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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건진 우리역사] <6> 800년전 침몰선 비밀의 열쇠 ‘목간’

편집부

나무막대에 운송내역 빼곡… 당시 사회상 그대로 보여줘
2007년 충남 태안군 근흥면 대섬 인근 해역에서 주꾸미를 잡아 올리던 어부는 소라 통발 입구가 청자대접으로 막혀 있는 걸 보았다. 청자대접은 산란한 알을 보호하기 위해 주꾸미가 막으로 사용한 것들이었다. 이를 계기로 수중발굴조사가 이뤄져 고려시대 청자 운반선(태안선) 1척과 12세기 중반 것으로 추정되는 2만여점의 고려청자, 선원들이 사용하던 솥, 물동이 등 선상 생활용품과, 인골 등을 인양했다.

◇지난해 11월 미도 수중발굴 현장에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관계자들이 기자와 현장을 찾은 주민들에게 발굴한 육간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주꾸미가 가져 온 것은 이 밖에도 많았다. 이전의 수중 발굴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유물이 발굴팀에게 목격됐다. 한자가 적혀 있는 직사각형의 대나무가 바로 그것. 이 작은 나무 막대를 통해 태안 대섬 유물의 성격이 분명하게 밝혀지게 된다. 도대체 이 대나무에는 어떤 글이 적혀 있었던 걸까.
대섬에서 나온 직사각형 나무 막대 하나를 자세히 살펴보면 앞면에는 한자로 ‘탐진현재경대정인수호부사기팔십(耽津縣在京隊正仁守戶付沙器八十)’이, 뒷면에는 ‘차지재선장(次知載船長)수결’이라고 적혀 있다. “탐진현(현재 전남 강진)에서 개경에 있는 대정(하급 무반) 인수 집에 도자기 80개를 보낸다”는 내용이다. 뒷면은 “맡아서 배에 실음. 장(지방 향리). sign”이라고 해석하면 된다.
여러 점의 나무막대에는 비슷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보낸 사람은 탐진현을 다스리던 향리였다. 받는 사람은 모두 개경에 있는 ‘대정 인수’와 ‘안영’ 등 작은 관청의 우두머리들이다. 보낸 물건은 도자기이고 수량은 80개, 한 꾸러미, 20, 10으로 다양했다. 나무 막대는 선박에 실린 도자기 운송장, 바로 화물표였다.
현재 우리는 매우 체계적으로 발달한 우정(郵政)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집에서 물건을 보내면 상대방도 집에서 받아볼 수 있는 택배도 일반화돼 있다. 물건이나 편지를 보낼 때 작성하는 것이 운송장이다. 지금은 바코드 형태가 일반화돼 있다. 고려시대 사람들은 당시 운송 내역을 나무에 적어 화물에 꼬리표처럼 매달아 사용했다. 나무 막대 위나 아래에는 끈으로 화물에 매달기 위한 홈을 팠다.

◇태안 마도에서 발굴된 고려시대 목간. ‘대장군김순영택상전출조육석(大將軍金純永宅上田出租陸石)’이라고 적혀 있다. 대장군 김순영 댁에 벼 6섬을 올린다는 내용이다. 김순영은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나오는 인물로 그의 활동 시기에 해당하는 정묘, 무진년은 각각 1207년과 1208년이다. 이를 통해 마도 1호선이 1208년 좌초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왜 나무 화물표를 사용했을까. 지금과는 달리 예전에 종이는 매우 귀한 물건이어서 화물표로 사용하기 어려웠다. 때문에 고려시대 사람들은 주변에 흔한 재료인 나무나 대나무를 사용한 것이다. 이처럼 나무에 글자를 적은 것을 ‘목간(木簡)’이라고 한다.
목간은 문자를 기록하기 위해 일정한 모양으로 깎아 만든 나무 또는 대나무 조각이다. 주로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 쓰였고, 종이가 널리 쓰이기 이전에도 사용됐다. 다른 말로는 목독 또는 목첩이라고 했다.
태안 대섬에서 발견된 새로운 유물은 목간이다. 목간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태안선과 거기에 실린 도자기들의 생산지나 도착지점 등을 명백하게 알기 위해 많은 수고로움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수고를 덜어준 것이다. 하지만, 발견된 목간이 마냥 고맙지만은 않다. 간결하고 알아보기 쉽게 적은 것은 상관없지만, 어떤 것은 매우 흘려 쓴 글씨라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어떻게든지 판독해 줄 테니 많이만 나와 달라고 기원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목간은 수량이 많음에도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한정돼 있다. 태안 대섬 발굴을 통해서 드디어 고려시대 목간도 발견된 것이다. 이 시기 목간은 발굴 수량이 수십만점에 달하는 중국과 일본에서도 매우 드문 것이다. 태안 대섬에서 발굴된 목간을 통해 작게는 태안선에 실린 도자기의 발신과 수신 등 운송 관계를 알 수 있다. 이외에도 고려시대 지방 향리의 역할, 도자기 등 세금으로 바친 물건들의 유통망, 관직명, 서체 등 매우 다양한 분야의 당시 시대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도자기나 선박의 유물은 그 의미를 알아달라고 입을 꾹 다문 채 조용히 기다리는 것들이라고 한다면, 목간 같은 문자자료는 ‘어서 빨리 의미를 알아봐달라’고 소리치는 존재와 같다.
2007년 이처럼 처음 모습을 드러낸 고려시대 목간은 마치 기다리기도 한 듯 우리 앞에 연이어 나타났다. 2009년 충남 태안군 마도 인근 해역에 대한 수중 발굴 조사에서다. 이곳에서는 ‘마도1호선’과 1200여점의 도자기, 벼와 메밀 등의 곡물류, 석탄, 대나무와 나무에 적힌 화물표 목간 69점이 인양됐다. 앞의 대섬 목간과 마찬가지로 마도 목간 역시 화물표인데 차이가 있다면 대나무로 만든 것도 나왔다는 점이다.
마도 목간을 통해 마도1호선의 좌초연대가 정확하게 드러났다. 목간에는 정묘, 무진 등 간지가 보이는데 함께 발굴된 ‘大將軍 金純永(대장군 김순영)’이라는 글을 통해 정묘는 1207년 무진은 1208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임경희 국립해양문화재硏 학예연구사
또한 목간을 통해 마도1호선에 실린 곡물이나 젓갈 등은 죽산현(현재 해남), 회진현(현재 나주), 수령현(현재 장흥)에서 해당 지역 향리가 거둬들이고 배에 싣는 것 등을 책임지고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물건을 받는 사람은 모두 개경에 있는 관직자인데 대장군 김순영, 별장 권극평, 검교대장군 윤기화, 봉어동정 송수오 등이다. 화물 종류는 쌀·벼·조· 메밀 등의 곡식류와 메주, 젓갈 등이다.
그렇다면 죽산현, 회진현의 향리들은 서울에 있는 대장군 김순영 등에게 왜 이 같은 물건을 보낸 것일까. 세금으로 바쳤을 가능성과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주인에게 그 대가로 바친 것 2가지 가능성이 있지만, 아무래도 세금을 거둬 개경으로 운반하던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마도 1호선은 고려시대 국가 재정의 핵심인 조운을 위한 선박일 가능성이 짙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목간은 태안 대섬과 마도에서 나온 것이 전부로 모두 화물표로 쓰인 것들이다. 목간 연구의 중요한 분야 중 하나는 ‘목간의 일생(Life Cycle)’을 추적하는 것이다. 목간의 제작과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 나라에서 출토된 목간은 대부분 그 쓰임이 다돼 폐기된 것들이다. 하지만 태안의 수중에서 발굴된 목간은 일생에 비유한다면 태어나 가장 왕성한 활동을 진행하는 장년기(활동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힘들고 어려운 수중 발굴 작업에 재미와 보람을 안겨준 것이 바로 목간이다.
임경희 국립해양문화재硏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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