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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의 ‘큐레이터 따라하기’] 32. 글로벌리즘 vs 로컬리즘

이대형


태풍의 중심은 반드시 이동한다. 그리고 변두리가 중심이 되고 중심부는 유행에서 한참 뒤진 채 역사에서 잊혀지기도 한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가 그랬다. 로마제국, 나폴레옹, 대영제국, 칭기즈칸이 그랬고 르네상스, 로코코, 모더니즘이 그랬다. 제국을 만들고자 했던 영웅 혹은 약탈자들의 야망이 현대에서도 그대로 재현된다. 다국적 기업과 다국적 자본이 내세운 규격화와 효율성 앞에 많은 전통적인 가치관이 훼손되거나 경시됐다. 정치, 경제, 종교, 문화 등 다양한 요소가 중심과 변두리 사이 줄다리기의 승자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변용된다. 깃발을 꽂는 사람이 주인이라고 우기는 사람부터, 그 깃발을 돈으로 사는 사람, 힘으로 빼앗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중심이란 허상을 두고 다투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끝나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다.
1915년 스코틀랜드의 패트릭 게데스가 그의 저서 ‘진화하는 도시(Cities in Evolution)’ 에서 처음으로 ‘싱크 글로벌, 액트 로컬’이라는 표현을 쓴 이래 환경, 경제, 문화, 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글로벌리즘과 로컬리즘이 서로 상생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 왔다.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려 할수록 지역의 개성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거기에 맞게 행동하지 않으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는 것이 ‘싱크 글로벌, 액트 로컬’의 메시지다. 미국과 서구 중심으로 글로벌리즘이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한 특정 지역의 개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상품이 국제시장에 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예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에 일본 만화와 홍콩 액션이 가미되고, 프랑스 철학이 입혀지거나, 특정 지역 소비자의 목소리가 반영된 제품이 본토로 역수출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최근 한국의 드라마가 아시아, 중동, 남미에 이르기까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 역시 한국이란 지역적 정체성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남대문시장, PC방, 노래방, 민속주점, 전통찻집의 단골 손님 중에 외국인들이 꽤 있다. 필자 역시 대만이나 중국에 가면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대신에 꼭 야시장과 전통찻집을 찾아간다. 한 지역에는 있고 다른 지역에는 없는 것, 익숙한 것보다는 낯선 것에 대한 소비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신풍조다. 이는 인터넷으로 인해 공간의 거리가 확연하게 줄어들었고, 다른 문화에 접근하고 그것을 공유하는 커뮤니티가 늘어나고 있는 사회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콘텐츠는 로컬인데 그것을 펼쳐 보이는 방법은 규격화해야 한다는 말도 옛말이 되어 버렸다. 이제 보이는 문맥에 맞게 창의적인 프레임을 만들어야 한다. 체코라는 변두리에서 생산한 버드와이저가 오리지널이고 미국이란 중심부에서 생산한 버드와이저가 짝퉁이라는 사실은 결코 숨길 수 없는 개방과 소통의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앞선 글에서 필자는 미술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보물이고 전시기획이 란 ‘그 보물을 적절한 문맥에 올려 놓아 사람들이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게 해주는’ 창의적인 행위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래서 어떻게 문맥을 읽어내고 어떤 문맥을 선택하는가가 매우 중요한 과제로 남는다. 지금 현재 유행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읽고 동그라미를 그린 다음, 그 동그라미 밖에 있는 것을 골라 나가야만 그나마 실패율이 낮은 게 전시기획이다. 이 분야 역시 중심과 변두리 간의 줄다리기가 적용된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다른 여타 분야보다 이 분야만큼은 누가 먼저 변두리에 자리 깔고 앉느냐가 성공의 관건이 되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제도권에서 안정적인 운영을 하고 있는 미술관과 실험실처럼 파격을 두려워하지 않는 대안공간 사이에서 작가들은 어디를 선택해야 할까?
대안공간은 중심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공간이다. 문턱 높은 미술관에서 순발력을 가지고 다룰 수 없는 장르와 작가들의 작품을 다룬다. 뉴욕 모마(MoMA)가 검증되지 않고 좀 더 실험적인 전시를 대안공간의 성격이 짙은 P.S.1에서 먼저 선보이는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대안공간은 즉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대미술을 보다 실험적인 문맥 속에 풀어 놓는다. 뉴욕 모마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미술관과 대안공간, 즉 중심과 변두리의 거리 역시 최근 상당히 좁혀졌다. 시장의 유행을 따르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다는 환경 때문에 요즘 다시 대안공간이 뜨고 있다. 작가들이 하나 둘 모여 작업실을 그룹으로 오픈하기도 하고, 정부지원금에 의지해 상당히 비상업적인 설치미술을 선보였던 이전의 대안공간 생존 전략에서 벗어나 상업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공간들이 생겨나고 있다. 혹자는 대안공간이 상업적인 요소를 차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이야기하지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미술은 미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그것을 정의하는 이데올로기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펼쳐져야 한다. 대안공간에서 보이는 미술이 항상 대안으로 남아 있다면 대안공간의 본 취지에 맞지 않는다. 궁극적으로는 대안이 주류가 되고 변두리가 중심부가 될 수 있을 때 대안공간이 의미 있는 것이다.
그 런 의미에서 ‘대안공간’이란 간판을 내걸었다고 해서 다 대안공간이라고 불려서는 안된다. 어떤 전시, 어떤 콘텐츠를 선보이는가가 중요하다.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만한 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충분한 공간과 자본 그리고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안목과 추진력이 필요하다. 미술관도, 상업공간도 대안공간 역할을 할 수 있다. 중심이 변두리로 자발적으로 걸어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뉴욕 소호에 위치한 다이치 프로젝트는 상업공간이면서도 가장 대안적인 미술을 선보이는 갤러리다. 결국 콘텐츠와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이 중요하다. 얼마 전 필자의 눈을 끈 보이드 갤러리는 보여주는 방식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공간이다. 도시 속 숨겨지거나 버려진 공간을 찾아 미술로 채워준다는 매우 단순한 발상에 많은 작가가 호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건물주는 미술로 건물이 특별해져서 좋고, 작가들은 미술관 공간이 아니기에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다.
지구상에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지구상 어느 곳이든 48시간 내에 도달하지 못할 곳이 남아있지 않은 오늘날, 미지의 공간을 발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지표 위가 아닌 땅속 혹은 물속 등 숨겨진 공간만이 인간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정도다. 숨겨졌던 세상을 발굴해내는 고고학자의 세밀한 붓질이 아니고서야 더 이상 새로운 세상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결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끊임없이 정복대상을 발견하고 없으면 심지어 만들어서 자랑하고 싶어한다.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유목민적인 한계를 넘어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싶어한다. 글로벌리즘으로 세상이 평평해지면 질수록 인간은 약간의 굴곡과 불예측성 앞에 열광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리즘 속에서 로컬리즘이 빛 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앞으로 변방은 더 이상 변방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로컬 문맥 속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아우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대형 (큐레이팅 컴퍼니 Hzone 대표)
원문 : http://www.fnnews.com/view?ra=Sent1301m_View&corp=fnnews&arcid=090723160604&cDateYear=2009&cDateMonth=07&cDateDay=23
▲ 하얀색의 전시장 벽면에 구멍을 뚫어놓은 '블랙 에이시드 코압' 전시의 한 장면. 제도화된 공간에 구멍을 뚫어 전시장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공간과 대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 서울 원서동 길가의 모퉁이에 위치한 6㎡ 남짓한 보이드 갤러리. 빈 공간을 찾아 작가와 연결해주고 게릴라식 전시를 통해 사람들과의 새로운 소통 구조를 고민하는 대안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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