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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파묻힌 우리 문화유산을 찾아서] ② 반출 문화재의 보고 오구라 콜렉션

편집부

도쿄에서 칩거중인 ‘한반도 명품 문화재’
이국땅 고색창연한 바로크식 돔 건물 안에는 한반도의 명품 문화유산들이 새록새록 숨쉬고 있었다. 화려한 금박 장식들이 찰랑거리는 삼국시대의 금동관모(모자), 아기자기한 요철(凹凸) 무늬가 빼곡한 금동신발, 앙증맞게 합장한 보살상이 꼭지에 올라앉은 9세기 팔각당형 사리기…. 35도에 육박하는 폭염도, 쟁쟁거리는 매미 소리도 유물들의 숨결 앞에서 잠시 잦아드는 듯했다. 20세기 초 일제 강점기 수만점으로 추산되는 조선의 문화재를 수집했던 일본 기업가 오구라 다케노스케(1870~1964)가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한 우리 문화재 컬렉션은 한껏 사랑스러웠다. ‘오구라 컬렉션’으로 유명한 이 유물들을 소장·전시하는 도쿄국립박물관을 지난 4~5일 찾아갔다.
일제강점기 반출 1110점
수집·처분 경로 ‘오리무중’
모두 1110건에 달하는 박물관의 오구라 컬렉션은 본관 왼쪽 효케이관의 아시아갤러리에 극히 일부인 20점만 전시되고 있었다. 고고학 유물, 불교조각, 금속공예, 도자·회화·전적·서예, 복식 등을 망라한 굴지의 명품 컬렉션으로, 오구라가 죽은 뒤인 1982년 그의 후손과 지인들이 만든 컬렉션 보존회(지금은 해체)에서 기증한 것이다.
효케이관은 1909년 당시 황태자(다이쇼 천황)의 결혼을 기념해 만든 근대 건축물로, 오구라 컬렉션은 관내 정면 한국실의 4개 진열장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본관 오른쪽 동양관에서 100여점을 전시해왔으나, 지난해 6월부터 전면 보수공사에 들어가 효케이관 임시 전시실로 옮겼다. 전시품들은 눈에 쏙 들어오는 자리에 있다. 현관으로 들어서자마자 정면 안쪽에 ‘조선반도의 문화’라는 패널 상자가 있고 이 패널을 중심으로 진열장 네곳에 고대 고고학 유물과 금속공예품, 도자기 등을 진열해 놓았다. 한 진열장은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경남 창녕에서 출토된 금동관모, 새 날개 모양 모자 장식 등 오구라 컬렉션의 최고 명품 유물 6점을 모아놓았다. 청자상감국화무늬긴목병, 분청사기 장군 등 소담한 도자기 유물들도 보였다. 유물 담당자인 다니 도요노부 열품과장은 “반년마다 전시품을 바꾼다”며 “온습도 조절이 안 되는 건물이라 그림과 서예 등은 전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장 취재는 민감한 통제 아래 이뤄졌다. 안내를 맡은 다니 과장 말고도 홍보·기획팀 직원 2명이 따라다니면서 취재진의 행동과 대화를 기록했다. 박물관 쪽은 한국 등 외부 언론의 오구라 컬렉션 취재에 대한 일정한 원칙을 세워두고 있었다. 전시된 일부 유물만 공개하고, 취재시간을 사전 예약제로 한다는 것이었다. 수장고에 있는 유물 관람 요청도 “원칙에 따라야 한다”고 거절했다.
오구라는 ‘조선의 전기왕’으로 불렸다. 1903년 조선 경부철도회사에 입사해 한국에 건너온 뒤 40여년간 대구에서 전기회사를 운영하면서 막대한 부를 쌓았고, 이 금력을 바탕으로 한반도 곳곳의 고분에서 도굴된 고고 유물과 밀거래된 고미술 명품들을 긁어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구라 컬렉션은 해방 전 일본으로 반출한 일급 문화재로 알려져 있지만, 한국에서는 해방 뒤에도 엄청난 유물들을 일본으로 가져갔으며, 기증 전 상당한 분량을 처분했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1964년 그가 소유했던 대구 문화동의 육군 방첩대 건물 지하실에서는 희귀 문화재 140여점이 발굴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수집 행적이나 이후 유물들의 반출, 처분 경로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박물관 쪽에서 내놓은 오구라 컬렉션의 수집 경위에 대한 자료도 1982년 기증 당시 특별전 도록과 컬렉션 사진집, <동양미술 명품 100선>, 박물관의 학술지 <뮤지엄> 등에 단편적으로 소개된 것들이 거의 전부였다. 수집·기증 경위를 묻는 질문에 다니 과장은 “무쓰가시이…”(어렵네요)란 말을 되풀이했다.
일본에선 철저한 통제·관리
한국에선 전시해도 ‘냉담’
“오구라 유물들이 어떤 경로로 일본에 건너오고 추가 수집되었는지는 아는 게 없습니다. 다만 기증 전부터 꾸준히 저희 관에서 고고 유물 등을 대여전시한 인연이 있어 기증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오구라 컬렉션 덕분에 한국관 유물들은 매우 충실해졌습니다. 2012년 동양관이 재개관하면 최상층에 전시실을 복구할 예정입니다.”
오구라 컬렉션은 네번 한국에 전시하러 왔다. 1999년 국립중앙박물관(이하 중박)과 대구, 부여박물관의 백제 특별전에 20여점이 나간 것을 시작으로, 2007~2008년 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 전시, 2008년 중박의 통일신라 불상 특별전 등에 일부 유물이 대여됐다.
흥미로운 건 당시 한국의 덤덤한 반응이었다고 한다. 박물관 쪽은 “처음 대여전시를 할 때 잔뜩 긴장했으나, 반응이 거의 없어 의아했다”고 했다. 8·15 때 한국 언론이나 정치권 인사들이 찾아와 관심을 표명하지만, 정작 유물 자체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이야기였다. 오구라 컬렉션 특별전을 할 의향이 있느냐는 물음에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 다니 과장은 이런 말도 했다. “한국의 국회의원들이 종종 오는데 재미있는 분들 같아요. 올 초 오신 분은 컬렉션 전시장에 와서 ‘오구라 컬렉션이 무슨 뜻이냐’고 묻더군요, 일본 오쿠라 호텔에 있는 조선 석탑 컬렉션과 우리 관의 오구라 컬렉션이 같은 것이냐고 묻는 분도 계시고…. ”
낯이 붉어진 채 자리를 일어섰다. 어느덧 폐관시간인 오후 5시. 우리 명품들을 만난 반가움과 회한, 반출 문화재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시각차를 절감한 순간들이었다. 인근의 우에노 공원 숲에는 여전히 시끄럽게 매미가 울고 있었다.
노형석 기자
한겨레, 2010.8.12
원본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3458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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