해야 한다. 이후 일정한 시설이 마련된 처리실로 옮겨 물에 담아 보관한다. 이때부터 길고 긴 난파선 보존처리에 돌입한다. 수중 발굴 유물 중 처리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가장 많이 걸리는 유물은 고선박이다. 난파선 1척의 보존처리에는 15∼30년이 소요된다. 실제로 신안 해저에서 발굴된 신안선은 발굴에서 보존처리를 거쳐 전시되기까지 30년이나 걸렸다.
처리실에 옮겨진 난파선은 선체가 함유하던 짠 바닷물의 소금기를 제거해 주기 위해 3∼4년 수돗물에 담가 둔다. 또한 선체표면에 달라붙은 갯벌이나 조개류 등 이물질을 깨끗하게 씻어줘야 한다. 이와 함께 현재 상태를 점검해 적절한 보존처리 방법을 마련한다. X선 회절분석(XRD)과 적외선분광분석(FT-IR)을 통해 나무 고유 성분의 분해 정도를 분석하고, 고배율 현미경 관찰을 통해 세포 내 어느 부분이 균 또는 세균의 피해를 받았는지 등을 확인한다.
X선 회절분석(XRD)을 통해 목재 내 결정형 셀룰로오스와 비결정형셀룰로오스의 함량을 비교해 셀룰로오스의 분해 정도를 알 수 있다. 또한 FT-IR는 유기화합물의 성분 중 각각의 파장대가 나타내는 물질의 증감을 비교함으로써 나무의 성분 변화를 통해 나무의 분해 정도를 알 수 있다.
◇수중에서 발굴된 난파선의 표면. 사진은 갯벌 속에 완전히 묻혀 해양 미생물로부터 안전하게 유지됐다.
이후에는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화처리 과정에 들어간다. 이는 목재에 남은 수분을 제거하고 형태와 강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약품으로 목재 내부를 채워주는 것을 말한다. 화장품 원료로 많이 쓰이는 PEG(Polyethylene glycol·폴리에틸렌글리콜), 음식이나 잼을 만들 때 사용하는 설탕(Sucrose), 각종 알코올류 등 다양한 약품을 쓰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PEG를 사용한다.
난파선 표면은 분해가 많이 되었고, 내부는 상대적으로 덜 분해되었기 때문에, 한번에 고농도 약품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농도를 서서히 높여 내부 깊숙이 약품이 침투할 수 있게 한다. 저분자량의 PEG를 물에 풀어 선체를 완전히 담그고, 5%의 낮은 농도부터 시작해서 PEG 농도를 약 70%까지 서서히 올려준다. 한 차례 약품 농도를 상승시켜 선체에 침투시키는 데는 4∼6개월의 시간이 소요되며, 사용하는 약품 양은 약 1000㎏에 달한다. 이러한 과정은 7∼10년에 걸쳐 이뤄지고, 총 14회 정도 농도상승 과정을 거친다. 처리실에는 규모가 큰 난파선과 무거운 약품 운반을 위해 큰 물건을 옮길 때 사용하는 호이스트를 설치해 운영하는데, 실험실이 아니라 큰 공사현장과 같은 분위기 속에서 많은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경화처리가 마무리되면 표면에 남은 미량의 약품도 모두 제거하고 건조한다. 일정한 습도를 유지할 수 있는 밀폐공간에 선체를 넣고, 오랜 기간 동안 서서히 수분을 제거하는 것이다.
◇1976년 신안 앞바다에서 발굴된 신안선. 오랜 시간의 처리과정을 거쳐 30년 만에 원래 모습대로 복원돼 현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 전시돼 있다.
그런데 목재 유물을 포함해 모든 유물은 규모나 성질에 따라 보존처리 방법에 차이가 발생한다. 소형 목재유물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동결건조법을 적용해 빠르게 건조한다. 동결건조법은 인스턴트식품의 원료인 육류·어류·야채·과즙 등을 장기 보존하기 위해 흔히 사용한다.
영하 40도에서 급속하게 얼린 후 진공상태에서 액화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건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변에서 흔히 보는 동결건조 식품은 형태가 온전한 경우가 매우 드물다. 수분을 완전히 제거하면서 그 형태나 색깔이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경화처리를 마친 목재 유물은 나무를 단단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약품으로 치환했기 때문에 형태를 온전히 유지할 수 있으며, 나무 본래의 색상도 드러나는 것이다.

◇차미영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수중발굴과
목재의 성질에 따라 경화처리 과정을 거치지 않고 건조 과정에 들어가는 유물도 있다. 1976∼1984년 이뤄진 신안 해저 발굴 조사에서는 1000여개가 넘는 자단목(紫檀木)이 발굴됐다. 자단목은 고급 향의 재료이자 공예품과 고급 가구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특히 나무의 단단한 정도를 알려주는 치수인 기건비중(氣乾比重)이 0.8∼0.85에 이른다. 소나무 기건비중이 0.43인 것과 비교하면 조직이 매우 치밀하고 단단하다. 이렇게 단단한 나무는 바닷속 미생물의 공격을 거의 받지 않아 나무 세포도 건강하게 살아 있다. 때문에 자단목은 경화처리를 거치지 않고, 긴 시간 동안 목재 내 수분을 조금씩 단계적으로 제거해 주는 조절건조법을 적용하였다.
이쯤 되면 수중에서 발굴된 유물이 전시에 이르는 과정에서 과학적 보존처리가 얼마나 큰 역할을 차지하는지 독자들도 눈치챌 것이다. 문화재를 올바르게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적인 접근도 필요하지만, 발달한 과학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보존처리는 문화재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으로 출토된 유물의 수명 연장과 과거 생활을 재현하고 귀중한 정보를 찾아 역사를 규명해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앞으로 박물관을 찾아 진열장에 전시된 문화재를 접할 때, 온전하게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문화재와 그 문화재를 발굴한 고고학자들뿐 아니라 아픈 문화재를 치료하는 ‘문화재 주치의’ 보존과학자들도 함께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차미영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수중발굴과
-세계일보 2010.8.17
http://www.segye.com/Articles/NEWS/CULTURE/Article.asp?aid=20100817003520&subctg1=&subctg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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