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사금파리의 빛 : 항아리와 김환기의 점-점(點-點)

편집부

[2010 whtjsdlfqh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분 - 당선작]
사금파리의 빛 : 항아리와 김환기의 점-점(點-點)
김남인

입력 : 2010.01.01 14:55 / 수정 : 2010.01.01 15:45
한편 번짐은 끊이지 않은 것, 연속적인 것이다. 점의 운행은 작가의 손에서 이루어지지만 개별 점의 번짐은 우연과 불확정성을 허용한다. 의도와 우연의 적절한 조합은 우주와 자연, 삶의 원리와도 같이 ‘점의 운명’으로 가득 찬 화면을 이루어낸다. 도공이 흙과 물, 물레로 도자기를 만들지만 결국 불이라는 섬세한 변수를 통해 그 조형적 결과물을 빚어내듯 말이다. 그리고 이 점들은 그 번짐으로 인해 꿈틀거리며 ‘되어가는’ 가능태(可能態)로서, 또한 형태를 향해 존재하는 근본적 씨앗으로서의 생동감을 획득한다.
김환기의 점들은 불빛처럼 흔들린다.[도13] 흔들림은 어떤 것일까? 흔들림은 환영을 창출한다. 마치 개체가 스스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나 물의 원리에 따라, 물을 타고 움직인 이 빛깔들은 마치 자연계의 생명처럼 연속적이고 유기적인 시간성을 담지하고 있다.

▲ 도13 <10-Ⅷ-70 #200>, 1970, 캔버스에 유채, 254x203cm 그리고 흔들림으로 얻어진 이 움직임은 시간성이 존재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정지’에서 우리는 멈춰있음, 시간이 흐르지 않음을 느낀다.
그러나 움직임의 상대적 개념으로서 존재 가능한 정지와 달리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적막에서 느끼는 것은 시간성의 사라짐, 생명으로부터의 탈피이다. 그것은 죽음에 가깝기에 두려움을 촉발하며 영원과 통해 있기에 경외감과 닿아있다.
그러나 번짐과 스밈이 창출하는 이 생동감은 작품 전체에 하나의 시간성을 부여한다. 흔들리는, 그리하여 살아있는 이 점들은 마치 종소리의 파장이 공기 중에 번져나가듯 음악적 울림과 화음을 일구어낸다. - 그지없이 미묘하고 섬세한 일렁거림, 흰 항아리의 표면을 펼쳐 물레의 결을 바라볼 때 만날 수 있을 법한.
▲ 도14 <달과 항아리>, 1958, 종이에 과슈, 펜, 31.5x21cm
Ⅳ. 사금파리의 빛
작은 드로잉 작품 <달과 항아리>(1957)는 작가의 초기작에서부터 드러나는 달과 항아리의 연결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작품이다.[도14] ‘달 항아리’라는 말이 보여주듯 흰 백자 항아리는 색감뿐만 아니라 그 둥글고 원만한 형태로 말미암아 오랫동안 달에 은유되어 왔다.
종이에 과슈와 펜으로 그려진 이 작품은 이미지만으로는 밑에서부터 바라본 도자의 형태와 그 정면 상을 병치해 놓은 것 같지만, 작품 제목은 이것이 달과 항아리라는 두 개의 다른 소재를 그린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더욱 흥미로운 것은 항아리와 달을 ‘빛’으로 연결하는 작가의 생각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곳곳에서 짐작할 수 있는데, 그의 화면에서는 달의 위치에 버금가게 그려진 항아리들을 종종 볼 수 있다.

▲ 도15 <달과 항아리>, 1954, 캔버스에 유채, 162.2x97cm
[도15, 도16] 뿐만 아니라 작가는 다음과 같이 항아리가 비추어내는 빛의 느낌에 감탄한 바 있다. 태양과 조응하여 미묘한 변화를 창조하고, 달빛을 흡수하는 항아리들은 빛의 은유가 된다.
희고 맑은 살에 구름이 떠가고 그늘이 지고 시시각각 태양의 농도에 따라 청백자 항아리는 미묘한 변화를 창조한다. 칠야삼경(漆夜三更)에도 뜰에 나서면 허연 항아리가 엄연하여 마음이 든든하고 더욱이 달밤일 때면 항아리가 흡수하는 월광으로 인해 온통 내 뜰에 달이 꽉 차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달과 항아리를 빛으로 연결하는 작가의 의식은 구상과 추상을 이어주는 작가적 발상, 하나의 연결점이 될 수 있다. 특히 그가 구상, 즉 완결된 대상의 형태에서 점점 벗어나 점이라는 지극히 환원적이며 근본적인 조형 요소로 돌아갔을 때 그의 화면에서 느껴지는 것이 일렁거리는 빛의 느낌임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작가에게 항아리는 빛을 시각화하는 매개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태양빛과 달빛은 항아리에 닿았을 때 비로소 하나의 가시적이면서도 촉각적인 대상으로 태어난다. 항아리가 빛 자체를 담고 있으며 그 빛을 은유한다면, 그의 점화 속의 점은 입자로서의 빛이 아닐까. 화면의 일렁거림은 그 입자가 모여 발산하는 빛의 생동감이다.


▲ 도16 <백자와 꽃>, 1949, 합판 위에 유채, 40.5x60cm 한편 이때 그가 ‘파편’이 가지고 있는 미적 의미에 주목해 왔다는 사실은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산산이 부서진 루오의 그림을 생각해 본다. 그 어느 조각을 들고 보아도 보석처럼 찬란히 빛날 것만 같다. 마티에르란 진실로 이러한 것이 아닐까?[주9]
아깝게도 목이 떨어졌고 양 귀가 떨어졌고, 그것은 할 수 없다. (…) 이 처참하게 된 불상이 어찌하여 이렇게도 아름다울까.[주10]
또한 파편에 대한 작가의 감탄은 그가 항아리 수집을 그만두게 된 계기를 떠올린다. 피난살이를 마치고 집 뜰에 들어왔을 때 그 뜰은 온통 항아리의 파편 천지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순간, 작가가 느낀 것은 절망감이 아니었다. 사금파리 무더기에서 그가 느낀 것은, “이상한 충격” - “통쾌감”이었다.[주11] 그리고 그러했기에, 그는 부산피난 후 사금파리의 빛을 마주 했었던 목소리로 뉴욕에서도 “부수는 용기”[주12] 를 역설할 수 있었을 것이다.


▲ 도17 <14-Ⅲ-72>, 1972, 캔버스에 유채, 250x199.5cm
Ⅴ.
김환기는 우리나라 작가 중 비교적 많은 글에서 다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전이 계속해서 읽혀지고 해석되듯, 그의 작품세계 역시 다양한 맥락에서 더욱 풍성한 논의로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작가 스스로 도자를 비롯한 과거의 조형에서 풍요로운 의미를 발견했던 것과도 상통한다. 한국의 도자기, 특히 달항아리와 같은 백자는 작가에게 과거의 정신적 유산으로서 그 정점에 서 있는 것이었으며, “그 포름 색질감(色質感), 그리고 그놈이 발산하는 공간의 지배”[주13]는 하나의 조형적 지향점이 되었던 것이다.
한편 항아리는 작가에게 보다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의미로서, 자연의 빛을 비추어내는 매개이자 빛의 상징이 되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 파편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의 아름다움과 빛을 비추어 내듯, 화폭 속의 점들은 자연스러운 번짐과 스밈을 통해 시간 속에서 서서히 하나하나 떠오른다.[도17] 파편의 빛은 깨어지지 않은 항아리가 보여주는 형태미와 선의 유려함만큼이나 완전할 수 있다. 빛의 입자는 존재의 개별성을 지닌 채 물로 섞여 응집된다. 그리고 그 응집의 힘은 물의 번짐과 스밈으로 그 속도를 조절하면서 화폭 속에 공명하는 울림을 전달한다. 그 울림의 확 터 있음과 무심함, 부서진 항아리에서 느꼈던 그 이상한 해방감이야말로 형태를 벗고 점으로 환원한 화폭의 자유로움을 낳은 것이 아닐까?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는 예술적 이미지의 교감을 이야기하면서, 작가의 상상력을 떠올리는 독자의 상상력이 감동이라는 정신적 체험을 환기시킬 수 있음을 말한 바 있다. 그 연상의 끈을 타고 올라가면 김환기의 화폭에서 항아리는 파편으로, 파편은 빛으로, 빛은 점으로 번져 나간다. 그리고 이 때 점은 비로소, 작가의 표현처럼 [주14], 빛이 되어 ‘날아간다.’
---------------------------------------------------
<주>
1) 1955. 5, 김환기, 「청백자 항아리」,『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환기재단, 2005), 117면.
2)「항아리」, 앞의 책, 228면.
3) 앞의 책, 228면.
4) 앞의 책, 228면.
5) 김환기는 그의 일기에서 “Mark Rothko가 어제 팔 동맥을 잘라 자살한 기사에 놀라다. 내 가장 존경하는 예술가가 비명에 가다니.”라고 말한 바 있다. (앞의 책, 324면)
6) 앞의 책, 315면.
7) 앞의 책, 322, 366면.
8) 『김환기 30주기 기념전: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환기미술관, 2004) 도록에는 라는 제목이 표기되어 있다.
9) 김환기, 앞의 책, 206면.
10) 「불상의 파편」, 앞의 책, 239면.
11) 앞의 책, 228면.
12) 앞의 책, 307면.
13) 앞의 책, 125면.
14) “나는[飛] 점. 점들이 모여 형태를 상징하는 그런 것들을 시도하다. 이런 걸 계속해 보 자.” 1968년 1월 23일, 앞의 책, 315면.
--------------------------------------------
<도판>
* 소장처 표기가 없는 것은 환기미술관 소장입니다.
도1 성북동 집 우물가에서 김환기, 연도미상
도2 <성북동집>, 1956, 캔버스에 유채, 100x65cm
도3 <여인들과 항아리>(부분), 1950년대, 캔버스에 유채, 210x460cm
도4 조선백자불기, 김환기 촬영, 1964
도5 <오브제(항아리)>, 1968, 파피에 마쉐, 36.5x26.5x26.5cm
도6 <이른 아침>, 1968, 캔버스에 유채, 176x126cm, 개인소장
도7 <작품>, 1965, 캔버스에 유채, 177.3x126.5cm, 개인소장
도8 <24-Ⅷ-65 남동풍>, 1965, 캔버스에 유채, 178x127cm, 개인소장
도9 마크 로스코, , 1949, 캔버스에 유채, 141x81.4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도10 마크 로스코, , 1949, 캔버스에 유채, 173x109.9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도11 <26-Ⅷ-70>, 1970, 캔버스에 유채, 75x68cm, 개인소장
도12 <05-Ⅳ-71 #200>, 1971, 캔버스에 유채, 254x254cm, 개인소장
도13 <10-Ⅷ-70 #200>, 1970, 캔버스에 유채, 254x203cm
도14 <달과 항아리>, 1958, 종이에 과슈, 펜, 31.5x21cm
도15 <달과 항아리>, 1954, 캔버스에 유채, 162.2x97cm
도16 <백자와 꽃>, 1949, 합판 위에 유채, 40.5x60cm
도17 <14-Ⅲ-72>, 1972, 캔버스에 유채, 250x199.5cm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