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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건진 역사] <8>고려시대 항해와 선상생활

편집부

다리 달린 철제 솥단지·굴 채취 도구…뱃사람들 생활도구 천년이나 이어져
고려시대, 그 시절에는 나침반이나 해도 같은 항해 도구가 발달하지 못해 지형지물을 이용한 항해가 일반적이었다. 선원들은 섬과 연안의 높은 산 등을 가늠하여 방향을 잡아 나갔다. 이때는 지형지물에 대한 숙지가 중요했기 때문에 경험 많은 뱃사람의 역할이 중요했다. 그중에서도 사공의 역할이 컸다. 사공은 키를 잡고 배의 진행을 조종하며 바다에 대한 지식도 뛰어나 물때, 풍향, 날씨, 연안과 섬 곳곳의 생김새 등 항해에 필요한 여러 지식을 능숙하게 숙지해야 한다. 이러한 능력은 오직 풍부한 경험에 의해 오는 것이다.

◇1984년 완도 해저에서 발굴된 고려시대 철제 솥(오른쪽 사진)과 시루(왼쪽 사진). 고려시대 선원들은 배에서 솥을 사용해 밥을 해 먹었고, 뱃고사 등에 필요한 떡을 시루를 이용해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유물이다.
돛을 이용한 항해에는 조류와 바람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항해 기간이 들쑥날쑥했다. 짧은 거리지만 며칠씩 걸리기도 하고, 먼 거리지만 단숨에 내달아 도착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바람을 기다리느라 섬 부근에 몇 날을 정박해 있기도 했다. 전통 항해술 경험자에 의하면 바람만 있으면 돛 폭을 조정해 역풍 항해도 가능하다고 한다.
근래에 고려시대 난파선들에 대한 수중발굴조사를 통해 당시 배의 형태와 뱃사람들의 생활상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난파선에는 주로 고려청자가 실렸는데, 최근에는 곡류·석탄·죽제품 등 다양한 선적물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런 유물과 함께 발견되는 것들이 선원들이 선상에서 사용했던 물품들이다.
이 유물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당시 뱃사람들의 생활상을 떠올릴 수 있다. 난파선에서 가장 자주 발견되는 것은 솥이다. 예나 지금이나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밥해 먹는 솥은 꼭 가지고 다녔던 모양이다. 난파선 1척당 보통 두 개 내지 세 개의 솥이 발견되었는데, 주로 다리가 세 개 달렸고 무쇠로 만들어졌다. 다리가 달린 것은 솥 밑에 불을 지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두세 개의 솥은 밥 짓고 국 끓이는 데 사용하였을 것이다.
1984년 발굴한 완도선에서 3점, 2004년 발굴한 십이동파도선에서 2점, 2008년 발굴한 태안선에서 2점 등 고대 난파선 발굴에는 항상 철제 솥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들 솥은 선체의 중앙 부분 즉 허리돛대 밑에서 발견되었는데, 고려시대 배는 중앙 부분에 취사 공간이 마련되었던 모양이다.
난파선에서는 솥과 함께 마치 구들장 같은 납작한 돌판이 발견되는데, 모두 검게 그을린 흔적이 뚜렷하다. 이는 밥 지을 때 선체에 불이 붙지 않도록 솥 밑에 까는 돌이다. 또한 대부분의 선박에서는 땔감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잡목이 발굴되기도 했다.

◇완도 해저에서 발굴된 고려시대 나무 함지박. 지금과 마찬가지로 고려시대 뱃사람들도 바다에서 취사를 해결해야 했고, 나무 함지박을 이용하여 설거지를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솥 외의 취사도구로는 숟가락·청동그릇·국자 등이 나왔다. 완도선에서 나온 5점의 청동숟가락은 사용한 흔적이 뚜렷하고 오늘날 것과 거의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이다. 청동그릇은 밥과 국그릇들로, 오래 사용하여 금이 간 것은 구멍을 뚫어 이어서 사용하기도 했다. 국자 역시 지금 것과 똑같다. 또 다른 선상 생활용품으로 나무 함지, 숫돌, 항아리편, 각종 단지, 나무 망치, 나무 쐐기, 시루, 조새 등이 발견되었다.
나무 함지는 요즘의 세수대나 설거지통이었을 것이고, 숫돌은 칼이나 예리한 도구를 가는 데 사용했다. 숫돌에 실제 금속도구를 갈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항아리편의 발견은 물항아리의 존재를 말해주며, 된장이나 간장·젓갈 등 각종 양념류와 음식을 담았던 단지와 단지 편들도 여러 점이 인양되었다. 이러한 항아리편과 단지의 발견은 술을 담글 수 있는 쌀·누룩·된장·간장 등을 가지고 다녔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만기요람(萬機要覽: 왕이 정사에 참고하도록 정부 재정과 군정의 내역을 모아 놓은 책으로 순조 8년·1808년에 편찬됨)’에 보면, 조운선에 지급되는 품목 중에는 술 빚을 쌀과 장 담글 콩을 지급했다는 기록도 있으니, 고려시대도 마찬가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중발굴조사를 통해 발굴된 고려시대 나무 망치. 배가 이동하면서 헐거워지거나 고장난 부분이 있으면 선원들은 나무 망치를 사용해 수선했다.
나무 망치는 배의 여러 부분들이 이모저모 헐거워지면 쐐기를 박아서 단단히 할 필요가 있을 때 사용하였을 것이다. 시루는 뱃사람들이 항해 중 뱃고사에 쓸 떡을 만들기 위해 배에 실린 것으로 추정된다. 근래까지도 부안 죽막동 마을 사람들은 뱃고사를 지낼 때 용왕에 바치는 제물로 떡을 시루째 바다에 던졌다고 한다.
완도선에서는 굴을 까는 조새가 발견되었는데, 요즘 우리나라 서남해안에서 사용하는 조새와 똑같은 형태이다. 바람을 이용한 항해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도중에 포구나 피항지에 정박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선원들이 먹을거리를 조달하기 위해 이 조새를 사용해 굴을 채취했을 것으로 보인다. 굴 채취에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도구를 썼다고 볼 수 있다. 한 도구가 천년의 세월을 넘어 지금까지 이어지는 연속성에 놀라울 따름이다.
곽유석 국립해양문화재硏 해양유물연구과장
또한 배 위에서 쓰던 밧줄과 닻을 묶던 밧줄도 일부 발굴되었는데, 모두 칡넝쿨 껍질을 벗겨 꼬아서 만들었다. 굉장히 질기고 튼튼한 밧줄이었다.
이 같은 유물을 통해 고려시대 선원들의 선상 생활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식사를 담당한 선원은 쌀과 물이 담긴 철제 솥을 돌 판에 얹고 나무를 때어 밥을 한다. 보조 선원은 숫돌에 칼을 쓱쓱 갈고, 각종 양념 단지에서 장을 퍼오고, 또 커다란 물 항아리에서 물도 길어 나른다.
모여 앉은 선원들은 청동 밥그릇에 담긴 밥을 청동 수저로 퍼서 입으로 부지런히 나르고, 장·된장·젓갈 등 몇 되지 않은 반찬을 다투어 먹었을지도 모른다. 밥을 먹고 나면 나무 함지에 그릇들을 담아 설거지를 한다. 이 틈에 갑판을 살피는 한 선원은 배 이곳저곳을 꼼꼼히 살펴 헐거워진 곳이 있으면 나무 망치로 쐐기를 박아 튼튼히 한다. 이렇듯 선상 생활 유물은 그 당시 선원들의 삶을 복원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러한 자료들을 모으고, 관련 문헌 기록과 함께 이들 유물을 연구한다면, 고려시대 뱃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좀 더 정밀하게 살려낼 수 있을 것이다.
-세계일보 2010.8.4
http://www.segye.com/Articles/NEWS/CULTURE/Article.asp?aid=20100803003078&subctg1=&subctg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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